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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여행

백두산 여행2 - 서파와 천지괴물

by 황교장 2023. 10. 18.

백두산 여행2 - 서파와 천지괴물

 

2023년 10월 7일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의 목적지인 백두산 서파로 향했다. 백두산의 어원은 백 번을 오르면 두 번밖에 천지를 못 본다고 백두산이란 우스갯말이 있을 정도로 백두산의 기상은 변화무쌍하다. 그런데 오늘은 날이 맑아 반드시 천지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백두산을 오르는 코스는 네 곳이 있다. 중국 쪽에서 오르는 서파, 남파, 북파가 있고 북한에서 오르는 동파가 있다. 이때 파는 파(坡)와 파(波)를 혼용해서 쓰고 있는 듯하다. 坡는 고개를 나타내고 波는 물결을 나타내는 것으로 그 의미는 백두산 천지에 오를 수 있는 언덕이나 백두산 물줄기가 내려올 수 있는 낮은 고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오늘 서파를 오르고 내일은 북파를 오를 예정이다.

서파를 오르기 위해 도착한 이도백하는 2010년 8월 7일에 와 보고 13년 2개월만에 다시 와보니 전혀 생소한 마을이 되어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만 너무 심하게 변해 있다. 2010년에는 우리나라 60년대 시골 마을 같았는데 지금은 초현대식 관광단지로 변해 있다.

이도백화에서 서파 산문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린다. 길가에는 원시림이 울울창창하고 이끼가 두껍게 깔려 있다. 원시림은 낙엽송, 자작나무, 적송, 전나무, 가문비나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사이에 붉은 단풍나무가 절정의 색상을 뽐내고 있다. 자작나무와 낙엽송의 노란 단풍과 어우러진 색상의 조화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러한 풍광이 무려 한 시간 반이나 이어져 송강하로 불리는 서파 입구에 도착했다. 서파 입구 건물은 13년 전 그대로다. 그런데 건물 안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너무 깨끗해져서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전용 차량으로 바꾸어 타고 천문봉 주차장까지 가야 한다. 천문봉 주차장까지 가는 길 또한 절경이다. 예전에는 버스 속도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빨라 주변 경관을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적당한 속도로 달리고 있다. 곳곳에 속도계가 있어 걸리면 벌금형이라고 한다.

차는 점점 높이 올라가고 있다. 높이 올라갈수록 수목의 종류가 바뀐다. 점차 수목의 키가 작아진다. 더 올라가자 키 작은 나무조차도 잘 보이지 않고 대신에 마른 야생화들만 보인다. 차창으로 큰엉겅퀴인 듯한 꽃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3년 전 여름에 이곳에서 본 꽃쥐손이풀, 분홍바늘꽃, 자주꽃방망이가 생각났다.

꽃쥐손이풀

분홍바늘꽃

자주꽃방망이

서파가 가장 자랑하는 것은 천상화원인데 계절이 안 맞아서 시든 꽃들만 있어 섭섭했다. 기회가 된다면 7월 초순에 다시 와서 천상화원 트레킹을 하면서 보고 싶은 노란 만병초도 꼭 한번 만나고 싶다.

노란 만병초

40여 분 달려서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천지 주차장에 도착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이곳까지만 보였고 주차장 위쪽은 안개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눈 덮인 백두산 영봉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가이드는 3대가 덕을 쌓아야 백두산을 볼 수가 있다는데 오늘 같은 날씨는 1년에 이틀도 잘 없다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천지까지는 계단이 1,236개였는데 그동안 보수를 하여 지금은 1,440 계단을 올라야 된다. 전에는 가마꾼들이 우리말로 ‘가마 타세요 3만원, 가마 가마’라고 외쳤는데 지금은 그 숫자가 아주 많이 줄었다. 그리고 요금도 지금은 최하 15만원이라고 한다. 그동안 돈의 가치가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중국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일행은 아름다운 경치에 압도되어 시종일관 사진을 찍다 보니 드디어 천지에 도착했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하늘과 천지의 옥색 빛과 눈 덮인 산과 계곡이 어우러져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 본 곳 중 가장 감동받았던 곳은 중국 운남성의 차마고도와 옥룡설산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그런데 천지를를 본 순간의 전율은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아마도 유전자 속에 흐르는 민족이라는 집단무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게다. 나만이 그런 마음인가 했는데 같이 간 친구들 모두 나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건축 기술사인 친구는 콜로세움을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감동을 받은 것이 최고였는데 오늘 백두산이 주는 울림은 콜로세움이 주었던 감동과는 비교 불가라고 한다.

