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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여행

중국연수 3 - 항주 용정차

by 황교장 2008. 8. 23.

중국연수 3 - 항주 용정차

 

우리 2단은 영은사를 나와서 절강성 박물관을 먼저 관람을 하고 항주 용정차 생산지를 방문하는 여정이었다. 영은사를 나와 절강성 박물관을 가는 길은 환상의 드라이브길이다. 서호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면서 달리기 때문이다. 차창에 펼쳐지는 서호의 풍광은 우리 모두의 넋을 송두리째 뺏을 만큼 아름답다.

 

 

7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절강성 박물관 앞에 도착을 하였다. 그러나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월요일은 박물관 개관 시간이 12시부터였다. 일정을 다시 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용정차 산지를 먼저 구경을 하고 점심식사 후 서호에서 유람선을 타고 절강성박물관을 관람하도록 일정을 조정하였다.

 

용정차 산지까지 다시 아름다운 서호의 절경들을 감상하면서 간다. 가는 도중에 그 유명한 악왕묘가 내 눈에 바로 들어왔다.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는데 어느 새 지나치고 말았다. 악왕묘는 악비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무협소설에서 숙박하는 장소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삼국지에 나오는 관운장을 모신 사당인 관묘와 악비장군의 악왕묘이다. 악왕묘의 주인공인 악비장군은 중국 사람들에게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특히 항주는 남송의 수도인만큼 북송 최고의 영웅인 악비 장군의 위력을 볼 수 있는 기회인데 그만 우리 일정에 없다. 아쉽다. 이 아쉬움이 다음에 한 번 더 항주에 올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나마 밖에서라도 악왕묘의 크기를 볼 수 있기에 그 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이해가 되었다. 무협소설에는 이미 해가 기울어 어둠이 왔는데 마침 관묘나 악왕묘를 발견해서 아주 다행스럽다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그때 늘 '중국 사람들은 무덤 속에 잠을 자는 것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묘라고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악왕묘를 보는 순간 바로 느낌이 왔다. 묘라는 게 묘지의 묘(墓)가 아니고 사당 묘(廟)이다. 역시 백독이 불여일견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우리 단의 버스는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조금 더 들어가니 터널 속으로 차가 지나간다. 터널을 통과한 후의 산세를 보니 우리나라 산들과 별 차이가 없다. 산에 녹차밭이 보이는데 보성 녹차밭이나 지리산 쌍계사 가는 길의 녹차밭보다 운치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

 

 

 

해박한 가이드는 용정차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이 동네를 통칭하여 매가오촌이라고 한다. 즉 매씨들이 사는 동네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가 이 동네에 눈이 먼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매가오촌의 용정차를 마시고서 눈을 뜨게 했다고 한다. 용정차 100mg 중에는 비타민 A가 16mg이 들어 있어 눈에 좋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용정차의 효용은 체중을 조절하고 지방간을 제거한다고 한다. 아미노산은 구수한 맛을 내며, 떫은 맛의 탄닌은 콜로스테롤을 줄이고 피를 맑게 하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이시진이 지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녹차를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다.

 

이윽고 차가 멈추어 섰다. 입구에 梅塢問茶(매오문다)라는 글자가 쓰인 녹차밭과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집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이 집에 고용된 조선족 안내인이 우리들을 맞이한다. 조선족이면서 차의 전문가여서 우리들에게 차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들어가는 문 입구에 뜨거운 가마솥에 맨손으로 차를 볶고 있다.  손으로 온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가마솥의 최고 온도가 180도까지 올라간다. 그런데도 화상을 입지 않는다.  이유는 차유를 넣기 때문이다. 차유는 녹차의 열매를 가지고 짠 기름이다. 이 기름을 넣고 볶아야 차가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그리고 전시장에는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전시되어 있었다. 녹차는 일반적으로 세 단계를 거친다.

첫째가 살청(殺靑)과정이다. 즉 찻잎의 색깔을 유지하고 잎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뜨거운 솥에 넣고 볶는 과정이다.

둘째는 유념(揉捻)과정이다. 이는 찻잎을 비벼 부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말리는 과정인 건조과정이다.

이 건조과정에서 녹차를 볶는 것을 초청(炒靑)이라 하고, 불에 말리는 것을 홍청(烘靑), 햇볕에 말리는 것을 쇄청(曬靑)이라고 한다.

차가 제조되는 과정이 이처럼 복잡하다. 따라서 성인 한 사람이 하루에 1kg 정도 채집하고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용정차는 힘든 공정을 거쳐 생산된다.

