칠순의 탐진치
칠순의 탐진치
2025학년도 1학기 중간과제물
교과목명 : 소설창작론
학 과 : 국문학과
학 번 : 202410-300
성 명 : 황대식
칠순의 탐진치
앞에는 낙동강 물이 굽이쳐 흐르고, 뒤로는 무수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곳에 가람 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 여덟이나 있다고 하여 ‘가람 팔락교’라고도 불렀다. 마치 호랑이가 건너오는 듯한 강 건너 풍경을 보는 즐거움, 강물을 헤치고 나루로 돌아오는 돛단배를 보는 즐거움, 하얀 모래펄에 내려앉는 기러기 떼를 보는 즐거움, 학교 북쪽 늪에 피어 있는 홍련을 보는 즐거움, 학교 앞 개울물이 강물과는 반대로 십 리를 흐르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 학교 앞뜰의 회화나무를 보는 즐거움, 학교 후원에 있는 오죽을 보는 즐거움, 학교 앞 서쪽 벌판에 보리가 누렇게 익은 풍경을 보는 즐거움. 이 여덟 가지 즐거움이 있는 곳이었다.
여덟 가지 즐거움이 둘러싸고 있는 가람초등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조회를 했는데 이때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있었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한다!”.
혁명공약이다. 혁명공약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육군 소장이 군사 정변을 일으켜 군사혁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여섯 가지 성명이다. 우리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1961년은 5·16 군사 정변이 일어난 해이다. 어린 시절에 암기한 것들은 장기기억으로 지금까지 저장되어 있다. 당시 겨우 내 이름 석 자만 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처럼 어려운 장문의 글을 외우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초등학교 입학 후 3개월도 되지 않아서 일어난 5월 16일 군사 정변의 공약은 매일 아침 전체 조례에서 교장선생님이 선창하면 전교생이 따라 외쳐야 했다.
올해는 2025년이다. 64년 전에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온 가람초등학교 38회 동기회는 여러 소식을 요즘 흔히 쓰는 카톡을 통해서 알리고 있었다. 의성에서 난 산불이 안 꺼지고, 산청에서 난 산불도 지리산까지 넘보는 미세먼지 우중충한 봄날이었다. 나는 중학교 동기 카톡에서 받은 다소 선정적인 동영상 하나를 초등학교 카톡방에 올렸다.
그러자 “왜 이런 걸 올리시나, 이 방은 동기모임 공지사항 전달 톡방이라 몇 번을 강조했는데 ....”라는 글이 곧 바로 올라왔다. 초등 동기 카톡의 운영자이자 동기회 회장인 영희가 올린 글이다. 전에도 공지사항 외에는 올리지 말라고 하여 나름 조심하면서 친구들에게 알리면 좋을 내용이 있으면 가끔 올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런 것도 안 올리면 이 방은 죽은 카톡방이 됩니다. 공지사항이 일 년에 몇 번이나 되나? 그렇다고 따로 대화방이나 있나! 이런 것도 못 올리게 하는 것은 회장님의 독선입니다! 나의 중, 고, 대. 대학원 동기 카톡방에 올라온 것 중 선별해서 올리는 것입니다.”라고 다시 글을 올렸다. 대학과 대학원 동기 카톡방을 거론한 것은 영희의 기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영희는 여학생반 반장으로 아버지가 농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청 간부라 집안도 먹고 살 만했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여학생 중에서는 1등이라. 남학생들은 늘 영희공주라고 불렀다. 영희는 읍내 여중을 다닐 때 갑자기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집안이 기울어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였다. 당시는 여자는 대부분 중학교도 안 보내고 집안일을 돕도록 했던 시절이었다. 영희는 비록 중졸이 최종학력이나 독학으로 9급 공무원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성실하게 근무하여 당시에는 여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5급 사무관으로 정년 퇴직을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삼십 수 년만에 영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람초등학교 동기회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나는 좋다고 했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한 후 50대 초반의 나이로 영희를 만났다. 내 기억 속의 영희는 읍내 중학교를 다닐 때 보았던 것이 마지막이다. 그 후 나는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고, 영희는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영희를 알아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 그 갸름하고 눈이 큰 소녀는 어디로 가고 없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둥글둥글한 얼굴에 그 시절보다 작아진 눈을 가진 중년의 부인이 자기가 영희라고 한다.
만나자 말자 영희의 첫 마디가 “선도 니 내 좋아 했제?” 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니 요즘도 노래 잘 하나?” 라고 질문을 한다. 그 시절 다른 친구들처럼 영희에 대한 막연한 관심은 있었는지 몰라도 사실 나는 대학을 가기 전까지는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를 몰랐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의 애틋함은 거의 느껴보지 못했다.
