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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5대 적멸보궁 법흥사

by 황교장 2007. 5. 13.

 

5대 적멸보궁 법흥사 


고달사지에서 나와 법흥사로 가려면 원주를 지나 국도를 타고 주천으로 이정표를 잡았다. 원주에 도착하니 해가 서산으로 기운다. 원주는 2004년에 원주 마라톤에서 많은 교훈을 얻은 곳이다. 그 당시에 쓴 글이다.


“풀코스 초보 탈출”

마라톤대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스프레이를 뿌려 주는 도움이들, 반환점을 지나고 나면 걷거나 퍼질러 앉아 있는 군상들, 지금까지 나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프레이 뿌리거나 퍼질러 앉아 있으려면 출전하지 말아야지 무리하게 등신 같은 짓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잘난 척을 했다.

호미곶 풀을 시작으로 해서, 전주군산, 수안보를 거쳐서 원주풀(2004. 9.5.)이 풀코스 도전 네 번째이다. 기록갱신을 위해 10Km까지는 54분, 10에서 20까지는 53분, 30Km까지는 53분, 32Km까지는 2시간 52분, 이제 남은 거리는 10.195Km.....

이 속도로 나가면 3시간 40분대, 꿈과 희망을 가지고 뛰었다. 주위의 많은 달림이들이 걷고 있다. 등신 같은 친구들, 걸으려면 뭐 한다고 over pace하면서 뛰었노 하고 또 잘난 척을 해 본다.

...그러나 

35Km를 넘으니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주 전에 35Km까지만 LSD를 했다. 37Km 언덕길, 기온 30도의 복사열까지, 호흡이 거칠어진다. 네 컵의 물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는다. 다리가 무겁다. 장딴지와 허벅지 근육이 말을 듣지 않는다. 스프레이를 뿌렸다. 그러나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걸었다. 걷다가 다시 뛰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가, 39Km 지점의 언덕길 마지막 지점에서 드디어 나도 퍼질러 앉고 말았다. 사용하지 않는 간이버스 승강장, 풀이 우묵한 곳에서 홀로 처량하게 퍼질고 앉아 있다보니 돈 주고 차비 들여 강원도 원주까지 와서 꼭 이 짓을 해야 하나? 그만 포기하고 말까? 그러자니 39Km가 너무 아깝다. 다시 일어나 걸었다. 걷는데도 종아리는 계속 아파왔다. 40Km를 지났다. 걸어가던 주변의 달림이들도 하나 둘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 뛰었다. 드디어 골인점 통과, 4시간 27분대, 최악의 기록이다. 마지막 10.195Km를 통과하는데 무려 1시간 35분이 걸린 셈이다.

골인점을 통과하고, 소금기로 얼룩진 얼굴로 자꾸 뒤로 잡아끄는 장딴지를 이끌고 원주 종합운동장을 빠져 나오며, 나는 왜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지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마라톤은 너무도 정직한 운동이다. 연습을 한 만큼 그 결과가 나온다. 반드시 출전 3주 전쯤에 42Km 이상을 LSD해야만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 달리기를 할 수 있다. 기록에 욕심내지 말고 즐달해야 한다. 과욕은 절대 금물이다.

이번 마라톤에서 내가 정말 배운 것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 풀코스를 처음 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돌아오는 길에 몸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비로소 나는 풀코스의 초보를 탈출했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힘들게 뛰었던 코스를 차로 천천히 달리면서 그 때를 회상했다.

금대유원지 표지판을 따라가면 치악산과 백운산의 협곡으로 이루어진 금대계곡이 나온다. 전국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없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계곡 안까지 찻길이 열려 있다. 차가 갈 수 있는 마지막 곳이 가람마을 치악산야영장이다. 숙소가 여럿 있어 그 중에 마음에 드는 호젓한 곳을 택하여 여정에 지친 몸을 풀었다. 원주에 가면 시내보다는 이곳에 숙박하는 것이 여행의 맛을 느끼게 한다.

다음날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했다.

치악재를 넘어 중앙고속도로 신림 IC가 있는 신림 삼거리를 지나면 황둔이라는 곳이 나온다. 이곳은 황둔쌀찐빵, 황둔쑥찐빵으로 유명하다. 먹어보니 담백하고 맛이 있다. 황둔에서 고개를 넘으면 영월 주천이다. 몇 년 전 주천에서 법흥사로 갈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바뀌어 가지를 못했던 기억이 난다.


주천(酒泉)은 술 주자에 샘 천자다. 술샘이라는 뜻이다.

