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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2-북부도와 서부도

by 황교장 2007. 11. 8.
 

지리산 피아골 연곡사 2-북부도와 서부도


동부도에서 약 50여 M를 산길로 오르면 국보 54호인 연곡사북부도가 있다. 이 길 양 옆은 야생 녹차밭이다. 지금 한창 하얀 녹차꽃을 피워 아름다운 길을 더욱 운치있게 만들고 있다. 북부도가 있는 곳은 명당이다. 사신사가 뚜렷하다. 뒷산인 북현무에서 내려오는 힘이 이곳에서 맺혀 혈의 기운이 느껴진다.

 

야생녹차밭

 

녹차꽃

 

북부도는 네모난 바닥돌 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팔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북부도는 크기와 형태는 거의 동부도와 비슷하고, 단지 석질의 재질과 세부적인 꾸밈에서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북부도

 

기단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 아래받침돌은 2단으로, 아래에는 구름무늬를, 위에는 두 겹으로 된 연꽃무늬를 각각 새겨두었다. 윗받침돌 역시 두 단으로 나누어 연꽃과 돌난간을 아래위로 꾸몄다.

 

 두 겹의 연꽃무늬

 

특히 윗단에는 둥근 테를 두르고, 그 속에 가릉빈가(伽陵頻迦)를 돋을새김해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에 사천왕상(四天王像) 등을 꾸며놓았다. 지붕돌에는 서까래와 기와의 골을 새겼는데, 동부도와 마찬가지로 기와 끝에 막새기와의 모양을 새겨두었다.

머리장식으로는 날개를 활짝 편 네 마리의 봉황과 연꽃무늬를 새긴 돌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아쉬운 것은 동부도와 마찬가지로 봉황새의 목이 파괴되어 있다. 아마 이 부분이 파괴되지 않고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면 더욱 더 아름다웠을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가릉빈가

 

목이 잘린 봉황새(가릉빈가)?

 

여기서 가릉빈가(伽陵頻迦)에 대한 설명을 더하고자 한다. 가릉빈가는 불교 경전에 나오는 상상의 새다. 이 새는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소리 또한 묘하여 묘음조. 호음조, 미음조(美音鳥)라고도 한다. 극락에 깃든다 하여 극락조라 부르기도 한다. 머리와 팔은 사람의 형상을 하였고 몸체에는 비늘이 있다. 일설에는 인도의 히말라야 산 기슭에 산다고 하는 불불조라는 공작의 일종이라고도 전한다. 가릉빈가는 쌍봉사 철감선사탑에도 새겨져 있고, 이곳 연곡사의 북부도, 동부도, 서부도의 안상무늬 안에 가릉빈가문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목이 잘린 새가 봉황인지 가릉빈가인지에는 논란이 있다. 내가 보기엔 안상안에 있는 가름빈가와는 그 조각 기법에서 차이가 나 봉황에다 손을 들어주고 싶다.

북부도는 누구의 부도인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어느 스님을 기리기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당시로서는 대단한 큰 스님이었을 것으로 추증되고 있다.

북부도를 답사하고 나면 동부도 쪽으로 다시 내려가지 말고 반대 방향에 걷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일어나는 호젓한 길이 나있다. 이 길을 따라 약 100m쯤 내려가면 흰 속살을 드러내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운 여인처럼 서부도가 나타난다.

 

서부도 전경

 

서부도

 

서부도(보물164호)는 연곡사 서쪽에 있어서 서부도라 한다. 서부도의 주인공은 소요대사다. 소요대사는 서산대사의 제자로서 임진왜란 후 연곡사를 중창한 스님이다. 서부도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3단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괴임을 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의 몸돌은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팔부신중상과 지붕돌의 꽃장식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지막하게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서부도는 동부도나 북부도에 비해 한 수 떨어지지만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는 잘이루고 있다. 조형적으로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균형미를 볼 수 있다.


서부도를 보고 내려오면 고광순 순절비 아래쪽에 귀부와 이수만 있는 보물152호인 현각선사 부도비가 있다. 이 또한 비석의 비문은 사라지고 받침과 지붕만 있다.

