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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일본 남큐슈에서의 첫날, 에비노고원과 기리시마신궁

by 황교장 2012. 2. 5.

일본 남큐슈에서의 첫날, 에비노고원과 기리시마신궁

-모라중학교 부장교사연수 1일차-

 

작년에 부장연수로 제주도에서 가진 2박 3일이 너무 좋아서 올해는 해외로 가기로 잠정적인 결정을 내렸다. 당초에는 일본 오끼나와로 가기로 했는데 막상 여행사 담당자와의 만남에서 남큐슈로 장소가 변경이 되었다. 일정은 1월 31일 출발하여 2월 3일까지 3박 4일로 정하였다.

나로서는 일본여행은 난생 처음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일본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국사공부를 하면서 가장 하기 싫은 부분이 바로 한국 근대사 부분이었다. 너무 처참하게 일본한테 당한 역사를 공부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을 여행한다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럴수록 일본을 좀 더 자세히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갖고 있었다. 그동안 일본에 대한 나의 지식은 국사 공부할 때 배운 것과 젊을 때 읽은 대하소설 ‘대망’이 거의 전부였다. 그래서 일본 가기 전에 이원복 교수가 지은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편 두 권을 사서 읽었다.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오전 7시에 만나 수속을 마치고 8시 30분 배로 후쿠오카로 출발을 했다.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오륙도가 가까이에 다가왔다. 오륙도를 배 위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색다른 멋이 있다. 바다에서 보는 오륙도는 용호동 바닷가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크고 멋있었다. 오륙도가 왜 부산을 상징하는가를 알 것 같았다.

배는 오륙도를 뒤로 하고 망망대해를 향해 시속 80키로의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우리가 탄 초고속 제트호인 ‘코비’는 해상 2미터 이상 부상한 채 항해한다. 2시간 50분을 항해하자 섬과 산이 보인다. 후쿠오카다.

 

 

런던아이와 비슷한 모습을 한 놀이동산이 가장 선명하게 보인다. 후쿠오카는 주변의 산세와 건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물들이 산세를 거스르지 않아서 포근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주었다.

우리 일행은 짐을 챙겨 후쿠오카 하카타항에 도착을 하여 입국 수속을 하였다.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25인승 미니버스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후쿠오카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렸다. 일본의 고속도로는 우리나라 고속도로 보다는 폭이 좁게 느껴진다. 버스가 속력을 내자 차가 많이 흔들린다. 가이드가 기사가 운전을 잘 못하여 버스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고속도로는 산과 산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바람이 많이 불어 차가 흔들린다고 한다. 일본의 교통체계는 우리하고 반대라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방향도 우리하고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달리는 차가 역주행을 하는 것같이 느껴져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가이드가 일본관광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자세히 한다. 이 중 인상적인 대목은 좋은 관광의 3가지 특징에 대한 설명이었다. 첫째 보는 즐거움, 둘째 먹는 즐거움, 셋째 돈 쓰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일본문화와 우리 문화는 우선 담배를 피우는 방식이 다르다. 우리는 집안에서 피우지 않고 베란다에 나와서 피우는데 일본사람들은 집안에 들어가서 피운다고 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화장실을 사용할 때는 노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이 닫혀 있으면 안에 사람이 있다는 표시이고 없을 시에는 문을 조금 열어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용변을 보고는 반드시 화장지를 변기 속에 넣어야 한다. 이는 휴지의 질에서 발생된다. 우리는 고급화장지를 쓰지만 일본의 화장지는 반드시 재생화장지를 쓰기 때문에 물에 잘 녹아 변기가 막히지 않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걸쭉한 농담을 섞어가면서 설명을 참 잘한다. 우리 선생님들보다도 더 설명을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점심은 도시락이었다. 차 안에서 먹는 도시락은 또 다른 멋이 있다. 도시락을 정말 지극정성으로 만들었다. 무려 9가지의 반찬을 그 작은 도시락에 담고, 밥도 2종류를 적절하게 정갈하게 배치하였다. 섬세함 그 자체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반찬이나 밥이 단 한 가지라도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중국에 갔을 때 중국음식은 90% 이상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아 먹기가 힘이 들었는데 이 도시락은 너무나도 내 입맛에 딱 맞는 것이다.

