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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친구와 함께 한 장곡사와 칠갑산

by 황교장 2025. 4. 25.

친구와 함께 한 장곡사와 칠갑산

 

친구들과 매년 분기별로 전국자연휴양림을 찾아 1박 2일을 한다. 독실한 불자 친구가 있어 기가 응집된 명당자리에 있는 절을 찾아 부처님께 기도를 드리게 한다. 그 덕에 비신도인 친구들도 같이 복과 안녕을 기원한다. 이번 여행에서 선택된 명당 절이 바로 장곡사이다.

장곡사 가는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장곡사 벚꽃길을 즐기면서 장곡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2025년 4월 20일 일요일에 부산에서 7시 40분에 출발해 무려 3시간 40분이 걸린 셈이다.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장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로 850년(신라 문성왕 12) 보조선사 체징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칠갑산은 주병선이 부른 노래가 히트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국보 3점과 보물 4점이 있는 장곡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장곡사는 국내 유일하게 대웅전이 두 개가 있는 사찰이다. 절 입구에 도착하여 먼저 만나는 것은 하 대웅전 영역이다. 하 대웅전을 지나 상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제법 가파른 언덕 위에 상 대웅전이 있다.

장곡사

상 대웅전은 보물 제162호로 지정된 건물로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마루 대신 전돌이 깔려 있다. 전돌 중에는 통일신라 때의 것으로 추증되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전돌도 섞여 있다.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대웅전 안에는 국보 제58호인 ‘청양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및 석조대좌’ 와 보물 제174호인 ‘청양 장곡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및 석조대좌’가 있다.

장곡사는 철불로 유명세를 떨친다. 철불은 신라하대의 선종 사찰에서 많이 조성됐다. 청동은 구하기가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청동불 대신에 철불이 만들어졌다.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이 시기에 제작된 철불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불인 국보 제117호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국보 제63호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대표적이다. 이곳의 철불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증된다.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특히 장곡사를 창건한 체징이 보림사를 개창한 체징(體澄, 804~880)으로 전해져 온다. 체징은 구산선문 중 가지산파의 제3대 조사로 시호는 보조선사, 탑호는 창성으로 장흥 보림사에 그의 승탑과 탑비가 있다.

보조선사 승탑

보조선사창성탑비

장곡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대웅전 안에 국보인 철조 약사여래불과 보물인 철조비로자나불이 함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법당은 부처님이 중심인 법당과 보살이 중심인 법당으로 나눈다. 부처님이 중심인 법당은 적멸보궁, 대웅전, 대적광전, 극락전, 약사전으로 나누고, 보살이 중심인 법당은 관음전, 지장전, 문수전으로 나눈다.

이 중 부처님이 중심인 법당을 살펴보자

1.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다. 진신사리가 바로 부처 몸이기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다. 통도사, 봉정암, 상원사 중대, 정암사, 법흥사가 대표적인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이다. 적멸(寂滅)이란 번뇌가 사라져 고요한 상태로 열반(涅槃)을 말한다.

통도사 적멸보궁 금강계단

2. 대웅전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본존불로 모신 법당이다. 대웅은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를 대웅 세존이라고 칭한 데서 연유한다. 이는 인간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영웅이라는 의미다.

수덕사 대웅전

3. 대적광전

대적광전은 ‘화엄경’의 중심 부처님인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을 모신 법당이다. 비로자나는 광명을 말한다.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 진리의 빛이 가득한 세계라 하여 대적광전이라 부른다. 화엄경을 근거로 하기에 화엄전이라고도 하고,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뜻에서 비로전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대적광전, 화엄전, 비로전, 대광명전은 모두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비로자나불상은 지권인을 하고 있다. 지권인은 왼손의 검지를 곧추세워 오른손의 엄지 끝을 대고 감싸 쥔 수인이다.

보통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불만을 모신 경우와 세 분의 부처님인 삼신불을 모신 경우가 있다. 삼신불이란 부처님의 세 가지 모습을 말한다. 법신은 진리 자체로서 의미한다. 진리 자체이기 때문에 티끌 하나 없이 청정하다. 보신은 수행으로 이룬 원만한 공덕의 부처님을 말한다. 화신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나타난 부처님을 말한다. 중생이 다양한 만큼 천백억 불의 화신이 있다. 삼신불은 각기 다른 부처님이 아니라 같은 부처님을 진리의 측면인 청정 법신 비로자나불, 수행자의 측면에서 원만보신 노사나불, 중생의 측면에서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이다.

해인사 대적광전

4. 극락전

극락전은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모신 법당이다. 아미타불은 ‘아미타경’의 중심부처로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서방 극락정토로 이끄는 부처님이다. 서방정토는 서쪽으로 십만 억의 불국토를 지나서 있는 세계로, 괴로움이 없고 즐거움만 있어 극락이라 한다. 아미타는 무한한 광명과 무한한 수명을 보장해 주는 부처라는 뜻을 지닌다. ‘아미타경’에 따르면 아미타여래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존재이다. 아무리 악한 중생이라 할지라도 아미타불을 간절히 부르면 극락으로 갈 수 있다. 아미타불이 봉안되는 불전은 극락전, 미타전, 무량수전(無量壽殿), 무량광전 등으로 부른다. 극락전에는 보통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되는 것이 통례이다. 아미타불을 모신 대표적인 곳이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5. 약사전

약사전은 동방유리광정토를 이룬 약사여래를 모신 법당이다.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의 약사여래는 현세를 살아가는 모든 중생이 재난과 질병을 없애고 부처님의 지혜를 얻게 하고자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이다. 약사불은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미타불이 서방 극락정토에서 죽은 자의 정토왕생을 주관하는 부처라면, 약사여래는 동방 유리광세계에 머물면서 중생을 위하여 모든 번뇌와 질병을 치료해 준다. 약사여래는 인간 생활의 전반에 이익을 주는 부처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때 특히 유행하여 많은 약사불이 조성되었다. 약사불은 왼손에 약단지를 들고 있어서 다른 불상과 쉽게 구분된다. 약사전은 유리광전(琉璃光殿), 만월보전(滿月寶殿)이라고도 한다. 극락정토의 땅이 유리라는 보석으로 되어 있고, 약사여래가 이룬 세계가 보름달 같은 만월 세계이기 때문이다. 약사전에는 약사여래를 중심으로 일광과 월광보살이 좌우 협시로 봉안된다.

