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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포항 호미곶 마라톤 완주기

by 황교장 2007. 9. 26.
 

포항 호미곶 마라톤 완주기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내 삶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은 마라톤이다. 마라톤 입문 이후 1년 반만에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한 대회가 포항 호미곶 마라톤 대회이다.

호미곶은 지금은 행정 구역 상 포항시 대보면에 속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장기반도 전체가 장기현이었다. 공식 명칭으로는 장기곶이라 불린다. 우리말로 곶이란  바다 쪽으로 좁고 길게 뻗어 있는 육지의 한 부분을 이르는 말이다.

 

장기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산선생이 처음으로 유배된 곳이라는 것이다. 선생은 이곳에 8개월간 유배되어 있다가 황사영백서사건으로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이곳에 있으면서 여러 저서와 논문을 남겨 일각에서는 18년 다산학의 시작이 이곳 장기에서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남사고 선생의 ‘격암유록’에 이곳을 풍수상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호미등(虎尾登)이라 했다. 이러한 연유로 지금은 호미곶으로 불린다. 또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선생은 장기곶과 죽변곶 두 곳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동해로 튀어 나왔는지를 재려고 죽변과 장기 사이를 일곱 차례나 오갔다고 한다. 그 결과 대동여지도에는 이곳 장기곶이 더 튀어나오게 그려져 있다.

 

장기곶에는 장기곶등대와 등대박물관이 있다. 장기곶등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1903년 12월에 만들어졌다. 인천 앞바다에 있는 소월미도와 팔미도에 세워진 등대가 첫 등대라고 한다. 그러나 등대규모로는 장기곶등대가 국내 최대라고 한다. 또한 등대박물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등대에 관한 유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특수박물관이다.

새해 첫날이면 사람들은 새해 첫 일출을 보려고 동해로 해맞이를 가는데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으로 포항사람은 호미곶이라 하고, 울산사람은 간절곶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랍정리를 하다가 2003년 호미곶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완주한 완주기가 있어 옮기고자 한다.


지난 합천대회에 첫 하프 완주기를 쓰려고 했는데 워낙 문재(文才)가 없는지라 풀코스 완주기를 쓰자고 다짐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스피드와 순발력은 뛰어난 반면 심폐지구력은 그렇지 못했다. 초, 중, 고 때까지 100m는 학년에서 가장 잘 뛰었으나 1000m 오래 달리기는 중하위권이었다. 이런 내가 마라톤을 완주하여 완주기를 쓰는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가 않는다. 내가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순전히 후배인 이강률 선생 덕분이다.

작년 6월 철마학생교육원에 왔을 때 철마임도를 걷다가 ‘형님 내하고 한번 뛰어 봅시다.’라고 제안했다. 예전 같으면 ‘니 혼자 뛰라’고 했을 텐데 담배를 끊고 체중이 약 4-5kg 이상 불어서 살빼기에는 마라톤이 제일 좋다는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듣고 또한 신문에서도 본 터라 마음이 약간 동했다.

천천히 자기와 똑같이 뛰어보잔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뛰기 시작한 것이 어느 새 무려 5km 이상을 뛰었다. 이 거리는 그때까지 내 인생에서 제일 길게 뛰어 본 거리였다(등산은 하루에 15시간 이상 해 보았지만 걷는 것과 뛰는 것은 다르다).

 

그 이후 시간 나는 대로 뛰었다. 71kg 나가던 몸무게가 매달 1kg씩 빠지기 시작하여 64kg에서 멈춘 상태에서 그 전날 술을 많이 먹으면 65kg, 안 먹으면 64kg을 반복했다.

올 3월 2일 경주 마라톤 대회에 첫 공식시합 10km에 도전했다. 마라톤 입문 이후 첫 공식경기 출전이라 밤새 잠을 설쳤다. 52분 09초, 만족스런 기록이다. 거의 뜬 눈으로 설쳤는데도 뛰고 나니 에너지가 충만했다. 그리고 4월 5일 합천벚꽃 하프마라톤에 도전했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길을 달리는 것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또한 각자의 멋진 복장을 하고 폼을 잡아가면서 달리는 늘씬한 아가씨, 아줌마들을 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체형과 달리는 폼과 관상을 비교하면서 열심히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달렸다. 반환점 가까이 가는데 뒷모습이 눈에 익었다. 강률 동생이었다. 같이 이야기하면서 뛰는데 ‘형님 쌩쌩하네요. 먼저 가이소’라고 했다. 먼저 가기가 미안하여 좀 머뭇거리니까 다시 한 번 먼저 가란다. 강률 동생을 뒤에 두고 뛰는 즐거움,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즐거움이랄까!

