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섬 청산도
여름여행의 백미는 섬 여행이다. 그동안 섬 여행을 하지 못한 지가 2년 정도는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섬이 많다. 그 섬들 중에 늘 가보고 싶은 섬이 있다. 바로 청산도(靑山島)다. 작년에 청산도 마라톤에 참가하려다 다른 일이 생겨 가지를 못했다. 올해는 반드시 참가하려고 했는데 대회가 열린다는 안내가 아직은 없다. 그래서 마라톤 연습 겸 이번 여행에서 가장 우선적인 목적지를 청산도 답사에 두고 떠났다.
7시에 부산을 출발하여 남해고속도로-순천IC-벌교-보성-강진-해남을 거쳐 완도 선착장에 도착을 하니 12시 20분이다. 12시 배는 이미 출항을 해 버렸고 다음배는 2시 30분에 있었다.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바다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여 궁금했다. 알고 보니 전에 없었던 신지대교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7년 만에 완도에 왔더니 그새 완도와 신지도를 잇는 다리가 생긴 것이다.
신지대교에서
신지대교를 지나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을 다녀오면 적당한 시간이다. 명사십리(明沙十里)라는 말만 들어도 정겨운 말이다. 밝고 맑은 모래가 십리에 걸쳐서 펼쳐져 있다는 뜻이다. 내가 아는 명사십리 해수욕장만도 함경남도 원산의 명사십리, 선유도의 명사십리, 비금도의 명사십리, 동해안 곳곳의 명사십리 등 곱고 부드러운 모래해변이 십리만 펼쳐져 있어도 명사십리라고 명명하고 있다. 완도읍에서 8km 거리에 신지도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다. 신지대교에서 바라다보는 바다 풍광은 정말 좋다. 오늘처럼 맑은 날씨에는 주변의 다도해가 다 보인다. 명사십리해수욕장에 도착을 하니 넓은 주차장과 주변의 정비가 깨끗하게 잘되어 있다. 올해 처음으로 바닷물에 발을 담구어 봤다. 수심이 얕고 물은 따뜻하고 파도는 잔잔하고 방풍림은 울창하고 해수욕장으로서 완벽한 구비조건을 갖추고 있다.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다음에 한번 시간은 내어 다시 올 것을 마음으로 다짐을 하면서 장사익의 노랫말 중에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서러워 마라 명년 삼월에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련만 우리인생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를 흥얼거리면서 다시 완도 선착장에 도착을 했다.
오후 2시 반 배인데도 배가 출발할 기미가 없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데도 정작 선박회사에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어 참지 못하는 나의 성격상 원인을 알아보니 어장의 그물이 배의 스크루에 감겨서 잠수부가 들어가 거물을 제거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지명에 ‘청’이란 글자가 들어가면 쉽게 갈 수 있게 해 주지는 않는다고 느껴졌다. 청량산이 거절하더니 청산도도 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어제 저녁에는 주(酒)님과 함께 하지 않고 청정하게 온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4시가 거의 다되어서야 그물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역시 섬여행은 정해진 시간이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드디어 4시에 출발했다. 오랜만에 가는 섬여행이라 가슴이 설렌다. 배가 나아가자 명사십리해수욕장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날이 맑아 청산도가 바로 코앞에 보인다. 청산도는 완도항에서 약 19.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이다. 동쪽으로 거문도, 서쪽으로 소안도, 남쪽으로 제주도, 북쪽으로는 신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청산도는 바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고, 산도 파래서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청산도 항구
선착장에 도착하니 4시 50분이다. 배에다 차를 실어 왔다. 선착장이 있는 곳이 청산면 소재지인 도청리다. 도청리를 기점으로 일주가 시작된다. 도청리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약 1km쯤 가면 당리가 나온다. 이곳 당리마을이 그 유명한 영화 서편제의 무대로 알려진 곳이다. 영화에서 김명곤과 오정해가 북장단에 맞추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불한 황톳길을 신명나게 걸어가던 길이 하도 인상이 깊어서 그 곳을 찾을 욕심으로 내 어설픈 판단에 원작자 이청준의 고향이 장흥이라서 자기 고향마을에서 촬영하지 않았나하고 장흥에서 관산으로 가는 바닷가 길에서 이 길과 비슷한 곳을 몇 번을 찾아보았는데 실패를 한 경험이 있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서편제 길
또한 이곳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의 세트장이 이국적 정취를 풍기면서 세워져 있다. 드라마를 직접 보지를 못했기에 조금은 아쉽다.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
당리를 나와 조금만 가면 읍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읍리마을 길가에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 유적지가 나온다. 세 기의 고인돌 무덤과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는 민간신앙에 기초를 둔 일종의 비석으로 말을 타고 가다가도 이 비석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야 했다. 자연석에 부처님상이 조각되어 있고 민간신앙의 일종으로 종교적인 기능을 했던 비석이다.