 

그리고 이 집을 선전하기 위해서 이곳을 다녀간 유명 인사들의 방문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그 중 대장금의 이영애 사진이 있다. 그리고 제일 위에 붙여놓은 사진은 무협소설의 작가인 김용이었다. 김용은 중국에서도 아주 존경받는 작가다. 그가 펴낸 책들은 기본이 한 번 출판되면 삼천만 부 이상 팔린다고 한다. 마음속으로만 존경하고 있는 분을 여기에서 사진으로라도 대할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김용 작가의 사진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우리 일행은 시음장인 방으로 안내되었다. 여기서 조선족 출신인 용정차 전문가가 직접 용정차에 대한 설명을 한다.

 

 

우선 찻잎을 유리잔에 넣고 유리컵에 3분의 1 정도 물을 따른다. 우려내기 위해서다. 그 다음 물을 세 번 따른다. 정확하게 찻물이 유리컵에 알맞게 들어갔다. 묘기를 보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반복연습을 했으면 저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겠는가를 느끼게 한다. 이렇게 세 번에 걸쳐 상대방이 찻물을 따라주면 검지와 장지의 두 손가락으로 탁자를 세 번 두드린다. 감사하다는 표시란다. 이러한 행동은 상대방이 담뱃불을 붙여 줄 때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용정차는 마시는 것이 아니라 먹는다고 한다. 찻잎이 뜨기 때문에 뜨는 찻잎은 씹어서 먹는다. 대바구니에 용정차 완성품 세 종류를 담아서 우리들에게 직접 맛을 보고 구별해 보라고 한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두춘차이고, 다음에는 우전이고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명전차이다. 이들 세 가지 차를 직접 먹어보니 차이가 난다. 어느 것이 좋은 차인지를 내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좋은 차일수록 잎의 크기가 작고 색깔이 푸르고 윤기가 났다. 직접 먹어보니 떫은 맛이 많을수록 등급이 낮은 차이고, 구수한 맛이 많을수록 좋은 차였다.

 

이들의 구별은 다음과 같이 한다.

1등급차인 명전(明前)은 청명(淸明, 4월 5일) 이전에 채취를 한 아주 여린 잎이다.그리고 2등급 차인 우전(雨前)은 곡우(穀雨, 4월 20일) 이전에 딴 것이다. 3등급인 두춘차(頭春茶)는 곡우 후 5일까지 채취된 찻잎을 말한다. 여기서 의문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기준으로는 우전이 가장 좋은 차인데 여기서는우전보다 앞서는 명전이 하나 더 있다.

이에 대해서는 초의선사의 동다송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겠다. 초의선사는 동다송에서 우리나라의 기후는 중국과 달라 중국책인 다경(茶經)에서 말한 곡우(穀雨, 양력 4월 20일 전후) 뒤가 아닌 입하(立夏, 양력 5월 6일 전후) 다음이 적당하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우전이 최고인 셈이다.

 

우리 일행은 대부분이 명전을 사고 있다. 명전은 우전보다 배 이상으로 비싸다. 그런데도 아무도 우전을 사지 않는다.

우리들이 직접 보는데서 포장을 하는데 포장하는 방법 또한 신기에 가깝다. 최고 품질인 명전은 우리 돈으로 10만원이다.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그런데 이들의 장사 속은 대단했다. 100g이 들어가는 용기에 신기에 가까운 방법으로 120g이상을 가득 담아주고 나서 조금 작은 용기에 80g정도가 들어가는 용기를 하나 더 주는 것이다. 제법 많은 분들이 이 차를 샀다. 나도 마음이 당겼으나 참았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신토불이다. 내가 생활하고 숨 쉬는 내 땅에서 생산된 것이 내 몸에 좋지 이 이국 만리타향에서 생산되는 용정차가 우리 것보다 오히려 못하다는 느낌이 온 것이다. 지리산 화개녹차나 보성녹차가 더 좋다는 생각이었다.

 

명전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것을 다 포장을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나는 먼저 나와서 뒷산에 있는 차밭을 구경했다. 제법 운치가 있다. 차밭이 끝나는 지점까지 산책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단체가 움직이는 관계로 접어야만 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와서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한 번 가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다시 출발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통과하는 터널은 나라에서 돈을 내어 한 것이 아니고 이곳 매가오촌 사람들이 자기들의 돈으로 터널을 뚫었다고 한다. 이 마을 사람들이 중국에서 가장 잘 사는 농촌마을이라고 한다.