여담으로 이강률선생이 테니스를 시작할 때 처음에는 forty-love부터 시작해서, thirty-love, fifteen-love, 두 게임 따기, 급기야는 동등한 게임에서 내가 졌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이 2년도 채 안되었을 것이다. 그때의 강률 동생의 기쁨을 내가 다시 느끼는 기분이었다. 1시간 53분. 젊디젊은 시절(대학 2년)에 3000m가 겁이 나서 포기한 내가 나이 오십 가까이에 하프를 뛰었다는 성취감, 지금 풀코스 완주기를 쓰면서도 그때의 기쁨이 가슴을 고동치고 있다.

 

그후 삼천포-창선 하프 마라톤에서는 비를 맞아가면서 뛰는 즐거움을 알았고, 03년 6월 8일의  제주국제마라톤에서는 그 전날 밤 1시까지 술 마시고 뛰었는데, 날씨도 더운데다가 정말 괴로웠다. 이때 배운 교훈은 절대 그 전날 술 먹고는 뛰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제주시 마라톤 보다는 서귀포시 마라톤에 참가하기를 권함, 제주시 마라톤은 코스가 공항 앞이기 때문에 비행기 소리가 너무 요란하고 시끄러웠음.

 

10월 26일 경주동아마라톤 하프를 거쳐서 드디어 호미곶 풀코스 도전, 우리나라 마라톤 코스 중에서 제일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또한 추위 많이 타는 내 체질로서는 12월의 바닷바람이 너무 차다는 것을 모르고 신청했다.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한 것이었다.

그 전날까지 따뜻하던 날씨가 비오고 난 뒤 추워지면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여관방 5층은 바람소리가 태풍 매미 지나가는 것 같았다. 잠이 안 와 뒤척이면서 ‘뭐 내가 이 추위에 돈 들여 이 짓까지 해야 하나, 내일 포기다. 포기할 줄 아는 것도 훌륭한 삶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드디어 잠이 왔다.

 

12월 5일 아침 7시, 창문으로 밖을 보니 여전히 강풍이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산죽이 갈대 흔들리듯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도 날은 맑아서 가시거리가 굉장하다. 내 취미생활 중 하나가 풍수인데, 풍수를 잘 보려면 날씨 맑은 날이 최고다. 교육원에 근무할 때 얼마 전 정년퇴직한 모 교장선생님은 자기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차를 한 잔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하시면서 “황연구사는 어떤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가” 하고 물었다. 주저 없이 나온 대답은 ‘날씨 맑은 날 지리산 능선 타면서 산천경계 구경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가시거리가 너무 좋은 날이다.

 

도전이다!

아침으로 찰떡 초코파이 3개와 영양갱 하나를 먹고 하나는 호주머니에 넣었다. 숙소를 나서니 얼음이 꽝꽝 얼었다. 바람 또한 너무 차가웠다. 호미곶 광장에 도착하니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에서 참여한 달림이들이 분위기를 띄우는 주최 측의 방송과 음악소리에 기분이 한껏 고조되었다. 준비운동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호미곶 광장을 3바퀴 뛰었다. 땀이 나면서 장운동이 되었다. 화장실에 가니까 남자화장실은 줄을 서 만원이라, 선글라스 쓰고 용감하게 여자화장실에서 볼일을 봤다. 선글라스의 효력을 한 번 더 느꼈다. 선글라스는 겨울바람에도 필수다. 눈물을 방지할 수 있다.

 

추위에 대비해 상의는 안에 짧은 쿨믹스를 입고, 긴팔 쿨믹스를 밖에 입었다. 하의는 마라톤 팬티를 입고, 그 위에 타이즈를 입었다. 마찰 부위와 배와 무릎에 바셀린(약국에 가면 1500원 정도에 살 수 있음)을  듬뿍 발랐다. 덕분에 겨울바람에도 체온을 많이 뺐기지 않았다.

 

드디어 출발, 거의 마지막으로 출발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뒤에서 출발하여 한 명씩 추월하는 것 또한 즐거움이다. 처음 5.5km까지는 해안가를 달린다. 호미곶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멀리 칠보산을 시작으로 내연산, 향로봉, 우척봉, 삿갓봉, 매봉, 비학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인다. 내가 몇 번씩 탔던 산들, 정말 장관이다. 오늘처럼 칠보산이 이렇게 가까이 잘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정말 가슴 뛰는 날이다. 바람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km지점부터 해발 90m 언덕길을 1.2km를 달려야 한다. 철마 언덕길에서 연습한 덕택에 오르막은 자신이 있다. 한 20여 명을 추월했다.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욕심이 생겼다. 조금만 더 속도를 내어 4시간 안에 완주하는 서브 4가 되어 볼까하는 욕심이다. 그러나 이때 나를 제어하는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부산교사마라톤 ‘가야지’ 회원인 이삼해 선생의 춘천 마라톤완주기에서 한 수 배운 것, ‘마라톤은 달리는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니라 빨리 달리고 싶은 유혹을 이겨 내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정말로 멋진 교훈이다.

