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수 7 - 상해, 그리고 마무리
2008년 7월 30일, 오늘 일정은 다시 항주를 거쳐 상해로 가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곧장 출발을 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황산의 농촌마을 모습은 평화롭다. 비를 맞으며 풀을 뜯고 있는 어미 소 곁에는 송아지가 열심히 어미의 젖을 먹고 있다. 우리 농촌에서는 사라지고 없는 정겨운 풍경이다. 같은 길이지만 올 때와 갈 때는 서로 다른 느낌이다.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이처럼 비가 오는 농촌마을의 풍광은 아름답다.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항주에 도착했다. 절강대학교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항주의 절강대학은 2007년 대학평가 결과 중국 전체에서 3등을 했다고 한다. 1등이 후진타오 주석이 졸업한 청화대학, 2등이 북경대학, 3등이 이곳 절강대학, 4등이 강택민 주석이 졸업한 상해교통대학, 5등이 남경대학이다. 그러나 학생 수는 절강대학이 중국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항주에서 점심을 먹고 상해로 갔다. 상해 한국영사관에 도착했다. 영사관에서 교육받은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상해 한국영사관
중국은 다문화국가다. 한족이 92%를 차지하고 55개 소수민족이 8%를 차지한다. 면적은 남한의 100배다. 직할시가 4개, 성이 22개, 성급자치구가 5개다. 총 31개로 나누어져 있다. 이 중 상해 총영사의 관할지역은 안휘성, 절강성, 강소성, 상해직할시다. 중국의 전체 평균 GDP가 약 2,000불이지만 행복지수는 만 불 정도다. 이 중 상해가 가장 잘 산다. 상해는 GDP가 8500불이다.
중국은 대한민국의 제1의 교역대상국이자 수출대상국이며 최고의 무역흑자국이다. 한국이 IMF를 빠른 시일에 극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을 너무 경쟁적인 관계로 보지 말고 서로 존중 이해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중국경제가 잘 되어야 한국경제가 잘 된다. 중국 경제가 어려우면 바로 한국경제가 타격을 받는다. 반한감정을 갖게 하면 안 된다. 중국은 앞으로 계속 발전해 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에 진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중국에 진출하지 않는 것은 더욱 더 위험하다.’
특히 중국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은 세계에서 대한민국 사람밖에 없다고 한다. 이유인즉 중국 사람은 인간관계를 백주(고랑주, 주도 40-50도)부터 바로 시작한다. 이처럼 독한 술을 같이 마실 수 있는 민족은 우리 민족밖에 없다고 한다. 상해의 총영사관의 교육관과 상무관으로부터 중국과의 미래지향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는 뿌듯한 긍지도 함께 느꼈다.
오늘 저녁식사는 북한식당에서 한다. 기대감에 부푼 마음으로 찾았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한 것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이다. 이 아름다운 여인들이 직접 요리도 하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한다. 그야말로 팔방미인들이다. 알고 보니 이들은 평양상과대학 관광과 2학년 학생들이다. 실습을 나왔다. 술은 기본으로 청도맥주가 나온다. 그러나 북한 술은 따로 주문을 해야 한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하는 아가씨에게 제일 좋은 술이 무슨 술인가를 물으니, 다 좋다고 한다. 질문을 달리 했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술이 무슨 술인가를 물으니, '들쭉술입 네다.'라고 한다. 들쭉술값은 50불이다. 들쭉술을 한 병 시켜 맛있게 먹었다. 아가씨들에게 팁을 주는 방법이 독특하다. 마음에 드는 아가씨가 노래를 부를 때 꽃바구니를 선사하는 것이 팁이다. 꽃바구니 하나에 20불이다. 백 불짜리 한 장을 주니 거스름돈으로 30불을 받았다. 70불로서 기분 좋게 놀고 또한 북한의 외화벌이에도 동참을 한 것이다. 이들이 노래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분단민족만이 가질 수 있는 아픔일 것이다. 피는 물보다 찐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을 뒤로하고 상해가 자랑하는 서커스를 관람했다. 인간은 스릴과 서스펜스를 즐긴다. 그리고 인간의 몸은 단련에 의해 발달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권유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저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강제적인 훈련이 필요하겠는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능한 것이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5성급 호텔이다. 내가 머문 방은 52층이다. 이곳에는 상해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동방명주의 불빛이 또렷이 보인다. 상해의 야경은 아름답다. 중국이 정말 많은 발전을 한 것이다. 들쭉술 덕분인지 잠을 잘 자고 아침을 맞이했다.
7월 31일 일정은 오전에 중국국제학교인 상해협화쌍어학교를 방문하고, 오후에는 상해한국학교를 방문한다.
