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구산선문 동리산 태안사 (2)

by 황교장 2007. 12. 11.

 

구산선문 동리산 태안사-2  

 

 태안사 전경

 

  일주문에서 보면 아래로는 꽤나 넓은 연못이 있다. 연못의 중앙에는 작은 섬을 꾸미고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은 고려 초기의 석탑이다. 새로 만들어 끼운 부재가 너무 많아 아쉬움을 더한다. 섬으로 건너가는 나무로 만든 다리도 놓았다. 원래 이 탑은 부도밭 옆에 있던 것을  연못을 꾸미면서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렇게 연못을 꾸민 것을 두고 고찰의 무게를 깎았다고 비판하는 사람과 풍수상으로 볼 때 비보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사람들로 말이 많았다고 한다. 내 풍수 실력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아무리 비보 차원이라지만 조잡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대웅전

 

  이젠 발걸음을 대웅전으로 향했다.  문화재 관람료를 겸해 시주를 조금하고 대웅전 안을 살펴보니 대웅전 마루 가장자리에 앙증맞은 동종이 놓여 있다 보는 순간 한번 쳐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이 동종이 바로 보물 제1349호로 지정된 태안사동종(泰安寺銅鍾)이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불교가 많은 탄압을 받던 시기에 왕실의 도움 없이 사찰 불사의 일환으로 조성된 범종이다.

  맨 위에는 소리의 울림을 부드럽게 한다는 음통과 종의 고리 역할을 하는 용을 새긴 용뉴가 있다.

 

 동종

 

  신라에서 고려시대로 이어지는 한국종의 독창적인 조형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이 종은 조선전기 동종 양식의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전통 양식의 계승과 새로운 양식의 접목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제작과 관련된 명문이 뚜렷하게 양각되어 있으며, 주조 기술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명문에 의하면 天順元年(세조 3년, 1457)에 처음 주성했으나 파손되어 萬曆 9年(선조 14년, 1581)에 다시 주조한 것이다.

 

  대웅전을 나오면 오른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 천불전이 자리하고 있다. 천불전에서 오른쪽으로는 선원이 왼쪽으로는 염화실이 있다. 선원 앞에 높은 계단이 있고 계단을 오르면 배알문(拜謁門)이란 편액이 달린 작은 문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편액의 拜謁門이란 글씨는 조선 후기 명필인 창암 이삼만(蒼巖 李三晩:1770-1847)의 작품이다. 대둔사 천불전 출입문인 가허루의 현판글씨와 이미지가 비슷하다.

  배알문 안으로 들면 정면에 잘생긴 부도가 나타난다. 이 부도야말로 태안사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바로 이 부도의 주인공이 태안사를 창건한 혜철선사의 부도인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이다.

 

 적인선사 부도

 

  혜철선사가 돌아가시자 왕으로부터 적인선사(寂忍禪師)란 시호와 조륜청정(照輪淸淨)이란 이름을 하사받아 부도와 부도비를 세운 것이다.

  적인선사의 탑에 대한 문화재청의 설명을 들어보자.

“이 탑은 전체적인 형태가 모두 8각형으로 이루어져 통일신라시대 부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3단의 기단(基壇) 위로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올리고 있다.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누어지는데, 아래받침돌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으며 면마다 사자상을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은 그 높이가 매우 낮고, 면마다 가늘고 길게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윗받침돌은 옆면에 솟은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 몸돌은 낮은 편이지만 온화한 기품을 지니고 있으며, 앞·뒷면에 문짝 모양을 새겼다. 그 옆면에 다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넓은 편으로 밑면에는 서까래를, 윗면에는 기왓골과 막새기와까지 표현하여 목조건축의 지붕양식을 사실적으로 나타냈다. 추녀의 곡선은 완만하며, 각 귀퉁이는 급하게 치켜올려진 상태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 등이 차례로 잘 남아있다. 이러한 머리장식들은 기단과 탑신의 화려한 조각들과 어울려 탑을 전체적으로 장엄하게 보이도록 한다.