 

우리 2단 가이드는 참 많이도 알고 있다. 타고 난 가이드다. 마이크를 손에 놓지를 않고 계속 이야기를 한다. 다른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차창을 바라보는데 나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메모하기에 여념이 없다. 미처 다 못 들은 것은 따로 시간을 내어서 질문하면 가이드는 웃음을 지으면서 ‘내 말을 다 믿으면 안 됩니다.’ 라고 한다. 가이드를 하다가 보면 말이 잘못 나올 수도 있고 미처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아 틀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기 보호의 연막을 잘 치고 있다. 그래도 우리 가이드의 설명은 참 구수하고 재미가 있다.

 

‘중국인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다’로 다시 시작을 한다.

‘소주(蘇州)에서 나는 비단을 입고, 광동 요리를 먹고 난 후 항주에서 나는 용정차(龍井茶)를 마시며 살다가 유주(柳州)에서 나는 나무로 짠 관에 묻히는 것이 중국인의 최대 소원이다.’

이처럼 항주의 용정차가 유명하다는 것이다. 용정차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다성(茶聖) 육우(陸羽, 733-804)가 쓴 세계 최초의 차 관련 전문 저서 다경(茶經)에 항주 천축(天竺)과 영은이사(靈隱二寺)에서 차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다경은 총 3권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는 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山水上, 江水中, 井水下’라는 내용이다. 차는 품종도 중요하지만 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은 산수가 상이고, 강물은 중간이요, 우물물이 가장 하품이라고 한다. 이 상품인 산수 중에서도 基山水 揀乳泉 石池漫 流者上(기산수 간유천 석지만 유자상)을 최고로 친다. 즉 산수는 젖을 짜는 것과 같이 바위틈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것이 최상품이라는 것이다.

 

이 구절을 보고 머릿속에 얼른 떠오르는 곳이 있다. 초의선사가 살았던 해남 대둔사의 일지암이다. 일지암 뒤에 흐르는 물이 유천이다. 유천이 왜 최고라고 알려진 것인지 궁금했는데 다경의 이 구절을 보니 이해가 간다. 일지암 뒤에 흐르는 물의 이름을 젖 유자 유천(乳泉)인 것이 이해가 된 것이다.

 

청대(淸代)에 이르러 용정차는 여러 명차들 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꼽히는 최고의 명차가 되었다. 건륭제 덕분이다. 

건륭제(乾隆帝)는 강남을 여섯 차례나 순행하였는데, 강남 순행 중에 네 차례나 용정차구를 찾아서 찻잎을 감상하기도 하고 찻잎을 직접 따기도 하였다. 그리고 용정차에 관한 부와 시를 여러 수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雨中再遊龍井(우중재유용정)이라는 시 중에서 西湖風景美 龍井名茶佳(서호풍경미용정명차가, 서호는 풍경이 아름답고, 용정에는 명차가 좋구나)라는 구절은 차 애호가들이 즐겨 써서 걸어 놓은 茶聯(차련)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그리고 건륭제는 호공묘(胡公廟) 앞의 18그루의 차나무를 ‘御茶(어차)’로 봉하여 황제에게 헌상토록 하였다.

 

여기에는 이런 일화가 전한다.

건륭제는 여행을 좋아했다. 따라서 기후가 온화한 강남에 자주 왔다. 어느 날 서호의 아름다운 경관인 삼담인월, 뇌봉탑 등을 구경하고 나서 평소에 즐겨 마시는 용정차의 산지를 직접 보려고 사봉산을 찾았다.

황제가 어느 산기슭에 이르니 마음을 청량하게 하는 아름다운 선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봉산의 호공묘가 있는 곳이었다. 이곳 호공묘의 스님이 가장 좋은 용정차를 대접했다. 찻잔 안에서 푸른 찻잎이 살아서 숨 쉬는 듯 떠다니면서 은은한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차를 마시고 나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이 차를 어디에서 딴 것인가를 물으니 바로 호공묘 앞에 있는 차나무에서 딴 것이라고 스님은 대답했다. 건륭제가 차를 마시고 난 후 호공묘를 나서니 문 앞에 푸른 찻잎을 가진 차나무 18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에서 건륭제가 직접 차를 따고 있는데, 황궁에서 황태후가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왔다. 효자인 건륭제는 급히 황궁으로 돌아갔다. 황태후는 황제의 몸에서 기이한 향기가 나는 것을 맡았다. 향기가 나는 곳을 찾아보니 황제의 소매 속이었다. 소매 속을 보니 용정찻잎 몇 개가 들어 있었다. 황제가 용정차를 황태후에게 올리니 황태후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황제는 서호 사봉산 호공묘 앞의 차나무 18그루를 어차로 칭하고 특별히 사람을 파견하여 관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18그루의 차나무는 차를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건륭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 청나라는 강희제, 옹정제를 거쳐 건륭제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건륭제는 강희제의 손자다.

