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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영국 여행 2 - 옥스퍼드대학교

by 황교장 2023. 6. 2.

영국 여행 2 - 옥스퍼드대학교

 

‘코츠월드’의 Bourton-on-the-Water 마을을 나와 옥스퍼드시로 갔다. 옥스퍼드시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영국 농촌의 모습이다. 옥스포드는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져 있다.

옥스퍼드시의 인구는 약 17만 명이지만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유학하는 외국인 유학생들로 인해 영국에서 가장 외국계 주민 비율이 높은 곳이다. 지명의 유래는 황소(Ox)가 건너는 여울(ford)에서 생겼다고 한다.

옥스퍼드 시가지

옥스퍼드대학교는 2021년 타임스 고등교육(THE)과 포브스의 대학 순위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명문대학이다. 타임스 고등교육은 또한 평판 순위에서 옥스퍼드대학교를 버클리대, 케임브리지대, 하버드대, MIT, 스탠퍼드대 등과 함께 ‘세계의 여섯 개 슈퍼브랜드’의 하나로 꼽았다. 학생은 20,786명 (2020년), 전임교원은 6,650명 (2020년)이다.

옥스퍼드대학교

일반적으로 대학교라고 하면 메인 캠퍼스가 있다. 그러나 옥스퍼드대학교는 메인 캠퍼스가 없고 옥스퍼드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설립 연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져 있기 때문이다. 옥스퍼드대학교는 39개 대학과 6개의 상설사설학당(Permanent Private Hall, PPH)으로 구성된 대학 연합체이다. 상설사설학당은 각기 다른 기독교 교단에 의해 설립되었다. 대학과 PPH의 차이는 대학이 교수진에 의해 관리되는 반면 PPH의 관리는 부분적으로 해당 기독교 교단의 관리를 받는다는 점이다.

윌리엄 2세(재위 1087~1100)가 통치하던 1096년에 옥스퍼드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옥스퍼드대학교가 영어권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세계에서는 1088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볼로냐대학교 다음으로 오래된 대학이라는 의미이다.

옥스퍼드대학교는 1167년 헨리 2세(재위 1154~1189)가 영국 학생들이 파리대학에 다니는 것을 금지한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 1209년 학생들과 옥스퍼드 주민과의 분쟁으로 일부 학자들이 북동쪽으로 이주하여 케임브리지대학을 설립했다. 1209년은 대헌장(Magna Carta, 1215)으로 유명한 존 왕(재위 1199~1216) 때이다.

일반적으로 옥스퍼드대학 900년을 네 시기로 구분한다. 가톨릭 대학(1100~1534)을 시작으로 영국 국교회 대학(1534~1845)과 제국 대학(1845~1945)을 거쳐 세계 대학(1945~현재)으로 발전했다.

거의 모든 유럽 대학은 설립 초기부터 교황과 황제의 권력에 의해 승인된 교육 기관이었다. 종교개혁 이전 유럽의 모든 대학은 성직자를 배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종교개혁 이후 헨리 8세는 결혼 문제로 인한 교황과의 다툼으로 영국 국교회를 세웠다. 이에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영국 국교회 대학(Anglican University)이 되었다.

제국주의 시기에 옥스퍼드대학은 국가가 요구하는 인재와 지식을 가르쳐 영 제국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제국 대학(Imperial University)이었다.

옥스퍼드가 연구 중심 대학을 지향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이었고, 1930년대에는 나치를 피해 독일로부터 망명한 탁월한 과학자들 덕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국주의 시대가 저물자 옥스퍼드는 세계 대학(World University)으로 성장했다. 영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나치 정권의 억압에 의한 과학자들의 국제적 이주, 그리고 옥스퍼드 내부의 노력 덕분이다.

가이드를 따라 옥스퍼드의 몇 개의 칼리지의 외형만 보았다. 걷다보니 대학캠퍼스 순례이기보다는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 시대로 온 느낌이다.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이어져 있다. 가이드는 걸어가면서 많은 대학들을 설명을 하는데 너무 많고 복잡하여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었다. 적어도 한달살이는 해야 어느 정도 이 도시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 내부를 관광하기 위해 옥스퍼드 대성당을 지나 뒷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학생들이 푸른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에서 체육수업을 하고 있었다. 대체로 유럽의 초 중등학교의 교육과정은 오전에는 학교 교실에서 교과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지역사회의 체육시설을 이용하여 다양한 종목의 체육수업을 받는다. 지금 이곳에서도 그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참 부러운 광경이다.

