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지심도와 노자산 트레킹
2025년 2월 16일 오전 9시 반에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항에 도착하였다. 지심도 트레킹을 하기 위해서다. 매표 후 길 건너편 횟집에서 도다리 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고는 10시 45분에 떠나는 관광 유람섬을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 겨우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지심도로 향했다. 10여 년만이다. 지심도는 지세포항에서 동쪽으로 1.5㎞ 해상에 위치한다. 해안선 길이가 3.5㎞로 얼마 전에 다녀온 2km의 만지도와 4.5km인 연대도에 비교하면 두 섬의 중간 정도의 크기이다. 10년 전 갈 때는 장승포항에서 출발했는데 이번에는 지세포항에서 출발했다.

지심도
지심도(只心島)는 하늘에서 바라본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관광유람선은 출발한 지 15분 만에 지심도 무사히 도착했다. 오랜만에 날씨도 포근하고 바람도 일지 않아 파도가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 덕분이다.

우리 일행은 배에서 마지막으로 내려 길을 따라 천천히 올랐다. 섬에 오르는 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길가에는 오래된 동백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숲속에 들어서니 나무들이 크고 무성하여 햇볕을 다 가린다. 숲속에는 수백 년은 살아온 듯한 후박나무들과 아름드리 해송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 대부분이 상록수림이다.

숲길을 조금 걷자 넓은 공터가 나왔다. 일본식 집이 몇 채 보인다. 일제강점기 때 헌병대 본부와 관사, 해안포대와 포대 관측소 등의 일본군 유적이다. 이들은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수난 시대의 유물들을 다 없애지 않고 일부를 그대로 남겨둔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굴욕의 역사 현장을 후손들에게 보여주어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일본군 유적을 지나면 또 다시 동백숲으로 이어진다. 지심도가 동백꽃의 대명사로 불리게 된 데엔 이곳에 자라는 다양한 식생 중에서 약 60% 정도인 동백나무 덕분이다.

기본이 100년 이상 된 동백나무들이라고 한다. 이들 동백나무 터널을 따라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걸었다.

동백(冬柏,Camellia)은 11월 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2~3월에 만발한다. 이 시기에는 공기가 차가워 곤충이 없어 수정을 동박새가 한다. 꿀이 귀한 겨울철에 동백꽃 꿀을 가장 좋아하는 동박새는 꿀을 먹을 수 있어 서로 공생관계다. 그래서 동백은 조매화(鳥媒花)다.

동박새

동백꽃은 질 때 꽃잎이 전부 붙은 채 한 송이씩 통째로 떨어진다. 동백은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의미와, 엄동설한에 꽃을 피운다고 해 ‘청렴과 절조’라는 꽃말을 갖고 있다. ‘동백’ 하면 공원 전체가 동백나무로 장식된 서귀포시의 카멜리아 힐과 제주 남원읍 위미리 동백꽃이 떠오른다.


대청도 동백
동백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옹진 대청도 동백나무 자생북한지 (천연기념물 제66호),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61호),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69호),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84호), 거제 학동리 동백나무 숲 및 팔색조 번식지 (천연기념물 제233호), 광양 옥룡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489호), 나주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 (천연기념물 제515호)이다.


왕곡면 송죽리 금사정 동백
난대성 식물의 북한계 지표종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북쪽인 북위 37.5도인 대청도에서 자생하는 대청도 동백나무 숲은 가보지 못한 곳이다. 2월 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4월 초에 만개한다고 한다. 그리고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에 휘말린 조광조의 구명 활동을 벌였던 나주 출신 성균관 유생 11명이 낙향하여 심은 나무로 알려진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의 금사정 앞뜰에 있는 동백나무도 답사하고 싶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동백나무 중 가장 굵고 크다고 알려져 있다.





동백꽃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데는 서정주의 시 ‘선운사 동구’와 이 시를 의식하여 지은 송창식의 ‘선운사’란 제목의 노래라고 생각된다.
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선운사 - 송창식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이 두 편의 시도 좋아하지만, 이해인 수녀의 ‘새해에는 동백꽃처럼’을 사랑한다.

새해에는 동백꽃처럼 –이해인
새해에는 동백꽃처럼
더 밝게
더 싱싱하게
더 새롭게
환한 웃음을
꽃 피우겠습니다
모진 추위에도 시들지 않는
희망의 잎사귀를 늘려
당신께 기쁨을 드리겠습니다
어디선가 날아오는
이름 없는 새들도
가슴에 앉히는 동백꽃처럼
낯선 이웃을 거절하지 않고
사랑을 베풀겠습니다
땅을 보며 사색의 깊이를 배우고
하늘을 보며 자유의 넓이를 배우는
행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지상에서의 소임을 마치고
어느 날
이별의 순간이 올 땐
아무 미련 없이 떨어지는
한 송이 동백꽃처럼
그렇게 온전한 봉헌으로
떠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일본에서는 불행한 일을 춘사(椿事)라고 한다. 춘(椿)이라는 한자가 동백나무를 뜻하는데 동백 꽃송이들이 붉은 꽃잎 그대로 떨어지는 모습을 불길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춘(椿)이라는 글자가 참죽나무를 뜻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동백숲에 떨어진 꽃송이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느껴 하트모양으로 모아 놓는다.

동백숲 곳곳에는 사랑의 표징들이 만들어져 있다. 이처럼 동백에 대한 해석은 나라마다 다르다.