 

차는 시내를 벗어나 야외를 달리고 있다. 일본의 마을들이 낯설지가 않았다. 대부분 어린 시절에 보았던 집들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사오십 년 전으로 되돌아와 포근한 고향에 온 느낌이었다. 일본의 고속도로는 산과 산으로 연결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도로가 산의 7부 능선으로 이어져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일본의 산은 숲이 울창하다. 곳곳에 아름드리 삼나무가 조성되어 있다. 수종들을 보면 삼나무, 대나무, 녹나무, 후박나무, 편백나무 등으로 구성된 활엽수가 대부분이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휴게소이다. 휴게소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깨끗함이다. 휴게소에서 파는 물건들과 진열된 상태가 정결과 청결 그 자체이다. 중국의 휴게소는 지저분하여 중국은 아직 대한민국을 따라오려면 한창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일본의 휴게소를 보니 일본은 역시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를 한 잔하고는 다시 출발을 했다. 차는 다시 한 시간여를 달려 고속도로를 나와 국도로 접어들었다. 산 정상을 향해 아슬아슬하게 운전을 한다. 역주행을 하고 있어 신경이 많이 쓰인다. 반대편에서 오는 차와 충돌을 할까봐 신경이 자꾸 쓰인다. 그런데도 충돌은 하지 않고 잘도 달리고 있다. 길가에는 우리나라 소나무로 알려진 적송이 많다. 일반적으로 일본은 해송이 많은데 유독 이곳에만 적송이 많다고 한다.

이윽고 차는 높은 고원에 도달했다. 에비노고원이다. 

에비는 일본말로 새우라고 한다. 유황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 때문에 억새풀들이 새우 모양처럼 둥글게 모양이 변한다고 해서 에비노고원이라 이름 붙여졌다고도 하고, 산의 형태가 새우등처럼 보인다고 하여 불린다고도 한다.

 

 

일본은 1934년에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기리시마, 아소산, 운젠의 3곳을 지정했다. 에비노고원은 기리시마(霧島) 국립공원의 한 부분이다. 미야자키 현 남서부에 위치하는 에비노고원은, 미야자키와 가고시마의 경계에 걸친 산악지대다. 에비노고원을 바라보는 첫 느낌은 한라산 윗새오름에서 바라보는 한라산 봉우리와 울릉도 성인봉에서 나리분지를 내려다보는 느낌과 많이 비슷하였다. 이들 모두 화산이 폭발한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일행은 차에서 내려 칼데라호인 부동지(不動池)로 갔다. 겨울이라 얼음이 얼어 있어도 물빛의 색깔은 아주 푸르고 맑다. 화산의 영향으로 물의 산성도가 강하여 미생물이 살기 어려워 코발트색을 유지한다고 한다. 부동지 부근에는 철쭉으로 보이는 낮은 식물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한국악(韓国岳)으로 가는 등산로 표지가 있었다. 에비노고원의 최고봉(1700m)이 한국악이다.

 

 

 카라쿠니타케(韓国岳)라는 명칭의 유래로서 2가지 설이 있는데, 에도(江戶) 시대 이전에는 산 정상 부근의 등산길이 험해서 등산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의미와 혹은 산 정상 부근에 초목이 거의 없어 공허의 땅 즉 공국(空国) 또는 허국(虚国)이라는 의미에서 일본 발음으로 카라쿠니라고 읽혀진다는 설과 남큐슈쪽으로 끌려온 한국인들이 그곳에 오르면 한(韓)의 나라까지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높아 카라쿠니다케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휴게소로 보이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곳에는 무료로 노천온천에 족욕을 할 수 있도록 시설이 되어 있다.

 

 

 

제일 먼저 양말을 벗고는 족욕을 시작하자 우리 일행 모두가 족욕을 했다. 물의 온도는 발을 담그기가 적당하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가 표정들이 밝다. 이곳에서 주변을 산책하면서 30여 분을 즐기고는 산을 내려왔다.

 

다음 목적지는 기리시마신궁이다. 기리시마 신궁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곳곳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차창이 닫혀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안까지 유황냄새가 들어왔다. 참 특이한 풍경이다. 한 30여 분을 내려오자 차는 기리시마 신궁 입구에 도착했다. 기리시마 신궁은 일본의 건국신화와 관련된 태양신의 손자를 모신 신궁으로 6세기 초에 세워졌으나 소실되고 현재 남아있는 것은 1715년에 개축한 것이다. 1989년에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신사와 신궁의 차이는 왕과 직접 관련된 곳은 신궁이고, 왕실의 신하나 일반인의 조상신을 모신 곳은 신사라고 한다. 우리나라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왕실의 부속신사다.  1869년 메이지천황 시절 황군의 혼령을 위로한다는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메이지 유신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 11차례 전쟁의 전몰자 246만 여명의 위패가 안치되어있다. 이 신사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1급 전범 14명을 안치해 놓은 곳이라 일본 정치인들의 이 신사 참배가  문제되고 있다고 한다.

