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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여행

중국연수 1-백독이 불여일견

by 황교장 2008. 8. 19.

중국연수 1-백독이 불여일견

 

교장자격연수 과정 중 해외연수가 올해부터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4개 권역으로 나누어서 가는데 나는 중국을 선택하였다. 원래 코스는 북경-서안을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지진으로 인해 상해 -항주 -황산 코스로 바뀌었다. 중국의 여러 곳 중 내가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인 항주가 포함되어 있어 오히려 다행이었다.

 

연수 기간은 7월 27일 - 8월 1일까지 5박 6일이지만 부산연수생들은 인천공항에 오전 7시까지 도착해야 하는 관계로 하루 전에 출발을 하고 도착 후에도 차 안에서 또 하루를 보내야 되기에 7박 8일이 된 셈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이나 김해공항에서 상해로 가는 비행기 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 행정의 편리성 때문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이중으로 들어간 것이다.

 

연수의 목적은 해외 주요 문화 유적지 답사를 통한 다문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학교장의 마인드 형성 및 외국 교육기관의 탐방을 통한 장단점을 파악하고 세계적 안목의 습득과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교육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해외연수는 교장 자격연수의 백미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낸 기획자와 의사결정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밤을 세워가면서 재미있게 읽은 책 중에서 단연 으뜸인 것은 무협소설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김용과 와룡생이다. 이분들의 작품 중 한글로 번역된 것은 모조리 다 탐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협소설의 단골 메뉴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10대 문파다. 이 십대문파가 소재해 있는 곳의 산이 오악이다. 이 오악을 한 곳에 모아놓았다는 황산이 이번 연수에 포함되어 있어 많은 기대감을 갖게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는가. 백독이 불여일견이기도 하지 않은가.

 

무협소설 중에는 중국의 정통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다. 특히 김용 작품의 대부분은 실존인물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이로 인하여 중국의 정통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동안 중국역사서 중 재미있게 본 것을 열거하면 사마천의 사기를 필두로 초한지, 열국지, 삼국지, 수호지, 금병매, 십팔사략, 이야기 중국사 등 많이 있다. 그러나 책으로 본 것과 직접 경험한 것은 차이가 난다. 이번 연수야말로 그동안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7월 27일(일요일) 9시 30분에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했다. 처음에는 비도 오고 구름이 많이 끼어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주도를 지나자 맑은 날씨가 나타났다. 그만 호기심이 발동되어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처럼 하여 비행기 제일 뒤편의 창문을 통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만 미터 상공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름다웠다. 한창 보고 있는 중에 화물선이 지나가는 모습과 작은 어선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어 푸른 바닷물이 황토색으로 바뀌는 것이다. 양쯔강 하류라는 느낌이 확 들어 왔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양쯔강 하구

 

 

조금만 더 가면 양쯔강 삼각주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러자 스튜디우서 아가씨가 오더니 곧 착륙을 한다고 하면서 위험하니 그만 자리에 앉으라는 것이다.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중국과 우리와의 시차는 한 시간 났다. 비행기를 두 시간을 탔는데 도착하니 한 시간만에 온 것이다. 이곳 시간으로는 10시 30분이다. 푸동공항에서 상해까지는 자기부상열차로 이동을 하는데 최고속도가 시속 400킬로가 넘었다. 우리의 KTX보다도 더 빨랐다. 중국이 많이 발전했다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약 7분 후에 상해에 도착을 했다. 여기에서 조선족 출신의 가이드를 만났다. 40대 초반의 여인으로서 눈이 크고 맑다. 이러한 눈을 가진 사람은 관상학에 따르면 거짓말을 못한다. 오히려 유혹에 약해 남에게 잘 속는 순수한 관상이다. 가이드의 안내로 점심은 중국 현지식으로 먹었다. 그런데 기름기가 많아서 먹기가 조금 거북하였다.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주차장에 소나타 승용차가 있었다. 반가웠다.

 

오늘의 목적지는 항주다. 항주는 상해에서 180킬로의 거리다. 버스로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상해에서 항주까지는 산이 없다. 전부 평야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의 형식은 거의 한결 같다. 주택의 구조를 보아도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최근 수 년 사이에 새롭게 지은 집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이 집들의 공통점은 3층집이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이 지역은 아열대 해양성 기후라서 고온 다습해 1층은 농기구 등을 보관하고, 2층은 누에치기 등의 작업장이고, 3층은 주거지라고 한다.