신동국여지승람에 “주천샘이 있어 술이 나왔는데 양반(兩班)이 오면 약주(藥酒)가 나오고 천민(賤民)이 오면 탁주(濁酒)가 나왔는데 천민이 양반복장을 하고 와서 약주가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평소와 같이 탁주가 나오자 화가 나서 샘터를 부순 이후에는 술이 나오지 않고 물만 나온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따라서 이곳 지명도 주천(酒泉)이고, 강도 주천강(酒泉江)이다. 주천에서 주천강을 따라 법흥사로 가는 길은 환상적이다. 4월 말인데도 부산은 이미 다 져 버린 개나리, 벚꽃이 절정이다. 산과 강, 계곡과 물, 나무와 꽃이 어우러져 한 폭의 살아있는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다.

봄날의 드라이브 코스로는 최고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치악산 동쪽에 있는 사자산은 수석이 30 리에 뻗쳐있으며, 법천강의 근원이 여기이다. 남쪽에 있는 도화동과 무릉동도 아울러 계곡의 경치가 아주 훌륭하다. 복지라고도 하는데 참으로 속세를 피해서 살 만한 지역이다” 라고 격찬하고 있다.


멀리서 보아도 사자산(獅子山)의 산세는 예사롭지가 않다. 적멸보궁이 있을 만하다고 느낌이 왔다.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공사가 한창이다.

이른 아침이라 주위의 공기가 상큼하고 쌀쌀하다. 울진 소광리에 있는 금강송 군락지에서나 볼 수 있는 적송이 아주 잘 뻗어 있다. 적송 사이로 난 길을 따라 500m 정도 올라가면 적멸보궁이 나온다.

보궁에서 바라보니 뒤쪽에 있는 연화봉이 주산이고, 사자산이 조산, 백덕산이 좌청룡, 삿갓봉이 우백호, 구봉대산이 남주작인 셈이다. 옛 사람의 안목은 정말 뛰어나다.

법흥사 적멸보궁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를 말한다.

부처님이 열반했을 때 몸에서 여덟 말에 해당하는 진신사리가 나왔다.

이 중 자장(慈藏)스님이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가사와 사리 100여과를 받아와서 통도사, 봉정암, 상원사, 법흥사에 나누어 봉안했다.

정암사에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통도사 사리를 나누어 봉안했다고 한다.

부처님의 진신 사리는 곧 법신불(法身佛)로 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낙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적멸보궁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있다.

법신불이란 우주에 충만한 진리를 인격화한 불신(佛身)을 말한다.


선생님들과 절로 답사여행을 가면 제일 많이 하는 질문 중의 하나는 “이상하게 손 두 개를 아래위로 포개서 앉아 있는 저 부처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다.

바로 이 이상한 부처가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이다.

우리나라 절집 현판에 대적광전(大寂光殿), 대명광전(大明光殿), 비로전(毘盧殿), 화엄전(華嚴殿)이라고 붙여져 있으면 ‘아 여기는 비로자나불인 법신불을 모시는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적멸보궁 뒤 토굴과 부도,이곳 어딘가에 진신사리가 묻혀 있음

 

 

비로자나불의 이상한 손 모양을 지권인(智拳印)이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왼손집게 손가락을 뻗치어 세우고 오른손으로 그 첫째 마디를 쥐고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한 부처님이 바로 법신불이다. 5대 적멸보궁에는 이러한 법신불을 모시지 않아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곧 법신불 즉 비로자나불이라는 뜻이다.

통일신라 때는 화엄사상의 융성과 더불어 통일의 상징으로 비로자나불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불국사의 금동비로자나불(국보 26호), 도피안사의 철조비로자나불(국보 63호), 보림사의 철조비로자나불(국보 117호)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적멸보궁과 비로자나불은 연결되어 있다.


적멸보궁을 내려오니 보궁을 먼저 볼 욕심으로 지나쳤던 보물 제612호 징효대사부도비가 있다.


징효대사 절중(826-900)은 신라 말 구산선문 중 사자산파를 창시한 철감국사 도윤(798-868)의 제자로 흥녕사(법흥사의 옛이름)를 중흥시킨 스님이다.

탑비에는 징효대사의 행적과 포교내용 등을 적고 있다. 귀부와 이수는 고달사지의 귀부와 이수를 본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아 큰 감동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앙증맞은 느낌은 있다.


그동안 4개의 적멸보궁을 보고, 마지막으로 법흥사 적멸보궁을 보고나니,  역시 5대 적멸보궁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쓸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여기에 시주를 하면 자손이 잘 된다” 란 문구 때문이다.

법흥사에 처음 들어섰을 때 불사를 많이 벌여 어수선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그 어수선함의 정체가 이 문구에서 다 드러나는 것 같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인데, 이 절은 색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소박하게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생각하면서 2박 3일의 여정을 끝내고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부산으로 향하였다.

 

 징효대사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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