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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여행

중국 연수 6 -황산과 무협소설

by 황교장 2008. 8. 31.

중국 연수 6 -황산과 무협소설

 

항주에서 황산까지는 3시간 거리다. 점차 도시의 아파트가 적어지면서 농촌 마을이 나타난다. 지금의 도로는 고속도로로 개통 된 지 2년이 채 안되었다고 한다. 고속도로 변의 농촌은 아주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기본이 3층이고 4층집도 많다. 땅은 모두가 다 국가 소유이고 30년 동안 임대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집은 개인 소유라고 한다. 집의 형태가 거의 다 비슷비슷하다. 기본적인 틀은 국가에서 정해주는 모양이다. 곳곳에 차밭과 대나무가 많다. 산 전체가 온통 대나무로만 되어 있다. 대나무 속에 소나무가 듬성듬성 섞여 있다. 청산호라는 제법 큰 호수가 나타났다. 서호와 크기가 비슷하게 보인다. 황산 172km라는 도로 표지판이 나타났다. 산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다. 충북의 지형과 많이 닮았다고 느껴진다.

 

한 시간 반 정도 가니까 휴게소가 나왔다. 휴게소에서 지도책을 구입했다.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다. 산이 아주 멋이 있는데도 별로 알려진 산이 아니고 야산 취급을 받고 있다. 산의 이름과 표지판조차도 없다.

 

휴게소에서 본 산 

 

방금 구입한 지도에도 산이름이 나타나 있지가 않다. 대충 짐작으로 보아 오대산이나 설악산 정도의 높이는 될 것 같다. 차는 계속 산 쪽으로 올라간다. 느낌으로 최소한 해발 천 미터 이상은 올라온 것 같다. 터널이 나왔다. 이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안휘성이다. 강소성에서 안휘성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중국은 어떤 측면에서는 각 성이 자치제이기 때문에 독립된 나라와 같다. 성을 통과하는 데도 통행세를 내야한다고 한다. 가이드의 표현을 빌리면 통행증을 따야된다고 한다. 통행세는 50원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각 도시를 지낼 때마다 통행료를 내야한다.

 

여기서부터는 안휘성이다. 안휘성은 중국에서도 가장 못 사는 성 중에 하나라고 한다. 전 성민의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산품은 죽순, 버섯, 고사리, 호두, 산나물 등이다. 옛날에는 산적이 많았다고 한다. 황산 86km라고 되어 있다. 안휘성은 80km 이상의 속도를 내면 안 된다. 앞에도 차가 없고 뒤에도 차가 없다. 고속도로가 텅텅 비었는데도 아주 일정하게 80km로만 간다. 우리 같았으면 그저 신이 나서 속력을 냈을 텐데도 말이다.

 

길가의 농작물 중에는 옥수수, 뽕나무, 벼, 콩 등이 가로수에는 유도화가 눈에 많이 띈다. 길가의 논밭은 계단식이다. 남해 가천마을이나 지리산 연곡사의 다랑논보다도 한 수 위의 다랑논들이 많이도 있다. 먹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알 수가 있겠다. 지금도 안휘성은 일인당 소득이 천 불이 안 된다고 한다.

 

계단식 논밭 

 

황산시까지는 계속 내리막이다. 황산시에 도착했다. 석양이 진다. 이때의 시간이 18시 52분이다.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저녁 7시 52분이다. 바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갔다. 황산에는 두 곳밖에 없는 오성급 호텔이다. 그러나 같은 오성급 호텔이라도 항주의 호텔에는 많이 못 미친다.

 

 숙소에서 본 황산 시가지

 

 아침 5시 30분에 기상이다.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출발이다. 황산은 황산시에서 약 80km 거리에 있다. 버스로 약 1시간 좀 더 걸린다. 황산까지 가는 길목은 전형적인 농촌풍경이다. 우리의 70년대 풍경이다. 잃어버린 고향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이윽고 황산 입구에 도착했다. 황산은 중국 10대 관광지 중 하나다. 그리고 1990년 12월 유네스코에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황산은 기송, 괴석, 운해, 온천, 설경을 황산 5절이라 부른다.

 

황산은 1년 중 200일 정도가 구름과 안개에 감싸여 있다고 한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오랜 시간을 버텨온 황산의 소나무들 중에서 10 그루의 소나무에 각각 독립된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를 황산의 10대 명송(10大名松)이라고 한다.