상해협화쌍어학교
상해협화쌍어학교는 외국인 자녀교육을 위해 허가받은 사립 기숙학교다. 동서양 교육을 접목하여 장점을 상호 보완하고 있는 학교였다. 이 학교는 국내부 38학급 1120명, 국제부 21학급 505명이다. 국제부에는 한국 학생이 120여 명이다. 한국 학생들이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중국의 명문 일류대학에 합격했다고 축하하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한국인의 저력을 보는 것 같아 뿌듯했다. 이 학교는 사립학교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수업료에 의존하여 운영을 한다. 1년 수업료가 4만원, 우리 돈 640만원이다. 이 학교 관계자들의 주된 이야기 내용은 한국의 우수한 학생들을 이 학교에 많이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상해한국학교
오후에는 상해한국학교에 갔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한국학교는 총 29개교다. 이 중 중국에만 10개가 있다. 상해한국학교는 초, 중, 고 학생이 같이 있는 학교다. 총 48학급 1,130명이다. 교직원수는 140명이다. 중국정부로부터 8.000여 평 부지를 50년간 장기 임대하여 2006년에 완공된 학교다. 옮기기 전에는 중국학교를 빌려 쓰고 있었기 때문에 운동장을 보고도 공도 차지 못했다고 한다. 교민들의 숙원이 해결된 샘이다. 상해한국학교를 견학하고 나니 앞으로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중국에 있는 한국학교 교장으로 지내고 싶은 의욕이 일어났다.
저녁에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취소되어 각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지인들끼리 삼삼오오로 흩어졌다. 상해에 와서 안 보고 가면 섭섭한 게 있다. 바로 황포강 유람이다. 황포강 유람갈 지인 분들을 모집하니 총 8명이다. 택시 두 대로 나누어서 갔다. 숙소에서 30분 거리다. 다들 중국어 실력이 부족하여 갈 때는 숙소 안내원에게 부탁하고, 올 때는 숙소의 명함을 택시기사에게 보여주니 쉽게 해결이 되었다.
황포강 야경
황포강가에는 인산인해다. 황포강 유람선은 화려한 불빛을 자랑한다. 몇 척의 배가 강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배의 크기가 너무 커서 바다의 유람선으로 착각할 정도다. 선착장 매표소를 찾으려 둑을 따라 내려가 보았으나 찾지를 못했다. 둑 위에 있는 매점에서 맥주를 시켜 한 잔씩 했다. 분위기가 있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 중에 10시가 되었다. 밤 10시에는 모든 공식적인 행사는 끝이 난다. 동방명주의 불빛도 꺼지고 주변의 화려했던 야경도 서서히 꺼지고 있었다. 이미 파장이 된 것이다. 이 또한 사회주의의 한 단면을 본다. 뒷골목에서는 어떻게 하든 공식적인 놀이문화는 밤 10시에 모든 것이 끝이 난 것이다. 다시 숙소에 올 수밖에 없었다.
5박 6일의 연수가 끝이 나는 마지막 밤이다. 숙소 주변에 있는 매점에서 맥주 몇 병을 구입하여 호텔방에서 마지막 밤을 지인들과의 대화로서 보냈다.
8월 1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마지막 일정으로 예원과 상해임시정부청사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예원은 상하이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정원으로 옛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예원(豫園)은 1559년에 착공하여 18년 만에 완공했다. 명나라 시대의 사천포정사였던 반윤단(潘允端)이 자신의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지은 원림이다.
예원 앞 거리
예원(豫園)이란 이름은 부모를 기쁘게 한다는 뜻인 유열노친(愉悅老親)이라는 말에서 愉자는 豫자와 뜻이 서로 통하기 때문에 예자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 한다. 소주의 4대 원림인 창랑정, 사자림, 유원, 졸정원과 함께 강남 명원으로 불린다.
예원 현판(주인이 세 번 바뀌었음을 나타냄)
예원 정원
예원을 둘러보면서 나에게 인상적인 곳은 쾌루(快樓)라는 누각이다. 이층으로 된 누각인데 여기가 바로 이집 주인이 거처하는 곳이다. 이곳은 어느 누구도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들어가지 못한다. 제일 부인이라도 허락 없이는 들어가지 못한다. 쾌루의 앞 건물은 공연장이다. 공연장에서 하는 공연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쾌루다. 공연 중에 마음에 드는 미인이 있다면 주인은 이층 쾌루로 불러들인다고 한다. 이곳은 오직 이집 주인만의 공간이다. 인간 욕망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쾌루
공연장
예원은 정말 잘 지어진 정원이다. 부릴 수 있는 멋은 모조리 다 부렸다고 생각된다. 화려함의 극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원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원은 자연을 끌어 들였는데 반해 이곳 예원은 너무 인위적이다. 담양의 소쇄원이나 영양의 서석지를 보면 대자연을 정자의 안팎으로 끌어 들여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반하여 예원은 한정된 영역에 너무 많은 것들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느낌이다.
