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서원기행 1 (도동서원)

by 황교장 2007. 4. 29.

도동서원/2007.4.22.

5대 서원을 가 보았는가를 질문하면
도산서원 소수서원 옥산서원까지는 많이들 가 보았다고 한다,
그 다음 병산서원까지 알면 상당히 여행을 많이 한 분이다.
마지막까지 괴롭히는 곳이 도동서원이다.
부산과 가까이 있는데도 일반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어떤 면에서는 무척 다행스럽다.
도동서원은 5년 전 진달래꽃 군락지를 보기 위해 비슬산 등산을 마치고
낙동강을 따라 드라이브 삼아 내려오는 중에 발견한 곳이다.
앞의 4대 서원은 적어도 5번 이상 가 봤는데
도동서원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의 감동을 한 번 더 느끼기 위해 제2회 비슬산 참꽃 마라톤에 출사표를 던졌다.
4월 22일 10시 참꽃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아침 6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종합 격투기,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선수인 크로아티아의 영웅
미르코 크로캅이 출전하는 UFC70 경기가
새벽 3시 반에 시작하여 6시 반경에 끝나는 것이 아닌가.
이 경기를 보기 위해 3시에 일어났다. 메인 이벤트인 크로캅의 경기가 마지막 경기다.
불꽃 하이킥으로 불리는 크로캅이
주짓수 파이터인 브라질의 가브리엘 곤자가의 하이킥에 실신, KO패를 당했다.
영원한 강자는 없고, 서로 상극인 선수만 있을 뿐이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된다는 음양의 이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서
허겁지겁 챙겨 나왔다. 달성군은 대구광역시에 편입이 되어있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창녕을 지나 현풍IC로 나와 우회전을 하면 달성정보고등학교가 나온다.
마라톤 출발지인 달성정보고등학교에 도착해 워밍업을 시작하는데
몸의 느낌이 좋지를 않다.
내 경험 상 마라톤은 내 몸이 시키는 대로 해라 가 철칙이다.
아쉽지만 과감히 포기를 하고 도동서원으로 향했다.
도동서원을 가는 길은 솔례마을의 십이정려각을 지나 낙동강을 따라서 간다.
길가엔 감자밭 양파 마늘 보리밭이 푸르름을 더해간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 마루에 닿는다.
고개가 다람쥐를 닮았다고 해서 다람재라고 이름 지었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엔 2층으로 된 정자가 세워져 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절경이다.
도동서원의 전체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람재에서 본 서원 풍경

풍수상으로 보면 대니산 산자락 밑에 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서원 앞 강 건너에 낮은 산이 있어 이 산을 안산으로 하고 방향을 잡았으면 좋겠는데
동쪽으로 약간 비켜져 있다.
의문을 품으면서 내려갔다.

도동서원의 입구에는 웅장한 은행나무가 위용을 나타낸다.
한강 정구 선생이 1607년 사액서원 기념으로 심은 나무이다. 이름이 김굉필나무이다.
올해로 꼭 400년이 되는 셈이다.


김굉필나무

도동(道東)서원은 이름부터가 심상치가 않다. 즉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의미다.
성리학이 중국에서 출발하여 조선에서 완성되었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다.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1454-1504)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선생은 조선조 동방 오현의 수좌에 앉아 있다.
문이 잠겨 있어 서원의 담장 밖으로 한 바퀴를 돈다.
지형의 높낮이에 따라 담장을 두른 것이 자연스럽다.
발을 높이지 않아도 안이 다 보이도록 설계를 했다.
담장 뒤편에서 서원을 내려다보는 것도 운치가 있다.
관리사로 쓰이는 전사청을 통해서 들어가니
강아지가 꼬리는 흔들면서 짖고 있다.
바로 중정당에 도착한다.
중정당은 일곱 단으로 쌓아올린 높은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당당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기단의 형태도 특이하면서 정성이 많이 갔다.
어떻게 돌을 천을 이어 작품을 만들 듯이 아름답게 다듬었을까?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5대 서원 중 유일하게 담장과 함께 중정당 전체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될 만하다고 느껴진다.
중정당 마루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니 다람재에서 본 의문이 풀렸다.
도동서원의 좌향은 동북방이다.
동제인 거인제(居仁齊)가 실제 방향은 서쪽이고,
서제인 거의제(居義齊)가 실제 방향은 동쪽에 있으면서
거인제를 시작으로 앞산까지 연결된 좌청룡으로 활용하고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낙동강물이
여기에서는 잔잔한 호수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나는 아직도 반풍수도 못 미친다는 걸 깨달았다.




