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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거제 칠천도 수야방도 트레킹

by 황교장 2025. 2. 22.

거제 칠천도 수야방도 트레킹

 

푹 잘 자고 일어나니 7시다. 10시 반에 잠들어 8시간 반을 잤다. 감기몸살을 한 친구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아마 정성이 든 뱅쇼 효과일 게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는 자연휴양림을 나와 칠천도로 향했다.

칠천도는 거제시 하청면에 속한 섬이다. 거제시 중심을 지나 하청면 소재지를 거쳐서 칠천연륙교를 건너면 칠천도다.

칠천교

거제의 크고 작은 66개 섬 가운데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이 칠천도이다. 거제도는 1971년 4월에 거제대교의 개통으로 ‘섬이 아닌 섬’이 되었다. 칠천도 역시 2001년 1월 연륙교의 개통으로 섬 아닌 섬이다.

칠천도는 예로부터 해산물이 풍부해 황금어장을 의미하는 ‘돈섬’으로 불렸다. 그런데도 ‘칠천도 처녀는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도 먹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논보다는 밭이 많은 섬이다. 칠천도는 3개 리 10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해안선 길이는 36.9km이며 인구는 약 1,300명이다.

예로부터 옻나무가 많고 바다가 맑고 고요하다 하여 칠천도(漆川島)라 불리다가, 섬에 7개의 하천이 있다고 하여 지금은 칠천도(七川島)라 불린다. 칠천도는 1012년(고려 현종3) 목장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칠천도 어온리 물안마을과 맞은편의 거제도 송진포 사이의 해협에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전투에서 패한 칠천량해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일주도로 오른쪽으로 가면 최적의 드라이브 길이다. 조용하고 잔잔한 바다가 펼쳐진다. 도로에는 우리 차밖에 없다. 갈림길에서 황덕도로 가는 언덕길과 물안해수욕장으로 가는 해안 길이 나왔다. 해안도로를 따라갔다. 풍광 좋은 백사장이 보인다. 물안해수욕장이다.

카페 앞에 주차하고는 인적 없는 작고 앙증맞은 흰 모래 해변을 들어가는 순간 칠순을 넘긴 친구들의 표정이 방실방실 동심으로 돌아간다.

해변 산책을 마치고 나오는데 카페 주인이 가게 문을 열고 있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다과를 주문하고는 담소를 나누었다. 최근에 주역에 대한 글을 쓰다가 미진한 부분이 있어 소 주역이라고 불리는 중용에 관한 책을 아홉 권을 읽었다.

 

중용의 주된 가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균형 잡힌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은 어쩔 수가 없어 머리로 이해한 중용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자기 고백을 하였다. 그리고 한 친구에게는 중용을 읽을 필요가 없겠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평소에 성품이 온화하여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이 발단되어 인간의 성품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가 되어 사단칠정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단은 인의예지(仁義禮智)이고 칠정은 희노애락애구욕(喜,怒,哀,樂,愛,懼,慾)이다. 남의 어려움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전하면 인(仁)이 되고, 자기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이 발전하면 의(義)가 되고,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이 발전하면 예(禮)가 되며,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마음인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발전하면 지(智)가 된다. 맹자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칠정(七情)은 1. 희(喜, 기쁨), 2. 노(怒, 노함) 3. 애(哀, 슬픔), 4. 락(樂, 즐거움), 5. 애(愛, 사랑), 6. 구(懼, 두려움), 7. 욕(慾, 욕심)의 일곱 가지를 말한다.

퇴계는 사단은 언제나 결과가 선이기 때문에 理에서 나오고, 칠정은 결과가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기 때문에 氣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사단은 理에서 나오고 칠정은 氣에서 나온다는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대한 기대승의 비판은 다음과 같이 했다.

1. 인간의 마음에는 理와 氣가 같이 들어 있으므로 하나는 理에서 나오고, 하나는 氣에서 나온 것으로 나눌 수 없다.

2. 사단도 감정이고 칠정도 감정이기 때문에 칠정 가운데 선한 부분만 뽑아내면 사단이 된다. 그러므로 사단을 칠정에 포함시켜야 한다.

퇴계종택

퇴계는 기대승의 반박을 듣고 한 발 물러서서 사단은 理가 먼저 움직이면 氣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氣가 움직이면 그 위에 理가 함께 드러나는 것이라고 고쳤다. 논쟁은 결말을 보지 못하고 끝난다.

기대승과 이황은 사단과 칠정이 모두 감정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했다. 하지만 기대승은 이와 기를 나누지 말자는 의견을 끝내 굽히지 않았고, 이황도 나누자는 의견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논쟁을 통해서 퇴계와 기대승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理와 氣로 나누고자 하는 근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를 구분하기 위해서다. 군자는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옳다고 생각되면 꿋꿋이 실천하는 사람이다. 소인은 자기의 이익만 탐하고, 이익을 위해서는 남을 짓밟고 해치는 자다. 이러한 소인과 군자를 구별하고자 하는 이론적 배경이 사단과 칠정을 바탕으로 한 이기이원론이다.

사단도 기에서 나왔다면 사단도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단이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이론과 배치가 된다. 이는 소인과 군자를 구별할 수 없고 같다고 하는 결론이 나온다.

도산서원 전교당

퇴계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사단이라고 보고,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가지 감정 중 나쁜 것도 포함된 것이 칠정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본래의 선한 마음이 칠정의 나쁜 마음에 예속되지 않도록 늘 경건하게 마음을 닦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퇴계의 경(敬) 사상의 바탕이다.

