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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한 북큐슈 여행

by 황교장 2012. 5. 17.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한 북큐슈 여행

 

5월 4일 오후 6시에 부산국제여객 터미널에 40년 지기인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인 친구들과 함께 일본 북큐슈 2박 3일 동안 여행을 하기 위해 모였다. 9시에 출국 수속을 마치고 승선을 했다. 2만 톤급의 뉴카멜리아호인데 우리 일행 12명이 함께한 호실은 개인당 매트 하나, 이불 하나, 베게 하나, 사물함 하나가 비치되어 있었다. 군대 내무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는 즐거움에 다들 표정이 밝다. 배에서 집집마다 다양하게 준비를 해 온 저녁을 나누어 먹었다.

밤 10시 반에 부산항을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후쿠오카 하카다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9시 40분에 유후인으로 출발했다. 3개월 전에 이곳에 올 때는 겨울이었는데 3개월 후에는 신록이 절정인 늦봄이다. 고속도로 주변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찔레꽃도 피어 있고 오동나무 꽃도 피어 있다.

특히 온 산을 노랗게 물들 정도로 꽃이 만발한 나무가 있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밤나무라고 한다. 우리나라 밤나무 꽃과는 색깔에서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 밤나무 꽃은 주로 흰색을 뛰는데 이곳 밤나무는 노란색이다. 아마 토양과 기후 조건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차는 약 2시간을 달려 유후인에 도착했다. 유후인은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렇지만 아기자기하게 먹을 것, 볼 것들이 많아서 일본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 중 하나라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 3번째로 용출량이 많은 온천이다. 그런데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2차선이라 차가 제법 밀린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질서를 지키면서 물 흐르듯이 차들이 소통이 되고 있다. 더욱 특이한 것은 연간 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는데도 그 흔한 호텔이나 콘도가 없다. 자연 그대로의 개성을 살려서 주변의 산세와 물과 집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우리 일행은 먼저 긴린코(金鱗湖) 호수로 갔다. 흔히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자그마한 호수다. 호수 주변 경치는 물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들여다보니 물반 고기반이다. 제법 큰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있다. 긴린코 호수는 온천의 원천이 흐르고 있어 호수의 수온이 높다. 그래서 새벽에는 안개가 유후인 전체를 감싼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간 시간은 한낮이어서 안개는 볼 수 없었다.

긴린코 호수는 ‘언덕 아래의 호수’를 의미하는 ‘다케모토노이케’ 였는데 1884년 모리쿠소라는 유학자가 이곳의 노천탕 ‘시탄유’에서 온천을 하다가 호수에 뛰어오른 물고기의 비늘이 석양에 비쳐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긴린코라고 지었다 한다. 긴린코 호수를 한 바퀴 돌고는 유휴인 거리를 나왔다. 유후인 거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유후다케산(1584m)이다. 아주 특이하게 생겼다. 산 밑에는 나무들이 있지만 고도가 높아지면서 바위만 있는 민둥산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등산을 하려 많이 온다고 한다. 나도 한번 올라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웅장한 유후다케산을 바라보면서 유후인 거리를 걸었다. 길가에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물건이 참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다. 여성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날이 더워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에 들어가니 점원이 아이스크림을 물고는 들어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손으로 자기 입을 가리키고 있다. 내가 ‘아이스크림 노’라고 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예쁘게 진열된 상품에 아이스크림이 녹아 떨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급히 밖으로 나와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는 다시 들어가서 천천히 구경을 했다. 모든 물건들이 올망졸망 앙증맞게 보였다. 그런데 화장실을 찾으니 보이지 않았다. 겨우 물어 물어서 찾아가니 아주 구석진 곳에 있었다. 안내 표시가 좀 잘 되었으면 한다.

 

 

 

가이드가 이곳에서 꼭 맛보아야 되는 것은 금상고로케라고 하였다. 사서 먹어 보았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이 집은 NHK 방송사에서 제1회 일본 전국 고로케 콩쿨에서 금상을 수상한 가게라서 유명하다고 한다.

유후인 거리를 한 바퀴 돌고는 버스가 있는 곳에 오니 근처에 민속박물관이 있다. 이곳 가게에서 일본 오죽(烏竹)으로 된 피리를 하나 샀다. 값도 적당하지만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오죽으로 된 피리여서 더욱더 사고 싶었다. 시간이 부족하여 유후인 거리를 주마간산격으로 보았다. 언젠가 여유가 있을 때 이곳에서 한 일주일 정도 머무르면서 온천도 하고 이곳의 모든 정취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목적지인 벳푸로 향했다. 벳푸로 가는 길은 유후다케산의 6부 능선을 넘어서 간다. 산 정상까지 나무가 거의 없다. 용암이 흘러내린 곳은 나무가 자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후다케산을 넘어오자 차안으로 방귀 냄새 같은 유황냄새가 스며 들어온다. 유황산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참 특이한 곳이었다.