도동서원 중정당 마루에서

마침 그때 서울에서 왔다는 탐방객이 들어왔다.
너무 기쁜 나머지 그분들에게 마루에 올라와 앉기를 강요하면서
내가 느낀 점을 설명을 하니 잘 못 알아 듣겠단다.
이분들에게 풍수(風水)는 장풍득수( 藏風得水)의 준말이고부터
시작하여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설명했다.
설명한 내용들은 대강 이러하다.
조선조 성리학의 사림파 계보를 보면
정몽주 - 길재 - 김숙자(길재의 제자) - 김종직(김숙자의 아들)으로 이어져
김종직의 제자 중 출중한 인물이
한훤당 김굉필, 일두 정여창(1450-1504) 무오사화의 주역인 김일손(1464-1498) 등이다.
스승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은 동방 오현에 들지 않는데
제자는 두 명씩이나 동방 오현에 포함되어 있다.
수좌에 한훤당 김굉필,
2좌에 일두 정여창 선생이다.
그럼 3좌는 누구인가 ?
바로 한훤당의 제자인 정암 조광조(1482-1519) 선생이다.
4좌가 옥산서원의 주인공인 회재 이언적(1491-1570) 선생이고
말석에 앉은 분이 퇴계 이황(1501-1570)선생이다.
퇴계 선생만 빼고 나머지 분은 당시의 권력에 의해 희생된 분이다.
1위와 2위만 다르고 나머지는 나이 순이다.
일두 선생이 김굉필 선생보다 4살이나 많은데도
수좌를 내준 데는 제자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좌를 차지하는 데는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겠지만
제자와 후손들의 파워도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정암 선생이 제자이고 또
사액서원(賜額書院, 서원명 현판과 노비 서적 등을 왕에게 하사받음)을 받아
성균관 문묘에 배향할 때 주도한 인물이
한훤당의 외증손인 한강 정구선생이다.
일설에 의하면 정구선생이 안동부사로 있을 때
춘양목 즉 금강송을 낙동강 물길을 따라 이곳에 옮겨 지은 것으로
나무의 재질이 최고로 지금까지 보수한 부분이 몇 개 안된다.
중정당 천장을 보게 하면서 새로 갈아 넣은 게 몇 개 안 되고
나머지는 400년 동안 그대로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도동서원 건축을 주도한 한강 정구(鄭逑,1543-1620) 선생은
실학의 거두인 성호 이익(李瀷,1681-1763) 선생이 평하기를
“영남 상. 하도 학문을 도산과 덕천 두 사문으로부터 흡수 소화하여 자기를 대성시킨 분이다. 남명적 체질 위에 퇴계적 함양을 가했다”고 했다.
할아버지 정응상은 한훤당의 사위이자 제자다.
21세에 퇴계, 24세에는 남명에게 글을 배우고
37세 때 처음으로 창녕 현감을 시작으로 안동부사 ,강원도 관찰사, 대사헌 등 요직을 거쳤다.
그 또한 송시열과 라이벌인 미수 허목(1595-1682)이라는 거목을 제자로 키웠다.
5대 서원과 동방 오현은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
한훤당의 도동서원, 회재의 옥산서원, 퇴계의 도산서원은 일치하는데
오현 중에서 빠진 곳이 일두의 남계서원과 정암의 죽수서원이다.
그 대신에 최초의 사액서원으로서 안향을 모신 소수서원과
퇴계 제자인 유성룡 선생을 모신 병산서원이 5대 서원에 포함된다.
처음 보는 분에게 너무 거창하게 리허설을 한 것 같아 죄송스러웠다.

중정당에 앉아 환주문을 바라보면 특이한 느낌이 든다.
환주문(喚主門)은 “주인을 부르는 문”이란 뜻이다.
갓을 쓴 선비들이 고개를 숙여 들어오도록 처음부터 문을 낮게 지었다.
배움의 문으로 들어서는 선비는 스스로 마음가짐을 낮추고
내 마음의 주인을 불러보게 한다는 의미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환주문 위에는 사모지붕의 절병통(사모정 육모정 팔모정 등의 지붕 정상에 올려놓은 항아리 모양의 장식 기와)이
위엄 있고 엄숙한 중정당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는 여기서도 음양의 이치를 보는 것 같다.


환주문

 

 


서원서까래


환주문 앞의 수월루가 없다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날 것인데
수월루 때문에 앞의 호쾌한 경치가 조금은 감하는 것 같다.
서원을 처음 창건할 때는 수월루가 없었는데
1885년에 서원의 격식을 차리느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서원 앞마당에는 꽃다지 ,봄맞이풀 ,애기똥풀 ,산괴불주머니...
그리고 토종 민들레인 흰민들레와 노랑민들레가 피어 있다.
서원뒷마당에는 목련이 절정이고 수백 년 된 배롱나무가 눈길을 끈다.
수월루와 환주문 사이에는 자주목련과 모란이 한창이다.


토종 민들레

 



모란

흐뭇함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람재에 올라서니
억지로 나에게 리허설을 당한 서울에서 온 탐방객이 내 차를 세운다.
명함 한 장 부탁을 한다.
조금은 부끄럽지만 기쁜 마음으로
교육사랑 사이트를 가르쳐 주면서
수, 목요일 쯤 도동서원 여행기를 올릴 예정이니
한 번 보시라고 하면서 다람재를 내려왔다.
낙동강 둑으로 차를 몰았다.
. 내 어릴 적 보았던 모습이 아직 그대로다.
둑길을 따라 마냥 달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가지만
서원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이 들고
강변의 오곡이 황금물결로 일렁이는 가을이 오면
꼭 내 좋은 사람과 같이 한번 달려 보리라...


낙동강 둑길

 

 

115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방사찰 제일의 전망 수종사  (0) 2007.05.07
다산 생가를 찾아서  (0) 2007.05.06
팔당댐과 모란반개형 한확선생 묘소  (0) 2007.05.01
신륵사와 나옹화상  (0) 2007.04.30
탐매기행  (0) 2007.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