따라서 황산에는 無石不松(무석불송, 돌이 없으면 소나무도 없고), 無松不奇 (무송불기,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도 않다), 세상에는 無人不愛(무인불애, 사람이 없으면 사랑도 없고), 無愛不變(무애불변,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변화도 없다)라는 말과 대비해서 표현된다. 그만큼 황산의 소나무를 제일로 쳐 준다. 따라서 황산 5절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에서 본 황산

 

케이블카를 타는 데까지 인산인해다. 정말로 사람들이 많다. 몇 단계를 거쳐 드디어 케이블카를 탔다. 타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한다. 안개에, 구름에, 비에 가려 가시거리가 50m 정도다. 내 경험으로 이런 날은 등산하기에는 최악이다. 황산의 진면목을 보려고 왔는데 날씨가 따라주지 않는다.

황산의 현지 가이드는 조선족으로 28살의 청년이다. 입담도 구수하고 좋다. 그런데 이 친구가 케이블카에서 내려서는 천천히 가야 되는데 속도를 많이 낸다. 힘들어 하는 분들이 많았다. 연령대를 고려해야 하는데 그만 속도를 처음부터 너무 많이 낸 것이다. 그만 일행 중에 환자가 발생했다. 그것도 나와 친한 분이라 평소 학생들에게 하던 실력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다행히 괜찮아졌다.

 

비는 계속 오고, 사람들은 많고, 반대편 짐 나르는 사람들은 비키라고 야단이다. 황산에 올리는 짐은 모두 인간의 손으로 나르고 있다. 아주 훌륭한 케이블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어깨로 나르고 있다. 고용창출을 위해서라고 한다. 사회주의국가의 한 단면을 보는 것이다. 즉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다, 이들이 하루 종일 버는 돈은 우리 돈 약 4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이들의 몸매를 보면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황산의 야생화

 

길도 정형화되어 있다. 길 닦기가 좋은 곳은 좀 넓게 닦고, 나쁜 곳은 좁게 닦는 것이 일반적인데 황산의 길은 폭이 일정하다. 정말 많은 공이 든 것이다. 길가에는 황산의 야생화가 아름답게 피어 있다. 우리나라에 핀 야생화와 거의 흡사한 것들도 많다. 꽃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는 것을 알겠다.

이윽고 황산에서 일출이 가장 좋다는 광명정에 도착했다. 일출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경관이 빼어나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나 안개에 가려 광명정이라고 쓰인 표지판만 있을 따름이다. 여기서 단체사진을 찍고서 비래석으로 갔다.

 

광명정(1860M) 

 

하늘에서 떨어져 꽂힌 듯한 모양의 형태라서 ‘날 飛’자 비래석(飛來石)이다. 그런데 비래석 올라가는 입구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다. 비래석도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운무가 심하다. 힘들게 점심식사를 할 식당을 찾았다. 몇 시간을 걸은 관계로 밥은 꿀맛이다. 모두들 지금까지 가장 맛이 있는 식사라고 한다. 시장이 반찬인 것이다.

식사를 맛있게 한 후 출발을 했다. 거의 보이지도 않는 소나무를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을 한다. 모두들 흥미를 잃었다. 우리보다 먼저 받은 연수생들 중에는 중국이 오기 싫어 신청을 하지 않았는데 그만 제비뽑기에서 져 어쩔 수 없이 중국에 왔지만 황산을 보고나니 그 동안의 불만이 모두 풀렸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 기수는 황산이 가장 짜증나는 곳이 된 것이다. 황산에서 가장 좋다는 서해대협곡이나 와호장룡의 촬영지로 알려진 비취계곡은 어디에도 찾을 길이 없다. 비만 짓궂게 계속 내리고 있다. 이는 다음에 꼭 다시 오라는 황산의 산신령님의 계시라고 생각하면서 산을 내려왔다.

 

저녁 식사 전에 명청(明淸) 옛 거리로 불리는 명청노가(明淸老街)에 갔다. 황산시는 역사상 큰 전쟁이 없었다고 한다. 황산시 앞을 흐르는 강은 전당강의 상류다.

 

전당강 상류 

 

따라서 이곳까지는 물의 수량이 작아서 큰 배가 뜨지를 못해 일본군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명(明), 청(凊)때의 모습들이 거의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대부분이 사백 년 이상 된 것들이라고 한다. 나는 혼자서 이 거리를 걸어 보았다. 생긴 모습이 현지인과 비슷한지 아무도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이곳의 문방사우는 중국에서도 가장 알아준다고 한다.