멀리 바다가 보이면서 도시가 나타났다. 벳푸다. 일본 최대의 온천단지답게 곳곳에서 수증기가 올라오고 유황냄새가 난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는 가마도지옥 관광을 나섰다. 벳푸에는 총 9곳의 지옥이 있다. 이들 지옥의 특징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그 중 우리가 본 것은 가마도(가마솥)지옥이다. 오래 전 가마도하지만구의 제사 때 이곳의 열기를 이용해 신전에 올리는 공양밥을 지었다는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수온이 100도 이상 되는 곳도 있다. 천주교 교도들에게 박해를 가하기 위해 이 물이 이용되기도 한 아픈 역사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물이 몸에 좋다고 한다. 한 잔을 마시면 10년이 젊어지고 두 잔을 마시면 20년이 젊어진다고 한다. 나는 두 잔을 마시려고 마음먹었지만 너무 뜨거워서 한 잔만 마셨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한껏 젊어진 것 같다. 뜨거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구멍이 있었다. 이 수증기에 눈을 쏘였더니 눈이 가려운 증세가 금세 가셨다. 아마 소독이 된 것일 게다.

 

 

 

 

 

 

 

 

이곳에는 족욕장이 설치되어 있어 우리 일행은 족욕을 즐겼다. 일본도 연휴라 관광지가 많이 붐빈다. 따라서 빨리 가지 않으면 오늘 일정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아소 활화산 분화구를 볼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따라서 유황재배지인 유노하나관광을 생략하고 바로 아소로 출발을 했다. 벳푸에서 아소로 가는 길도 참 아름답다.

차가 분화구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산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분지다. 아소가 칼데라임에 확실히 느껴졌다. 정말 넓고 큰 분화구다. 세계 최대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2월초에 올 때는 분화구에서 위쪽 산을 쳐다만 보았는데 이번에는 산 위에서 거대한 분화구를 내려다보았다. 차는 분화구 중심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반대편 산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도중에 있는 목장에는 말들을 방목을 하고 있다. 조금 더 오르자 아소의 신이 쌀을 수확했을 때 쌓아둔 것이 지금의 언덕이 되었다고 전해오고 있는 고메즈카(米塚)오름이 동그랗게 솟아 있다.

아소산은 세계 최대의 칼데라로 이루어진 화산이다. 아소산의 면적은 380㎢로 동서 18㎞, 남북24㎞, 둘레 128㎞이다. 아소의 폭발은 3천만 년 전부터 계속되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10만 년 전에 있었던 대폭발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아소산은 아소오악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카다케산(1506m), 다카다케산(1592m), 네코다케산(1433m), 에보시다케산(1337m), 가지마다케산(1321m)이다. 이중 지금도 연기를 뿜고 있는 곳은 나카다케산의 나카다케화구이다.

차가 정상 가까이 다다르자 칼데라가 광활하게 자라하고 있다. 한 번 폭발하고 다시 화산이 폭발한 흔적이다. 직경 1km 원형 초원 한가운데는 큰 연못이 있다. 이는 소와 말이 물을 마시는 곳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차는 이윽고 아소산로프웨이에 도착을 했다. 아소산로프웨이는 1959년 세계 최초로 활화산에 설치된 91인승 대형 케이블카이다. 108m의 정상까지 도착하는 데는 약 4분이 걸렸다. 로프웨이에서 내려 조금만 오르면 분화구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분화구는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면 활동이 활발하거나 유황가스가 끓어올라 화구 부근의 진입이 통제되고 날씨가 맑은 날에도 화산재가 많이 분출되거나 바람이 역풍을 만나면 볼 수가 없다. 첫 등정에 파란 분화구를 볼 수 있을 때에는 반드시 복권을 사 두라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정말 행운이다. 이렇게 맑은 날에 정상과 분화구 밑을 함께 볼 수 있는 날은 일 년 중 며칠 안 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반드시 삼대적선이 아닌 오대적선을 했을 것이다.

이 분화구는 폭 1,1km, 깊이 100km나 된다고 한다. 말이 100km이지 이는 250리 거리다. 1200도로 끓고 있는 용암의 색깔이 에메랄드빛을 뛰고 있다. 이를 보고 있노라면 지구가 살아서 심장이 펄떡이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구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쉼 없이 지각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유황덩어리와 화산석을 팔고 있었다. 특히 무좀에 좋다고 하면서 하나 사기를 권한다. 그런데 가이드로부터 미리 이 물건들은 국외로 반출되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로 사면 안 된다고 단단히 교육을 받았다.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와야 한다. 내려오는 길 역시 멋이 있다. 한참을 내려오니 이름 모를 식물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오자 철쭉이 자라고 있다.

 

 

 

 

약 2주 정도만 더 있으면 철쭉이 만개할 시기라고 한다. 아쉬움을 남기고 아소산을 내려왔다.

차는 제법 집들이 많은 도시로 접어 들었다. 구마모토다. 3개월 전에 이곳을 지나친 적이 있어 낯설지가 않다. 이곳 식당에서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사람의 입맛은 각각 다르다. 나는 참 맛있게 먹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너무 달다고 한다. 식사를 하고 나오니 16일 보름달이 환하게 나무 가지 위에 떠 있다. 달은 시공을 초월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보름달이나 일본에서 보는 보름달이나 한결 같다. 구마모토 교외의 한 호텔에서 여정을 풀었다.

