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만지도와 연대도 트레킹-1
세상사가 시끄러워 삶이 울적해 겨울 섬 여행을 나섰다. 마음을 만져준다는 만지도와 인류가 살아 왔던 흔적이 단군보다도 더 오래된 연대도를 택했다. 이 두 섬은 대표적인 힐링의 섬으로 알려져 있다. 2025년 1월 17일 오전 11시 배로 통영 연명항에서 출발하여 만지도로 향했다.

연명항은 작년 6월에 친구들과 다녀온 연화도와 우도를 가기 위해 찾은 통영 중화항 바로 옆에 있는 항이다.

연명항
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다. 이날은 섬 여행하기에는 비교적 좋은 날이었다. 겨울 바다라 날은 차지만 파도가 잔잔하여 호수 같다. 6개월 만에 다시 한려수도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주변 섬들도 정감있게 느껴져 보는 순간 힐링이 된다.

만지도
배는 출항한 지 15분 만에 만지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려 바라보는 만지도 마을은 평화롭게 다가온다. 차가 없기에 소음이 없는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우물을 상징하는 빨간 펌프가 있어 정감을 더한다. 마중물을 부어야 물이 올라오는 장치다. 예부터 만지도는 지하수가 풍부하여 이웃 섬인 학림도와 연대도에서도 배를 타고 만지도에 빨래하러 왔다고 한다.

오늘 머물 숙소는 식당과 숙박을 같이 할 수 있는 만지봉횟집 펜션이다. 점심으로 멍게 비빔밥이 나왔다. 평소 멍게를 좋아하는 나의 입맛에 맞아 남김없이 다 비웠다.

식사 후에 본격적인 산책에 나섰다.
만지도는 약 200년 전에 처음으로 사람이 살게 되었다. 주변의 다른 섬들보다 늦게 주민이 정착하여 만지도(晩地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만져주는 힐링의 섬이 만지도라고 한다.
만지도는 해안선 길이가 2km, 15가구 30여 명뿐인 작은 섬이다.



올 때 보았던 빨간 우물을 지나 바다 위에 잘 조성된 해안 덱(deck) 길을 따라갔다. 만지도에서 연대도로 가는 길이다. 덱 길 절벽에는 난대성 식물인 후박나무, 생달나무, 돈나무, 동백나무 등의 상록수림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일찍 핀 동백꽃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모퉁이를 돌자 에메랄드빛의 해변이 나타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감인 초록과 청색의 중간인 ‘에메랄드’,‘코발트’, ‘인디고’, ‘오키나와 블루’의 비취(翡翠)색상이다.

에메랄드빛이 좋은 곳인 홍도, 흑산도, 제주도 우도, 협재해수욕장, 한림해수욕장, 일본 오키나와 해변, 중국 구채구, 지중해, 아드리아해 등 많은 곳을 보았다. 하지만 이곳의 물빛도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 보는 순간 가슴을 설레게 한다. 자연스럽게 해변으로 내려갔다. 올여름 친구들과 동심으로 돌아가 이곳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생겼다.



에메랄드빛의 해변을 지나면 바로 만지도와 연대도를 연결하는 출렁다리로 이어진다. 이 다리는 연화도와 우도를 연결하는 보도교가 연상되었다. 길이 98m, 폭 2m로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보도교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공포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스릴이 있다.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던 만지도와 연화도는 2015년 2월에 출렁다리가 완공됨으로써 세상에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여 지금은 통영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연대도이다.

연대도(烟臺島)는 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서 연대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연대도는 해안선의 길이가 4.5km, 인구는 40여 가구 70여 명이 살고 있다. 인구와 면적에서 만지도의 2배가 넘는다. 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자 집마다 대문에 특이한 문패가 붙어있다.