하마비와 고인돌
이러한 유적지가 말해주듯이 청산도에 사람들이 살았던 시기는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부터라고도 볼 수 있다.
고인돌 유적지를 지나 고개를 하나 넘으면 제법 너른 들판이 나오고 들판 끝 지점에 신흥해수욕장이 나온다. 이곳은 밀물이 들면 백사장이 조금 밖에 드러나지 않지만 썰물 때에는 2㎞나 펼쳐진다. 썰물 때에는 백사장이 하도 넓어서 오히려 해수욕을 즐기기에는 마땅치 않지만, 대신 부드럽고 고운 모래밭을 걸으며 해초와 조개를 줍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고 한다. 몇몇의 사람들이 조개를 줍고 있는 광경이 참 평화롭게 보인다. 또한 이곳에서 맞이하는 해돋이도 매우 인상적이라고 한다.
신흥리 해수욕장에서 고개를 넘으면 진산리 갯돌밭이다. 청산도에는 갯돌밭이 일곱 군데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곱고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이 갯돌이 파도에 부딪칠 때 나는 소리가 맑고 청량하다. 또한 진산리 갯돌밭은 일출명소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지리해수욕장
진산리 갯돌밭을 지나면 청산도가 가장 자랑하는 지리해수욕장이 나온다. 지리해수욕장의 백사장은 은빛의 고운 모래가 1.2㎞에 이르고 있다. 백사장을 밟아 보니 동해안과는 달리 모래가 딱딱하고 굳어있어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어 보인다. 백사장 뒤에는 수령이 200년 이상 된 곰솔 800여 그루가 백사장을 따라 길게 숲을 이루고 있다. 이는 방풍림으로서 바다의 염분으로부터 농작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심은 것이다. 이곳은 수심이 얕고 파도가 잔잔해서 안심하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낙조는 황홀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지리해수욕장에서 작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면소재지인 도청리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청산도에서 회와 전복을 맛있게 먹을 욕심으로 점심을 배 위에서 계란 두개로 때웠다. 배를 굶겨야만 음식 맛이 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펄펄 뛰는 자연산 참돔과 자연산 전복회는 정말 일품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늘 불만 중 하나가 주님이다. 입맛에 맞는 술을 아이스박스에다 미리 준비해서 왔다. 자연산 참돔과 자연산 전복에다 내 입맛에 맞는 술! 지상낙원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해가 뉘엿뉘엿 일몰이 시작된다. 안주와 주님을 챙겨 바닷가 방파제로 나왔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인 일몰은 십여 년 전 홍도에서의 일몰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의 일몰이 최고인줄 지금껏 알아왔다. 그런데 이젠 순서가 바뀌었다. 청산도 일몰이 내가 본 일몰 중 단연 최고다. 구름과 어우러진 붉은 색의 강렬한 노을빛, 때 마침 떠오른 초승달의 환상적인 조화는 나의 무딘 글로써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신비롭고 경이롭다 못해 신령스러운 광경이다. 청산도 여행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올 여행의 백미다. 주님이 적당하게 놀고 있어 최고조의 엔돌핀이 분비되고 있다. 하지만 이젠 내일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야만 한다. 이러한 기분이 오래 지속되면 조증에서 우울증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가능한 중용지도다.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여행지에서 자고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산책으로 걸어서 도당리에서 해안선을 따라 걸어간다.
