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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통영 만지도와 연대도 트레킹-2

by 황교장 2025. 1. 24.

통영 만지도와 연대도 트레킹-2

 

연대도 마을 중간에서 길을 따라 북동쪽으로 가면 해안가에 덱 길이 연결되어 있다. 에코 체험센터로 가는 길이다. 이곳은 국내 최초의 ‘에코 아일랜드(생태섬)’로 초등학교가 있던 곳이다. 연대도 초등학교는 1946년 10월 5일에 개교하여 2003년 2월 28일에 문을 닫았다. 연대도가 한창 번창하던 1973년도에는 93가구 327명의 주민이 살던 섬으로 학생은 96명이나 되었다.

에코아일랜드

지금은 폐교를 이용하여 연대도 에코아일랜드 사업이 진행되면서 섬은 다시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운동장에는 잔디로 깔려 있다. 태양열발전 시설 아래는 나무로 된 스탠드가 보인다. 이곳의 에코아일랜드사업은 탄소저감, 석유화석 제로, 생태관광 등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의 모범 사례라고 한다. 실제로 전기료와 난방비가 매우 절약되어 매월 1가구당 3KW의 전기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에코아일랜드 체험센터에서 다양한 체험활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에코아일랜드 앞에는 모래 해변이다. 마주 보이는 섬이 학림도와 저도다.

모래해변

에코아일랜드 동쪽 해안가에서는 패총이 발견되었다. 패총은 선사시대에 인류가 먹고 버린 조가비와 생활 쓰레기가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조개더미 유적이라고도 한다. 이는 당시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만여 년 전부터 이곳에 인류가 살았다는 흔적으로 1991년 10월 3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35호로 지정되었다. 패총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지금 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곳은 신석기시대의 사적으로 섬의 동북쪽을 따라 ‘U’자형으로 펼쳐져 있다.

연대도 ‘U’자 지형

북쪽은 바닷가로 비스듬히 이어지고 동쪽은 가파른 언덕을 이룬다. 지형의 모습으로 보아 시대에 따라 바다의 높이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유적지 규모가 1.748평이며 총 7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소실되었고, 2층~3층에서 조선, 고려, 삼국시대의 토기와 자기가 출토되었다.

연대도 패총

4층~7층은 신석기시대 문화층으로 융기문토기, 즐문토기, 무문토기, 마제석부, 어망추, 석촉, 낚시바늘, 장신구, 조개팔찌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은 대표적인 신석기시대의 유물들이다. 석기, 토기 가운데는 일본에서도 많이 출토된 것들이 있어 일본 구주지방과 문화적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곳 유적의 특이한 점 중 하나는 인골이 화석으로 출토되었다는 점이다.

7층 유적

일반적으로 선사시대는 문자 이전의 시대를 말한다. 신석기시대는 약 1만 2천 년 전쯤에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오늘날과 비슷한 환경에서 간석기와 토기를 사용하였다. 신석기인의 주된 활동은 채집과 사냥을 하고 바닷가나 강가에 살면서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조개류를 채취하여 먹고 살았다. 이곳의 유적도 대표적인 해안 유적지인 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영도 동삼동, 제주도 고산리, 통영 욕지도 유적과 그 궤를 같이한다.

선사유적지를 나와 다시 연대마을과 출렁다리를 건너 덱 길을 따라 만지도에 도착했다. 오늘 숙소인 만지봉횟집펜션을 지나 방파제 끝까지 가면 섬 뒤쪽에 해안 덱 길이 열려 있다.

수달 조형물

덱 길 가운데는 휴식 공간을 마련해 놓았는데 그곳에는 귀여운 수달 조형물도 설치해 놓았다. 이 길을 끝까지 가면 동백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유달리 꽃송이가 작은 토종 동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선 ‘동백나무 그늘 길’이다.

