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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통영 연화도와 우도여행 - 2

by 황교장 2024. 6. 23.

통영 연화도와 우도여행 - 2

 

아침 5시 25분에 일어나 바다로 나갔다. 어제 일몰과 반대 방향에서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인다. 몽돌의 해조음만이 들리는 고요한 아침 바다다. 몽돌 해변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며 한참을 멍때리기 했다. 뇌과학에서는 뇌가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 작동하는 특정 부위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 DMN)’라고 한다. 마치 컴퓨터를 리셋하게 되면 초기 설정(default)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멍때리기는 뇌에 휴식을 줄 뿐 아니라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감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주기도 한다고 한다.

멍때리고 있다보니 마치 전생에 이러고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서 해가 비치는 동쪽 해변을 끝까지 다시 서쪽 해변 끝까지 무념무상으로 걸었다. 서쪽 해변 끝 바로 앞이 구멍섬이다. 구멍섬을 바라보면서 평소에 아침이면 습관적으로 하던 체조를 했다. 낯선 곳에서 하는 아침체조는 새로운 자극을 준다.

숙소로 들어와 잘 가꾸어진 뜰을 거닐었다. 자세히 보니 수박도 달려 있고, 오이와 토마토, 참외까지 조그만 열매를 달고 있다. 이 광경을 보니 시골에서 태어나 이들을 보고 자란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이 집 주인의 섬세한 성격을 반영하는 듯 작물 하나하나 정성 어린 손길이 담겨 있다.

산책을 마치고는 숙소 방에 들어갔다. 한 친구는 아직 자고 있고, 다른 친구는 깨어 있었다. 매일 아침에 하는 요가 동작을 친구에게 설명하면서 따라 하기를 권했다. 살아오면서 배운 요가 동작 중에서 내 몸에 맞는 몇 가지를 엄선하여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실행하고 있는 동작들이다. 자고 있던 친구도 일어나 셋이서 같이 했다.

요가를 마치고는 요리 잘하는 친구가 정성스럽게 장만한 아침을 잘 먹은 후에 짐을 꾸렸다.

어제 저녁노을을 감상한 탁자에 앉아 모닝커피를 즐기면서 오늘의 여정을 의논하였다. 오늘은 어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주마간산으로 본 수국과 절집을 중심으로 자세히 탐방하자고 했다. 온전히 우리만 즐긴 구멍해수욕장의 한적함에 아쉬움이 남아 주변 풍광을 몇 번이나 되돌아보면서 나왔다.

숙소 뒤 오르막을 올라 고갯마루에서 서자 우도(牛島)와 큰 마을 전체가 다 들어왔다. 우도라는 지명을 가진 섬은 공통적으로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풍수에서는 어디에서 보았을 때 소가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곳은 통영 미륵산에서 보면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이는 풍수 이론 중 형국론에 해당한다. 형국론은 한국의 독특한 풍수로 도선의 도참비기가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우도’ 하면 제주도의 우도를 떠올린다. 그런데 우도는 제주도, 통영, 진해, 완도, 고흥, 서산, 옹진 등 전국에 7개나 있다. 이 중 이곳 통영 우도는 제주도의 우도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큰 마을 풍수를 보니 섬마을치고는 제법 넓은 분지에 자리하고 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 바람을 막고[藏風] 물을 얻는[得水]다는 뜻이다. 큰 마을은 뒷산으로 둘러싸여 바람을 막아주고, 마을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기본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섬 안에 제법 넓은 땅이 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우도 사람들은 이 땅에 보리와 고구마를 심어 식량으로 하고, 미역과 톳, 청각을 뜯고 홍합 등의 해산물을 채취해서 뭍에다 팔아 살아왔다. 특히 우도에서 생산되는 홍합과 고구마는 알아준다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1973년도에는 총 51가구 326명으로 초등학생 수만 63명이었다고 한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마을 뒤편에 큰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보는 순간 명당임에 직감했다. 그런데 오늘 일정이 빽빽하여 다음을 기약하고 가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 보니, 그곳이 바로 천연기념물(제344호)로 지정된 생달나무 3그루와 후박나무 1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오랫동안 마을의 서낭목[城隍木]으로 마을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곳이었다.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비는 당산제가 매년 열리는 곳이다. 당산제가 열릴 때 한번 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생달나무와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동쪽에 있는 생달나무는 수령 약 400년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생달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라고 한다. 생달나무를 처음 본 곳은 완도 구계등에서였다. 보는 순간 생달나무에 끌려서 한참을 본 기억이 난다.