  탑의 전체적인 형태는 무겁지만 너그러운 품위를 지녔고, 각 부분의 조각은 매우 자세하게 새겨져있어 사실적인 아름다움을 보이고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이르러 양식상 석탑을 비롯해 돌로 만든 조형물들이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것이 하나의 경향인데, 이 부도탑은 매우 뛰어난 조형성을 갖추고 있다.

탑 옆의 비문을 보면, 적인선사는 신라 원성왕 1년(785)에 태어나 경문왕 1년(861)에 입적하였다. 따라서, 이 부도탑도 적인선사가 돌아가신 86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비교적 평이한 설명이다.

 

 적인선사 부도비

 

  부도 옆에는 장엄한 부도비가 있다. 이 부도비는 근래에 다시 만들어 세운 것이다. 옛 비신은 글씨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가 심한데 부도비의 탁본이 마침 남아 있어 본래의 모습과 내용으로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귀부에는 꼬리가 재미있게 나 있다. 적인선사부도비는 보물도 아니고 유형문화재로도 지정이 안 되어 있다. 하루 빨리 보물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귀부꼬리


  적인선사의 법명은 혜철(慧徹, 785-861)이고 일찌기 중국으로 건너가 서당 지장(西堂 智藏;735-814)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에는 서당 지장의 제자가 세 분이 있다.

가지산문을 연 도의국사, 실상산문을 연 홍척국사, 동리산문을 연 적인선사이다.

나는 늘 이 점이 궁금했다. 구산선문을 연 세 분 모두가 6조 혜능의 증손자뻘인 9조 서당지장의 제자라고하는데 이 세 분들의 관계에 대한 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도의선사의 생몰연대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으나 선덕왕 5년(784년) 당나라 오대산으로 떠난 후 37년간 중국에서 머물고 돌아와 진전사에서 40여 년간 수도한 사실로 미루어 서기 760년에서 77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증된다.

 

 현존하는 가장 완전하고 오래된 선종사 문헌인 조당집(祖堂集)에 도의선사에 대한 다음의 기록이 있다.

 "설악 진전사 원적선사는 서당의 법을 이었고, 명주(강릉)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도의(道義)이고 속성은 왕씨였다. 건중 5년 갑자년에 사신인 한찬호 · 김양공을 따라 바다를 건너 입당하였다. 곧장 오대산으로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허공에서 종소리가 산을 울리는 소리를 듣고 신기한 새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강서의 홍주 개원사에 가서 서당지장(西堂智藏)을 스승으로 모셨다. 서당지장은 마치 돌 가운데서 옥을 고른 듯 조개 속에서 진주를 채취한 듯이 기뻐하여 말했다. ‘진실로 법을 전한다면 이런 사람이 아니고 누구에게 전하랴’ 그리고는 이름을 道義라 고쳐 주었다.” 라고 되어 있다.


  홍척(洪陟)국사는. 헌덕왕 때(809-825) 당나라에 건너가 서당 지장(西堂 智藏)의 문하에서 법을 전해 받고, 826년(흥덕왕 1년)경에 귀국했다고 한다.  최치원이 지은 경북 문경 봉암사의 지증대사적조탑비에 의하면, 그가 당나라에 가서 법을 전해 온 것은 도의(道義)보다 뒤이지만, 절을 짓고 문파를 이룬 것은 구산선문 가운데 가장 먼저라고 한다.

  적인선사는 신라 원성왕 1년(785)에 태어나 경문왕 1년(861)에 입적하였다.

그럼 여기서 세 분의 연대순으로 추증을 해보자.

 도의선사가 760-770년 사이에 태어났다고 추증된다. 그리고 784년에 당에 건너가 821년에 귀국했다.

  홍척국사는 헌덕왕(809-825)때 당나라에 건너가 826년(흥덕왕 1)경에 귀국했다.

 적인선사는 탑비에서 정확한 생몰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785-861).

 따라서 도의선사-홍척국사-적인선사의 순으로 서장 지장의 제자가 된 것으로 추증할 수 있다.

 

 구산선문에서 말하는 선의 출발은  석가모니 부처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마하가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부처님이 설법을 하면서 연꽃 한 송이를 들자 가섭 혼자 빙그레 웃었다.