고등학교 진학에 실패한 후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담장 밖에서 누가 공부하고 있는 방문에다 흙덩이를 자꾸 던졌다. 나가 보니 앞집에 사는 동갑내기 옥자였다. “이 가시나가 미쳤나”라고 하면서 옥자의 머리통을 한방 갈겼다. 그러자 옥자는 울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그 일이 있은 며칠 뒤에 노래자랑 대회가 열렸다. 당시에는 마을마다 노래자랑대회가 아주 큰 인기였다. 뒷집에 사는 단짝 강식이가 와서 오늘이 노래자랑 마지막 날이라면서 같이 놀러 가자고 왔다. 나는 별 흥미를 못 느껴 너 혼자 가라고 했다. 그런데 강식이는 평소와 달리 집요하게 나를 데리고 가려고 무척 애를 썼다. 공부도 잘 안되고 해서 따라나섰다.
두루 십 리 안에 거주하는 낯이 익은 수백 명의 청춘 남녀들이 다 모여 있었다. 내 또래가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런데 다음에 부를 사람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아닌가. 내 귀를 의심했다. 신청비가 제법 고가여서 당시 내 용돈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그런데 강식이가 너라고 하면서 빨리 무대로 올라가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올라갔다. 아는 곡이라고는 김상진의 ‘이정표 없는 거리’와 ‘고향 아줌마’라 ‘이정표 없는 거리’를 얼떨결에 부르고 내려왔다.
강식이에게 노래비는 네가 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조금 떨어져 있는 옥자를 가리킨다. 며칠 전에 흙덩이를 내 방문에 던져 나에게 머리통을 한 대 맞은 옥자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옥자에게 다가가 그저께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옥자는 금세 배시시 웃으면서 괜찮다고 한다. 옥자는 그 당시 홀치기라는 부업을 돕고 있어서 제법 용돈을 모았다고 한다.
예선전이 끝나고 준결선에 올라갈 명단을 발표한다. 그런데 사회자가 내 이름도 불렀다. 재수라고 생각하면서 준결선에서는 ‘고향 아줌마’를 불렀다. 생각보다 청중들의 호응이 좋았다. 이어 결승전 명단을 발표하는데 결승 진출 7명에 내 이름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승에서는 다시 ‘이정표 없는 거리’를 불렀다. 그런데 신기하게 예선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청중들의 표정과 반응이 내 눈에 다 들어왔다. 전혀 떨리지 않아 한껏 멋을 내어 불렀다. 그 결과 겨우 중학교 졸업한 내가 당당히 1등을 했다. 당시에는 고가인 호마이카 상을 부상으로 받았다. 상이 무거워서 옥자와 강식이와 셋이서 힘들게 가져왔던 기억이 난다.
당시 노래자랑에서 당당히 1등 하는 것을 영희가 본 것이다. 그 광경을 몇십 년 후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니... 영희와 둘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추억을 나누며 점심과 저녁까지 먹고는 헤어졌다. 그날 동기회 명단을 작성하고 내가 회장을 하고 영희가 총무를 하기로 하였다. 그 후 둘이서 호흡을 잘 맞추어 38회 동기회가 가람초등학교 최고의 동기회로 평가받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내 글이 올라간 후 곧이어 춘식이가 내 글에 호응하면서 교훈적인 내용의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춘식이는 칠순 기념으로 중국 구체구와 성도 여행 갔을 때 4일 동안 같은 방을 쓴 친구이다. 고도가 높은 황룡을 내려오면서 힘들어 하던 춘식이의 손을 꼭 잡고 1시간 넘게 같이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10여 분이 지나자 옥경이가 글을 올렸다. “선도야 이게 무슨 소리야 이런 것을 올려놓고 못 올리게 하면 회장님 독선이라고... 우리 수준으로는 이런 것이 이해가 안 된다. 너 대학, 대학원 동창방에서 즐기는 수준을 우리 여학생들이 이것을 보고 좋아 하겠니? 우리 카톡방에서 개인 의견을 들어보자- 어찌 우리가 너 수준에 맞출 수 있겠냐마는 우리끼리 의논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우리들인데- 이렇게 하면 그 자랑스러워하는 38기 동창회가 무슨 의미로 남을까- 이 카톡방에 그 사진은 합당하지 않다는 회장님의 의견을 독선이라고 하니 너무 어이가 없다- 이것은 오로지 내 생각이야 내 생각이 잘 못 될 수도 있어- 각자의 의견 한마디씩 올려주면 좋겠다. 내가 잘 못 되었으면 내가 사과할게-”
옥경이는 영희와 함께 단 두 명만 읍내 여자중학교를 졸업한 동창이다. 맞춤법이 좀 틀리고, 문맥이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자기의 생각을 글로 아주 잘 표현했다. 그런데 칠순이 넘어도 성장기의 유교적인 가치관의 벽은 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잘못되었으면 사과를 한다는 여지를 남겼다.