소나무 방풍림
아침햇살이 구름에 가리어 걷기에는 너무 좋다.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꽃이 많다. 해안가 자갈밭에서 뱀도 만났다. 독사뱀이다. 뱀조차 두렵지가 않고 정겹게 느껴지는 조용한 어촌마을의 풍광은 전생에 이곳에서 한번 살아본 느낌이다.
바닷가 모래에 피는 순비기나무
청산도 독사
두 시간 정도 걷고 나서 다시 섬 일주를 차로 답사를 했다. 어제 가보지 못한 해안선을 따라난 길을 가니 범바위가 보인다. 범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닯았다 해서 범바위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범바우는 청사도의 남쪽 끝에 있는 보적산 능선에 우뚝 솟은 높이 20m의 기이한 바위다. 철 성분이 많아 바위 내부에서 강한 자기장이 발생해 거문도와 제주도를 오가는 선박들의 나침판을 교란시켜 뱃길을 헤매게 만든다고 한다.
가시거리가 좋은 날은 이곳 범바위에서 거문도와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범바우에 올라보려고 했지만 한꺼번에 다보고 가면 다음에 올 때에 새롭게 볼 꺼리가 없기에 청산도를 다시 찾을 욕심으로 아쉽지만 남겨두기로 했다.
범바위
다시 고인돌이 있는 읍리를 지나 고개를 넘으니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 지척도 분간이 되지를 않는다. 어제는 그렇게 맑더니 섬의 날씨는 변덕이 심해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다. 지리해수욕장에 오니깐 거기는 다시 맑은 날씨다. 해무는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를 모르는 일이다.
완도 가는 배는 청산도에서 10시 50분에 출발한다. 그래서 시간이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곳에서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에서 읽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구들장 논’과 ‘초분’에 관한 이야기다.
청산도 구들장논
청산도에는 돌이 많다. 집의 담장, 논둑, 밭둑이 모두 돌로 돼 있다. 우물이나 당산나무 아래에도 돌담이 쌓여 있다. 돌이 많으니 농사 부칠 땅이 부족하다. 돌이 많으니 비가 와도 물이 고여 있지를 않고 빨리 흘러내린다. 따라서 논농사가 불가능하다. 항상 쌀이 모자랐던 것도 당연지사다. 오죽하면 ‘청산도에서 나고 자란 처녀가 뭍으로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만 먹고 가면 부잣집’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자연적으로 불리한 지형을 슬기롭게 극복한 지혜가 바로 ‘구들장 논’이다. 논바닥에 넓적한 돌을 깔고 그 위에 15~20㎝ 정도 흙을 덮어 물이 빨리 새 나가지 않게 만든 ‘구들장 논’에서 바로 선조들의 지혜를 였볼 수 있다고 한다.
청산도에는 지금도 초분(草墳)이라는 독특한 장례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초분은 죽은 사람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이엉으로 덮어 두었다가 몇 년 뒤 남은 뼈를 추려 땅에 묻는 매장법이다. 조선시대 말까지 내륙에서도 흔하게 시행됐으나 최근에는 서남 해안의 도서 지방에서만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초분 풍습에는 육신을 땅에 매장하면 땅을 더럽힌다는 선조의 생각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정월달에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땅에 바로 묻지를 못하고 초분을 해야만 한다. 또한 정월달에는 애기도 못 낳고 친정이나 다른 곳에서 낳아 가지고 와야 된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아주머니 본인 생각에는 이 동네가 어장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배가 출발신호를 올린다. 푸른 산이 있는 섬을 뒤로 하고 완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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