 

중국이 자랑하는 황산은 명나라 때의 지리학자인 서하객(徐霞客, 1586-1641)의 서하객유기(徐霞客遊記)에서 ‘오악(五嶽)에서 돌아오고 나면 볼 산이 없고, 황산(黃山)에서 돌아오고 나면 오악을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서하객은 30여 년 간 북쪽으로 하북(河北), 산서(山西), 남쪽으로 운남(雲南), 귀주(貴州)까지 모두 16개 성(省)을 두루 돌아다닌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이다. 황산은 이처럼 빼어난 것이다.

중국의 오악은 태산(泰山), 형산(衡山), 화산(華山), 항산(恒山), 숭산(嵩山)이다.

이들은 중국의 동서남북과 중앙을 대표하는 명산들이다. 무협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산들이다. 무협소설마다 각 산들의 형상을 너무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기에 죽기 전에 반드시 오악을 한번 답사를 하고 싶었다. 이런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었기에 황산은 더더욱 보고 싶은 산이었다. 그러나 황산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 여기서 무협소설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무협소설이라고 하면 문학작품에 넣어주지도 않으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무협지를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심지어 학교 다닐 때 무협지를 보다가 들키면 빼앗기고 벌도 받는다. 그런데 학생에게서 뺏은 무협지가 어떤 것인지가 궁금한 선생님이 책을 펼치자마자 몰입했다. 그 선생님은 무협지를 그날 처음 본 분이었다. 그분은 그날 중요한 약속도 잊은채 무협지에 빨려든 것이다. 선생님이 그 책을 다보고는 학생에게 나머지 책도 빌려오라고 돈까지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무협지는 재미가 있다.

 

그 동안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읽은 책이 아마 무협지가 아닌가 한다. 다른 공부를 하다가 공부가 싫어지고 슬럼프에 빠지면 원두막이나 산사에 가서 무협지 몇 질을 본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다시 공부가 잘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사서(四書),노장(老莊), 주역, 고문진보까지 다 보고난 후에서야 동양고전이 무협지 내용에 용해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결론적으로 무협소설에는 동양사상이 그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용 작가는 동양사상의 대가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의 실력이라고 한다.

 

나는 무협소설 예찬론자다. 무협소설의 장점은 제일 먼저 인성교육이다.

그 다음이 학생들에게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그리고 중국역사와 한자 실력을 높여준다. 또 덤으로 속독 능력을 자연스럽게 길러준다.

왜 인성교육인가?

무협은 무를 통한 협행이다. 이는 선과 의협심을 자연스럽게 길러준다.

그러나 좋은 무협지를 읽어야 한다.

 

 무협지의 역사를 보면 사마천의 사기열전에서 찾을 수 있다. 열전 중에서도 ‘자객열전’이 그 효시라고 볼 수 있다. 즉 무협지(武俠志)는 武와 俠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우리가 즐겨 읽는 소설 삼국지다. 이는 진수의 삼국지를 나관중이 소설화한 ‘삼국지연의’다. 그리고  수호지로 알려진 시내암(施耐庵)의 작품 ‘충의수호전(忠義水滸傳)’이다.

 

 현대의 무협소설은 중국에서 출발했다. 대표적인 중국 무협작가로 김용, 와룡생, 고룡, 양우생, 운중악 등이 있다. 중국 무협소설은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를 ‘구파 무협소설’이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주로 거론하는 무협 작가 및 작품은 1950년대부터 나타난 ‘신파 무협소설’이다. 한국에는 1960년대 초반부터 중국무협소설이 번역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번역된 작품은 군협지, 금검지, 비룡, 비연, 무유지, 무림천하, 정인전, 사자후 등이다. 이 중에서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은 와룡생의 작품인 비룡과 비연이다. 읽은 지 무려 30년도 훨씬 더 된 책인데도 머릿속에 남아 있다.

 

좋은 무협지는 정통무협에서 찾아야 한다. 정통무협은 그 구성에 있어 세 가지의 기본 요소가 있다. 그것은, 1.무(武), 2.협(俠), 3.구파일방(九派一幇)과 오대세가(五大世家)이다.

첫 번째 무(武)는 말 그대로 무술, 무예, 무도 등을 말한다. 주로 쓰이는 용어로는 내공(內功), 심법(心法), 검법(劒法), 신법(身法) 등이 있다.

두 번째 협(俠)은 정의, 도덕 등의 가치를 다루는 것이다. 작게는 개인의 정의를 다루고 크게는 사회적 정의를 다룬다. 즉 권선징악(勸善懲惡)을 강조한다.