 

5월 6일 아침 7시 30분에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는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다자이후텐만구(태재부천만궁)이다. 2월에 왔을 때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주변 경관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신록이 절정이다. 단지 3개월 전이었는데 계절은 이렇게 다르다. 세상만사 변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없다. 전에 갔던 면세점에 또 다시 갔다. 가이드가 소개하는 면세품은 전과 비슷하다. 그 중 괜찮게 생각되는 물건을 구입하고는 다자이후텐만구로 갔다. 다자이후는 1300년 전 큐슈 전체를 다스리는 관청이 있어 약 500년간 그 역할을 담당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태재부천만궁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794-1185)의 학자이며 시인, 정치가인 스가와라미찌자네(菅原道真,845-903)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다.

스가와라미찌자네는 다섯 살에 일본 고유의 시인 와카를 지었고, 열 살부터 한시를 완벽하게 지어내는 신동이었다고 한다. 왕의 총애를 받아 일찍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많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56세이던 901년 우대신이라는 높은 관직에서 갑자기 다자이후의 관리로 좌천된 이후 2년 만에 세상을 뜨게 되었다. 903년 생애를 마친 스가와라의 유해를 소달구지에 싣고 가던 중 수레를 끌던 소가 지금의 텐망궁 자리에서 꼼짝을 안했다고 한다. 아무리 잡아 당겨도 소용이 없자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예정된 장소를 바꾸어 이곳에 무덤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스가와라는 학문의 신, 지성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해마다 전국에서 700만 명 정도의 참배자가 방문하고 있다. 특히 입시철이 되면 합격 기원 부적을 사기 위해 일본 전역에서 백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신사 입구에를 지키고 있는 소는 지금도 여전히 많은 관광객들이 머리를 만지고 있다. 그런데 머리를 만지기만 하면 안 되고 소의 머리를 만지고 나서는 자신의 머리도 같이 만져야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나도 따라 한번 해 보았다. 혹시나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들어가는 입구에는 아치형 다리 3개가 이어져 있다. 처음 다리는 과거의 다리다. 과거의 다리를 건널 때에는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뒤돌아보는 것은 나의 과거를 후회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리고 가운데 다리는 현재의 다리다. 현재의 다리는 확인하고 뒤돌아보아도 된다. 현재의 삶을 신중하게 그리고 경건하게 살라는 의미일 것이다. 마지막 다리는 미래의 다리다. 이 다리는 천천히 뒤돌아보고 음미하면서 걸어야 한다. 미래는 천천히 와야 한다. 미래가 빨리 가버리면 삶도 끝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일행들에게 이 미래의 다리에서 사진도 찍고 천천히 경치를 즐기면서 지나가게 했다.

스가와라를 모신 본전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본전의 지붕은 88장의 편백나무 껍질로 지붕을 이었다고 한다. 이 지붕은 40년마다 한 번씩 지붕을 갈아준다고 한다. 본전 앞에는 오래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스가와라는 매화나무를 아주 사랑했다고 한다. 스가와라가 죽자 그의 무덤 앞에는 그가 평소에 돌보던 매화나무의 씨가 교또에서 이곳까지 날아와서 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매화나무의 이름이 비매(飛梅)다. 천만궁 앞의 비매는 2월초에는 꽃이 피려고 꽃망울을 머금고 있었는데 이젠 잎이 무성하다. 비매는 세 그루처럼 보이지만 한 그루가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 한다.

천천히 경내를 둘러보자 전에 왔을 때는 미처 보지 못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천오백 년된 녹나무가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변의 경관을 즐기면서 천만궁을 나왔다. 천만궁을 나와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집의 우메가에모찌(매화가지떡)를 사서 먹었다. 이 집의 떡은 맛이 좋아 2봉지를 샀다.

 

 

이곳에 우메가에모찌가 유명한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스가와라미찌자네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딸이 갑자기 죽자 그는 밥도 먹지 않고 밤낮으로 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이웃의 할머니가 찹쌀떡 위에 매화 가지를 얹어 준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근처에 있는 면세점에서 쇼핑을 마지막으로 하고는 하카타항으로 향했다. 배는 예정시간에 출발을 했다. 이것으로 무사히 2박 3일의 일본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친구들은 참으로 오래된 인연이다. 철 모르던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난 사이니 만 40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50대에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늙어서도 계속 유지가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인연을 많이 맺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다 함께 모여서 여행을 간 것은 십여 년 전 제주도 다녀온 후 처음이다. 그새 한 친구는 유명을 달리하기도 하였다. 제주도 갔을 때만 하여도 서로 아웅다웅 싸우기도 했는데 이번 일본여행은 그런 작은 다툼조차도 없었다. 그새 늙기도 하였고,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기도 하였다.

오래된 친구가 좋은 것은 같이 살아온 시간이 긴 만큼 공유하고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친구, 목소리만 들어도 현재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친구,

그래서 이런 말이 생긴 것일 게다.

“우리가 남이가. 친구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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