동백나무 군락

이곳에 자라는 동백나무는 지금까지 보아온 동백나무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한 나무에 무려 7가지에서 10가지가 뻗어 나온 것들도 있다. 그중 몇 그루는 밑둥지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동백나무 중 가장 굵은 것처럼 보인다. 동백나무 그늘 길이 끝나는 지점에 욕지도 전망대가 나온다.

욕지도 전망대

욕지도 전망대에서는 욕지도뿐만 아니라 용이 바다로 향해 나아가는 모습인 연화도 용머리 해안, 우도의 끝에 있는 구멍섬 해수욕장과 구멍섬이 뚜렷하게 보인다. 작년 6월에 친구들과 함께한 연화도와 우도에서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라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생각을 하게 한다. 살아온 시간보다 살아갈 시간이 너무 짧다고 생각되자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멸종한다는 것은 생물학의 대전제다. 게놈지도의 완성으로 인간은 그저 유전자를 전달하는 전달체라고 한다. 이런 생각들이 일어나자 잠시 멍해진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사유하면서 오르막을 오르자 땀이 저절로 났다. 걷고 땀을 흘린다는 것은 참 신기할 때가 있다. 인생무상과 허무가 엄습할 때 땀을 흘리면 낙천적인 생각으로 돌아온다.

만지봉 정상

드디어 만지봉 정상에 도착했다. 1일 2봉을 오른 셈이다. 이 길은 만지도 옛길인 ‘몬당길’이다. 몬당길은 적당한 거리, 적당한 높이, 적당한 난이도에 탁월한 경관이 함께 어우러져 트레킹 코스로는 최상의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만지봉을 뒤로하고 내려오자 해송전망대가 나왔다.

해송 전망대

수령 200년이 된 소나무가 있는 전망대다. 소나무의 기를 받기 위해 두 팔을 벌려 소나무를 안아 보았다. 소나무의 기가 나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다.

신우대 꽃

다시 내려오는데 신우대에 꽃이 피어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몬당길의 마지막은 마을길과 연결이 되었다. 오늘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인 숙소에 도착했다. 이것으로 만지도 연대도 트레킹을 마무리했다. 2만 보를 걸었고, 총 다섯 시간이 소요되었다. 숙소에서 몸을 씻고는 저녁을 먹었다. 참돔회와 방어회를 주 메뉴로 이곳 바다에서 잡은 각종 해산물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밥과 매운탕이 나왔다. 대만족이다. 오랜만에 이름값을 한 느낌이다.

저녁 식단

식사 후에 소화시킬 겸 밤마실을 나갔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다. 서쪽 하늘의 개밥바라기별을 필두로 화성, 목성이 뚜렷하게 보인다. 어린 시절에 똥바가지라고 불렀던 북두칠성도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다. 삼태성도 쉽게 관찰된다. 심지어 은하수도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만지도 별

 

차가 없는 섬이다 보니 공기가 깨끗하고 불빛이 거의 없으니 별들이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많은 별은 본 것은 딱 1년 만이다. 작년 1월 초에 차마객잔에서 밝은 별들과 은하수를 보았다. 차마객잔은 중국 운남성 차마고도에 있다. 옥룡설산이 코앞에 있는 옛 마방들의 객잔이다. 오늘 만지도의 별빛도 차마객잔에서 보았던 별빛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1년 만에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보고 숙소에 들어가자 잠이 저절로 왔다. 그동안 자는 중간에 한 번씩 깨었는데 여덟 시간을 깨지 않고 계속 깊은 잠을 잔 것은 오랜만에 경험한 것이다.

5시에 일어나 기본 체조와 요가와 단전호흡을 마치고 일출을 보기 위해 동쪽인 연대도로 향했다.

일출 직전

어제 간 덱 길을 따라 출렁다리가 있는 곳으로 갔지만 연대봉에 막혀 바다에서 바로 솟아오르는 일출은 볼 수 없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어제는 마을 쪽으로 내려갔지만 오늘은 위쪽으로 나 있는 해송이 우거져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해송 사이로 보이는 출렁다리와 만지도의 전경은 아침 빛 속에서 어제와 또 다르게 가슴을 설레게 한다. 만지도 몬당길에서 만난 200년 된 해송보다도 더 굵기가 굵은 해송들이 이어지는 숲길이 나왔다. 350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다.