 

농부들이 모내기를 하는 광경이 보인다. 그 옆에 있는 논에는 벼들이 누렇게 익어 가는데 모내기 모습과 곧 추수해야 하는 벼들이 같이 있으니 새로운 풍경이다. 이 지역은 기온이 따뜻하여 2-3모작을 한다고 한다.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 나무로는 굴거리나무, 플라타너스, 낙우송, 유도화가 한창이다. 특히 유도화는 흰색과 분홍색 꽃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농작물은 벼농사가 주이고 옥수수 밭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뽕나무가 많이 심겨 있다. 뽕나무밭에 부도와 같은 작은 탑이 자주 보인다. 가족의 무덤이다. 화장을 하여 뽕나무 밭에 부도처럼 모신 것이다. 그리고 삼층집 위에 탑의 상륜부와 같이 찰주에 용차와 보주모양을 많이 하고 있다. 그곳이 조상을 모신 장소라고 한다.

 

점점 건물들이 높아지고 아파트가 많아지고 있다. 직감적으로 항주라고 느껴진다. 저 멀리 드디어 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서 큰 강이 나타났다. 중국의 5대강 중 하나인 전당강이다. 한강 하류의 넓이 정도이다. 항주는 중국 7대 고도(古都)중 하나다.

 

전당강

 

그 동안 살아오면서 중국에서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곳이 어디인가라고 질문은 받는다면 우선 소주와 항주 그리고 계림이라고 답할 것이다. 내가 읽었던 책 속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上有天堂 下有蘇杭과 桂林山水 甲天下’라는 문구다. 이는 ‘하늘에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계림의 산수가 천하의 으뜸’이다. 소주는 물이 오염이 심하나 항주는 맑다고 하니 소주보다도 항주가 가장 먼저 보고 싶었다. 이렇게 보고 싶은 항주에 왔으니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항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사성어 ‘오월동주(吳越同舟)’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근원지이다. 즉 춘추전국시대 때 오나라와 월나라가 있었던 곳이다. 오나라의 도읍은 고소(姑蘇: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이고 월나라의 도읍은 회계(會稽: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다. 이 중 월나라의 도읍 회계(소흥시)는 항주 바로 밑에 있다. 따라서 항주는 춘주전국시대에는 월나라 땅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와신상담’의 유래를 짚고 넘어가자.

주나라의 경왕 24년 (BC 496)에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 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패하였다. 합려는 적의 화살에 손가락을 상했는데 그로 인해서 죽었다. 그는 임종하면서 태자인 부차에게 유언하기를 기필코 월나라에 복수를 하라고 하였다. 부차는 부친의 원한을 풀어 드리려는 굳은 결심으로 밤마다 섶에서 자면서[臥薪] 복수의 칼을 갈았다. 이에 부차는 회계산 전투에서 구천에게 이겼다. 이때 구천은 신하가 될 조건으로 항복했다.

그 후 구천 또한 이 치욕을 갚기 위해 앉으나 누우나 또한 식사할 때마다 쓰디쓴 쓸개를 핥으며[嘗膽] 오왕 부차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때 구천이 재상 범려의 지략에 따라 미인계를 썼다. 바로 경국지색의 대명사인 서시를 이용한 것이다. 따라서 항주의 대명사인 서호의 이름도 서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삼국지에 나오는 중심 인물 중 오나라를 세운 손권도 이곳 항주 태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수나라 때 건설된 경항 대운하(610)- 북경과 항주를 잇는 대 운하-의 마지막 기착지이기도 하다. 또한 항주는 남송의 수도인 임안(臨安,1129-1279)이었다. 이처럼 중국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항주이다.

버스는 우리가 머물 숙소에 도착하였다. 숙소는 항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NEW CENTURY GRAND HOTEL이다. 중국에서는 호텔을 대주점(大酒店)이라고 표기한다. 숙소에서 짐을 풀고 바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가는 도중에 육화탑이 눈에 들어왔다.

 

 육화탑

 

육화탑은 중국의 국보로 송나라 때(970)에 목탑으로 건립되었다. 이때는 8각 8층이었다. 그러나 1121년 여진족이 일으킨 금나라와의 전쟁으로 불타버렸다. 다시 1163년에 건립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육화탑은 전당강(錢塘江)의 역류를 막기 위해 세운 탑이다. 전당강은 매년 음력 8월 18일을 전후해서 바닷물이 역류하는데 이 때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서 부딪치는 지점의 물의 높이가 수면에서 2m 80cm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13층처럼 보이지만 안에 들어가서 보면 7층의 팔각탑이라고 한다. 탑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라고 한다.

