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촌생가와 미당시문학관
소쇄원을 나와 고창 선운사로 가는 길은 새로 고속도로가 생겨 훨씬 편해졌다. 담양-고창의 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서해안 고속도로에 접속하여 선운사IC에서 내리면 된다. 선운사IC에서 선운사까지는 불과 20여 분만이면 도착한다. 선운사 앞에 있는 선운산관광호텔에 숙소를 정해놓고 시간 여유가 있어 인근에 있는 인촌 김성수 생가와 미당 서정주 생가를 답사하기 위해 나섰다. 이 두 곳은 지금까지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다.
인촌 김성수(金性洙, 1891- 1955)선생의 생가를 답사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이 집이 십만 석을 했다는 데 있다. 경상도 부자는 천 석만 되어도 굉장하다. 그런데 이집은 만 석도 아니고 십만 석이다. 집의 풍수와 규모가 어떤지 궁금했다.
인촌선생은 호남에서 제일로 치는 하서 김인후선생의 13대 후손이다. 장인은 의병장 고경명선생의 후손인 애국 계몽운동가 춘강 고정주선생이다. 고정주선생은 조선말 규장각 직각을 지낸 분으로 슬로우시티 마을인 삼지내 마을에서 만 석을 했다.
본인은 동아일보, 고려대, 경성방직을 창립하고 제2대 부통령을 지냈다. 동생 수당 김연수는 삼양사를 설립했다. 또한 자식복도 있어 김상만 전 동아일보 회장이 인촌의 아들이고,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수당의 아들이다. 이만하면 한 번 가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매번 선운사에 올 때마다 인연이 안 닿았는지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만은 반드시 풍수를 한 번 보고 싶었다. 도로표지판 안내가 잘 되어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인촌 생가 가는 길에 미당시문학관이 있다. 인촌 생가를 먼저 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미당시문학관을 보기로 하고 인촌 생가를 먼저 갔다.
표지판을 따라가면 인촌마을의 당산나무와 인촌정이 나온다. 그곳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생가 앞에 주차장이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런데 한창 집수리를 하고 있었다.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구경을 했다.
담을 경계로 북쪽에 큰집, 남쪽에 작은집이 세워져 있다. 큰집에는 안채, 사랑채, 곳간채, 안문간채, 바깥문간채 솟을대문 등이 있다. 작은집은 큰집에 비해 곳간채만 없을 뿐 집의 규모나 격식에 큰 차이가 없다. 특이한 것은 하나의 대지 안에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두 집을 함께 지은 점이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는 너무 빈약했다. 만 석을 한 경주 최부자집이나 청송의 심부자집에 비하면 격이 많이 떨어진다. 또한 안동의 여러 종택에 비해서도 빈약하다. 외형적으로는 한 삼천 석 정도 한 집처럼 보인다. 십 만석지기의 집으로는 너무 규모가 작아 놀라웠다.
이집 풍수를 보니 북현무는 좋으나 좌청룡과 우백호가 약하다. 그런데 남주작인 안산이 변산반도다. 안산과 집과의 거리가 멀수록 재력이 많다고 보는데 이집이 안산인 변산반도와 그 거리가 넓어서 10만석을 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런데 안산의 결함이라면 변산이 바위산이라는 점이다. 바위는 풍수상 화형(火形)으로 본다. 화형은 불이 잘 나는 결함이 있다. 따라서 화적들과 도깨비불 때문에 이집에서 살지 못하고 줄포로 이사를 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인촌생가를 나와 미당시문학관으로 갔다.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1915-2000)선생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시인이다. 학창시절 미당의 시가 국어교과서에 많이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토속적, 불교적 내용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쓴 생명파 시인이다.
미당시문학관은 선운초등학교 분교 건물을 개조하여 2001년에 개관하였다. 전시품이 다른 문학관보다 풍부하다. 아마 85세까지 사셨으니 많은 자료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1층에는 시와 사진 등이, 2층에는 복원된 서재가, 3층에는 문서와 편지류 등의 유품이, 4층에는 발간 시집이, 5층에는 파이프·중절모·지팡이·훈장 등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6층은 전망대이다.