“돌담이 아름다운 집. 전통어가를 그대로 간직한 백옥수 할머니 집. 영화 백프로에 나온 집입니다.”,



“연대도 카수 서재문, 강정숙 여사가 재미나게 사는 집. 서재문님은 노래와 춤 솜씨가 일품입니다.” “칠공주의 집, 이도태 할아버지 댁, 관광버스에서 이박삼일 동안 춤을 추어도 끄떡 없습니다. 두릅농사를 많이 지으십니다.” “인상좋은 이성술할아버지댁, 국제적인 마도로스로 세계를 여행하셨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식사를 하시는 습관이 있으십니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장점과 특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단점은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도 보인다. 좀 특이한 집이 있어서 보니 ‘국명당(鞠明堂)’이라는 당호가 있다. 연대도에 사는 달성 서씨들의 제실이다.


마을 언덕 끝에 오르면 탁 트인 전망과 함께 몽돌해변이 나타난다. 연대도 몽돌해수욕장이다.


연대도 몽돌해수욕장
덱 길을 따라 해수욕장에 내려갔다. 저절로 해변 끝에서 끝으로 걸었다. 밀려왔던 파도가 쓸려나갈 때마다 울리는 몽돌의 해조음이 듣기에 좋다. 매년 절친들과 함께하는 여름 여행을 올여름에는 비진도로 정했다. 하지만 몽돌해변의 풍광과 해조음이 계획을 변경하게 만든다.
해수욕장을 나와 마을 뒷길을 따라가면 작은 교회가 나오고 그 위에는 태양광 발전소가 나온다. 그곳에서 ‘지겟길’이 시작된다. 지겟길은 지게를 지고 일하러 다니던 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 시절 생각이 절로 났다. 당시에는 지게에 물건들을 지고 옮기거나 산으로 가서 땔감을 구해 지게에 지고 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지겟길은 2.2km로 산 중턱을 두르는 둘레길이다. 숲길 사이로 보이는 바다와 섬 풍경들이 운치를 더한다.

북바위 전망대
지겟길 옆에는 수많은 다랑이 밭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한두 평 남짓한 작은 땅도 축대를 쌓아 곡식을 심었던 옛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하다. 지겟길을 따라 오르자 탁 트인 전망대가 나온다. 북바위 전망대다. 섬 여행의 백미 중 하나는 이런 멋진 전망을 무념무상으로 바라보면서 땀을 식히는 맛이다.

옹달샘
땀이 다 식기 전에 다시 출발한다. 잘 조성된 옹달샘이 나타났다. 비록 낙엽이 많이 깔려 있지만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일하다가 목마를 때 이곳 옹달샘은 생명수인 셈이다. 지겟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섬의 반을 돌면 전망이 툭 트인 오곡도 전망대가 나온다.


오곡도
바로 앞에 해식애가 잘 발달된 섬이 오곡도(烏谷島)이다. 그 뒤에 해변으로 연결된 두 섬은 올여름에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한 비진도(比珍島)이다. 오곡도는 연대도와 같은 행정 명칭을 갖고 있다. 연대도와 오곡도는 1914년 통영군 산양면이 형성되면서 연대도의 연과 오곡도의 곡이 합쳐져 연곡리가 되었다. 따라서 연대도와 오곡도는 같은 행정 명칭인 연곡리이다. 다만 번지수가 다를 뿐이다. 지금도 공식 명칭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烟谷里)이다. 그런데 오곡도의 주민과 연대도의 주민은 왕래가 거의 없다고 한다. 뱃길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오곡도 뒤에 있는 비진도가 참 멋있게 보인다.

여름 비진도
비진도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미인도’로 불린다. 또한 바다에는 수산물이 풍부하여 보물 같은 곳이기에 비진도라 지어졌다고 한다. 또 다른 설은 조선시대 때 이순신 장군이 비진도 앞바다에서 왜적을 물리친 보배로운 곳이라는 뜻에서 비진도라고도 한다. 올여름에는 친구들과 함께 이곳과 비진도를 같이 탐방하는 욕심을 부려보고자 한다.
다시 돌아 제법 힘든 덱 길을 오르자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나왔다. 힘들게 오르막을 10여 분을 오르자 드디어 연대봉(221m) 정상에 도착했다.