큰 마을에서 작은 마을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직전에 바다로 향하는 숲속 길이 열려 있어 따라가 보니 우도항에 닿았다.

큰 마을은 입구가 닫혀 있어 부두로는 부적합하지만 작은 마을은 입구가 열려 있어 큰 배가 접안하기가 쉬워 작은 마을에 부두가 있는 셈이다.

부두에서 조금만 더 가면 반하교가 나온다. 길은 올 때와 갈 때가 다르고 시간에 따라서도 달리 보인다. 반하교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물빛도 어제와 다른 모습이다.

주역에서 역(易)은 변화를 의미한다.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하듯, 지금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기도 하다.

반하교 밑 바닷물은 물이 많이 빠져 걸어서도 다리 아래 해안길로 충분히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해안으로 내려갈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조금을 더 걷자 반하교와 연화도를 연결하는 국내 최장의 보도교인 현수교가 나왔다. 볼수록 멋이 있는 다리다.

이러한 오지 섬에까지 멋진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행복하기도 하다.

현수교를 건너면 연화도이다. 아침을 먹었지만 제법 많은 거리를 걸어서인지 허기가 졌다.

점심 먹기에는 이르고 해서 문어숙회와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곁들이고는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수국길과 절집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마을 안길을 따라 걸어가면 동쪽 끝자락에 학교가 나온다. 원량초등학교 연화분교장이다. 학교 운동장에는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학교 교사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학교에서 선생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화분교의 현재 학생 수는 총 3명이다. 남학생이 2명이고, 여학생이 1명이다. 그런데 교직원도 교사, 시설 주무관, 조리사로 3명이다. 이러한 모습은 선진국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셈이다.

연화분교를 뒤로 하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연화사 입구에 ‘연화장세계문(蓮華藏世界門)’이라는 현판을 단 연화사 일주문이 나온다. 이어 언덕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2층짜리 전각이 나온다. 바로 절의 입구다.

1층은 ‘천왕문’이고 2층은 범종이 걸려있는 ‘범종루’인데 2층에는 ‘낙가산연화사(洛迦山蓮花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좌우로 법당이 있고 가운데 대웅전이 있다. 육지의 어느 절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규모의 대웅전이다.

대웅전의 풍수를 보니 북현무인 연화봉에서 흘러온 맥이 대웅전에서 기가 멈추고 있는 형상이다. 또한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이 안정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사신사가 뚜렷하다는 의미로 명당의 조건에 부합된다. 따라서 대웅전 터가 연화도에서 풍수가 가장 좋은 곳이라 느껴졌다. 한 친구는 독실한 불자라 함께 여행을 하면 반드시 기도발이 좋은 절집을 선택하여 참배를 한다. 이곳 연화사 대웅전도 명당터로 손색이 없다고 소개했다.

대웅전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삼장보살도’가 있다. 삼장보살(三藏菩薩)은 천장보살(天藏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지지보살(持地菩薩)을 하나로 묶어 마치 하나의 보살처럼 부르는 용어이다. 현재는 모든 영가천도를 지장보살에게 의지하지만, 원래 하늘 세계는 천장보살이, 지상 세계는 지지보살이, 지하 세계(명부)는 지장보살이 각각 관장했었다.

이는 수륙재(水陸齋)와 관련이 있다. 수륙재는 불교에서 물과 육지를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고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고 음식을 베푸는 의례이다. 이곳의 삼장보살도는 영조 20년(1744)년 효안(曉岸)이 그린 3점의 작품으로, 안정된 화면 구성, 양감과 비례를 잘 갖춘 인물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효안은 황악산 직지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畵僧)이다.

이젠 본격적인 수국 투어에 들어갔다. 최근에는 연화도를 ‘수국 섬’이라 불린다. 연화도 수국길은 연화사부터 보덕암까지 약 1킬로미터 길을 따라 펼쳐져 있다. 연화도 마을 사람들이 이 수국을 심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초입부터 수국이 만발해 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이 길에 가득했으나 오늘은 우리 셋밖에 없어 수국을 제대로 즐길 수가 있다.

이곳에 있는 수국의 종류는 두 종류로, 일본에서 원예종으로 개발한 수국과 우리나라 자생 산수국이다.

수국은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에는 녹색이 약간 들어간 흰 꽃이었다가 점차로 밝은 청색으로 변하여 나중엔 붉은 기운이 도는 자색으로 바뀐다.