넓은 잔디 구장을 지나 옥스포드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명성이 높은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Christ Church College)로 들어갔다. 한국어로 설명하는 이어폰을 끼고 설명을 들으면서 들어갔다.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는 옥스포드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대학은 1525년 주교이자 총리였던 토마스 울시가 창설 계획을 세우고, 1546년 헨리 8세가 설립하여 크라이스트 처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무려 13명의 영국 총리를 배출한 대학이기도 하다. 교직원과 학생식당으로 이용되고 있는 그레이트 홀은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레이트 홀

그레이트 홀을 둘러본 뒤에는 크라이스트 처치의 부속 성당으로 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학 내에 주교를 두고 있는 주교좌성당(Cathedral)이 자리한 독특한 형태의 대성당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높은 천장과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다. 성당 안에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더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국의 역대 총리 57명 중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를 포함하여 옥스퍼드대학교 출신은 30명, 케임브리지 출신은 14명이다. 흔히 두 학교를 ‘옥스브리지’라고 부르지만, 정계 진출 면에선 옥스퍼드가 케임브리지를 크게 앞선다.

1945년 이후 취임한 총리 16명 중에선 13명이 옥스퍼드 출신이었다. 마거릿 대처, 토니 블레어, 데이비드 캐머런,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 등의 영국 총리를 배출했다. 또한 빌 클린턴, 넬슨 만델라, 아웅산 수지 등 다른 나라 대통령들의 모교이기도 하다. 천재 천체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비롯해서 노벨 수상자 72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옥스퍼드대학이 케임브리지대학에 비해 총리를 많이 배출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영국 유권자의 보수 성향 덕분이라고 한다. 보수당이 더 오랜 기간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보수 성향이 강한 옥스퍼드대 출신들이 더 많이 총리가 될 수 있었다. 반면 케임브리지대학은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다. 1642년부터 9년간 벌어진 청교도혁명(Puritan Revolution)이라고도 불리는 영국내전(1642~1651) 때 영국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국왕(찰스 1세)을 참수한 올리버 크롬웰이 케임브리지대 출신이다. 당시 찰스 왕의 본부가 이곳 옥스퍼드대 크라이스트처치칼리지에 있었다.

영국에서 사회 지도층은 대개 그리스·로마 고전문학(Classic), 예술사, 역사, 지리, 철학, 수학 같은 순수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옥스퍼드 PPE가 사회 지도층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PPE란 철학·정치·경제의 융합 전공이다. PPE는 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의 약자이다.

옥스퍼드가 PPE를 개설한 것은 1920년이다. 러시아 10월 혁명과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혼란해진 세상을 구한다는 목적으로 순수 인문학만이 아닌 융합 전공 학과를 개설한 것이다. 사회 지도층의 산실인 PPE는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데이비드 캐머런, 리즈 트러스에 이어 현 총리인 리시 수낙까지 5명의 총리를 배출한 학과이기도 하다. 리시 수낙 총리는 인도계 출신 최초의 총리로 첫 힌두교 신자 총리, 첫 1980년대생 영국 총리, 현재의 국왕인 찰스 3세가 임명한 첫 총리이기도 하다.

단일 학과 졸업생들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비밀은 교육과정에 숨어 있다. 졸업생들은 PPE를 전공하면서 동료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자극을 받아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자연스럽게 습득했다고 말한다. 다양한 PPE 과목을 이수하면서 사물과 세상을 비교 분석하는 비판적인 눈을 갖게 되고 각종 정보를 이해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식도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기술’은 토론 방법이었다는 것이 졸업생들의 말이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어떻게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해야 하는지, 진정한 토론(How to construct and deconstruct argument)의 방법을 학생들간의 끊임없는 토론과정을 통해서 배운다고 한다.