 

육화탑이라는 이름에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자연의 6합-천(天)지(地)동(東)서(西)남(南)북(北)-즉 천하(天下)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전국시대의 6국-연(燕)조(趙)한(韓)위(魏)제(齊)초(楚)-여섯 나라가 진(秦)에 대항했다는 의미라고 한다. 셋째는 불경의 6화(身和同住 口和無爭 意和同悅 戒和同修 見和同解 和和同均)의 여섯 和의 뜻에서 따왔다고 한다. 넷째는 13살 난 사내아이다. 즉 육화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아이의 부모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그만 전당강에 빠져 죽었다. 이에 화가 난 육화는 전당강에 있는 용왕의 궁전에 돌을 던져 궁전의 지붕을 깨뜨렸다. 그리고도 계속 돌을 던지자 용왕은 육화의 부모를 다시 돌려주었다고 한다.

 

탑 이름 하나에 전설이 이리도 많다. 이것을 다 설명하는 가이드의 직업의식도 대단하다. 그러나 이 육화탑은 우리 일정에 없어 직접 갈 수는 없으니 다음에 항주에 오면 반드시 한 번 구경을 해야 할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이어서 가이드는 오늘 저녁에 나올 식당의 메뉴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이 식당에서 반드시 먹어봐야 하는 것은 동파육(東坡肉)과 초어찜이라고 한다. 동파육은 우리에게 적벽부로 잘 알려진 당송 팔대가 중 한 분인 소식의 호인 동파에서 따온 것이다.

소식은 항주의 지방관으로 부임하여 서호를 준설하여 가뭄을 극복했다. 이를 고맙게 여긴 항주의 백성들이 대접한 요리가 동파육이라고 한다. 동파육(東坡肉)은 돼지고기 삼겹살에 설탕, 간장, 술, 파, 생강을 넣고 밀봉한 후 두 시간 정도 끊인다고 한다. 내가 먹어본 중국요리 중에서 냄새가 없고 담백하여 가장 맛있게 먹었다. 초어찜은 민물고기의 일종인 초어 요리다. 초어는 풀만 먹고 자라는 고기다. 평소에 민물고기를 싫어하는 내 입맛에는 초어찜은 맞지가 않다. 초어가 건강과 정력에 좋다고 해도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싫은 것이다. 중국 전역 중에서 특히 항주에 미인이 많은 이유는 전당강은 물이 맑고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많이 먹어서 미인이 가장 많다고 한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한국의 민속촌과 같은 성격을 띤 송성에 갔다. 송성전통가무극을 보기위해서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세계 삼대 가무극에 속한다고 한다. 가무극을 자랑하는 선전문구는 ‘당신께 하루의 시간을 내어 주면 천 년을 돌려 주겠다’라고 하니 기대를 아니 할 수 없었다. 하루의 시간으로 천 년을 돌려 주겠다니...

 

송성에 도착했다. 송성의 입구에는 재신(財神)으로 추앙받고 있는 분의 상이 있다. 사람들이 이 재신 앞에서 기도를 많이도 올린다. 이 재신이 바로 구천을 도와 부차에게 원수를 갚게 하는 데 일등공신인 범려였다.

 

 재신 범려를 모신 사당

 

범려는 오왕 부차를 자결하게 한 공으로 구천에게 상장군(上將軍)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범려는 구천의 관상이 ‘환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관직을 버리고 제나라로 갔다. 범려는 성과 이름을 바꾸고 해안가에서 초막을 짓고 살았다. 그러는 사이에 농사도 짓고 장사도 하여 몇 년 사이에 수천 금의 부를 쌓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사용하여 그 명성을 드높였다. 이에 제나라 왕이 그 명성을 듣고 그를 상국(相國)에 임명하였다.

 

범려는 자수성가한 평범한 일반 백성이 고귀한 자리에 너무 오래 머무는 것은 생명을 단축시키는 지름길이라고 여겼다. 이에 상국을 그만두고 재물은 친구와 농민들에게 전부 나누어준 다음 도(陶)로 옮겼다. 도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이름으로 무역을 하여 거부가 되어 그 명성을 천하에 떨쳤다. 이후 ‘도주공(陶朱公)’이라는 이름은 부호의 대명사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범려가 송성 입구에 재신(財神)으로 모셔져 있는 것이다.

