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통일전 옆에 있는 서출지(書出池)로 발길을 옮겼다.
‘글이 나온 연못’이라는 의미다.
이요당
서출지는 통일전의 규모에 압도되어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찾기가 힘들다.
통일전 주차장 남쪽 끝을 자세히 보면 서출지가 보인다.
통일전 주차장이 서출지의 풍광을 망치고 있다.
통일전 주차장이 없고 주변이 논밭이라고 생각하면
서출지 본래의 고즈넉한 맛을 더욱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서출지의 참맛은 연못에 연꽃이 만개하고, 수백 년 된 배롱나무(목백일홍)에 꽃이 필 때가 제일이겠지만 봄날의 서출지도 색다른 맛을 더한다.
이 연못 속에는 연꽃이 심어져 있고, 연못 둑에는 수백년 된 배롱나무들과 소나무 , 향나무, 은행나무 등이 함께 어울려 수림을 이루고 있다.
1664년 임적(任勣)이 서출지 연못가에 석축을 쌓고 이요당(二樂堂)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요당에 들어가서 서출지의 풍광을 즐기려고 출입문을 찾으니 잠겨 있었다.
배롱나무
삼국유사에 의하면
21대 소지왕(479-500재위) 때 못 가운데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 주는데
겉봉의 글은
“開見二人死 不開一人死,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씌어 있어 열어 보니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라는 글이 써 있었다.
왕을 해치려고 거문고 갑 속에 궁녀와 중이 숨어 있다가 화살에 맞아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화랑세기에는 내용이 조금 다르게 전개되어 있다.
중은 묘심이고 궁녀는 소지왕의 왕비인 선혜부인이라고 한다.
소지왕은 점잖은 성인군자로 알려진 분으로 지증왕의 6촌 형님이다.
특히 법흥왕과 화랑도의 초대 풍월주인 김위화랑이 소지왕의 마복자(摩復子)라고 알려져 있다.
마복자란 글자그대로 배를 문질러서 낳은 아이다.
마복자 제도는 세계 역사상 신라 사회에서만 있는 풍습으로 ,임신한 부하의 아내를 자기 처소로 불러 들여 살게 하면서 살을 맞대고 정을 통하여 태어날 아이와 끈끈한 인연을 맺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23대 법흥왕은 누구인가?
지증왕(남근이 1자 5치, 약 45cm) 과 연제부인(키가 7척 5치 약 2m 25cm, 배설물의 양은 북만 함)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불교를 공인하고, 신라 최초로 건원(建元)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정하고 스스로 황제를 자처한 인물이다.
따라서 점잖고 성인군자인 소지왕과 6촌 동생 지증왕의 아내인 연제부인과 살을 맞대고 정을 통함으로써 태어난 아이가 법흥왕이다.
또한 법흥왕의 딸과 법흥왕의 친 아우 사이에 태어난 이가 삼국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24대 진흥왕이다.
이러한 마복자 제도는 신라의 골품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다.
현대의 윤리 도덕적인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시대, 지역 ,상황에 따라 윤리와 도덕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러한 근원적인 문제를 생각하면서 서출지를 나왔다.
서출지에서 발견한 토종 흰민들레
화랑교육원을 지나 남천을 따라 약 200m 가면 옥룡암 표시가 나온다. 옹룡암 위에는 부처바위가 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사랑한단 말 한 마디 못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오
그대 위해 기도하진 못 하지만
그대를 사랑하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그대를 사랑하오
사랑이란 얼마나 참아야 하는지
나의 사랑 그대여 내 마음 아나요
가슴 속을 파고드는 그리움이
눈물 되어 흘러도
내 모습 그대에게 잊혀져도
그대를 사랑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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