청량사 유리보전

 

위와 같이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의 상 대웅전에는 철조 비로자나불과 철조 약사여래불을 함께 모신 곳이다. 이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이라고 하고,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을 유리광전이라고 하는데 이곳은 대웅전이라고 명명되어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이기에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라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인데 아직 정확한 사정을 알지를 못한다고 한다.

상 대웅전을 보고 내려오면 올라갈 때 미처 보지 못한 오래된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다. 오를 때 지나친 하 대웅전 영역에 들어갔다. 제법 마당이 넓어 절집 같은 분위기가 난다.

하 대웅전(보물 181호)은 조선 중기에 지어진 건물로서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단층 맛배 지붕으로 쇠붙이 하나 쓰지 않는 순수한 목조건물이다.

하 대웅전 안에는 국보 번호 지정제가 폐지된 이후 처음으로 지정된 국보인 ‘청양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이 있다.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

하 대웅전 안에 있는 주불이 약사여래불이면 전각의 이름이 대웅전이 아니라 약사전, 유리광전, 만월보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웅전이다. 이는 일반적인 원칙을 반드시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의 금동약사불상은 오른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왼손은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특히 손톱 모양까지 세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불상은 1959년에 불상 밑바닥을 열고 조사하다가 불상을 만들게 된 이유와 연도를 적은 발원문이 발견되었다. 발원문에는 1346년(고려 충목왕 2)이라는 제작 시기가 적혀 있어 고려 후기 불상의 기준 연대를 제시해주고 있다. 고려 후기 불상 조각 중 약합(藥盒)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의 도상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온화하고 자비로운 표정, 비례감이 알맞은 신체, 섬세한 의복의 장식 표현 등은 이 시기 불상 중에서도 뛰어난 예술적 조형성을 지닌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발원문

특히 가로 10미터가 조금 넘는 긴 발원문에는 약 1,117명에 달하는 시주자와 발원자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는 고려시대 단일 복장 발원문으로서는 가장 많은 인명을 담고 있는 것이다.

장곡사 미륵불괘불탱

이곳 장곡사에는 국보 제300호로 지정된 ‘청양 장곡사 미륵불괘불탱’도 있다. 미륵불 괘불탱은 용화수 가지를 들고 있는 미륵불을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진행할 때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 그림을 말한다.

장곡사 답사를 마치고 칠갑산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칠갑산 산행에 나섰다. 처음 계획은 장곡사에서 출발하려고 했지만 칠갑광장에서 출발하기로 했다. 칠갑광장에서 출발하면 아직 남아 있는 벚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양은 칠갑산에 둘러싸인 고지대의 분지로 인근보다 평균 기온이 낮아 매년 1~2주가량 벚꽃이 늦게 핀다. 때문에 인근 지역의 벚꽃이 사그라들 즈음 비로소 만개해 충남 지역의 마지막 벚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차 한 대에 친구 5명이 타고 장곡사를 나와 20여 분을 달려 칠갑광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칠갑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길가에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절정의 시기는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 남이 있는 벚꽃이 있어 즐기기에는 충분하다.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자 자비정이 나온다.

자비정 2층에 올라 주변의 경관을 구경하면서 노래를 아주 잘하는 친구가 칠갑산 노래를 아주 구성지게 불렀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느냐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이 곡은 대중가요 중에는 보기 드문 3박자 곡이기에 애절함을 더한다.

노래에 젖어 있다가 다시 출발하여 가파른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바로 정상이다. 일요일이라 제법 사람들이 많다.

칠갑산(559.8m) 정상에 서자 멀리 공주 계룡산과 서대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성주산과 오서산은 잘 보인다. 칠갑산 정상에서 여러 곳으로 능선이 뻗어 나가 계곡을 이루어 지천과 잉화달천이 계곡을 싸고 돌아 7곳의 명당이 형성되어 칠갑산이라 불린다고 한다.

또한 칠성원군의 칠(七)자와 십이간지의 첫 자인 갑(甲)자를 합쳐서 칠갑산으로 부르게 됐다는 설도 있다. 칠갑산에서 발원한 하천들은 모두가 금강으로 합류된다.

칠갑산 정상에서 능선 풍경을 즐기고 내려올 때는 나누어서 내려왔다. 세 명은 칠갑광장으로 되돌아갔고 나와 같은 고향 친구는 장곡사길로 하산을 하여 장곡사를 한 번 더 답사하고는 오늘 숙소인 오서산 자연휴양림에 도착했다. 우리 모임의 세프인 친구는 청양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봐와서 신나게 요리를 하였다. 공들인 음식을 맛있게 먹고는 그동안 쌓여 있던 많은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오래된 친구는 말해도 좋고, 말하지 않아도 좋다. 듣고 있어도 좋고, 듣지 않고 딴짓해도 이해가 된다. 시간의 축적이 그런 공감을 쌓아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