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던 길을 따라서
조탑리를 나와 안동 시내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2년 전 영산대학교가 주관한 ‘영남문화와 퇴계’ 연수에 참여하여 맛있게 먹은 안동찜닭을 예약해두기 위해서다. 안동찜닭은 안동시장 안에 있는 세 곳-현대찜닭, 중앙찜닭, 유진찜닭-이 원조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세 곳 중 외지인들에게는 1박2일에 방영된 현대찜닭을 많이 찾지만 현지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은 유진찜닭이라고 하는데 ‘유진’이라는 이름이 예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이 세 곳은 모두 수용인원이 20명을 넘지 못한다고 하니 우리 식구들이 먹으려면 이 세 곳에다 분산을 시켜야 한다. 그래서 일단 먹어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다. 예쁜 유진찜닭을 시켜 먹었다. 맛은 역시 일품이었다. 그런데 연수 때 먹었던 찜닭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전체 인원이 다 함께 식사할 수 있는 넓은 곳인 종손안동찜닭에 예약을 했다.
다음날 점심 또한 안동을 대표하는 헛제사밥과 간고등어를 먹기 위해 안동댐 앞에 있는 ‘맛 50년 헛제사밥’이라는 식당에다 예약을 하고는 본격적인 퇴계 예던 길 답사에 나섰다.
그동안 청량산과 농암종택에 여러 번 왔지만 퇴계 예던 길 언저리에서 늘 실패를 하고 말았다. 종택에서 자고 난 다음날에 비가 온다거나 아니면 주님 때문에 늦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예던' 혹은 '녀던'은 '걷던'의 고어(古語)이다. 퇴계 예던길은 퇴계선생이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 걸어갔던 옛길이란 뜻이다. 이는 도산서원에서 하계마을을 거쳐 이육사 생가가 있는 원천동을 지나 천사 - 단사(丹砂) - 매내 - 올미제 - 가사리 - 너분들 -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강변길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코스는 단사부터 가사리까지라 그곳에서 시작을 하였다. 초입부터 정비가 아주 잘 되어 있다. 멀리 청량산을 바라보면서 때 묻지 않은 강변을 걷는 맛은 즐기지 않으면 누릴 수 없다.
제주 올레길은 바다를 보면서 걷고, 지리산 둘레길은 산과 들을 보면서 걷는 맛이라면 ‘퇴계 예던 길’은 산과 강을 보면서 걷는 것이라 제각각 다른 맛이 있다. 다 좋지만 나는 고향이 낙동강가라 ‘퇴계 예던 길’이 내 체질에 딱 맞는 것 같다. 걷다보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무심하게 즐거워진다.
유월 중순인데 한여름 더위다. 내 몸의 감각으로는 33도는 넘는 것 같다. 날이 맑아서 나무 그늘 아래 있으면 선선한데 오후 2시경이라 제법 햇살이 강하다. 하지만 주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전혀 지치거나 짜증나지가 않았다.
이중환은 택리지의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 사람이 살기 위한 터전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한 네 가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째가 지리(地理) : 땅, 산, 강, 바다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치
둘째가 생리(生利) : 그 땅에서 생산되는 이익
셋째가 인심(人心) :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
넷째가 산수(山水) : 아름다운 산과 물
이 네 가지가 가장 완벽한 곳으로 조선팔도에서는 도산과 하회를 들었다. 하회보다도 도산이 먼저 거론된 것이다.
따라서 이 길이 바로 택리지에서 말하는 최고의 명당인 셈이다. 그동안 도산은 하회에 비해서 한 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는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청량산과 그 주변의 산수를 보고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역시 택리지의 진가를 알 것 같았다.
그동안 전국에 있는 명승지를 구석구석 수없이 많은 곳을 다녔지만 이곳만한 곳이 없었다고 느껴진다. 주변의 산과 물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더도 덜도 아닌 중용지도다. 이 풍광에서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뺀다면 모든 것이 어색할 정도로 중용의 도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강변의 경관이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길이다.
퇴계선생은 이 길을 ‘그림 속’이라고 했고, 자신은 ‘그림 속으로 들어 간다’고 표현했다는 것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멀리 청량산 육육봉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인다. 최근에 생긴 하늘다리도 선명하게 보인다.
길은 전망대를 지나자 다시 강가로 이어진다. 이곳부터는 길이 없다. 주변에 잡초만 무성하다. 이 구간은 사유지다. 땅주인이 '제방을 쌓아 달라'고 요구하며 그 길의 통행을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땅주인을 만났기에 옛날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자연 그 자체다.
이 길을 걸을 때는 반드시 긴팔 티에 긴바지를 입어야 되겠다. 그러지 않으면 풀과 나무 가지 등에 긁혀 상처가 날 수도 있겠다.