이것이 바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인 것이다. 염화시중의 미소를 선의 시작으로 본다. 이는 부처님과 제자인 가섭 사이에 마음과 마음으로 법을 전한 즉 이심전심의 방법으로 전한 것이 선이다.

  인도의 스물여덟 번째 존자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그는 중국선의 첫 번째 조사가 된다.

  달마에서 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혜능(慧能)으로 계승된다. 이를 일러 삼십삼 조사라한다.

  중국선은 중국의 다섯 번째 조사인 홍인 선사의 문하에서 선법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즉 신수의 북종선과 혜능의 남종선이다.

  북종선(北宗禪)은 신수(神秀)선사의 수행법으로 점차적인 수행의 과정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돈오 점수(頓悟漸修)를 주장하고,

 반면에 남종선(南宗禪)은 혜능 선사의 수행법으로 마음을 단도직입하여 단박에 깨달음에 이르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한다.


  한국의 선은 혜능의 남종선을 이어받았다. 구산선문을 개창한 우리나라의 조사들이 남종선의 혜능의 제자들에게 선법을 익혀 들여온 것이다.

  구산선문을 합쳐 조계종(曹溪宗)이라 하는데 이는 혜능 선사가 선법을 펼쳤던 중국의 조계산이란 산의 이름에서 가져온 명칭이라고 한다.

  이처럼 중국의 조계산의 법맥이 이곳 동리산까지 뻗쳐 온 것이다.


  이젠 태안사의 중요한 보물은 태안사대바라(보물 제956호)를 빼고는 다 본 셈이다.

  대바라는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이 이곳에서 세종과 왕비, 왕세자의 안녕을 빌기 위해 제작했다고 한다. 바라는 사찰에서 의식을 행할 때에 쓰이는 악기의 하나이다. 이 대바라는 지름이 92cm이고 둘레가 3m나 된다고 한다. 이는 국내에 있는 바라 가운데 가장 크다. 대바라를 볼 욕심으로 절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보이지를 않는다. 청소하고 있는 보살에게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물어볼 스님을 찾아보았으나 모두 선원에서 참선을 하는 중인지 한 분도 보이지를 않는다. 이젠 아쉬움을 남기고 태안사를 떠나야 한다.

  태안사의 갖고 놀고 싶은 길의 단풍 맛을 한껏 즐기면서 내려오니 어느듯 주차장이 나왔다. 태안사입구에는 태안사 출생인 조태일시인의 문학관을 만난다.

 조태일(1941-1999) 시인은 태안사에서 태안사주지 스님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처승을 아버지로 둔 셈이다. 생전에 시인은 “나의 시는 태안사에서 비롯되었고 태안사에서 끝이 난다”고 했다고 한다.

  조태일 시인은 민족, 민중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70년대는 유신독재에 저항하고, 80년대에는 신군부에 저항해 문단의 민주화를 이끈 활동으로 평가된 것일 게다.

  조태일 시인이 노래한 ‘태안사 가는 길’을 낭송하고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태안사 가는 길


광주직할시 서구 광천동 대문을 나서며

어머니!

오냐.

 

전남 곡성군 삼기면 원등 선영을 지나며

어머니!

오오냐.


보성강 태안교를 지나며

어머니, 

오오냐, 오오냐.


내 탯자리를 지나며

어머니,

오오냐, 오오냐, 오오냐.


자유교를 지나며

어머니,

오냐아.


귀래교를 지나며

어머니,

오냐아, 오냐아.


정심교를 지나며

어머니,

오냐아, 오냐아, 오냐아.


반야교를 지나며

어머니, 

오오냐아.

 

해탈교를 지나며

어머니,

오오냐아, 오오냐아.

 

금강문을 지나며

어머니,

오오냐아, 오오냐아, 오오냐아.


일주문을 들어서며

어머니, 

오오냐아아, 오오냐아아, 오오냐아아.


대웅전을 들어서며

어머니!

오냐.


부처님 앞에서

어머니! 

…… 

지장보살

지장보오살

지이장보오살

지이자앙보오사알, 지이자앙보오사알……

 

 

46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빈 방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정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