특히 6층 전망대에서 이곳의 풍수를 보기에는 너무 적격이다. 인촌 생가와 같이 변산이 안산이다. 그리고 주변의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답다. 시인이 나올 수밖에 없는 풍광들이다. 제2전시동에는 친필 시 액자, 육필 원고, 서정주 시 연구 논문, 대표 시, 기타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미당시문학관의 특징은 다른 문학관과는 달리 시인을 영웅시하는 선전물이 없다. 시인의 시 세계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대표적인 시들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일제 시절 친일작품과 ‘전두환 56회 생일 축시’ 등도 전시돼 있다.
시인에 대한 판단은 문학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스스로 내리도록 한 배려인 것 같다. 전시실을 돌면서 눈에 익은 시들을 읽고 있는데 뻐꾸기가 유난히 많이 울고 있다. 많은 시들 중에 가슴에 남는 시 몇 편을 올린다.
선운사 동구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40년인가 50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문학관을 나와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있는데 시문학관을 관리하는 분이 무엇을 그리 열심히 보는지를 묻는다. 이곳의 풍수를 보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분이 하는 말이 전에 살던 집은 마음에 영 들지 않았는데 지금 사는 집은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 풍수하고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물어본다.
풍수에 있어 명당은 우선 자기한테 가장 적합한 곳이므로 그집에 사는 사람과 그 땅의 기운이 맞을 때 가장 좋은 집이라고 답해주니 그러면 미당 생가에 가보았는지를 물어본다. 6층 전망대에서 미당생가의 풍수를 살펴 보았는데 그리 썩 좋은 명당은 아닌 것 같다고 답하자 미당 선생의 부친이 살다가 초등학교 때 줄포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미당선생의 부친은 한학자이고 훈장이었다고 하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인촌선생댁의 머슴이라고 알고 있는데 머슴이 아니고 총 관리자인 마름이었다고 알려준다.
미당시문학관을 나오면 초등학교의 운동장이었을 앞마당의 왼쪽 끝에 커다란 자전거 한 대가 놓여 있다. 자전거 아래에 미당의 '자화상' 詩(시)와 함께 자전거에 대한 내력이 적혀 있다.
이 자전거는 '바람의 자전거' 다. 미당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구절인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를 조형화했다. 두 바퀴는 8자를 표현하고, 또한 영원히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바람의 역동성을 꿈꾸며, 질마재 고개를 힘들게 넘어가듯 세상의 소중한 비밀을 알고자 힘써 노력하는 모든 문학 소년들의 꿈을 상징화한 것이라 한다.
마침 해질녘이라 지는 해를 배경으로 자전거가 하늘로 바람을 가르며 날아갈 듯이 보였다.
미당시문학관을 나와 다시 바닷가 쪽으로 달렸다. 도로변에는 복분자를 재배하고 있는 농장과 풍천장어를 파는 식당이 많다. 이곳이 복분자와 풍천장어의 고장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복분자는 고창 복분자를 제일로 쳐준다. 선운산 깊은 산중의 맑은 물과 서해안의 해풍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이 복분자로 담근 술이 복분자주이다. 복분자(覆盆子)의 ‘복’은 뒤집힐 ‘복(覆)’과 동이 ‘분(盆)’자를 쓴다. 이는 복분자의 모양이 항아리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고창에서 생산되는 복분자를 먹고 소변을 보면 요강이 뒤집힐 정도로 오줌발이 좋다고 한다.
풍천장어는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선운산 입구 주변 강에서 잡히는 뱀장어를 말한다.
다른 장어보다 지방질이 적으며 맛이 담백하고 구수하다. 비타민 A와 E가 풍부하고 고혈압, 시력보호, 정력 강화 등에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곳에 오면 늘 가는 식당이 있다. 강가 풍천이 잘 보이는 곳에 있는 식당인데 새롭게 잘 단장이 되어 있다. 풍천장어와 복분자주를 한 병 시켰다. 복분자주 한 잔에 풍천장어 한 점 이 맛은 직접 먹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여행 중 그 지방의 특산물을 먹는 즐거움 또한 여행의 백미다.
풍천장어 한 점에 복분지 한 잔을 마시고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해질녘의 풍천을 바라보며 사람의 한 살이를 되새겨 보았다. 이 땅에서 태어난 위대한 한 시인도, 부와 명예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정치인도 지금은 모두 흙으로 돌아갔다. 이들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이견이 많다. 과연 어떻게 살다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푸르른 날
-서정주 작시 송창식 노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처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