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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동편제와 운봉 황산대첩비

by 황교장 2007. 12. 15.

동편제와 운봉 황산대첩비

태안사를 나와 운봉으로 향했다.

미래 예언서인 정감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열 곳의 승지(勝地)가 있는데 이 열 곳을 십승지(拾勝地)라 한다. 바로 운봉의 행촌이 십승지 중 한 곳이다.

운봉은 삼국시대에는 신라땅이었고 모산현이라 했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운봉현으로 되었다.

운봉은 아주 특이한 지형이다. 지리산 북서쪽에 자리 잡은 고원 분지로 해발이 450m가 넘는다.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과 정령치에서 내려오다 보면 거대한 분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바로 이 거대한 분지 전체가 운봉읍(雲峰邑)이다. 운봉읍은 현재 남원시에 속해 있다.

운봉은 남원 목기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이처럼 높은 고산지대에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는 지역은 내가 알기로는 남한에서는 운봉이 단연 최고다.

고랭지 작물을 키우기에는 매우 적합한 토질과 기후조건을 갖고 있다.

신비에 가까운 지형이다. 남원에서 오르막길을 힘들게 넘어 왔으면 당연히 내리막길이 나와야 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계속 평지 길로 이어진다. 이는 고원지대임을 말해준다. 이 거대한 분지 중심부에 운봉읍이 있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골 5일장인 운봉장날이다. 시골에서 열리는 장날은 그 지역의 특산물이 거래되기 때문에 구경거리가 많다.

나는 여행 중에 시골 장날을 만나면 반드시 구경을 하고 그 지역의 특산물을 사거나 맛을 본다. 이것 또한 여행 중 만나는 쏠쏠한 재미다.

오늘 운봉장날에 나온 특산물을 살펴보니 도라지와 생강이 눈에 가장 많이 띈다. 이렇게 큰 도라지는 처음이다. 모두 4년 이상된 것이라고 한다. 도라지는 3년이 넘으면 썩는데 안 썩게 하려면 다시 도라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심어야 된다고 한다.

생강도 굵고 크다. 그런데 생강을 보자마자 내 어릴 적 기억 속에 옆집 노인에게 배운 지식이 생각났다. 옆집노인이 하루는 밭에서 캐어온 생강에다 황토흙을 바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성미라 왜 황토흙을 바르는지 질문을 하니 생강은 황토밭에서 자란 것이 최고의 약효를 낸다고 한다. 그리고 황토를 바르는 것은 그나마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하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운봉의 토질은 황토가 아니라서 생강이 붉지를 않고 약간 푸른빛을 띠고 있다.

운봉장터를 나와 조금 지나면 왼편에 황산대첩비가 있다.

 

 황산대첩비

 

이성계가 고려 우왕6년(1380년)에 이곳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 10년(1577년)에 이곳에 황산대첩비를 조성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해 놓은 것이다.

 

 파비각(일제 강점기 때 파괴된 비석 조각들을 모아 안치한 곳)

 

황산대첩비 앞에는 가을 햇살 아래 운봉에 있는 어느 작은 교회에서 가을 체육대회를 하고 있었다. 표정들이 너무 밝고 재미있어 한다.

이들의 놀이를 유심히 관찰을 했다. 전체를 두 팀으로 나누어서 약 50m 앞에 반환점 표지석을 놓아두고 릴레이를 하는데 이 릴레이 방식이 아주 재미있다.

처음에는 제일 작은 아이 둘이 달리다가 돌아와서 차례로 한 명씩 추가되어 손을 잡고 두 명이 달리고 그 다음은 세 명이 달리고 네 명, 다섯 명으로 이렇게 계속 이어져 마지막에는 십수 명이 함께 달리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와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 할아버지, 할머니 순으로 모두 함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달린다. 달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순박하다. 평화로운 농촌에서 티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데 교인들의 맑고 밝은 표정에서 나는 예수를 느끼는 게 아니라 부처를 연상하게 하는 것은 또 무슨 아이러니인가.

잠시 시골교회의 역할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이러한 측면들이 교회의 순기능일 게다.

 

 황산대첩비 전경

 

황산대첩비 옆에 잘 꾸며진 전통가옥이 있어 관심을 가지고 가보니 우리나라 동편제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 선생이 태어난 곳이며 명창 박초월의 고택이다.

