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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탐매기행

by 황교장 2007. 4. 29.

탐매기행 /2007.3.9.-3.10.

봄이 오는 소리와 그윽한 향기는 매화만한 것이 없다. 대지의 생기와 산천경계를 맛보기 위해 탐매 기행에 나섰다.
매화는 중국이 원산지이다. 백매, 홍매 청매 등으로 나누는데 분재 개량종까지 포함하면 약 200종이나 된다고 한다.
또한 사군자 중에 하나다. 눈 속에도 핀다는 설중매는 선비의 기개를 나타낸다.

탐매의 순서는 남명매, 원정매, 정당매의 산청삼매와
화엄사 흑매, 섬진강 매화마을, 선암사 매화, 금둔사 납월매로 이정표를 정한다.
3월 10일 7시에 부산을 출발 문산 휴게소에서 짬뽕밥으로 속을 풀고, 대진 고속도로를 타고 지리산 IC로 나와 덕산에 있는 덕천서원에 도착했다. 덕산고등학교 운동장 끝에 피어있는 노오란 산수유꽃이 유혹을 한다. 최소한 삼백년 이상 된 나무들이다. 그 당시에는 덕천서원 후원쯤 되었을 것이다. 덕천서원은 남명 조식(1501-1572)선생을 기리는 서원이다. 선생의 본관이 창녕이라는 데서 더욱 정감이 간다. 선생은 평생을 산림처사로 자처하면서 학문과 제자들 교육에 힘썼다.


조식선생은 퇴계 이황(1501-1570)선생과 더불어 경상 좌.우파의 학문의 쌍벽으로 대접 받는다. 퇴계가 세상을 떠나자 남명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도에 살면서 서로 만나지 못한 것이 운명이로다.'
하며 애통해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퇴계가 '내 명정에는 처사라고만 쓰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할 벼슬은 모두 다 하고 처사라니 진정한 처사야 말로 나’라고 한 일화는 퇴계를 라이벌로 인식했다고도 생각된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공을 세운 곽재우, 정인홍 등 남명선생의 제자들은 모두가 의병활동을 했단다. 대단하신 분이다.
선생께서 말년을 보내신 산천재에 있는 남명매를 보기 위해서 덕천서원을 뒤로 하였다. 산천재 앞에는 몇 년 전에는 없던 기념관이 건립되었다.
그곳에서 사무를 보는 분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화제는 산수유나무였다. 마당 한 가운데에 있는 이 나무는 내가 본 산수유나무 중 가장 키가 컸다. 옮겨 심은 나무냐고 질문을 했더니, 아니라고 했다. 원래 그 자리라는 것이다.
일제시대에 임업시험장이 여기에 있어 한 백 년쯤 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족히 4백년 이상은 되어 보였다.
왜냐하면 구례 산수유마을에 있는 나무들은 3백년에서 5백년 이상 된 나무라고 하는데, 산수유마을에서도 이렇게 키가 큰 나무는 본 기억이 없다.
기념관 내부는 아주 잘 꾸며져 있었다.
특히 눈에 뛰는 유품은 칼이다. 선생이 늘 지니고 있었다는 이 칼에는
內明者敬外斷者義(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로써 외부 사물을 처리해 나간다)라고 새겨져 있다. 여기에서 선생의 사상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산천재 앞마당에 피어 있는 남명매는 이미 만개를 다하고 시들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남명선생이 직접 심었다는 이 남명매는 최소한 450년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산천재 앞 기념관과 산수유


산천재 앞 남명매


남명매


산청 삼매 중 두 번째로 남사마을에 있는 원정매를 보러 갔다. 남사마을은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에 견줄만한 동네다.
풍수 상으로 마을의 형국이 반달형국이라 반월은 메우면 안 된다고 믿어, 가운데는 농지로 남겨 두었는데 지금은 주차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원정매는 분양고가(汾陽古家)에 있다.
이 집 주인은 이곳에서 35대째 살아온단다. 고려말 문신인 원정공(元正公) 하즙(河楫 1303-1380)선생이 심었다는 700년 된 홍매화다. 집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동네 노인 왈 이 집 주인은 오늘 아침에 부산에 갔다고 하였다.
하지만 시골 태생이라  농촌마을의 생리를 잘 아는 나로서는  그냥 갈 수가 없었다. 마을 안쪽으로 돌아가서 다른 집을 경유해 주인도 없는 빈 집에 들어가 아주 호젓하게 원정매를 감상했다.
원정매 본 가지는 고사 직전에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목에서 나온 새 뿌리에서는 탐스러운 원정매가 피었다. 코를 갖다 대어 보니 은은한 향기가 일품이다. 역시 원정매는 그 명성만큼 위엄이 있다. 그러나 고사하지는 않아야 할텐데 ...
골목을 돌아서 나오는데 6백년 된 감나무가 있었다.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 1376-1453)이 7살 때 심은 감나무라고 했다.
아마 이 나라 최고령 감나무일 거다. 하연선생은 원정공의 증손자로 포은 정몽주 선생으로부터 글을 배웠다고 한다. 세조 때 청백리로 뽑힌 분이다.
그 옆에 사양정사(泗陽精舍)라는 건물이 있어용도를 마을의 서당이냐고 그 동네 아낙에게 물었더니 아니라고 했다. 연일 정씨들만이 학문을 하는 곳이라면서 상당히 뻐듬하게 대꾸를 한다. 내가 ‘아! 포은 선생님 후손들이 학문하던 곳이군요.’ 하니깐 금방 반색을 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
처음 뻐듬할 때는 ’너거 아래것들이 뭐 볼라고 오노’ 라고 생각하다가, 포은 정몽주선생의 후예임을 알아주니깐 심리적인 만족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산청 남사고가마을

