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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공부

순자(荀子)

by 황교장 2022. 6. 3.

순자(荀子)

사람의 본성은 악하며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는 일이 생기며 충성과 믿음이 없어진다.”

위의 내용은 순자23'성악'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는 성악설의 요체이다.

 

여강고성 목부

순자(荀子)는 대략 기원전 313년에 태어나 238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기원전 221)하기 17년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조나라에서 태어난 순자는 제나라로 건너가 당시 학자로서 최고 영예인 제나라 직하(稷下)의 학궁(學宮)에서 좨주(祭酒)’직을 세 번이나 맡았다고 한다. 좨주는 최고의 국립대학교 총장 겸 연구책임자 자리다. 당시로는 최고의 지성인이다. 그런데 순자는 제나라 사람의 모함을 받아, 초나라 춘신군의 도움으로 난릉지역에서 지금의 도지사 격인 영()이 되었다. 그후 저술 활동을 하다가 난릉에서 생을 마쳤다. 순자 문하에는 진나라의 재상을 지낸 이사와 법가 사상을 완성한 한비자가 있다. 순자는 처음에는 322편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으나 한나라 때 유향이 32편으로 정리하였다.

 

계림 인상유삼저

32편 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6비십이자23성악이다. 6편에서는 같은 유가인 자사와 맹자를 옛 법도를 대충 본받아 멋대로 알 수도 없는 오행(五行)’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23편에서는 맹자가 사람의 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 본성과 작위의 구분을 잘 살피지 못했고, 본성이 타고난 것이어서 배워서 행하게 될 수 없는 것임을 무시하였다고 비판한다. 또한 사람들이 감정과 본성을 따르면 곧 사양하지 않게 되며, 사양을 하면 즉 감정과 본성에 어긋나게 된다, 우리에게는 본성적인 사양지심이 있다는 맹자의 가정을 부정한다.

이처럼 순자는 지금 사람들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어진다.”라고 하였다.

 

차마고도

서양철학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다. ‘요람논쟁으로 불리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논쟁이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알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를 관찰해보면 무엇이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성인지 잘 알 수 있다는 가정하에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가 같이 연구했다. 그러나 결론은 달랐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이라고 했고, 스토아학파는 자기보존이라고 했다. 그러나 쾌락을 위한 것이든 자기보존을 위한 것이든 이기적인 행동 즉 어린이는 자기밖에 모른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차마고도

순자의 철학과 늘 비교되곤 하는 근대 영국 철학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토마스 홉스(1588-1679)는 요람논쟁에서의 자기보존을 받아들인다. 홉스는 세계를 물체의 운동으로 보았다. 인간도 물체의 하나이기 때문에 자연법칙에 따라 인과적으로 운동한다고 생각했다. 홉스는 인간이라는 물체의 운동을 관찰한 결과 운동의 주된 동인은 자기 이익, 곧 이기심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이기심으로 인간은 한정된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만인의 투쟁상태가 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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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스는 이기심을 동력으로 인간들이 서로 싸우는 자연 상태를 더 자세히 관찰한 결과 인간에게 주어진 권리와 법칙이 있음을 확인했다. 즉 최고 단계의 자기 이익은 상호 폭력으로부터의 자기보존(self-preservation)에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인간은 자기보존을 위해 판단하고 행동할 자연적 권리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자기보존을 위해 행동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존중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이러한 법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간들은 서로 계약의 주체가 되어 상호 동의를 통해 사회를 구성한다. 개인들은 사회계약을 효율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군주에게 권리를 양도하고, 군주는 그들 간의 평화 상태를 유지할 의무를 진다. 개인은 자기보존을 위해서라도 사회계약에 동참한다. 그리고 사회계약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만약 군주가 백성들을 보호하는 계약조건 이행에 실패한다면, 백성들은 이를 계약 파기로 간주하고 군주를 폐할 수 있다.