수령 350년 소나무

숲길 끝에는 어제 연화마을에서 올라왔던 길과 만난다. 이곳의 몽돌해변은 두 곳이다. 큰 해변과 그 옆에 작은 해변이 있다. 어제는 큰 해변에 갔지만 오늘은 작은 해변으로 내려갔다.

작은 몽돌해수욕장

양쪽으로 절벽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로 물결치는 푸른 바다와 몽돌이 어우러져 몽환적이다. 올여름에 친구들을 이곳으로 안내하면 좋아할 것을 생각하니 흐뭇해진다.

몽돌해수욕장을 나와 연대도 마을 길을 내려가면서 대문 문패에 쓰인 문장을 한 번 더 보니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다시 출렁다리를 건너 덱 길을 따라가는데 표지판에 이 길을 ‘풍란향기길’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이 길이 바로 뉴스에 나온 만지도의 ‘풍란 도난 사건’의 길이다.

풍란

풍란(風蘭)은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멀리 전해진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어부들이 바다에서 짙은 해무를 만나 길을 잃었을 때, 풍란 꽃향기를 맡고서 육지가 가까워졌음을 짐작하고 안심하였다고 한다. 만지도에는 매년 6~8월에는 흐드러지게 핀 풍란의 꽃향기가 십 리를 퍼져 사람들을 황홀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에 무분별한 채취로 풍란이 멸종되었다.

다행히 2012년에 근처 어느 무인도에서 야생풍란을 발견했다. 이를 잘 배양해 만지도에 옮겨 심는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대부분은 실패하고 겨우 몇십 포기만 꽃을 피우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어렵게 복원된 풍란 중에서 관광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3포기가 사라진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난 것이다.

풍란

풍란은 아름다운 꽃과 향기로 관상 가치가 뛰어난 1급 멸종위기 식물이다. 풍란은 여러해살이 착생난초로 우리나라에는 전라남도와 경상남도 해안지역, 제주도 등에 자생한다.

6월달에 친구들과 함께 올 때는 이곳에 풍란이 피어 황홀한 향기를 느끼고 싶은 생각을 하면서 걸어오자 덱 길이 끝이 났다. 이젠 만지도와 연대도에서 가보지 않는 길은 만지도 마을 뒷길 하나만 남았다. 뒤길에는 아직도 시들지 않은 산국과 서리를 머금은 갓꽃이 피어 있다.

마을 뒤에는 바람길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가 있는 곳이 1965년 설립된 조양국민학교 만지분교 터다.

 

만지분교 터와 바람길 전망대

주민들이 땅을 기부하고 건축 자재를 직접 날라 학교를 지었다고 한다. 개교 이래로 11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젊은 사람들이 모두 뭍으로 떠나면서 1997년 졸업식을 끝으로 개교 33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안내표지판에는 1970년대 만지분교 내 마을 주민들과 선생님 모습이 담긴 빛바랜 흑백사진만 남아 옛 추억을 전하고 있다.

 

바람길 전망대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 이름이 ‘견우직녀길’이다. 터널을 만들어 한쪽은 견우길 반대쪽은 직녀길로 명명하여 견우와 직녀가 가운데에서 만난다는 뜻이 숨어 있는 듯하다. 바람길 전망대의 바람길과 견우직녀가 주는 의미는 마치 옛날 이곳에 살았던 갑돌이와 갑순이가 남몰래 사랑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것으로 만지도와 연대도에 나 있는 모든 길을 다 걸었다.

숙소에서 아침으로 나온 전복죽을 맛있게 먹고는 9시 45분 배를 타고 통영 연명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1박 2일의 만지도 연대도 트레킹은 마음을 만지는 힐링 여행으로 영원히 남을 추억이 되었다. 올 6월에 친구들과 함께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