 

토양이 강한 산성일 때는 청색을 많이 띠게 되고, 알칼리 토양에서는 붉은색을 띠는 생리적 특성을 갖는다고 한다. 그래서 토양에 첨가제를 넣어 꽃의 색을 원하는 색으로 바꿀 수도 있다. 수국은 꽃잎처럼 보이는 부분이 사실은 꽃받침이라서 암술과 수술이 꽃 속에 없다. 또한 수국은 반음지 식물로 비옥하면서도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한다. 수국은 조금만 건조해져도 바로 말라버린다.

하지만 물속에 담가 두면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살아난다. 따라서 수국은 적합한 환경에서는 다른 어느 꽃보다도 오랜 시간 피어 있다.

 

산수국은 수국과 비슷한 특성을 갖는 수종으로 남보라색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꽃 가장자리는 수국처럼 무성화가 피고, 안쪽으로는 수술과 암술을 완벽하게 갖춘 결실 가능한 작은 꽃들이 피는 것이 수국과는 다르다.

어제 길이 헷갈려 잠시 헤어졌던 갈림길까지 왔다. 사거리에서 보덕암으로 내려가자 수국이 더 절정이다. 연화사의 부속 암자인 보덕암은 관음보살상이 있는 관음성지(觀音聖地)이다. 연화도 용머리 해안이 바라보이는 절경에 관세음보살상이 서 있다. 풍수 형국론으로 보면 용머리 해안의 네 개의 바위섬은 망망대해로 헤엄쳐나가는 용을 닮았다. 이는 바다와 맞닿은 뾰족한 바위들이 용의 발톱을 연상케 한다.

따라서 연화도를 용의 형상으로 보기도 한다. 용머리 해안은 힘차게 몸을 뒤틀며 헤엄치는 용의 오른쪽 앞발로 보이기도 한다.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 등의 해수관음상의 풍수에 절대 밀리지 않은 명당자리라고 생각되었다.

이 작은 섬에 절집이 이렇게 잘 조성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연화도에 전해져 오는 전설과 그 전설을 믿고 실행에 옮긴 분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설은 다음과 같다. 연화도인이 입적한 지 70여 년 뒤 사명대사가 연화도에 들어와서 수행에 정진하고 있었다. 그때 사명대사를 찾아 이곳까지 온 세 사람이 있었다. 대사의 처 보월(金寶具), 여동생 보운(任綵雲), 연인 보련(黃玄玉)이다. 사명대사는 이들을 출가시켜 선심(禪心)을 닦는 데 힘쓰도록 했다. 네 사람은 이곳에서 이렇게 만난 것은 세속의 인연, 불연의 인연, 삼세의 인연이니 증표로 삼는 시를 각각 한 수씩 남겼다. 후일 이들은 이곳을 떠나면서 ‘富(부) 吉(길) 財(재)’라는 판석을 남겼는데, 지금도 마을에서 실물을 보존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증표로 삼은 시 중 사명대사의 시는 다음과 같다.

仄身天地人皆粟 皺面恒河劫己沙(측신천지인개속 추면항하겁기사)

恨海情天更莫說 大千世界眼中花(한해정천경막설 대천세계안중화)

(四溟의 詩)

광막한 넓은 천지에 조 알 같은 이내 몸이

나고 죽고, 죽고 나고 그 몇 겁이 되었더니

한의 바다 정의 하늘을 다시는 말을 마소

대천세계도 눈 속의 꽃이로세

(사명의 시) 皺: 주름 추

 

이러한 전설을 근거로 이곳에 절을 조성한 분이 고산스님이다. 고산스님은 1933년에 울주에서 태어나 2021년 4월에 쌍계사 방장으로 입적한 분이다. 고산스님은 조계사, 은혜사, 쌍계사 주지를 역임하고, 조계사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스님은 연화사 외에도 부천 석왕사, 부산 혜원정사 등을 창건한 분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섬이 한 사람의 노력으로 불교 성지와 관광명소가 되어 나에게까지 그 인연이 이어진 셈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맑은 공기 속에 피어 더 물빛을 닮았던 수국과 함께 한 연화사와 보덕암 탐방을 마치고는 점심으로 생고등어 조림을 맛있게 먹었다.

배 시간이 남아 현수교 입구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하였다. 3시 30분에 연화도를 출발하여 통영 중화항에 도착해 무사히 귀가하였다.

짧은 1박2일의 일정이었지만 배 타고 물 건너 갔다왔더니 머언 다른 나라에라도 다녀온 듯이 아득한 시간이다. 여행의 시간은 일상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사명대사의 시처럼, 광막한 넓은 천지에 조 알 같은 이내 몸이 나고 죽고, 죽고 나는 허무를 극복하는 방법 중 제일 좋은 것은 이들과 더불어 누리는 이런 한가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