예원을 나오면 상해에서 가장 화려한 곳, 바로 동방명주가 있는 포동지구다. 신구가 공존하고 있다. 미래의 중국을 보는 것 같다. 상해는 지금도 한창 건설 중이다.
상해 중심지와 건설현장
마지막 방문지인 상해임시정부 구지로 갔다. 초라한 3층 벽돌건물의 임시정부 청사다. 당시 힘든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겠다. 비록 망명정부이지만 명색이 정부청사인데 말이다. 그 당시의 기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 쓴 愛己 愛他(애기 애타)다. 자기를 사랑하고, 남도 사랑하라는 의미다. 또한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되리라.
이곳에서 중국사람들이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젠 국가 차원에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친필
마지막 식사는 한국식당에서 했다. 역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이 최고다. 음식은 ‘어릴 때 맛있게 먹은 음식 맛을 평생 찾아 가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김치다. 어린 시절 먹었던 발효가 잘된 그 김치 맛을 지금도 찾고 있다. 우리 음식이 좋듯이 문화도 우리 문화가 좋은 것이다.
푸동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검열대에서 선크림을 빼앗겼다. 중국 공안에게 선크림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액체로 된 것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한다.
비행기가 이룩했다. 날이 아주 맑아 제주도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인다. 이어 추자도, 청산도, 월출산까지는 확실히 알겠는데 월출산 너머에 아주 큰 도시가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렇게 큰 도시는 없는데 저곳이 어딘가를 생각해보니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목포라면 바닷가에 있어야 하는데 바닷가도 아니다. 자세히 보니 뒷산이 무등산 같이 보인다. 광주광역시인 것이다. 하늘에서 본 광주광역시가 얼마나 작게 보이던지...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상해푸동공항보다는 깨끗하다. 문화의 척도는 질서와 청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도 변해가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보다 한 수 밑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고 있으니 마음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5박 6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연수의 목적이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는 정확하게 측정은 할 수는 없으나 이 글을 쓰면서 중국연수를 찬찬히 다시 정리해 보니 초과 달성한 느낌이다. 여행은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녀와서 남기는 기록을 통해서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가서 보지 못했던 것도 있었고, 보고도 그 의미를 정확히 몰랐던 것들을 이 글을 적으면서 더 넓게, 더 깊게 정리해 보고자 했다. 그러면서 여행의 의미가 더 커진 것 같다.
여행의 기록은 즉시 남기지 않으면 사라질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서둘러 모자란 글이나마 남기려고 애썼다. 쓰다보니 내 능력에 넘치는 내용도 있어서 힘이 들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내 글을 읽고 격려의 댓글을 달아준 많은 분들 덕분이었다. 그분들의 격려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리거나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되돌아보니 글을 쓴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라 그 격려의 힘과 더불어였던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글을 쓰는 사람은 댓글을 달아준 독자의 에너지를 빌어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나에게 에너지를 나누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격려의 에너지를 보태주시기를 빌어 본다.
또한 이렇게 해외연수를 잘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모든 분들과 함께 했던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
Bridge Over Troubled Water / 험한세상 다리가되어
When you're weary feeling small
When tears are in your eyes
I'll dry them all
I'm on your side
Oh when times get rough
And friend just can't be f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ll lay me down
When you're down and out
When you're on the street
When evening falls so hard
I will comfort you
I'll take your part
Oh when darkness comes
And pain is all arou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ll lay me down
Sail on silver girl, sail on by
Your time has come to shine
All your dreams are on their way
See how they shine
Oh if you need a friend
I'm sailing right behind
Like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I'll ease your mind
당신이 피로하고 작게만 느껴지고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이면
제가 닦아줄께요
제가 곁에 있잖아요
힘든 시기가 닥치고
주위에 친구도 없을 때
제가 험한 물살 위에
다리가 되어 드리겠어요
당신이 무일푼이 되어
거리로 나가고
견디기 어려운 밤이 찾아올 때
제가 당신을 위로해 드릴께요
제가 당신 편에 서 드릴께요
어둠이 몰려와
주위가 온통 고통으로 가득찰 때
제가 험난한 물살 위에
다리가 되어 드리겠어요
계속해요, 소중한 그대, 나아가세요
당신을 환하게 비추어줄 날이 왔어요
당신의 모든 꿈이 다가오고 있어요
그 꿈이 빛나는 모습을 보세요
만약 친구가 필요하면
내가 바로 당신 뒤에 있어요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당신의 마음을
편히 해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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