길 없는 길을 헤치고 나오니 강변 자갈밭이다. 어릴 적에 많이 본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등에 땀이 축축이 젖어 버드나무 아래에 있는 반석 위에 앉아서 산수를 바라보면서 한 잔하는 막걸리 맛은 신선이 먹는 불로주가 달리 없을 것 같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릴 적 개구쟁이 친구들과 함께한 시절들이 강물처럼 흘러간다.
다시 배낭을 메고 출발을 했다. 인적이 드문 숲길에는 산딸기가 익어가고, 좀처럼 보기 힘든 초롱꽃과 보랏빛 붓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앞으로 이어진 길도 좋고, 뒤돌아 보아도 좋은 흙길이다.
숲그늘이라 걷기도 참 좋다. 이 길은 갖고 놀고 싶은 길이 아니라 데리고 살고 싶은 길이다.
강 기슭에 수백 평 되는 너럭바위가 나왔다. 공룡발자국으로 보이는 얕은 물웅덩이도 보인다.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그니 물이 미지근한 것이 찬 기운이 하나도 없다. 나는 추위를 비교적 많이 타는 체질이라 32도가 넘지 않으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물에서 종일 놀아도 될 정도로 무더운 날씨다.
처음엔 발만 담갔다가 옷 입은 채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강바닥은 평평한 암반석이다. 제법 물살이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물살은 물놀이를 더욱더 부추긴다. 한창 물놀이를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대부분이 사오십대의 여성들이고 가끔 남성들도 섞여 있었다. 내가 물속에서 노는 것이 신기하게 보이는지 모두들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물이 깊지 않고 정말 시원하니 물속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들어오지를 못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물살이 약간 세고 깊게 보이므로 내가 물살이 센 곳에 들어가서 시범을 보였지만 결국 아무도 들어오지를 않았다.
이들에게 어디로 가는지를 물어보니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누가 아느냐고 하니 한창 휴대전화를 받고 있는 한 남성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분 마음대로 가니 자기들은 모르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저분한테 물어 보라고 한다. 마침 그때 그분의 전화통화도 끝이 나서 어디로 가는지를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퇴계 종택까지 걸어갈 예정인데 가봐야 안다고 하면서 오늘 숙소는 영주 무섬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가이드 마음대로다.
그런데 옆에 있던 분이 그 가이드분이 유명한 작가인 신정일씨라고 한다. 내가 ‘신택리지’의 저자 신정일씨가 맞는지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내가 작가님의 애독자이자 강의도 들은 적이 있다고 하니 금방 친숙한 표정을 지으면서 어디서 강의를 들었는지 물었다.
부산교육연수원에서 교감자격연수를 받을 때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한 달에 두 번씩 금요일 저녁에 같이 모여 잠을 자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2박 3일을 우리 땅 걷기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명함을 한 장 주는데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대표 문화사학자 신정일’이라고 되어 있다. 꼭 한번 자기들과 같이 하자고 한다.
이분들과 헤어지고 물속을 나와 몸을 닦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이 미천장담인 것으로 보였다. 퇴계선생이 예던 길에 대해 읊은 수많은 시 중에서 내 마음에 가장 드는 시가 바로 미천장담이다. 퇴계선생의 미천장담(彌川長潭)은 다음과 같다.
미천장담(彌川長潭)
長憶童恃釣此間(장억동시조차간) 한 동안 기억하여 보네 어린 시절 낚시하는 곳,
卅年風月負塵寰 (삽년풍월부진환) 삼십 년 세월 속세에서 자연을 저버렸네.
我來識得溪山面(아래식득계산면) 산천모습이야 내 어찌 잊었으랴만,
未必溪山識老顔(미필계산식노안) 시내와 산은 나의 늙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구나.
더 이상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슴에 와 닫는다. 미천장담을 뒤로하고 조금 더 길을 따라가니 바로 농암종택이 멀리 보인다.
이젠 되돌아가도 될 것 같다. 되돌아가는 경치는 갈 때와 또 다른 멋이 새롭게 느껴졌다.
미천장담에서부터는 등산화를 신은 채 강물을 따라 걸어 내려갔다. 강 한가운데에서 청량산을 바라보니 아까와는 또 다른 풍광이다. 좌우대칭이 되어 완벽한 풍경을 볼 수가 있었다. 지금껏 계곡을 타고 내려오기는 했어도 강 한가운데를 등산화 신고 물속을 텀벙거리면서 걸어 내려오기는 처음이다. 강폭과 수량이 걷기에 아주 적당하기 때문이다.
강을 걸어 내려와 다시 예던 길을 시작한 곳까지 오니 어느 새 해질녁이다. 강물에 건너편 산들이 짙은 그림자를 만들고, 해는 져서 바람은 선선하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니 인간으로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멋진 곳을 7월 15일 우리 학교 식구들과 다 함께 누린다고 생각하니 혼자 즐기는 것보다 더 좋다. 이 좋은 곳에서 모두 다 함께 누리고 함께 기뻐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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