 

현각선사비

 

남아 있는 옛 탁본에 따르면 이 부도비는 고려 초 경종 4년(979)에 세워졌다고 한다. 귀부의 조형미는 매우 거대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거북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뻗혀 납작 엎드린 형상으로 동부도비와는 반대로 왼쪽 앞발을 살짝 들어 앞으로 나서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 현각왕사비명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전액이 있다. 용의 형상은 다소 해학적인 면이 강하게 보인다.

동부도비와 현각선사비는 많은 유사점을 볼 수 있다. 그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증된다.


여기까지 보고나면 이제 한 숨을 돌려도 된다. 현각선사비 앞에 조용히 앉아 연곡사 전체를 바라다보면 고요하고 아름다운 가을 산사의 정취가 물씬 배어난다. 고광순 의병장의 순절비를 보면서 피아골의 연곡사가 걸어온 길을 떠올려보니, 몸과 마음이 다 쓸쓸한 가을 남자다. 우리 민족의 역사와 그 속에 살다간 사람들의사랑과 애환(哀歡)이 무엇인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가을날의 그늘은 금방 서늘해진다. 다시 일어나 조금만 더 내려오면  채마밭에 홀로 떨어져 있는 삼층석탑을 만난다. 보물 151호인 연곡사삼층석탑이다.

 

 연곡사삼층석탑

 

높이가 약 6m인 탑으로 크지도 작지도 않는 중용의 탑이다. 탑신부는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다. 그러나 기단은 일반적인 이중기단이 아니라 삼중기단이다. 여러 개의 석재가 삼중으로 기단부를 이루고 있다. 이 점이 이 탑의 독특한 부분이다. 각 기단에는 우주(隅柱)와 탱주(撑柱)가 있다. 우주는 기단의 모퉁이에 세운 기둥을 말하고, 탱주는 기단 가운데 마다 넘어지지 않도록 면석사이에 끼어 넣어 버티는 기둥을 말한다. 이 탑의 삼층 지붕돌이 떨어져 나가 땅에 뒹굴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하면서 상층 기단에서 높이 23.5cm의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되었다. 금동여래입상은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탑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기 다른 돌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하층 기단에서 탑신부에 이르기까지의 체감률이 온화하여 아름답다. 각 부재의 구성양식으로 보아 건립 연대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추정되고 있다.


이것으로 연곡사에서 중요한 볼거리는 다본 셈이다.

연곡사의 역사가 피의 역사라서 그런지 마음이 무겁다. 연곡사를 떠나면서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 산사' 중에서 선묵혜자스님의 연곡사에 대한 시 한 편을 낭송하고 피아골 연곡사를 마치고자 한다.


“현대사의 질곡 간직한

사연 많은 피아골 들머리

연못에는 한줄기 바람이 일고

제비 한 마리

가릉빈가 되어 날아간 곳에

법등(法燈) 밝혔네.


전쟁의 쓰린 상처 온몸으로 안고

찬란한 불교문화

꽃피우기 위해

몸 추스르고 있는 연곡사


좁은 산비탈

억척스러운 일군 다랑이 논

이름마저 떠 있는 허공배미

엉덩이로 깔아뭉갠 궁둥이배미

우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우산배미

고달픈 민초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건강함이 절절히 배어 있는 곳


신록과 아지랑이

가뭄 모르는 계곡 물소리

타들어 가는 붉은 단풍

흰 눈에 덮인 고즈넉한 분위기

우리나라 조각예술의 박물관


왕가의 신주목 산지 지정

수행자 하나, 둘 발길 돌리고

삼층석탑만이

숱한 역사의 변화 속에서

제 빛을 잃지 않고 서 있다.


산이 붉고

물에 붉게 비치며

사람도 붉게 비추는

뜻 모르고 죽어가는 영가들의

핏빛이 피아골

백리 계곡을 물들인다.


간섭받지 않는 고요 속

고풍스런 멋과

한적한 분위기의 아담한 도량

초록 녹차빛이 운해 감싸 안누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조각의 절정 동부도

극락세계로 날으는 돌거북 동부도비

구도 안전되고 구름무늬 섬세한 북부도

검소한 맛 느껴지는 서부도

호법용 천상을 나르는 현각선사 탑비

지리산 미녀들이 부끄러운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서있다.


현대사 무대 중의 한 곳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의 환이

연곡사 우관스님에게 가고


동백나무숲 아래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

아픔의 역사 토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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