 


다시 나오면서 생각하니
이 동네 최고로 잘 살았을 법한 집은 최씨 고가의 소유주인 최씨고, 원정매의 주인은 하씨고, 이 마을 유일한 보물인 조선 태조께서 친히 李濟(?-1398,이성계의 사위, 개국1등공신)에게 하사했다는 개국공신교서(보물)를 가진 이는 이씨고, 또한 연일 정씨라, 즉 내노라 하는 양반성씨들이 함께 화합하고 경쟁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원정매

 


아기원정매



산청삼매의 마지막 님은 단속사터의 정당매(政堂梅)다. 조선 초 통정공 강회백(姜淮伯1357-1402)선생이 심었다는 나무다. 선생의 벼슬이 정당문학 겸 대사헌이라서 이름 붙여진 것이 정당매다.

선생은 시,서,화의 삼절이라는강희안(姜希顔1417-1465), 강희맹(姜希孟 1424-1483)형제의 친 조부이기도 하다.


입구에 60대의 조식선생이 20대의 사명대사에게 주었다는 시 한수가 써 있다.
贈山人惟政
花落槽淵石 春深古寺臺
別時勤記取 靑子政堂梅
꽃은 조연의 돌에 떨어지고
옛 단속사 축대엔 봄이 깊었구나
이별하던 때 잘 기억해 두게나
정당매의 푸른 열매를......

유서 깊은 정당매는 명당터에 있다. 오히려 삼층석탑이 있는 곳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고목에서 우러나오는 향취는 무딘 필력으로는 표현한다는 게 부끄러움이다.
거기서 동네에서 제일 유식한(?) 노인과 금강산 건봉사에서 왔다는 스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 노인은 이 마을에 대한 자기만 아는 지식을 뽐낼 수 있어서 신이 났다. 노인은 우리들에게 그 주위에 있는 폐사지 유물들을 일일이 안내를 해 주었다.
삼층석탑 뒤쪽에 있는 집 헛간에 깨어진 석등 뚜껑을 구경시키면서 이집 담장 수리할 때 나왔단다. 그리고 그 일대에 있는 정 맞은 돌들을 다 구경을 시켰다.

 


정당매


개화한 정당매

 


남명이 사명당에게 준 시비

 


마지막으로 세 조각난 것을 붙여놓은 당간지주를 구경시키면서 다른 곳의 당간지주는 구멍이 두 갠데 여기는 세 개라고 설명을 한다.  당간지주의 용도가 뭐냐고 스님한테 물었다. 스님은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아주 겸손한 스님이다.
주로 자기 절의 문중을 표시하는 깃대를 주로 달고 야단법석을 할 때는 괘불을 걸어놓는 곳으로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고 아는 체를 했다. 그때  옆에 있는 40대 후반의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幢자가 깃대 당자고 竿은 장대 간이라고 하면서 한자 본래의 뜻으로 보면 깃대에 수건 같은 것을 거는 의미가 내포된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도 이곳을 동네에서는 괘불 터로 불린다고 했다. 그 친구 그만 입을 다물었다.
알고 보니 이 사람 직업이 불자들을 상대로 5대 적멸보궁 구경시켜주는 여행 업자였다.
5대 적멸보궁을 달달 외우고 어디에 뭐가 있다는 건 훤하게 꿰 차면서도
정작 기본은 약해 보였다.
동네 노인과 건봉사 스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웅석봉을 지나서 칠선계곡 백무동을 거쳐 뱀사골에 도착하니 고로쇠 축제가 한창이다. 우리는 달궁까지 갔다. 늘 달궁을 지나치면서 생각나는 건 지리산 토종 흑돼지 철판구이다.
3년 묵은 김치에 싸서 먹는 흑돼지 구이, 물은 고로쇠 물, 배불리 먹고 고로쇠 물 반 말을 사서 노고단을 넘었다.

꿈의 화엄사 흑매, 너무너무 붉다 못해 흑빛이 되었다는 흑매를 보기 위해서이다. 작년에는 밑가지 끝에만 핀 것만 보아서 올해는 기대에 부풀었다.