곰솔
동백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잘생긴 곰솔이 나타난다. 최소한 삼백 년은 넘게 자란 해송으로 보인다. 이 나무를 보는 순간 전에 이곳에서 대마도를 뚜렷하게 보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오늘은 포근한 날씨로 습도가 높아 가시거리가 짧아져서 대마도를 볼 수 없다고 하자 한 친구가 내 말에 믿음이 가지 않는지 구글 지도를 펼친다. 대마도가 바로 정면에 나타났다. 지심도는 대마도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 섬이다. 동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산 정상으로 나오면 활주로가 있었던 곳이 나온다. 지심도는 이차대전 당시에 미군과 일본군이 혈전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지심도의 특징 중 하나는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들이다. 용바위, 형제바위, 마당바위 등으로 불리는 기암괴석들로 가득 차 있어 이들을 감상하는 맛 또한 일품이다. 또한 이곳은 대한해협의 파도가 심해 해식애가 잘 발달하여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섬 주변 어디든지 낚싯대만 드리우면 감성돔, 도다리, 볼락 등 다양한 어종들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이곳 대한해협의 명칭은 다양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대마도가 있어 대마도를 기준으로 두 개 해협으로 나눈다. 한국에서는 대마도 북쪽을 부산해협(서수로), 남쪽을 쓰시마 해협(동수로)으로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쓰시마 북쪽만 조선해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조선해협이라고 한다. 그러나 국제 공인 명칭은 대한해협(Korea Strait)이다.
지심도에 나 있는 길을 모두 다 걷고는 처음 내린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던 지세포항에 무사히 도착하여 동백꽃 지심도 트레킹을 마무리하였다. 지심도는 비록 작은 섬이지만 섬에 산책로를 다양하게 조성하여 하루 운동량으로 적당한 거리인 구천 보이다. 아침으로 도다리쑥국을 잘 먹었지만 지심도 트레킹이 소화를 다 시켜 배가 고파왔다.

점심으로 근처에 있는 초정명가 횟집에서 맛있는 회를 잘 먹었다.
오늘 저녁은 자연휴양림에서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의 솜씨로 직접 해결한다. 저녁상을 위해 하나로마트에 들러 다양한 식재료를 구입한 후 오늘 마지막 코스인 거제도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케이블카는 학동고개에서 노자산 정상 근처까지 1.56km 구간에 설치되어 있다.

오후 시간이라 비교적 한산하여 우리만 탑승했다. 거제자연휴양림은 자주 왔지만 휴양림 위를 지나가는 케이블카를 타 보는 것은 처음이다. 언젠가 한 번은 타 보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이룬 셈이다.


케이블카는 올라갈수록 가시거리가 넓어져 주변의 풍광이 계속 변하고 있다. 한참을 즐기는 중인데 어느새 상부 승강장인 윤슬 정류장에 도착한다. 순식간에 흘러간 느낌이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노자산(565m) 정상까지는 약 1km의 임도로 연결되어 있다.
임도를 걷다가 왼편에 있는 덱 계단을 오르면 노자산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 전망대에 서면 동서남북의 전망이 다 황홀하다. 서쪽에는 작년 여름에 다녀온 연화도와 우도가 보인다. 욕지도는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조만간에 답사할 계획인 두미도도 알아볼 정도로 보인다.

그 앞으로 비진도, 용초도, 추봉도, 한산도 등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계룡산, 선자산, 대금산, 국사봉, 옥녀봉, 북병산, 공곶이, 해금강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서쪽 발 아래 탑포항과 율포항은 하트 모양을 하고 있다. 거제도에서 가장 높은 가라산(580m)이 추억의 산으로 손짓하면서 다가온다. 20여 년 전에 가라산에서 노자산으로 이어지는 종주 길을 재미있게 걸었었다. 흰 얼레지꽃과 변산바람꽃을 처음으로 만나 흥분했던 길이기도 하다.

등산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조망의 즐거움이라고 생각된다. 노자산 정상이 주는 눈맛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만든다. 노자산을 뒤로하고 윤슬 정류장으로 되돌아왔다. 이곳에는 카페가 있어 따뜻한 차를 시켜 마시면서 발아래 펼쳐지는 노자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노자산은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참나무, 노각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로 숲을 이루고 있다. 남쪽 섬의 온화한 기후 덕에 11월 말까지도 마지막 단풍이 남아 만추의 쓸쓸함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자산은 조선 시대에 나무를 함부로 못 베게 했던 봉산(封山)으로 지정되었기에 지금도 울창한 숲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해 멸종위기 동식물이 많이 서식한다.

팔색조
동쪽 사면인 학동리 동백숲은 팔색조(八色鳥) 번식지로 알려져 있다. 팔색조(천연기념물 제204호)는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몸에 여덟 가지 색이 섞여 있어 아름다운 색감을 자랑한다. 또한 노자산은 풍란과 춘란의 자생지로도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자란 자작나무, 박달나무와 산벚나무 등은 해인사에 보관된 목판 팔만대장경의 재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카페에는 낙조를 감상하기에 좋은 테이블이 여럿이다. 낙조를 기다리면서 차 한 잔을 더 하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자연휴양림 숙소로 왔다. 한 친구가 감기몸살이 너무 심해 올 수 없는 몸 상태였다. 우리 모임의 세프인 친구가 몸살에 특효가 있는 뱅쇼를 만들어 주겠다고 하나로마트에서 재료를 구입해 왔다.

뱅쇼
뱅쇼(Vin Chaud)는 프랑스어로 따뜻한 포도주라는 뜻으로 포도주에 다양한 과일과 계피를 비롯한 향신료를 넣고 끓여 만든 일종의 음료수다. 정성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난생 처음 경험한 것이지만 그런대로 마실 만했다. 덕분에 아픈 친구의 몸 상태가 점차 호전되었다. 셋이서 도란도란 이야기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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