또 경제 과목에서도 단순히 경제 이론만을 배우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경제 관련 통계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인문학 전공자라 하더라도 수학 전공자들만큼 수학을 배우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PPE 코스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대학입학 학력시험 A레벨에서 A+ 3개를 받아야 할 정도로 높은 성적을 요구한다. A+ 3개의 성적은 2019년에는 전체 수험생 중 1.6%만이 받았다. 2022년의 경우 1,994명이 PPE 입학원서를 제출해 264명만이 합격한다. 1,994명은 당연히 A+ 3개라는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다. 영국 최고의 인재들이 응시하더라도 100명 중 13명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정말 피 튀기는 경쟁인 셈이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경우 장래 총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원래 옥스퍼드 PPE를 지원했으나 떨어져 대신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영국에서 옥스퍼드 PPE를 전공하면 엄청난 자격증을 받는 것과 다름없다. 옥스퍼드대학을 나온 것만으로도 모든 문이 열리는데 거기에 더해 PPE를 전공하면 열린 문 중에서도 골라 들어갈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PPE가 성공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관문인 셈이다.

PPE 졸업생들에게 시간적,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것이 과제의 양이라고 한다. 적어도 주당 2편의 에세이를 제출해야 하고, 주당 최소 5권의 전공서적이나 논문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말 말고 주중에는 정말 눈코 뜰 새도 없다고 한다. 이런 ‘압력’을 견디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기력이 소진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졸업생들은 이런 압력을 견디는 일도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양날의 칼처럼 PPE 교육 과정은 ‘짧은 시간에 중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에 맞춰져 있다. 중대한 결정도 모든 조건을 감안해서 신중하게 시간을 두고 하기보다 신속하게 하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졸업생들은 결국 ‘자신의 영감’만을 믿고 결정하는 교육을 받는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신속한 결정은 좋지만 주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결정만이 옳다는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옥스퍼드 PPE 교육을 받은 캐머런 전 총리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실패한 것을 그 예로 들기도 한다. 캐머런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에서 이긴 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브렉시트 투표까지 2016년 감행해서 결국 영국을 EU로부터 탈퇴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결국 급하고 미성숙한 사고를 가진 PPE 출신들의 지나친 확신과 허세가 세상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비판이다. 이처럼 세상에 모든 면에서 완벽한 것은 없다.

최근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권위 있는 영어사전인 Oxford English Dictionary(OED,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국어에서 유래한 단어 26개가 추가됐다. OED의 공식 블로그는 “대박(Daebak)! OED가 K-업데이트를 했다”는 제목의 글을 공개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OED는 “요즘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제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모든 것에 ‘K-’라는 접두어가 붙는 것 같다”며 “우리 모두는 한류의 정점을 달리고 있으며 이는 영화, 음악, 패션뿐만 아니라 말에서도 느낄 수 있다”고 한국 관련 단어가 대거 업데이트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K-드라마’가 새롭게 OED에 추가됐다고 설명했다. “2002년 싱가포르 신문에서 처음으로 이 단어를 사용했으며 K-드라마는 이제 ‘케이팝(K-POP)’과 같이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게 OED의 설명이다.

이번 업데이트에서는 한국 음식을 일컫는 단어가 여럿 포함되었다. 반찬, 불고기, 동치미, 갈비, 잡채, 김밥, 삼겹살, 치맥 등이다. 대표적인 한국 음식 김치는 이미 1976년에 올라갔다. 잡채는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셀로판 국수를 야채와 다른 재료를 넣어 함께 볶은 요리로 간장과 참기름으로 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치맥에 대해선 “맥주와 영어 단어에서 빌려 온 튀긴 닭을 뜻하는 치킨의 합성어”라며 “프라이드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K-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한국 밖에서 대중화됐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한류가 이곳 옥스퍼드대학교까지 점령했다고 하면 지나친 과언일까?

시내에서 자유시간을 가지는 동안 옥스퍼드대학교의 로고가 새겨진 체육복을 손녀 두 명을 위해 샀다. 훗날 손녀들이 이 고색창연한 옥스퍼드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아 한국을, 세계를 이끌 동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겨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