화엄사에 도착하여 올라가는 도중 하늘이 캄캄하고 비가 오기 시작 했다.
흑매를 볼 욕심으로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보니 흑매는 아직 봉오리만 있어 오히려 작년보다도 훨씬 못하다. 실망한 나머지 그때부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입장료 3천원 주고 얻은 게 고작 화장실이다.
화엄사를 뒤로 하고 마을로 내려오니 산수유꽃이 절정이다.
섬진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토지면에 있는 금환락지의 운조루를 지나  사성암 표지판을 보면서 섬진강 강을 건넜다.
여기서부터는 계속 매화를 감상하면서 갔다. 매년 매화 축제가 열리는 다압면 매화 마을이다. 수 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왔던 곳이다.
온 동네에 매화꽃이다. 그런데 향기와 품격에는 우리 토종에 미치지는 못한다.
이곳의 매화는 일본에서 개량된 매실나무다. 알맹이가 굵은 매실을 얻기위해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곳에만 분빈다.
나도 처음에는 이곳에서 출발해 차츰 질을 더해갔다. 매화마을을 통과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침에 먹은 짬뽕이 문젠지 토종 흑돼지 때문인지 배가 아프다. 길가에 주차하고 섬진강 기슭으로 뛰어 들어 갔다. 내 어릴 때 풍경이 그대로 들어왔다.
40년 세월의 간격을 무너뜨리고 나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낙동강변에서 자랐기에  시원하다 못해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섬진강가에 말뚝을 박았다.
진월 IC까지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선암사에 도착하니 해가 저문다. 오늘 따라 바람이 너무 세고 춥다.
선암사 앞 여관에는 절대로 숙박을 하지 마시길..... 시설이 엉망이다.
입구에 있는 황토 찜질방에만 사람들이 붐비는 이유를 나중에서야 알았다.

다음날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와 선암사로 올라가는 환상의 길을 걸었다.
승선교와 강선루는 언제 보아도 운치가 있다. 종정스님이 기거하는 곳의 담벼락에 백매와 홍매가 있다. 햇빛에 비친 백매는 절정이다. 그러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홍매는 봉오리만 맺었다.
사진작가 한 사람을 만났다. 수십 년 매화 사진에 전념했다고 한다.
선암사를 거의 스무번 이상 왔을 법한데도 몰랐던 것을 이분한테서 배웠다.
선암사 백매가 일본종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백매의 원조고 600년 이상 되었단다.
그 품격은 화엄사 흑매보다도 한 수 위란다.
내가 봐도 그랬다. 지금껏 본 매화나무 중 단연 최고다.



선암사 백매

 


금둔사 납월매

 


금둔사 홍매와 백매



백매를 뒤로 하고 도선국사가 삼법인(諸行無常印, 諸法無我印, 涅槃寂靜印)을 형상화한 우리나라 유일한 연못이라는 삼인당을 돌며 내려오는 길에 삼법인을 암송하면서 인생무상에 젖어본다.

선암사 일주문을 뒤로하고 우리나라에서 매화가 가장 일찍 핀다는 금둔사로 향했다. 금둔사는 낙안읍성에 있다. 금둔사 매화는 선암사 매화의 종자로 음력 섣달(12월) 즉 세한에 핀다고 해서 납전매(臘前梅,臘梅 臘月梅)라고 한다.
작년에 홍매는 절정이었고 낙안읍성 가는 가로수 매화도 활짝 피어 있었는데,
올해는 금둔사 매화는 거의 끝물이다. 그리고 작년에 절정이던 가로수 매화는 아직 피지도 않아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철불을 보러 보림사에 들렀더니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인적 없는 보림사에 봄 가운데 겨울을 맛보았다.



눈 내리는 보림사



 


탐매 기행의 마지막, 흐뭇함과 낙화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그 유명한 벌교의 참꼬막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참꼬막 안주로 매취순 한 잔 하면서
토종 매화같은 사랑을 그리워 하며...
내년의 탐매를 기약해 본다.

 

 

118

 

 

May it be An evening star

Shines down Upon you

May it be When darkness falls

Your heart Will be true

You walk a lonely road

Oh how far you are from home

그대 앞길을 환히 밝히는

빛나는 저녁별이 되게 하소서

암흑이 드리워질때

그대 가슴에 진실이 녹아들게 하소서

외롭고도 외로운 길을 걸어서

그대 고향을 떠나 얼마나 먼길을 왔던가

Morrinie utulie(darkness has come)

Believe and you will find your way

Morrinie utulie(darkness has come)

A promise lives within you now

암흑이 다가와도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길을 얻을 것이오

암흑이 드리워져도

그 약속은 그대 안에서 살아서 움직이리니

May it be The shadow's call

Will fly away

May it be You journey on

To light the day

When the night is overcome

You may rise To find the sun

어둠 속 망령들의 외침을

떨쳐버리게 하소서

낮같이 불밝히는 그런

여정이 되게 하소서

암흑이 압도할지라도

그대 태양을 찾아서

일어서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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