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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동방사찰 제일의 전망 수종사

by 황교장 2007. 5. 7.
 

6,7년 전 철마 학생교육원에 있을 때 지금은 퇴직한 교장선생님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이야기이다.

“수종사를 아시는가?”

“수종사요? ”

1년에 평균 80일 이상 20년 넘게 배낭을 메고 풍수 보러 전국을 면단위까지 내 발걸음이 거의 지나갔는데 수종사는 처음 들어 보는 절이었다.

“새 절입니꺼?”

아니고 오래된 절이란다.

“그래마 서울 근처입니꺼?”

양수리 근처에 있는데 경치가 정말 좋다고 꼭 한번 가보라고 하셨다. 이것이 수종사를 처음 접한 것이었다.

 두물이 만나는 양수리

 

그동안 양수리는 몇 번 공무로 지나가도 수종사의 이정표만 보고 지나쳐야만 했다.

이번의 여행은 그동안 가보지 못한 곳을 탐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다산 생가에서 나와 양평 가는 이정표를 따라 10여 분 강을 따라 오르면 수종사 입구가 나온다.

수종사로 오르는 길은 잘 포장된 산길로 이어지고 있다. 상당히 급경사이므로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오르니 한강이 점점 눈에 들어 왔다. 두물머리를 느끼면서 수종사로 향한다.

수종사라는 절 이름은 물수에 쇠북 종이다, 즉 물하고 종소리하고 관련이 있다는 느낌부터 든다.

유래인즉, 세조가 금강산을 순례하고 돌아오던 중 양수리 부근에서 날이 저물어 하룻밤을 묵게 되는데 근처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기이하게 생각한 세조는 날이 밝자 종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종소리가 들리는 곳은 바위굴이고, 굴속에는 16나한이 앉아 있었다.

종소리로 들렸던 것은 그 굴속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암벽을 울려 일어나는 공명(共鳴)이었다. 세조는 명을 내려 그곳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수종사(水鍾寺)라 했다고 전해진다.

수종사 경내에 들어오니 수수꽃다리 나무에 흰색 꽃이 만개해 있다. 흰색 꽃은 잘 볼 수 없는데 여기서 본다. 나무도 아주 오래된 나무다.

경치를 보니 서거정 선생이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제일의 전망이라고 격찬할 만하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은 대자연의 신비다. 산 위에서 바다풍경은 많이 보았지만, 두 강이 합쳐지는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눈을 경내에 돌리니 제일 먼저 팔각오층석탑(일명 수종사 다보탑)이 들어온다.

보는 순간 신륵사 다층석탑을 떠오르게 한다. 탑의 크기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재질이 신륵사 다층석탑은 대리석인데 비해 화강암이다. 상륜부까지도 손상 없이 아주 깨끗하다.

이 탑은 세조가 중창불사를 하면서 조성했다고 한다.

1957년에 탑을 해체할 때 다양한 금동불 18구와 금동불감(金銅佛龕, 동판을 조립하거나 동을 주조하여 만든 감실 즉 불상을 넣은 집)이 나왔다.

이중 본존불의 복장(腹藏)에는 발원문과 함께 “성종 24년(1493) 명빈 김씨(明嬪金氏)가 시주한다”는 내용의 명문이 새겨져 있고,

금동비로자나불 좌상에는 “인조 6년(1628) 정의대왕대비(貞懿大王大妃)가 시주한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것을 볼 때 이 불상들을 한꺼번에 모신 게 아니고 시대를 달리 여러 번 모신 것임을 알 수 있다.

 수종사 석탑과 부도

석탑 옆에는 석조 부도가 있는데 지붕돌 옆면에 남아 있는 명문 “太宗太后貞懿翁主舍利塔施主ㅇㅇ柳氏錦城大君正統四年己未十月入”을 통해 1439년(세종 21년) ㅇㅇ유씨와 금성대군이 시주해 세운 정의옹주 부도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도를 옮기면서 나온 것이 청자개부호(청자사리함), 금동제 구층탑, 은제도금육각감 등이 보물 25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연도를 볼 때 세조가 중창하기 이전부터 절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수종사 담 밖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세조가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풍수에서 대체로 두 물이 만나는 지점은 명당으로 보는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가 명당인 셈이다.

우리나라 사찰 중 많은 곳이 두 계곡이 만나는 머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 수종사는 운길산 7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어 암자로서 적당하지 절로서는 터가 너무 좁다.

 세조가 심었다고 하는 수종사 은행나무

수종사를 뒤로 하고 내려오니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 이유는 차들이다. 절 입구까지 찻길이 나 있어 급경사에다 속도까지 내니 위험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차량을 통제하든가 아니면 본래의 상태로 되돌려 자연 그대로 흙길로 복원시켜야 할 것이다.

요즈음 학교에서도 혁신이니 혁신 마일리지니 하면서 바쁘다.

알고 보면 교육의 본모습은 변함 없는 것이 아닌가.

수종사의 옛길을 복원시켜야 하듯이 진정한 교육의 혁신은 교육을 본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게 아닌가를 생각하면서 국보 4호가 있는 고달사지로 향한다.

 산길에서 만난 천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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