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국보 308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과 천년수

by 황교장 2007. 8. 29.

 

 국보 308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과 천년수


오늘 답사는 국보 제308호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북미륵암 삼층석탑-북미륵암 동삼층석탑-천년수-만일암지 오층석탑-일지암 순으로 이정표를 잡고 떠났다. 매표소에 도착 시간이 5시 50분인데도 매표원이 있다. 7시 전에 오면 공짜인데 휴가철이라 악착같이 입장료를 받고 있다. 수통에 물을 가득 넣고 북미륵암(북암)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대명광전을 한 번 볼 욕심으로 들어가는데 절 마당을 쓸고 있는 스님이 못 들어오게 말린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북암으로 향했다. 

공기가 너무 상큼하다. 오르막이 시작된다. 등산길에 만나는 나무들의 종류가 다양하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물푸레나무, 박달나무 등 주로 상록활엽수가 많다. 몸에 땀이 서서히 나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중간 지점에 한번 쉬고 곧장 북암에 도착했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308호)

 

 25년 전 북암에 처음으로 왔을 때와는 너무 많이 바뀌어 있다. 그때는 다 쓰러져가는 요사채와 목조건물로 지어진 마애여래좌상 보호각인 용화전만 있었다. 새로 지은 보호각은 마애여래좌상을 아주 잘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요사채도 새롭게 잘 지어졌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은 보물48호에서 국보 제308호로 승격되었다. 월출산 구정봉 밑에 있는 월출산마애불좌상도 국보 제144호인데 내가 볼 때는 그보다 한 수 위다.

북미륵암마애불이 국보로 지정된 것은 2005년 9월이다. 마애불을 둘러싸고 있던 목조건물인 용화전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상단부와 하단부 전체가 드러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먼저 본존불을 살펴보면, 전체 높이는 485cm, 몸길이는 350cm다. 연화문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항마촉지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문화재청의 설명을 들어 보자.

“공양천인상(供養天人像)이 함께 표현된 독특한 도상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여래좌상으로 규모가 크고 조각수법도 양감이 있고 유려하여 한국의 마애불상 중에서는 그 예가 매우 드물고 뛰어난 상으로 평가된다.

본존불의 육계(肉?)가 뚜렷한 머리는 언뜻 머리칼이 없는 민머리(素髮)처럼 보이나 나발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목구비의 표현이 단정한 얼굴은 살이 찌고 둥글넓적하여 원만한 상이다. 그러나 눈 꼬리가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고 입을 굳게 다물어 근엄한 인상을 풍긴다. 귀는 큼직하니 길게 늘어져 어깨에 닿았으며, 유난히도 굵고 짧아진 목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삼도(三道)를 나타내었다.

손〔手印〕과 발은 항마촉지인에 오른발을 왼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를 하였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냘픈 듯 섬세하고 가지런히 묘사하여 사실성이 엿보임과 더불어 곱상한 느낌을 준다. 법의(法衣)는 양어깨를 다 덮은 통견의(通肩衣)로 그 주름은 거의 등간격으로 선각화(線刻化) 하여 사실성이 뒤떨어지고, 무릎 사이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마치 키를 드리운 것처럼 늘어지는 등 도식적(圖式的)인 면이 강하다. 이는 통일신라 말기로부터 고려시대로 이행해 가는 변화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머리광배를 잘 보세요)

 

 오른쪽 위 천인상

 

  오른쪽 아래 천인상

 

 왼쪽 위 천인상

 

 왼쪽 아래 천인상

대좌(臺座)는 11엽의 앙련(仰蓮, 연의 잎이나 꽃이 위로 솟은 듯이 표현된 모양)과 12엽의 복련(覆蓮, 연의 잎이나 꽃이 엎어놓은 듯이 표현된 모양)이 마주하여 잇대어진 연화대좌로 두툼하게 조각되어 살집 있는 불신(佛身)과 더불어 부피감이 두드러져 보이며, 다른 예에서와는 달리 자방이 높게 솟아올라 있어 특징적이다. 머리 광배(頭光)와 몸 광배(身光)는 세 가닥의 선을 두른 3중원(三重圓)으로 아무런 꾸밈도 없이 테두리 상단에만 불꽃무늬(火焰紋, 화염문)가 장식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에는 위·아래로 대칭되게 4구의 천인상을 배치하였다.

둔중한 체구로 다소 경직되어 보이는 본존불과 달리 경주 석굴암 내부 감실(龕室)의 보살상을 연상케도 하는 4구의 천인상은 날렵한 모습으로 부드러움과 함께 세련미가 엿보인다. 천인상들의 조각표현은 이 당시의 거의 유일한 예이자 우수한 조형미를 반영하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설명이 번잡하고 화려하게 했는데 몇 번 계속 읽어 보면 이해가 된다. 이 4구의 천인상이 국보로 승격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된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뒤에는 보물 제301호인 북미륵암 삼층석탑이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에는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얇고 넓은 지붕돌은 밑면 단의 수가 층에 따라 다른데,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탑의 머리장식으로는 노반(露盤, 머리장식받침)과 앙화(仰花)가 남아 있다. 한반도의 남쪽 끝인 해남에 이처럼 구성이 가지런한 탑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양식에서 일부 간략화된 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으며,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문화재청 설명참조)

 

 북미륵암 삼층석탑


대둔사 응진전앞 삼층석탑과 형태와 느낌이 비슷하다. 아마 창건 연대가 비슷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런데 탑 주변이 너무 지저분하다. 북미륵암에 상주하는 스님들은 게으른 스님들만 있는지, 채마밭도 하나 가꾸어놓은 것도 없고, 곳곳에 쓰레기 더미다. 절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가꾸는 것도 수행일진데...