문은 열려 있는데 사람은 없었다. 안 마당에 드러서니 고즈넉한 분위기의 고가가 나타났다. 이 집의 풍수가 눈에 들어왔다. 전형적인 배산임수다.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고 앞에는 맑은 개울이 흐르는 것이다. 사신사도 잘 갖추어져 있다. 안 내부도 넓다. 최고의 예술가가 배출될만한 아름다운 터전이다. 안내판에는 가왕에 대한 이력이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가왕 생가 원경

 

그럼 가왕(歌王)에 대해 알아보자.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 태어난 가왕 송흥록(宋興祿, 1780년경-1860년경)은 아버지 송첨지의 영향으로 소리공부를 하게 되는데 아버지 송첨지는 당대 최고의 명창 권삼득의 제자이자 고수다.

권삼득이란 분도 전설적인 실존인물이다.

원래 양반 태생이었는데 소리에 미쳐 있어 양반가에서 집안 망신을 시켜도 유분수지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결국 집안 문중회의에서 덕석말이로 장살시키기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권삼득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리를 한번 해달라고 애원했다.

마침내 문중의 최고 어른이 마지막 소원이니 한번 들어주기로 했다.

문중사람들이 그의 노랫소리를 듣자 소리가 너무나 애절하여 모두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에 풀어주어 바로 집을 떠나게 했다. 결국 그는 조선 제일의 명창이 되었다고 한다.

이 권삼득의 제자가 송첨지이고 송첨지의 아들이자 제자가 바로 가왕 송흥록이다.

송흥록은 주천면의 구룡폭포에서 득음을 했다고 한다. 귀곡성(鬼哭聲)을 얻으려 가랑비 내리는 음침한 날 밤이면 애기울음이 들린다는 아장터를 찾아가 밤새우기를 3년, 결국 접신이 되어 귀신의 소리를 잘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가왕 송흥록 생가

 

송흥록은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사가 떼죽음을 당한 원귀들이 갈 곳을 잃고 헤매는 대목에서 귀곡성을 하면 듣는 사람들은 소름이 쫙 끼치고, 춘향가에서 옥중 장면의 귀곡성도 청중으로 하여금 겁을 먹게 했다. 또 어느 여름날 밤에 진주 촉석루에서 그가 귀곡성을 풀어 놓는데 별안간 촛불이 꺼져 모두 등골이 오싹했다고 전한다.

송흥록은 철종10년(1859) 정삼품 통정대부 벼슬에 제수되었다. 송흥록은 당시 안동 김씨의 실세인 김병기가 흥선대원군에게 구박과 천대하는 것을 보다 못해 세불십년(勢不十年) 이라고 야유하고 함경도로 떠났다.

그 후에 대원군이 권력을 잡아 송흥록을 찾았으나 많은 재산을 남겨둔 채 속세를 등지고 정처 없이 떠났다. 그 이후에 그를 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도인의 경지에 도달한 분이시다.

 

 생가마당

 

이젠 판소리에 대해 알아보자

옛날에는 놀이가 판놀음으로 벌어졌다. 판놀음이란 여러 패의 놀이꾼들이 너른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판을 짜서 노는 것을 말한다. 판놀음은 놀이의 순서를 소리, 춤, 놀이 등으로 짜서 벌이는 것을 한데 묶어서 일컫는 말이다. 판놀음으로 벌이는 놀음에는 ‘판’이란 말이 붙는다. 판놀음에서 줄타기는 판줄, 농악은 판굿, 춤은 판춤, 염불은 판염불 등이다. 따라서 판놀음에서 하는 소리가 판소리다.

나는 농악의 판굿은 직접 배워 교사들의 풍물패모임인 울림터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부산 문화회관에서 공연까지 한 경험이 있었다. 판소리는 늘 한 번 배우고 싶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아직 배우지를 못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배워 보리라 다짐해 본다.

판소리는 조선 말 고종과 대원군이 판소리를 너무 좋아해서 광대들에게 벼슬도 주고, 돈도 주자 다른 벼슬아치들도 그 흉내를 내어 판소리는 한때 세도가들의 잔치에는 반드시 판소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판소리는 일반적으로 동편제와 서편제로 나누어진다.

영화 서편제를 통해 서편제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동편제는 잘 알려져 있지가 않다.

동편제와 서편제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동편제와 서편제의 구별은 섬진강을 기준으로 나누어진다.