옥경이가 다툼의 방향을 잘 못 알고 있는 것 같아 다시 톡을 올렸다.
“초등학교 친구들이 좋은 이유는 철없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다. 그래서 야사시한 동영상도 부담 없이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주제는 그런 동영상이 아니라 초딩 동창 카톡의 근본적인 운영체제 문제다. 다양한 내용을 자유롭게 올려 서로의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카톡 본래의 기능이다. 영희가 주장하는 것은 공적인 공지사항만 올리라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초등 동창들의 개인적인 사연이나 유익한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는 대화의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 초딩 카톡의 매력은 체면 불구하고 무엇이든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회장이라도 내용을 제한할 수 있는 권리와 권한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내 글을 보고 바로 올라온 것은 영수의 글이다. “카톡은 자유롭게 대화나 정보와 지식자료를 공유하고 전달 사항이나 공지 사항은 단체문자로 하면 좋을 듯하네...”
영수는 나와 함께 톡에 글을 가장 많이 올린 친구이다.
이어서 올라온 글은 철수의 글이다.
“동영상 죽인다- ㅋㅋ 근데 AI 같다 야!!! 이제 칠십 평생 이것저것 다 겪고 볼 것, 안 볼 것 가리지 않고 집밥 외식 다 먹어 봤는데 뭐 이 정도 가지고 발끈할 필요까지 있겠나- 잠시 머리도 식히고 옛날 좋았던 시절 떠올리면서 한번 웃고 가면 될 것을 ... 일소(一笑) 일소(一少)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 하하 너무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 그냥 재미있게 살자꾸나 ... 하하 둥글둥글하게 말이다...”
철수는 전임회장으로 동기회의 주축이다. 동기모임 주요 경비를 혼자 부담했다. 회갑 기념 제주도 2박 3일 경비 전부와 칠순 기념 중국여행 경비 절반을 혼자서 부담했다.
일단 이것으로 그날은 논쟁은 끝이 났다. 그런데 다음날까지 이 사단의 주인공인 영희는 아무런 답변도 없다. 이대로 끝낼 수 없었던 나는 “이 방은 회장님의 공지 사항만 올리는 방으로 하고 단체 대화방은 새롭게 개설하겠습니다.”라는 톡을 올리고 새롭게 ‘가람초등 38회 대화방’이란 이름으로 카톡을 개설했다.
그러자 철수가 “우리 동기회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이 칠십을 넘어 세상사 덧없고 무상함을 누구보다 느끼고 깨달을 텐데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서로 이해하고 아량을 베풀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 것을... 많이 아쉽고 안타깝구나... 다음에 만나 서로 섭섭하고 부족한 부분 훌훌 털고 갔음 좋겠다...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 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늘 마음에 간직하면서 살면 좋겠다.”라는 글을 올렸다.
철수는 조숙하여 일찌기 인생무상을 느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었다. 삼 년 동안 스님 생활을 하다가 군대에 의무복무를 하기 위해 군인 생활을 하고는 마음이 바뀌어 환속하여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동서기를 3년간 하다가 그만두고는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했다. 그 후 계속 공부하여 석. 박사를 마치고 대학교 겸임교수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철수는 불교의 교리와 윤회설을 확실히 믿고 있는 친구이다.
삶에 있어서 괴로움을 일으키는 요소들을 탐진치(貪瞋癡)라고 한다. 욕심, 성냄, 어리석음을 말함인데 이를 삼독(三毒)이라고도 한다. 탐진치가 모두 소멸되었을 때가 열반이다. 열반(涅槃, nirvana)은 ‘불어서 끄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 번뇌의 불을 끈 상태를 말한다. 열반에 이르는 길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한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없어지고, 모든 존재는 고정불변하지 않을 것인데 영원히 살 것처럼 실체도 없는 온라인의 대화방에서 이러쿵저러쿵 다투고 있는 내 탐진치가 철수의 물 바가지를 맞고 사르르 꺼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