연대봉
봉수대는 이미 다 허물어져 대를 쌓았던 돌들만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조망도 정상 주변에 나무들이 많이 자라 사이사이 보이지만 그래도 경관은 일품이다. 봉수대 아래에는 이미 고사목이 된 당나무와 돌담만 남아 있다. 아마 연대도의 신전으로 보인다.
연대봉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 여섯 봉우리가 있다. 제주도 행원 연대봉, 장흥 관산읍 연대봉, 담양 산성산 연대봉, 하동 금남면 연대봉, 부산 가덕도 연대봉이다. 이들 봉우리는 봉수대(烽燧臺)가 설치된 곳이다. 봉(烽)은 밤에 봉화(烽火)를 올려 연락하는 것을 말하고, 수(燧)는 낮에 연기를 올려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연대봉에서 내려오면 마을 길이 나온다. 마을 길을 따라 내려오면 마을 한가운데에는 비석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별신장군 비석이고, 또 하나는 연대도 사패지해면(賜牌地解免) 기념비이다.

연대도 사패지해면 기념비
사패지에서 벗어났다고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사패지(賜牌地)는 임금이 내려 준 논밭으로 주로 외교와 국방 분야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왕족이나 벼슬아치에게 내려 주는 토지다. 연대도는 섬 전체가 1718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충렬사의 사패지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은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3백 년간 통영 충렬사에 소작료를 납부하였다. 1949년 농지개혁법에 따라 농지는 소작인의 소유로 이전 등기가 되었지만 대지(집터)는 1989년 8월 7일에야 소유권이 섬 주민에게 이전되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불과 35년 전의 이야기이다.
사패지해면(賜牌地解免) 기념비 옆에는 별신장군(別神將軍) 비석이 있다.

별신장군비
이는 별신제를 지내는 표지석이다. 별신제(別神祭)는 별신굿이라고도 한다. 마을 공동으로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사하는 점에서 동제(洞祭)와 유사하나, 동제는 동민 중에서 뽑은 제관이 제사를 주관 하지만, 별신제는 무당이 주재한다는 점이 다르다.
연대도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 초하루에서 5일 사이에 길일을 택해 당제를 지냈다. 연대도의 당은 두 곳이다. 윗당산과 아랫당산이다. 윗당산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혼을 달래주는 당제를 드리고, 아랫당산에서는 장졸들의 영혼을 달래주는 당제를 모신다. 마지막에는 마을 가운데 있는 이곳 별신굿 터에서 별신장군제를 지낸다고 한다.
예전에는 무당을 초청하여 3일간 별신굿을 벌렸지만, 지금은 스님을 초청하여 마을 주민들과 같이 제를 드린다고 한다. 제를 드리는 순서는 전날 11시쯤 스님이 산 정상의 상당에 올라가 제를 모신 뒤 중당, 아랫당을 거처 별신대까지 오면 주민들은 집마다 새벽 4시부터 정성껏 차린 밥상을 들고 나와 별신장군대 앞에 차리고 안녕을 기원한다.

별신장군제
별신장군제가 끝나면 주민들 각각이 따로 내온 음식들을 큰 그릇에 합쳐 하나로 섞는다. 절반은 용왕밥으로 바다에 뿌린다. 이것을 ‘용왕 멕인다’고 표현하는 일종의 용왕제다. 나머지 음식들은 전체 주민들이 모여 나누어 먹는다. 이처럼 연대도는 우리의 토착 신들에 대한 신앙이 남아 있는 특별한 섬이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이들은 서로 단합하여 인간사의 어려움들을 헤쳐 나왔으리라.
이는 찰스 다윈(1809~1882)이 발표한 ‘종의 기원’의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다윈은 1859년에 ‘종의 기원’을 처음 발표할 때는 약육강식, 적자생존, 승자독식을 주장했지만, 12년 뒤인 1871년 두 번째 발표에서 자연 선택에 가장 성공적이었던 종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돕고 단합할 줄 아는 종들이라고 수정 발표했다. 즉 협력을 잘하는 구성원들이 많은 공동체가 잘 번창하고 가장 많은 수의 자손을 부양한다고 주장했다.
만지도는 만 년 이상 인류가 살아온 곳이다. 장구한 세월 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것도 이러한 공동체의 행사가 여전히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별신장군제를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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