건륭제(1711. 9. 25. -1799. 2. 7.)는 25세에 황제가 된 후 61년(1735-96)간 황제로 있다가 아들인 가정제에게 양위하고도 태상황제를 3년간 더하고 우리 나이로 90세에 돌아가셨다. 중국 역사 상 가장 오랫동안 황제를 한 분이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복은 전부 다 누리고 간 황제다.

1755-60년 사이에 여러 번 군사 원정으로 투르크족과 몽골족의 위협을 제거했다. 그리고 지금의 신강위구르자치구를 창설했다. 티벳의 라싸에서 일어난 반청반란(1752)을 진압하고 달라이 라마의 실권을 빼앗아 중국 총독에게 넘겨주어 티벳에 대한 지배를 굳건히 했다.

 

지금 달라이라마가 티벳 망명정부의 수장으로서 독립을 외치면서 전 세계에 다니는 것이나, 얼마 전 신강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 것들은 알고 보면 이 두 황제의 영토 정복에 그 근원이 있는 것이다. 이들 소수민족을 합병 통합시킨 인물이 바로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인 강희제와 건륭제인 것이다. 티벳의 티벳족이나 신강위구르자치구의 위그루족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은 영원한 민족의 적인 셈이다.

역사라는 게 참 이율배반적이다. 어느 것이 정당성을 갖느냐이다. 그 대답은 참 어렵고 힘이 든다. 중국이 지금 이 시점에서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소수민족들을 다 독립시키면 현재 중국 영토는 반 이상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손문이 중화민국을 통일하고 제일 처음 한 것이 만주족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았다고 천제에 고한 것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네르친스크 조약에서 라틴어 조약문이 정본이다. 이를 기초로 만주어, 러시아어, 몽골어 번역문이 만들어져서 교환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한문은 이 4종의 정본·부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강희제 시대 청제국의 성격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즉 만주족인 강희제는 한족의 문자인 한문을 크게 중시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청나라는 중국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소위 동북공정이라는 기치 아래 만주의 여진족의 역사도 아니고 우리 조선족의 역사인 고구려를 자기들의 역사라고 한다. 
 힘이 없으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이자 작금의 국제적 정세이다. 이 점을 생각할 때 지금이야말로 우리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시켜야 할 중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어느 덧 우리 2단이 탄 차는 점심 식사를 하러 식당에 도착하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 수령 700년이나 된 향장목을 만났다.

 

 

 

장개석 총통과 송미령 부부가 즐긴 식당이면서 모택동 주석이 56번이나 와서 식사를 했다는 유명한 산외산 식당이었다. 인걸은 가고 없어도 그분들이 놀았던 곳은 지금도 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인생은 짧고 역사는 긴 것이다.

 

 

 

음식 맛은 거창한 소문만큼은 아니었다. 중국은 이미 자본주의 요소가 너무 많다.  

점심 식사의 가격이 비싼 것은 756원이고 그나마 이 식당에서는 비교적 싼 것은 188원이다. 188원은 우리돈 삼만 원에 해당되는 음식값이다. 나라 경제의 발전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요소가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항주의 하이라이트인 서호의 유람선을 타고 서호를 구경하기 위해 떠났다. 

 

22

 

Dust in the wind - Kansas -

I close my eyes only for a moment.

Then the moment's gone.

All my dreams pass before my eyes, a curiosity

Dust in the wind.

All they are is dust in the wind.

Same old song.

Just a drop of water in an endless sea.

All we do crumbles to the ground, though we refuse to see.

Dust in the wind.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oh.

Now, don't hang on.

Nothing lasts forever but the earth and sky.

It slips away.

And all your money won't another minute buy.

Dust in the wind.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

Dust in the wind.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

Everything is dust in the wind.

The wind.

바람 속의 먼지

잠시 눈을 감는다.

그 순간이 지나간다.

눈앞에서 내 모든 꿈이 스쳐간다.

한낱 호기심일 뿐.

바람 속의 먼지일 뿐.

꿈이 가진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일 뿐.

옛날의 그 노래일 뿐.

가없는 바다에 떨어지는 물방울 하나일 뿐.

보고 싶지 않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지상으로 스러진다.

바람 속의 먼지일 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일 뿐, 오.

이제 집착하지 말자.

땅과 하늘을 빼고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다.

사라져간다.

모든 재물로도 단 1분의 시간을 사지 못할 것이다.

바람 속의 먼지일 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일 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일 뿐.

바람 속의 먼지일 뿐.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일 뿐.

모든 것이 바람 속의 먼지일 뿐.

바람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