삼층석탑에서 앞산을 바라보면 멋진 또 다른 삼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멀리서 봐도 정말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 올라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가파르고 미끄럽다. 일단 올라가면 경치가 정말 좋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대둔사는 환상적이다. 주변의 산세들이 멋이 있고 빼어나다.

 

동삼층석탑 앞에서 본 원경

 

 동삼층석탑에서 본 대둔사

 

 이곳에 있는 탑의 공식명칭은 아쉽게 아직도 대둔사가 아닌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동삼층석탑’이다.

 

 북미륵암 동삼층석탑

 

북미륵암 동삼층석탑은 신라 전형양식의 3층 석탑이다. 자연 암반을 뒷면에서 보면 평평하지만 전면에서 보면 높이 92cm의 높은 층단을 이루고 있어 자연 암반 자체가 지대석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암반과 하층기단 사이에 벌어지는 빈틈으로 빗물이 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단부 밑에 깊이 15cm가량 되는 두 줄의 홈을 파놓았다. 또 기단부 옆에도 빗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주 엷게 홈을 파놓은 지혜를 발휘했다. 이 석탑은 탑신의 체감율이 알맞아 매우 우아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다.

 

엷은 홈

 

 15cm 홈

 

원래는 3층 옥개석이 파손되어(현재 이 탑 옆에 있음) 있었던 것인데 4∼5년 전 새로 3층 옥개석과 상륜부를 제작하여 복원하였다. 비록 석탑의 일부 부재를 새로 만들어 보충하였으나 전체적으로 보아 균형미를 잃지 않고 있으며 또한 매우 정제된 우수한 탑이다.(문화재청 설명 참조) 파손된 부분만 아니라면 비슷한 세 탑 중에서 기단을 위시하여 가장 뛰어난 탑이 동삼층석탑이라고 생각된다

동삼층석탑 옆에는 산신각이 새롭게 조성되어 있다. 산신각의 위치가 정말 절묘한 데 있다. 산신이 살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풍수가 절묘하다. 자연석의 큰 암반 지대 위에 제법 넓은 터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터를 놓치지 않고 산신각을 지은 선인들의 지혜가 무척 돋보이는 부분이다. 풍수에서 일반적으로 바위가 많은 곳에 흙으로 된 곳이 명당이고, 흙이 많은 곳에 바위가 있는 곳이 명당이라고 한다. 따라서 산신각은 풍수의 기본 이론에 교과서적인 명당이다.

다시 북암으로 내려와 천년수 방향으로 이정표를 잡았다. 천년수 방향의 중간지점에는 너덜겅이라고 불리는 암괴류가 있다. 암괴류(岩塊流, block stream)란 고산지대에 나타나는 기계적 풍화작용의 결과물로 산사면 방향으로 흘러간 돌덩어리들이 무수히 널려 퍼진 지형을 말한다. 이러한 지형들은 과거 우리나라의 옛 기후조건을 살피는데 아주 좋은 증거가 된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이 온난한 기후조건 하에는 이런 암괴류가 형성되기 어렵다. 따라서 한반도에 주빙하기와 후빙기로 접어들면서 많은 비를 내리는 기후환경이 변해 현재와 같은 암괴류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괴류로는 밀양 삼량진의 만어사, 부산 금정산, 광주 무등산, 달성군 비슬산 등에서 불 수 있다.(박종관 교수의 LET'S GO! 지리여행, 참조)

 

 천년수

 

암괴류를 지나 10여 분을 더 가면 천년수가 자태를 드러낸다. 우리나라에는 좋은 나무들이 많지만 여기에 있는 천년수만큼 당당하고 균형 잡힌 나무는 본 적이 없다. 나무의 종류는 느티나무(괴목)다. 수령은 천이백 년에서 천오백 년 사이라고 전문가들이 주장한다. 나무의 둘레는 9,6m다. 나무의 높이가 22m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옛날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어느 날 천상의 계율을 어겨 하늘에서 쫓겨나게 되는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다.  이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것은 하루 만에 바위에다 불상을 조각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상으로 쫓겨난 천동과 천녀는 하루 만에 불상을 조각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해가 지지 못하도록 천년수 나무에다 끈으로 해를 매달아 놓고, 천녀는 북쪽바위인 북암에 좌상의 불상을, 천동은 남쪽바위인 남암에 입상의 불상을 조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천녀는 ‘앉은 모습의 미륵불(좌상)’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서있는 모습의 미륵불(입상)’을 조각하는 천동보다 먼저 불상을 조각하였다. 한참을 기다려도 완성하지 못하는 천동을 기다리다 못한 천녀는 빨리 올라가고 싶은 욕심으로 그만 해를 매달아 놓은 끈을 잘라버리고 혼자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이로 인해 천동은 영원히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이 미륵은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수목이다.(천년수 유래와 전설 안내판 참조)

이러한 전설에서는 일반적으로 여성이 배신을 때리는 것으로 묘사된다.


77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녹우당과 고산 윤선도  (0) 2007.09.03
일지암과 초의선사  (0) 2007.08.30
두륜산 대둔사와 서산대사  (0) 2007.08.26
청해진과 완도 수목원  (0) 2007.08.23
푸른 섬 청산도  (0) 2007.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