 

병마용갱

여기에서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를 중지하고 조정할 장치를 계약에서 찾았다면 순자는 예와 분별에 따르는 도덕적 위계에서 찾았다. 또한 홉스는 군주가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군주를 폐한다고 한 것처럼 순자 역시 임금은 배고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뛰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라고 주장하여 임금을 폐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맹자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맹자는 나는 포악하고 무도하여 백성의 마음을 잃은 걸과 주를 처형했다는 말을 들었어도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하였고, ‘민이 가장 귀하고 그 다음이 사직이고 군주는 가장 가벼운 존재라고 했다. 이로써 동서양이 시대와 지역은 다르지만 아주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자묘

그런데 순자는 스스로 자사와 맹자를 비판하면서 자신이야말로 공자의 사상을 제대로 계승한 진정한 유학자임을 표방한다. 그러나 송나라 이후 도통(道統)의 계보에서 맹자와 달리 순자는 철저히 배제된다. 도통은 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을 거쳐 공자로 이어진다. 공자부터 다시 시작되어 주자까지 이어진다. 오늘날에도 성균관이나 향교의 대성전에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공자의 위패를 가장 가운데에 놓고 양쪽으로 공자의 제자를 함께 배향한다. 배향된 인물은 사성으로 일컬어지는 안자, 증자, 자사, 맹자와 공자 문하의 십철인 민손, 염경, 염옹, 재여, 단목사, 염구, 중유, 언언, 복상, 전손사와 송대 육현인 주돈이, 정이, 장재, 정호, 소옹, 주희와 동국 18현으로 불리는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의 위폐를 모신다. 어디에도 순자의 위폐는 없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사묘

당나라의 한유는 순자의 사상은 대체로 순수하지만, 작게는 흠이 있다라고 평가 했다. 이는 전국시대라는 혼란의 시기에 예를 비롯한 유학 사상을 바탕으로 극복하여 지극히 고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그의 노력은 인정할 만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했고, 그의 사상 곳곳에서 유학이 아닌 제자백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법가사상의 대표자인 한비자와 이사가 순자의 제자라는 점이다.

대성전

맹자와 순자는 모두 자신이 공자의 유가 사상을 계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의 사상의 주체는 공자라는 뜻이다. 공자의 주된 사상은 인()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인에 대해 제자에 따라 달리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안연에게는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인이다(克己復禮爲仁)’ 라고 하였고, 중궁과 자공에게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고 했다. 증자는 공자의 도는 충서일 뿐이다(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하였고, 자장은 공자의 덕을 ()순하고, ()어질고, ()공손하고, ()검소하고, ()겸손하다라고 했다. 이처럼 인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은 인간다움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인간다움이란 한 인간 속에서 다양한 덕목이 통합적으로 균형 있게 갖추어질 때 달성되는 것이다.

 

화청지

맹자는 '고자상'에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이고,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은 ()이고, 공경하는 마음은 ()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은 ()이다. 이러한 인의예지는 밖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인데 다만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라고 주장을 했다. 따라서 맹자는 공자의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선한 본성의 실마리를 통해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수하

반면에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지만 인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노력이 있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자기 수양은 끊임없는 작위로 이루어짐으로 스스로, 지속적으로 자기 행위를 바로 잡아야 하며, 반성적 사유로 최선의 방안을 결정하면, 작위의 완성을 위해 이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하였다. 순자는 인간의 합리성과 실천의지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다.

순자는 자기 수양의 기준을 성인에서 찾았다. 성인 역시 다른 사람과 같이 나쁜 본성을 지녔지만, 후천적으로 탁월하고 인위적인 노력이 성인을 만들었다고 보았다. 사람들은 성인이 남겨 준 사례를 따름으로써 나쁜 본성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인간으로 변모할 수 있고, 타인과 다툼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사람이 타고난 자질보다 꾸준히 노력하는 작위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순자는 배운 것을 행하면 선비라 불리고, 그것에 힘쓰면 군자가 되고, 그것에 통달하면 성인이 된다. 위로는 성인이 되고 아래로는 선비와 군자가 되는데 누가 나를 막을 수 있겠는가라고 했다. 이는 사람은 인위적 노력을 통해 나쁜 본성을 바꾸어 군자도, 성인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계림 이강

맹자의 성선설이든 순자의 성악설이든 공자사상의 핵심인 인을 실천하는 데 있다. 인을 실천함으로써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철학이 현실을 보는 눈이라고 한다면, 동양철학은 공자의 눈으로, 맹자의 눈으로 순자의 눈으로 오늘을 보자는 의미이다. 결국 이분들의 눈을 통해 나의 눈을 만드는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나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므로 철학공부는 날마다, 나이가 들어도 멈추지 않아야 할 평생의 공부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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