신사참배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조상신에 대한 제사에 가깝다. 종교가 달라도 신사참배는 하나의 행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을 어귀나 한 가운데에 공동무덤인 납골당이 조성되어 있다. 일본은 매장을 못하고 반드시 화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신궁으로 들어가자 주황색으로 된 문 입구가 있다. 이는 한국의 솟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 특히 신궁은 주황색으로 되어 있다. 중국 사람들은 붉은색을 좋아하고 일본사람은 주황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신궁 안으로 점점 들어가자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덮여 있다. 그 중에 7백 년이 넘었다는 삼나무가 압권이다.

 

 

정말 크다. 기리시마 신궁은 천황과 관련이 있는 신궁이라서 그런지 천황이 직접 식수한 나무가 있다.

신궁에서 일반인이 갈 수 있는 곳은 신을 모신 건물의 입구까지이다. 신궁의 핵심 건물의 중심에는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창덕궁 건물에도 국화문양이 새겨져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침 세 명의 세련된 일본 아가씨들이 와서 인사를 하는 것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이들이 하는 행동을 살펴 보았는데 먼저 돈을 소리가 들리도록 넣고는 인사를 하고 박수를 친다. 즉 2례 2박 1례가 기본이라고 한다. 이들은 마지막 절을 하고는 다시 나와서 나뭇가지에 달린 작은 종이들을 읽어보면서 기분 좋게 웃고는 신궁을 나갔다.

 

 

실에 매달린 종이에는 앞으로의 운세를 나타내는 글이 써 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마음에 드는 내용이 나올 때까지 계속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는 운명을 결정론이 아니라 개척론으로 해석하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신궁 입구 한 모서리에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6-1867)와 그의 부인의 상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료마가 이곳까지 신혼여행을 왔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사카모토 료마는 후대망의 주인공으로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료마는 막부 시대 말기의 손꼽히는 검객으로 서양 근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선구자였으며 무엇보다도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연 국민적 영웅으로 불린다. 그는 당시 최대 지방 세력인 사쓰마 번(薩摩藩)과 조슈 번(長州藩)을 중재해 에도 막부 타도를 위한 동맹을 성사시켰다.

 

이것이 1866년 1월 21일 사이고 다카모리와 기도 다카요시간에 맺은 역사적인 삿쵸비밀동맹인 것이다. 이듬해 막부가 메이지(明治) 천황에게 통치권을 넘긴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이루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봉건시대를 종식하고 메이지 유신을 통한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오늘날 일본인들은 료마가 없었다면 메이지 유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료마와 그의 부인 오료는 여러 온천을 순례하기도 하고 때로는 등산과 사냥을 즐기는 등 달콤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후세 일본 사람들은 이것을 일러 일본 최초의 신혼여행이라 부르게 되었다.

료마를 생각하면서 기리시마 신궁을 나와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산 중턱에 있는 목장에 딸린 식당으로 갔다.

 

 

 이곳은 목장에서 직접 가축을 길러 음식점도 함께하는 곳이다. 저녁식사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로 된 모듬불고기이다. 고기가 질겨서 별로였다. 역시 고기는 우리나라 고기가 좋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경치는 정말 좋았다. 낙조를 다 볼 수 있었고 해가 지자 가로등이 푸른빛이라 겨울의 풀이 마치 여름의 푸른빛으로 바뀌는 것처럼 인상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본에서의 첫날밤을 묵을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4성급이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옷으로 갈아입고 온천으로 갔다. 온천은 옛날에 내렸던 빗물이나 눈이 고여 있다가 분출하는 것이라고 한다. 온천과 목욕의 차이는 온천은 내 몸에 좋은 것을 받으러 가는 것이고 목욕은 내 몸에 들어온 나쁜 것을 보내려 가는 곳이라고 한다. 따라서 온천은 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온천을 하고는 물을 많이 먹고 말려주면 좋다. 특히 얼굴은 말려주어야 하고 화장품은 바르지 않고 잠을 자는 것이 좋다.

이러한 가이드의 설명을 떠올리면서 온천에 들어갔다. 우선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바구니다. 우리처럼 열쇠가 있는 옷장이 아닌 그냥 바구니에 옷을 담는다. 조금은 어색했다. 탕 안에 들어가자 탕 안이 너무 깨끗하다. 특히 야외 온천은 특이했다. 온천수가 쉼 없이 흘러 내려온다. 온천수가 직접 흘러내리는 자리에는 유황색이 짙게 배어 있어 이 온천의 수질을 말하는 것 같다. 몸을 담그고 주변을 살피자 활엽수가 시들지 않고 그대로 푸른빛을 띠고 있다. 동백꽃도 활짝 피어 있다. 하늘에는 반달이 중천에 떠 있어 분위기를 더욱더 고즈넉하게 한다. 탕의 크기도 적당하다. 환상적이다. 이 경치가 너무 좋아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서 일행들을 모시고 와서 함께 감상을 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집 정원에 이런 노천 온천탕 하나 갖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하면서 첫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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