세 번째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다. 이는 광활한 중국 땅 전체를 의미한다. 이들은 불교집단과 도교집단 그리고 특수한 능력을 가진 집단을 총 망라 한다.

구파는 숭산 소림사(少林寺)의 소림파를 필두로 무당파(武當派), 화산파(華山派), 아미파(峨嵋派), 종남파(終南派), 점창파(點蒼派), 공동파(崆峒派). 청성파(靑城派), 곤륜파(崑崙派)다.

이 9파는 반드시 유명한 산 밑에 있다.

그리고 1방은 거지들의 집단인 개방(丐幇)이다.

오대세가는 일반적으로 남궁세가(南宮世家), 제갈세가(諸葛世家), 모용세가(慕容世家), 사천당문(四川唐門), 황보세가(皇甫世家)를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반드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작가의 성향에 따라 그 구성 문파들이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 원칙은 지킨다.

정통 무협소설에는 반드시 이 세 가지 무, 협,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들어간다. 이 세 가지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정통무협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정통무협은 매우 교육적이다. 무협에서는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이 바로 협(俠)이다. 즉 선(善)과 의(義)다. 인성교육의 핵심이 바로 善과 義인 것이다.

무협(武俠)에 있어서는 협(俠)이 먼저이고 무(武)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무협의 목적은 누가 뭐라고 해도 협(俠)인 것이다.

협은 의협심(義俠心)을 말한다.

의협심은 정의(正義)를 위하여 자기를 희생(犧牲)하려는 의로운 마음이다.

이러한 협의 정신이야말로 바로 사마천의 자객열전이 정신적인 이념을 제공해준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처럼 무협(武俠)을 실현한 사람을 영웅(英雄) 또는 대협(大俠)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통무협소설은 권선징악으로 끝이 난다.

 

여기서 학생들에게 권장할 만한 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은 김용의 원작들이다. 주로 고려원(김영사)에서 번역 출판된 것이 많다. 뒤에 있는 이름은 우리말로 다시 붙여진 책 제목이다. 김용의 작품은 중국 교과서에 정식으로 실려 있다고 한다. 더군다나 노신의 작품이 빠지고 김용의 작품을 실었다고 한다.

 

1. 天龍八部(천룡팔부), 大陸(대륙)의 별

2. 射雕英雄傳(사조영웅전), 英雄門(영웅문) 1부

3. 神雕俠侶(신조협려), 英雄門(영웅문) 2부

4. 倚天屠龍記(의천도룡기), 英雄門(영웅문) 3부

5. 俠客行(협객행)

6. 笑傲江湖(소오강호)

7. 碧血劍(벽혈검)

8. 鹿鼎記(녹정기)

9. 書劍恩仇錄(서검은구록), 淸香妃(청향비)

10. 飛狐外傳(비호외전)

11. 雪山飛狐(설산비호)

12. 連誠訣(연성결)

13. 白馬嘯西風(백마소서풍), 雪山客(설산객)

14. 鴛鴦刀(원앙도)

15. 越女劍(월녀검)

 

천하 제일 명산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명산으로 인해 무협소설에 대한 정리를 해 보았다. 이젠 다음 여정은 항주를 거쳐 상해로 떠난다.

 

 

9

 

月亮代表我的心 (월량대표아적심)

 唱 : 鄧麗君 (등려군)

 

ni問我愛ni有多深 我愛ni有幾分

니 원 워 아이 니 요우 뚜오 션, 워 아이 니 요우 지 펀

당신은 내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물었죠.

我的情不移 我的愛不變 月亮代表我的心

워 디 칭 부 이 / 워 디 아이 부 삐엔, , 위에 량 따이 삐아오 워 디 씬

내 감정은 변치않고, 내 사랑 역시 변치않아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輕輕的一個吻 已經打動我的心

칭 칭 디 이 꺼 원~~,이 징 따 똥 워 디 씬

가벼운 입맞춤은 이미 내 마음을 움직였고,

深深的一段情 敎我思念到如今

션 션 디 이 뚜안 칭 / 지아오 워 쓰 니엔 따오 루 진

깊은 사랑은 내가 지금까지도 당신을 그리워하게 하네요.

ni問我愛ni有多深 我愛ni有幾分

니 원 워 아이 니 요우 뚜오 션, 워 아이 니 요우 지 펀

당신은 내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물었죠.

ni去想一想 ni去看一看, 月亮代表我的心

니 취 샹 이 샹 / 니 취 칸 이 칸, 위에 량 따이 삐아오 워 디 씬

생각해보세요. 보라구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