 

내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뛰었다. 다른 달림이들은 조금이라도 짧게 달려 보려고 도로를 지그재그로 달리는데 나는 계속해서 해안 쪽으로 달렸다. 멋진 해안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다. 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은 앞으로 달려 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저 산들을 걸었던 기억들을 되새김하니 즐거움은 더했다. 앞에 몸매 잘 빠진 아가씨가 달리고 있었다. 저렇게 잘 빠진 몸에 얼굴까지 예쁘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하면서 빨리 달려 추월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살짝 얼굴을 바라보니, 60은 훨씬 넘었을 법한 늙은 형님이었다. 마라톤은 정말 몸매를 잘 가꾸는 운동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겨울마라톤의 아쉬움은 옷을 많이 입다보니 남녀가 구별이 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멋진 몸매를 보는 즐거움이 없는 것이 ...

 

18km 쯤에서 반환점을 돈 첫 주자가 나타났다. 정말 몸매는 잘 빠졌다. 선두그룹에 선 달림이들을 관찰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몸에 군살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얼굴에 여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군살이 없는 것은 배울 만하였다. 그러나 여유가 없는 관상은 저렇게까지 심하게 마라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었다.

 

계속해서 주자들을 보면서 뛰었다. 20km 가까이에서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이삼해 선생이다. ‘삼해 형님 파이팅’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보다 5년이나 연상이고, 체격도 왜소한데도 나는 꿈도 못 꾸는 기록을 갖고 있다. 진심으로 존경하는 형님이다. 한 가지 삼해 형님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선두그룹 달림이들이 보여준 여유 없는 관상은 되지 말라는 것이다.

반환점을 돌아 초코파이 대신에 갖고 간 영양갱(장갑 속에 넣고 뛰니 편리하였음)을 먹고 다시 뛰었다. 앞에 4시간 20분 페이스메이커들이 달리고 있다. ‘아! 이들과 같이 가면 되겠구나’ 하면서 합류했다. 구령도 붙여주고 속도도 적당해서 ‘됐구나’ 싶었는데 오르막이 나타나자 페이스를 늦추었다.  자기 페이스가 중요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다. 이들을 뒤로 두고 내 페이스대로 먼저 달려 나갔다.

 

25km에서 왼쪽무릎이 안 좋아서 무릎보호대를 했는데, 정작 왼쪽무릎은 괜찮은데, 1년 전에 무식하게 억지로 당겨서 결가부좌하다가 십자 인대가 늘어난 오른쪽무릎의 그 부위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무릎보호대를 오른쪽에 차고 뛰었다. 서서히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철마 자갈길에서  연습할 때 비포장자갈길 산길은 반드시 쿠션이 좋은 조깅화를 신어야 하는데 잘 모르고 쿠션이 없는 대회용 마라톤화를 신고 하다가 관절에 이상이 생겼었다. 무릎이 안 좋은 사람은 반드시 무릎보호대를 차야 마라톤을 더 오래 즐길 수 있다 무릎보호대는 의료기상에 가면 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다.

 

계속 바다경치와 산능선을 즐기면서 달렸다. 34km 지점, 이때부터 마의 고개다. 많은 달림이들이 걷고 있다. 나는 똑 같은 페이스로 한 명 한 명씩 떨쳐 내면서 희열을 느꼈다. 마의 30km니 35km니 하는 용어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평소의 연습이다. '연습은 실전같이, 실전은 연습같이' 라는 말을 실감했다. 철마임도를 4시간 20분짜리를 두 번 경험하고, 일주일에 3일은 11km, 한 번은 20km을 6주간 연습했다. 연습 때와 똑 같이 뛰니까 결승점까지 똑같은 페이스로 달리게 된 것이다.

 

 결승점 통과하는 모습

 

4시간 13분 14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기록이다. 주최 측에서 걸어주는 42,195km가 적힌 완주 메달을 목에 거니 드디어 나도 풀코스를 완주한 사나이가 된 것이다. 이곳 관계자들이 제공하는 따끈한 국물이 있는 점심식사와 막걸리에 과메기 안주의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내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정말 내 생에 또 다른 뭔가를 하나 성취한 기분이다. 삶의 중요한 시기에 자주 아팠던 내 생에서 지금처럼 건강한 적이 없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던 담배를 끊고, 체중이 불어서 시작하게 된 마라톤은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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