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행복론
에피쿠로스(기원전 341-270)는 그리스 사모스섬에서 태어난 그리스의 철학자이다. 에피쿠로스는 철저한 유물론자이자 원자론자다.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미세한 물체이다. 원자들의 배열과 결합이 세상 만물을 생성한다고 보았다. 원자가 자발적으로 빗겨 나가면서 예상치 못한 충돌과 결합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우리인간은 누군가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도덕적인 책임을 지는 자발적인 존재이다.
즉 물질적으로 보면 인간은 원자들의 결합에 불과한 존재지만, 동시에 자유와 책임을 누리는 존엄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쾌락은 최대한으로 얻고, 고통은 최소화하는 것이다. 쾌락에는 동적인 쾌락과 정적인 쾌락이 있다. 동적인 쾌락은 고통에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움직임과 진행 과정이 있는 쾌락을 말한다. 이것은 목적을 이룰 때만 행복해지는 쾌락이다. 즉 권력욕이나 명예욕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고통이 해소되면 그게 곧 쾌락이라고 생각했다.
쾌락은 육체의 고통과 마음의 근심이 해소됨과 동시에 찾아오는 쾌락, 즉 정적인 쾌락이다. 정적인 쾌락은 '아타락시아'라고 부르는 ‘흔들림 없는 상태’를 말한다.
고통이 해소되는 것이 행복이라면 고통의 정체를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인간에게 네 가지의 고통이 있다고 주장한다. 육체적인 고통 두 가지와 정신적인 고통 두 가지다. 육체적인 고통은 결핍으로 인한 고통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 있고, 정신적인 고통은 신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결핍에 의한 고통은 소박하고 단순한 것으로도 사치스러운 것과 동등한 쾌락을 보장한다. 즉 배고픔은 특급호텔에서의 식사나 김밥 한 줄은 그의 같은 효과를 낸다는 의미이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과거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면 현재의 고통을 압도할 수 있다.
신들은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인간들에게 무관심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정신적인 고통 중 신에 대한 두려움, 신들의 분노나 처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또한 인간은 원자들의 결합물이기 때문에 죽음은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결합이 해체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우리에게 감각의 대상이 될 수가 없으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의미가 없다.
즉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흘러간 과거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듯이, 소멸 이후의 시간 역시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네 가지 고통을 해소하기 힘든 이유는 인간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욕구를 셋으로 나눈다. 자연적이면서 필수적인 욕구, 자연적이긴 한데 필수적이지는 않은 욕구,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구로 나눈다.
이중 자연스럽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구 즉 명예욕이나 권력욕 같은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대부분의 인생을 소진한다. 이는 잘못된 것이고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이 에피쿠로스의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행위자 본인의 입장이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에피쿠로스는 우정, 사랑이라는 덕목을 중시한다. 우정과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삶에서 지속적인 기쁨을 누릴 수 없고 정의로운 삶 역시 쾌락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동적인 삶에 사용하는 에너지 즉 권력욕과 명예욕에 사용하는 에너지들을 타인을 향한 우정과 사랑에, 그리고 정의로운 일들에 쏟아 가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나의 생각과 많은 유사점이 있다. 행복이 곧 쾌락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플라톤은 이성과 기백과 욕구가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행복하다고 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성품의 덕과 사유의 덕을 더 뛰어넘어 신적인 행복의 경지까지 주문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나로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하다고 느껴지지만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실천 가능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우선 배고픔을 해소할 때 김밥 한 줄이나 화려한 상차림이나 쾌락의 크기가 같다는 데 공감한다.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태어나기 전의 세계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듯이 죽고 난 후의 세계 역시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이 역시 평소 나의 생각과 비슷하다.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무신론자로 만들었다. 살아있을 때 잘 살자는 것이다. 특히 고통의 시간은 줄이고 쾌락의 시간을 늘리자는 것도 나의 생각과 거의 같다.
그런데 권력욕과 명예욕은 자연스럽지도 않고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구로 현혹과 망상이라고 단언하고 이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고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에 대하여는 전적으로는 동의할 수 없다. 나의 경우 조직사회의 장으로 보낸 시절의 생활은 퇴직하고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회상해도 행복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동안 사랑과 우정을 위해 더불어 사는 것에도 거의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오지 않을 오늘 이 시간을 매일 매일 즐겁게 살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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