 

송성 입구부터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오늘 항주의 기온이 34도가 넘었다고 한다. 저녁인데도 더위가 가실 줄을 모른다. 여간해서는 땀이 나지 않는 내 등에도 땀이 나서 젖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인파를 헤치고 송성전통가무극이 공연되는 극장 안에 들어왔다. 극장 안에는 에어컨이 있어 그나마 시원했다.

 

 송성전통가무극이 공연되는 극장

 

극장 안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걸려 있다. ‘禁止吸烟 謝絶撮像 保指淸結 對號入座’. 흡연 금지와 사진촬영 금지, 항상 청결을 유지하고, 자기 번호의 자리에 앉으라는 뜻이리라.

 

 

그런데 이 글을 보고 빙그레 웃는 분이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교육원에 근무할 때 부장님이 대만의 학교방문을 했는데 그 학교의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는 선전 문구의 내용이 생각난 것이다. ‘自知晩知己 補知早知’ 즉 ‘자기 스스로 알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옆에서 누가 도와주면 빨리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독려하고자 하는 내용인 것인데 우리말로 읽을 때는 발음이 어색한 것이다.

 

가무극은 총 4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막 한 막 시작하기 전에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순으로 자막이 올라와 해설을 해주고 있었다. 내용은 송나라의 최고 영웅인 악비장군에 대한 이야기, 중국 황제를 위한 공연, 서커스 공연, 스님들 이야기, 항주 서호의 아름다움과 그 속의 연인에 대한 이야기 등을 표현해 낸 극이다. 그 중에 아리랑이 있었다. 관람객 중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보았으면 아리랑을 공연하겠는가! 대한민국의 국력을 상징하는 것일게다. 이는 항주에 오면 반드시 송성가무극은 보아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 극을 다 보고나니 저녁 10시가 넘었다. 피곤하여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취침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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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 a shelter from the storm

아마도 사랑은 폭풍우를 막아주는 안식처와 같을 거에요

It exists to give you comfort, it is there to keep you warm

사랑은 당신께 평안을 주고, 당신을 따뜻이 감싸주며

And in those times of trouble when you are most alone

당신이 진정 외로운 그런 고난의 시간에

The memory of love will bring you home

사랑의 기억이 당신께 평안함을 가져다 줄 거에요

Perhaps love is like a window, perhaps an open door

아마도 사랑은 투명한 창문처럼, 어쩌면 활짝 열린 문처럼,

It invites you to come closer, it wants to show you more

당신을 가까이 오라 손짓하고, 더 많은걸 보여주려고 한답니다

And even if you lose yourself, and don't know what to do

당신이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에도

The memory of love will see you through

사랑의 기억은 당신에게 길을 인도해 줄 거에요

Oh, love to some is like a cloud, some, as strong as steel

사랑은, 때론 구름처럼, 때론 강철처럼 강하게

For some, a way of living, for some, a way of feel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고, 느끼는 법을 일러 준답니다

And some say love is holding on, and some say letting go

사랑은 속박일 수도 있고, 보내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And some say love is everything, some say they don't know

어떤 이는 사랑이 전부라고 하고, 어떤 이는 무의미하다고도 말하죠

Perhaps love is like the ocean, full of conflict, full of pain

어쩌면 사랑은 대양과 같이, 때론 갈등과 때론 아픔이 따른답니다

Like a fire when it's cold outside, thunder when it rains

추운 날씨엔 따뜻한 화로와 같거나, 비가 내릴 땐 천둥처럼 말이죠

If I should live forever, and all my dreams come true

내가 영원히 살게 되어, 나의 꿈을 이룬다면

My memories of love will be of you

내 사랑의 추억은 당신일 거에요

And some say love is holding on, and some say letting go

사랑은 속박일 수도 있고, 보내주는 것일 수도 있어요

And some say love is everything, some say they don't know

어떤 이는 사랑이 전부라고 하고, 어떤 이는 무의미하다고도 말하죠

Perhaps love is like the ocean, full of conflict, full of pain

어쩌면 사랑은 대양과 같이, 때론 갈등과 때론 아픔이 따른답니다

Like a fire when it's cold outside, thunder when it rains

추운 날씨엔 따뜻한 화로와 같거나, 비가 내릴 땐 천둥처럼 말이죠

If I should live forever, and all my dreams come true

내가 영원히 살게 되어, 나의 꿈을 이룬다면

My memories of love will be of you

내 사랑의 추억은 당신일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