위대한 자연을 맞이하는 경이가 감동호르몬으로 불리는 다이돌핀(Didorphin)의 분비를 촉진한다고 한다. 천지를 보고 있는 이 순간 나의 뇌에는 다이돌핀이 최대로 분비되는 느낌이다. 다이돌핀은 뇌에서 고통을 완화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엔도르핀(Endorphin) 보다 4,000배나 강한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다.

천지 괴물

이 감동을 조금이라도 더 깊게 간직하려고 구석구석 응시하고 있는데 반대편 동남쪽 천지에서 어떤 물체가 큰 파장을 만들면서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얼마 전 뉴스에서 보았던, 천지를 떠들썩하게 달구었던 괴물 이야기가 생각났다. 옆에 망원렌즈를 부착한 분에게 저 물체가 무엇인지 한번 보라고 하니 오리처럼 보인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아는 오리는 혼자서 저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오지 않는다. 덩치가 최소한 오리의 10배는 됨 직하다.

 

천지괴물

천지의 괴물 이야기는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산해경은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 및 지리서이다. 산해경 17권에 나오는 ‘백두산에 산다는 괴생물’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大荒之中 有山 名曰不咸 有肅愼氏之國‘ 有蜚蛭 四翼 有蟲 獸首蛇身名曰琴蟲(대황지중 유산 명왈불함 유숙신씨지국 유비질 사익 유충 수수사신명왈금충, 대황 가운데에 산이 있는데 이름을 불함이라 한다. 숙신씨의 나라에 있다. 비질이 있는데 날개가 넷이다. 짐승 머리에 뱀 몸통을 한 것이 있는데 이름을 금충이라 한다)”

그런데 괴수 금충은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의 곽박(郭璞 276-324)이 산해경에 주석을 달면서 금충을 ‘뱀의 일종’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산해경 천지괴물 금충

그런데 내가 본 이 생물은 특이한 것만은 틀림이 없다. 아마도 우리에게 행운을 주기 위한 길조라고 여겨졌다. 오늘 같이 온 친구들과 사정상 오지 못한 친구들이 모두 함께 건강하여 오래오래 평안하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천지에서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으로 보내고는 천지주차장 옆에 있는 식당에서 비빕밥을 먹고는 금강대협곡으로 갔다. 전에는 금강대협곡 입구에 자물쇠로 채워놓은 것들이 너무 많아 흉물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깨끗이 치워놓아 기분이 좋았다.

탐방로를 따라 원시림 안으로 들어갔다. 쭉쭉 뻗은 전나무, 적송, 자작나무, 잣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다시 보는 대협곡이지만 신비롭기는 마찬가지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이 화산 폭발을 일으킬 때 용암이 흘러내리던 자리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풍화에 씻겨 천태만상의 모양으로 이루어진 협곡이다. 이곳은 1989년 7월 폭풍으로 원시림의 나무가 대규모로 넘어져 산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부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협곡의 크기는 폭이 평균 120m, 깊이는 평균 80m, 길이는 70km나 된다.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길이가 전보다 더 길어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기묘한 바위들을 더 감상할 수 있었다. 금강대협곡을 나와 다시 아름다운 단풍을 감상하면서 이도백화로 와서 발마사지와 백두산에서 나오는 온천물에 온천을 하고는 백두산에서의 둘째 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