동편제는 섬진강 동쪽 지역인 남원·순창·곡성·구례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서, 가왕으로 불리는 운봉 출신의 송흥록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서편제는 섬진강 서쪽 지역인 광주·나주·담양·화순·보성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 순창 출신이나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서편제 소리는 대체로 부드럽게 시작하는 데 반해서, 동편제 소리는 장중하게 시작된다.

서편제 소리를 진한 고기 맛에, 동편제 소리를 채소처럼 담백한 맛에 비유한 분도 있다. 또한 서편제 소리를 꽃과 나무에, 동편제 소리를 봉우리 위에서 달이 뜨는 모습에 비유했다.

명고수 김명환은 "동편 소리는 창으로 큰 고기만 찍어 잡는 격이고, 서편 소리는 손으로 잔고기를 훑어 잡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를 정리하면 서편제는 애조를 띤 여성의 소리와도 같고 기교면에서 뛰어나며 풍부한 음악성으로 아기자기한 느낌을 전달한다.

서편제는 이러한 특징으로 동편제보다 대중적인 인기도가 더 높다.

반면에 동편제는 웅장하고, 간결하며, 남성적이다. 특히 귀곡성(鬼哭聲)은 진짜 귀신의 소리인 양 슬프고 애달프고 간담이 서늘한 특징이 있다.

그러나 오정해가 주연한 영화 서편제에서 나오는 대사를 보면 그 경계가 없다.

대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허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없고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결국 한을 넘어 득음의 경지에 이르면 동서의 구분이 없다는 뜻이다.

 

득음의 경지까지 올랐다는 평가를 받은 박초월 생가

 

득음, 즉 소리를 얻어야 진정한 명창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득음을 하기 위해 연습하는 과정에서 피를 세 동이나 토해야 한다고 한다.

판소리의 발성법은 배 아래쪽에서부터 숨을 올려 내지르는데 목을 다스려서 약간 거칠고 텁텁한 소리를 낸다. 판소리에서 높이 평가하는 음질은 껄껄한 수리성, 단단한 철성, 튀어나오는 천구성, 이외에도 폭포성, 쇠옥성, 애원성, 귀곡성 등의 성음이 있다고 한다.

세상사에 있어 뭐든지 한 분야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그것을 좋아해야 된다는 것을 권삼덕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경지에 도달하기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송흥록에게서 배울 수 있다.

세상사에 쉬운 것은 없다. 재미있는 놀이도 아는 것만큼 느껴지니 말이다.

운봉 화수리 비전마을 답사에서 판소리 한 수를 배우고 실상사의 암자인 백장암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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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ose / Westlife

    Some say love it is a river

    that drowns the tender reed.

    Some say love it is a razor

    that leaves your soul to bleed.

    Some say love it is a hunger,

    An endless aching need.

    I say love it is a flower

    and you it's only seed.

    It's the heart, afraid of breaking

    that never learns to dance.

    It's the dream afraid of waking

    that never takes the chance.

    It's the one who won't be taken

    who cannot seem to give.

    and the soul afraid of dying

    that never learns to live.

    When the night has been too lonely

    and the road has been too long

    and you think that love is only

    for the lucky and the strong,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s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어떤 이는 사랑은

    연약한 갈대를 꺾어 버리는 강물과 같다고 하고

    어떤 이는 사랑은

    영혼을 피 흘리게 하는 면도날 같다고하죠.

    또 어떤 이는 사랑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부족감을

    느끼는 배고픔이라 하지만

    난 사랑을 꽃과 같다고 생각해요.

    당신은 그 사랑을 피울 유일한 씨앗이죠.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결코 춤을 배울 수 없고

    꿈이 깨어져 버릴까 두려워 하는 것으로는

    결코 기회를 얻을 수도 없죠.

    받는 법을 모르는 이가

    주는 법도 알 수가 없듯이

    죽음을 두려워 하는 영혼은

    사는법을 결코 배울 수가 없어요.

    밤이 너무 외롭고,

    갈 길이 너무 멀어서

    사랑이란 단지 운 좋은 사람이나

    강자만의 것이라고 느껴질 때...

    이것 하나만 기억해 보세요.

    한 겨울 차가운 눈 밑에

    봄의 따스한 태양 빛에

    장미로 피어나길 기다리는 그 씨앗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