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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구례 화엄사와 곡성 섬진강 마라톤-내 몸이 시키는 대로 달려라-

by 황교장 2007. 9. 30.
 

구례 화엄사와 곡성 섬진강 마라톤

-내 몸이 시키는 대로 달려라-


서랍정리를 하다가 부산교사마라톤 카페에 올렸던 마라톤 완주기를 발견하였다. 잊고 있었던 마라톤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 조금 수정하여 올린다.


2004년 10월 3일 전남 곡성의 섬진강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2일 토요일 출발했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으로 날씨가 너무 맑았다. 이렇게 맑은 날은 산천경계를 잘 볼 수 있어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을날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오늘 같이 맑은 날은 지리산 노고단을 넘어 화엄사로 가는 것이 최고다. 이정표를 부산-남해고속도로-진주-대전통영고속도로-생초 IC를 나와 화개를 지나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코스로 잡았다. 생초에서부터는 정말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칠선계곡에서 바라다보는 지리산의 하봉, 중봉, 천왕봉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실상사를 지나면 달궁계곡으로 이어진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가을계곡을 따라 마지막까지 오르면 그곳이 바로 성삼재다. 날이 맑아서 성삼재에서 노고단과 반야봉을 바라보니 바로 옆에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노고단을 뒤로 하고 천은사를 거쳐 화엄사에 도착했다.


화엄사는 신라 경덕왕 때 연기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화엄사의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다. 원래 각황전터에는 3층의 장륙전이 있었고, 사방의 벽에 화엄경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석경(石經)은 경전의 원문을 돌판에 새긴 것인데, 화엄석경(華嚴石經)은 화엄경을 엷은 청색 돌에 새긴 것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만여 점이 넘는 조각들만 절에서 보관하고 있다.

 

조선 숙종 28년(1702)에 장륙전 건물을 다시 지었다. 다시 지은 건물이 각황전이다. 각황전(覺皇展)이란 이름은 숙종이 지어 현판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 화엄사는 우리나라 절집 중 가장 많은 국보와 보물을 소유하고 있는 절집 중 하나다. 국보만 해도 절집의 규모면에서 가장 큰 화엄사각황전(국보 제67호)과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화엄사각황전앞석등(국보 제12호), 이형석탑(異形石塔) 형식에 있어 불국사 다보탑과 쌍벽이라는 화엄사사사자석탑(국보 제35호),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인 영산회상을 그린 화엄사영산회괘불탱(국보 제301호)이 있다.

또한 보물로는 화엄사동오층석탑(보물 제132호), 화엄사서오층석탑(보물 제133호), 화엄사대웅전(보물 제299호), 화엄사원통전앞사자탑(보물 제300호),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화엄사서오층석탑사리장엄구(보물 제1348호), 화엄사대웅전삼신불탱(보물 제1363호)이 있다.

따라서 국보 4점과 보물 7점을 보유하고 있는 대단한 절집이다.

 

그리고 천연기념물인 화엄사올벚나무(천연기념물 제38호)가 있다. 올벚나무는 황해도, 지리산, 보길도 및 제주도에서 자란다.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다른 벚나무보다 일찍 꽃이 피기 때문에 올벚나무라고 부른다. 화엄사올벚나무의 수령은 약 300년으로 추정된다. 병자호란(1636) 이후 인조(재위 1623∼1649)가 전쟁에 대비하고자 활을 만드는데 쓰이는 벚나무를 많이 심게 했다고 한다.

 

화엄사 각황전과 몇 송이 핀 흑매(2006년 3월)

 

또한 각황전 옆에 있는 흑매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붉은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로 600년 이상 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매화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십수 년 전 겨울,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을 읽고 문학기행을 겸해 화엄사에 왔는데, 그때 눈 덮인 화엄사의 정경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은 눈 내린 후 날이 맑아 각황전 뒤 언덕에 높이 있는 사사자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노고단의 설경은 환상적이었다.

 

오늘도 그때와 같이 날이 맑아 노고단 정상이 다 보인다. 사사자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노고단의 경치는 장엄하다. 화엄사 경내를 두루 둘러보고 뒤쪽 암자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녹차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화엄사를 내려와 숙소로 향했다. 이 근처에 오면 화엄사 입구에 있는 여관들이 조용해서 숙소로 정한다. 이곳에 숙소로 정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뜰앞에 잣나무’라는 카페인데 이 집 여주인이 노래하는 생음악은 지금껏 들어본 생음악 중 가장 잘 부르는 노래였다. 가수 은희와 양희은의 목소리 중 장점만을 합친 심금을 울리는 청아한 목소리다. 이분의 노래를 듣고 싶어 작년에도 왔는데 지리산 온천에서 벌이는 산수유 축제에 가고 없어 아쉬웠다. 저녁을 먹고 난 후 노래를 들으러 갔더니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어 정말 아쉬웠다. 내가 들은 생음악으로는 단연 최고였는데...


다음날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요가와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출발했다. 구례를 지나 섬진강을 따라가는 길은 너무나도 절경이었다. 물안개가 이렇게 많이 피어나는 것은 처음 보았다. 김종환의 노랫말이 저절로 떠올라 콧노래로 흥얼거리고 있다. 곡성의 행사장에 도착하니 강변에 만국기가 펄렁이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 시골 초등학교의 가을운동회 때의 느낌이었다. 너무나 정겹고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원주 풀 이후 4주만이다. 곡성풀은 경주동아풀을 대비한 LSD(long slow distance)라고 생각하고 시계도 차지 않고 그야말로 즐달하리라 마음 먹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경치는 환상적이다. 그동안 잊혀졌던 내 어린 시절의 풍경이 자꾸만 가슴에 밀려 왔다. 누런 황금들판, 끝없이 이어지는 길가의 코스모스, 마을마다 응원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분들의 순수한 표정을 바라보니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오르막은 천천히, 내리막은 조금 빨리, 평지는 기분 좋게, 호흡은 자연스럽게 내 몸이 시키는 대로 달렸다. 어느 새 원주에서 주저앉았던 39km 지점이다. 전주에서 온 달림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달렸다. 최고 기록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4시간 전후인데 단 한 번도 기록에 연연하면서 뛰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부끄러웠다. 그전에 시계를 차지 않고 즐겁게 달리기를 하는 것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딜 가나 자랑이 병폐다. 조금만 참으면 남들이 칭찬을 해 줄 텐데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먼저 자랑을 한다.

40km 지점이다. 남은 거리는 2km,  이제사 조금 힘이 들었다. 속도를 조금 줄이니 다시 편안해졌다.

 

 즐달하고 있는 모습(골인점 오백미터 전)

 

드디어 골인점 통과, 풀코스 완주 중에서 가장 즐달했다.

즐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욕심 없이 몸이 시키는 대로 달렸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시계가 시키는 대로 달리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느끼면서 달렸기 때문이다.

“내 몸이 시키는 대로 달려라.”

그러면 풀코스를 즐기면서 완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 몸이 시키는 대로 살아라. 그러면 인생도 '즐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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