퇴계가 직접 가르친 제자는 31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분들이 대를 이어서 계속 이러한 정신을 계승 발전시켰다. 안동 일대의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한 분들은 대부분 퇴계와 직, 간접으로 관련이 있다. 결국 위대한 스승 한 분이 나라의 생존과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도산서원

이 대화를 통해서 친구들은 기대승의 이론에 더 공감했다. 그런데 퇴계의 이론에도 호감이 가는 것은 군자와 소인의 구별이다. 학창 시절의 친구라도 살아오면서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소인배 같은 친구를 칠순이 넘은 이 나이에도 스트레스를 받아 가면서 계속 교류를 갖느냐의 문제로 귀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셋만 있는 카페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으니 당연히 카페 주인께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아주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감기몸살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생강차를 무료로 제공해 준다. 토론은 계속되었다.

퇴계 예던길

퇴계 선생의 위대한 저작 중 하나는 성학십도(聖學十圖)다. 성학십도는 68세의 퇴계가 17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선조가 성군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즉위 원년(1568)에 올린 상소문이다. 그중 제 일도가 태극도다. 태극도는 북송 초기의 저명한 도사 진단이라는 분이 중국 화산의 석벽에 각인한 것을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가 이를 바탕으로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어 성리학의 이론을 마련한 것이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을 남송의 주희가 성리학으로 더욱 체계화하였다. 따라서 성리학은 도교와 유학이 결합 된 형태다. 그러므로 태극도를 인간의 성품에 적용시키면 성리학이 되고, 사람의 운명에 적용시키면 명리학이 되고, 땅에 적용시키면 풍수학이 된다. 결국 성리학, 명리학, 풍수학은 같은 우주관을 갖는 셈이다.

 

태극도

 

태극도의 근본은 음양이다. 음양이론은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一陰一陽之謂道(일음일양지위도)로 귀결된다. 음과 양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한다. 즉 양을 +1, 음을 -1의 양극으로 삼으면 그 사이에서 무한히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파동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이 순환의 질서를 만들어 내는 주역의 철학적 대명제다.

삼라만상의 자연현상은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일러 도라고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해는 양이고, 달은 음이다.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밝음은 양이고, 어둠은 음이다. 기쁨은 양이고, 슬픔은 음이다. 교만은 양이고, 겸양은 음이다. 이처럼 음양은 상대적이다. 대립 속에 융화를 나타낸다. 서로 의지하고 도와준다. 이기고 지는 법이 없다.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이 생긴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생긴다. 음지가 양지 된다. 즉 양 속에 음이 존재하고 음 속에 양이 존재하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이처럼 음양은 삼라만상에 다 관여한다.

퇴계종택 추월한수정

동양학의 근본이 되는 주역과 성리학에 대하여 거의 한 시간 넘게 토론한 것이다. 토론의 결론은 호학하는 자세를 가지자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염려되는 것이 치매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충분한 수면과 운동 그리고 호학(好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퇴계 예던길

논어 학이편 1장은 논어 한 권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장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배움은 ‘목적’이 아니라, ‘과정’에서 희열을 느껴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 우리 친구들은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배움의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며 열띤 토론을 한 것이다.

수야방교

카페를 나와 고개를 넘으면 송포마을이 나온다. 송포마을은 나에게는 친숙한 마을이다. 두 학교에서 8년 동안 같이 근무한 분이 이 마을 출신이었다. 이분은 1951년생으로 전쟁 중에 태어나 힘들게 학교를 다녔다. 온화한 성품으로 평소에는 자기 자랑을 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처음으로 산 자가용을 타고 출근하면서 “칠천도 송포 촌놈이 출세해서 자가용 타고 학교에 출근했다”고 자랑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이러한 인연이 송포마을에 정감을 더한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건너편에 있는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아치형 인도교가 나온다. 이 작은 섬이 ‘수야방도(垂也防島)’다.

수야방도는 물이 빠졌을 때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수야방도 종합안내도가 있다. 주된 내용은 숫돌이 나는 섬이라고 하여 숫돌바우섬으로 礪峰島(여봉도), 宥和防島(유화방도)라 불렀으나 지도상에는 수야방도라 명시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수야방도의 지질구조가 학술적으로 가치가 큰 이유는 ‘중생대 백악기에 화산활동으로 퇴적된 화산암층의 관입암으로 화산활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유동구조의 암석 및 현무암 등이 발견된 지질구조’라서라고 한다. 안내도의 설명이 ‘태극도와 사단칠정 논쟁’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진다.

인도교를 건너 산책길을 따라가면 해안가에 전망대를 잘 만들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전망대는 높은 곳에 있는데 이곳 전망대는 해식애 위에 설치한 덱 전망대다. 높은 곳의 전망대보다도 조망을 잘 할 수 있는 위치에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를 나와 산 정상에 있는 정자에 오르면 일망무제(一望無際)다.

고성의 구절산과 진동면의 해안 모습, 진해의 장복산과 불모산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진해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는 감동된 표정으로 한 동안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제법 높은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구글에서 찾아보니 작년에 답사한 마산의 무학산(761m)과 대산(725m) 그리고 함안의 여항산(770m)이 어깨를 견주며 키 자랑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수야방도는 비록 작은 섬이지만 숨겨진 최고의 조망터이자 트레킹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