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풀이의 본고장 이천동 제비원 석불
봉정사를 나와 안동방향으로 좌회전하여 5분 정도 영주 가는 국도 5호를 만난다. 다시 안동 쪽으로 우회전 하여 5km 정도 가면 왼편에 이천동 석불(보물 제 115호)이 나온다. 이천동 석불은 차를 타고가다 보는 모습이 가까이 가서 보는 것보다 더 확연하다.
이천동 석불은 안동을 여행하다 보면 안동을 알리는 선전물에 자주 등장하는 석불이다. 일명 제비원 석불이라고 한다.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고 있다.
이천동 제비원 석불
“이 불상은 거대한 화강암 석벽에 조각된 불신(佛身) 위에 불두(佛頭)를 따로 제작하여 올린 특이한 형태의 마애불(磨崖佛)로 머리 뒷부분이 일부 손상된 것 외에는 전체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풍만한 얼굴, 큼직한 백호(白毫), 초승달 모양의 깊게 파인 눈썹, 날카롭게 우뚝 솟은 코, 붉게 채색된 도톰하고 굳게 다문 입술 등은 장중하고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손의 모양은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을 취하고 있으며, 불상의 발밑에는 큼직한 단판 연꽃무늬를 새겨 불상 받침으로 삼고 있다. 이 불상과 같은 형식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는 것으로 얼굴의 강한 윤곽이나 세부적인 조각양식으로 볼 때 11세기 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높이는 12.39m이다.
제비원은 성주풀이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전설도 지니고 있는데,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이 칼을 빼어 불상의 목을 쳤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는 청송의 주산지와 절골 그리고 이곳 제비원이다.
‘원(院)’이란 옛 사람들이 쉬어가던 일종의 여관이다. 영남에서 서울 등으로 가려면 안동을 거쳐 소백산맥을 넘어야 되는데 그 길목에 제비원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제비원 석불에 대한 설명을 보면서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성주풀이의 본향이라는 데 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배우지 않고도 가장 잘하는 것을 묻는다면 그것은 사물놀이 중 장구다. 뒷집에 살던 내 친구 아버지가 논 일곱 마지지기를 팔아서 장구를 배웠는데도 '기덕'이 안 되었는데, 아마 내가 예닐곱 살 때쯤 내가 치는 장구 소리를 듣고 '역시 타고나야 되는구나'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우리 마을은 낙동 강변에 있어 농한기 때 아낙네들만의 모임인 회치(용어가 정확한지 자신이 없음, 어린 시절 기억이라...) 를 낙동강 모래밭에 흰 천막을 치고 놀이를 하는데 노래 장단이 필요하면 하교길에 집으로 가는 나를 기다리고 있어 아지매들 회치에 가서 장구반주를 한 적이 많았다. 이때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 성주풀이 였다. 그 이후 성장해서 김세레나의 노래를 듣고 그 노래가 성주풀이인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온 “저 건너 잔솔밭에 뽈뽈 기는 저 포수야 저 비둘기 잡지마라 저 비둘기 나와 같이 임을 잃고 헤매이니.....” 라는 가삿말이 성주풀이 노래다.
성주풀이는 원래 무당이 성주받이를 할 때 복을 빌려고 부르는 무가(巫歌)였는데 민요화되어 널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무가(巫歌)는 전통적인 우리 민족의 생활문화로 우리의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을 달래준 노래다.
성주풀이의 노랫말은 구전(口傳)되어 온 관계로 그 단어가 조금씩 달리 표현되고 있다.
제비원과 관련된 성주풀이의 가사말을 살펴보면
1. 이 성주본이 어디매뇨 도리지둥이 되야서 경상도 안동땅 옥돌치로 찍어내고 제비원의 솔씨받어 금돌치로 찍어내어.......
2. 성주 근본이 어디든고 성주 진정이 어디여 경상도 안동땅의 제비본의 솔씨바더....
3. 성주근본이 어디멘고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의 솔씨받아....
4.성주근본이 어디베요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레라 그 솔씨를 받어다가....
이처럼 조금씩 가사는 다르지만 공통적인 요소는 성주의 본이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고 제비원에 있는 솔씨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제비원에 있는 솔씨를 받아서 집을 지었다는 뜻이다.
그럼 성주신이란 무엇을 말함인가.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원래 천상에 살던 성주가 죄를 지어 지상으로 유배를 왔다. 유배를 와서 제비를 따라 들어온 곳이 제비원이다. 제비원에 와서 인간들이 사는 모습을 보니 나무 위에 살거나 굴을 파고 살아 불쌍해 보였다. 이에 성주는 하느님께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자 소원을 빌었더니 감복한 하느님이 ‘제비원에 자라는 솔씨를 받아 뿌리라’고 하여 솔씨를 받아 뿌렸더니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집을 지을 정도의 재목이 되었다. 이 중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게 할 가장 좋은 나무를 골라 잘 다듬어 날을 받아서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집을 짓고 성주는 대들보에 모셨다. 그래서 성주를 상량신이라고도 한다.
성주신은 집의 건물을 보호하는 신을 말함이다. 집을 짓는 주요건축자재가 소나무이던 시절에 소나무를 인격화하여 집안에 모심으로써, 집안의 안녕을 기원했던 소박한 민간신앙인 셈이다. 집을 새로 지으면 무당을 불러 성주굿을 하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가 성주풀이다.
성주풀이와 함께 성주신앙과 관계 있는 것은 성주단지이다. 지금은 거의 볼 수 없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집집마다 성주단지를 두어 모셨던 기억이 난다.
성주신을 모시는 형태는 성주단지와 종이성주가 있다. 성주단지는 주로 안방이나 대청마루 기둥에, 종이성주는 대들보 밑 기둥에 매다는 것이 보통이었다. 성주단지에는 주로 햅쌀을 담고 동전을 넣기도 하는데 이사 갈 때는 쌀로는 밥을 해먹고 단지는 묻었다고 한다. 종이성주는 나무에 매달고 간다. 이사 가서는 새로운 성주를 모신다.
예로부터 우리조상들은 집안 구석마다 각각 그 장소를 다스리는 신이 있다고 믿었다. 농경사회에서는 곡식을 신성시하여 작은 단지 안에 매년 햅쌀로 새로 채워두는 성주단지를 두어 성주신에게 집안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민간신앙은 자칫 미신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겸손한 마음가짐의 측면에서 보면, 비과학적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는 정신적 요소가 있다. 시멘트로 지어진 똑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으로서 생각해 보면, 집도 하나의 생명체로 생각하고 모신 옛 선인들의 여유가 느껴지지 않은가!
제비원을 둘러보고 나니 안동은 봉정사를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 제비원은 중심으로 한 서민문화,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한 양반문화가 공존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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