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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능가산 내소사

by 황교장 2012. 7. 7.

능가산 내소사

 

  호남고속도로 선운사 IC에 접속하여 줄포IC로 나오면 내소사로 가는 이정표가 잘 나와 있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20여 분만에 내소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내소사는 행정구역상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변산반도 남단에 있는 절이다. 변산반도 일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변산반도는 바다를 따라 도는 외변산과 남서부 산악지역의 내변산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택리지의 복거총론에는 “노령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서 와서 서해로 삐쭉이 들어갔다. 서쪽과 남쪽과 북쪽은 모두 큰 바다요, 산속에는 만학천봉이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 높은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산마루, 평지나 비스듬한 언덕을 막론하고 모두 큰 소나무가 하늘 높이 해를 가리고 있다. 골 밖은 모두 소금을 굽거나 물고기 잡는 사람들이 살고 산속에는 옥토가 많다.”라고 되어 있다. 산속에 옥토가 많은 것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의 요건에 부합한 곳이다. 십여 년 전에 내변산에서 출발하여 직소폭포를 거쳐 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509m)에 오른 적이 있는 데 변산의 경치는 선경 그 자체였다. 신선들이 살았다는 전설이 실감날 정도로 빼어났다.

 

  변산의 다름 이름은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 소래산 등으로 이름에 도교와 불교의 색채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내소사는 능가산(424m) 가인봉 아래 자리잡고 있다. 능가산은 본래 스리랑카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석가모니 부처께서 대혜보살에게 능가경(부처님이 능가산에서 대혜보살을 위하여 여래장 연기의 이치를 설한 대승경전)을 설한 장소인데 고려시대에 원감 국사 충지가 개암사에 머물면서 능가경을 강의하여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내소사는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 일이 소생되게 하여 주십시오(來者皆蘇)’라는 해구 두타 스님의 원력에 의해 백제 무왕 34년(633)에 창건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된 건물을 인조 때 청민 선사가 중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음식점 골목을 지나면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 앞에는 오래된 당산나무가 한 그루 있다. 할머니 당산이다. 내소사 절 마당에는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있다. 당산나무는 부락의 수호신을 가리킨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신성한 당산나무에 잡인들이 함부로 범접하지 못하도록 왼쪽으로 꼰 새끼줄로 금줄을 만들어 둘러놓았다. 정월대보름 전날이면 지역민과 함께 새 날을 기원하는 축제를 열고 있다. 내소사 경내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에서 지역민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일주문 앞 할머니 당산에서 줄다리기와 당산굿을 하고 있다.

 

 

  능가산 내소사(楞伽山來蘇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길 양 옆에는 쭉쭉 뻗은 전나무 숲길이 열린다.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뽑혔다.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보니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가 떠올랐다. 절 집에 전나무를 많이 심는 것은 곧고 당당하게 자라고 겨울에도 푸른색을 유지하여 참선 수행을 하는 스님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길을 따라 무념무상으로 걸어 가는데 안내판에 몇 해 전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사극 ‘대장금’을 촬영했던 연못이라고 적혀 있다. 사람들이 연못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숲길이 끝나는 지점에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으로 들어서면 금줄이 칭칭 감긴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다. 할아버지 당산나무다. 일주문 입구에 있는 할머니 당산나무와 짝을 이루고 있다. 이는 민간신앙이 절집 안으로 들어온 유일한 예라고 한다.

 

 

  대웅전으로 가기 전에 먼저 2층 누각인 봉래루(逢來樓)를 만난다. 본래 실상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봉래루 마루 밑을 지나면 왼쪽으로 고려동종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보종각이 서 있다.

 

 

보종각 속에 있는 고려동종(보물 277호)은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의 청림사 종으로 만들었으나, 절이 폐사된 뒤 땅 속에 묻혀 있다가 수백 년 뒤 밭을 갈던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조선 철종 원년(1850)에 내소사로 옮겼다고 한다. 이종은 한국 종의 전통을 잘 계승한 종으로 그 표현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 걸작으로 손꼽힌다. 종을 매단 고리에는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 기세등등하다. 종 몸통에는 덩굴무늬 띠, 연꽃, 구름 위에 삼존상 등이 있다. 종에는 聞聲悟心花開實新(문성오심화개실신, 소리를 들으면 마음을 깨닫고 꽃이 피면 과실이 맺힌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내소사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이다. 대웅보전이 당당하게 서 있다. 대웅보전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풍광은 일품이다. 좌청룡과 우백호 그리고 안산인 남주작이 조화를 이룬다. 특히 북현무인 가인봉이 빼어나다.

대웅보전은 쇠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끼워 맞추는 결구 기법으로 조성된 게 특징이다. 화려하면서도 담백한 목조건물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먼저 눈에 뛰는 것은 대웅보전 현판글씨다.

 

 

내소사 대웅보전 현판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

 

 

백련사 대웅보전 현판

 

동국진체의 완성자인 원교 이광사의 글씨다. 이광사는 해남 대흥사와 강진 백련사의 현판도 썼다.  원교 이광사(1705-1777)는 우리가 잘 아는 연려실기술의 저자인 이긍익이 이광사의 장남이다. 동국진체는 중국의 서체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추사체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독특한 필법이다. 동국진체는 녹우당 현판을 쓴 옥동 이서를 시작으로 공제 윤두서, 백하 윤순을 거쳐 원교 이광사가 완성했다. 동국진체 역시 추사체처럼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글씨다.

 

 

 

  내소사 대웅전이 자랑하는 것 중 하나는 꽃살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장식무늬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웅전의 꽃살문은 나뭇결의 무늬와 색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무채색 소지단청을 한 것이라고 한다. 불가에서 육법공양(六法供養)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꽃, 초, 향, 쌀, 과일, 차 등 여섯 가지 물건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이중 꽃 공양이 가장 중요하다. 따라서 절집 문짝을 꽃살무늬로 장식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목재로 화려하게 결구된 공포와 대들보, 천정의 각종 문양으로 가득한 가운데에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지키고 있는 보살님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래서 보살님이 보고 있을 때 시주를 했다. 시주를 하고는 바로 사진을 찍었다. 백의관음보살좌상의 눈을 보고 걸으면 눈이 따라온다. 그 눈을 마주치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내소사 대웅전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중 대웅전을 지은 목수 이야기와 단청을 칠한 파랑새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대웅전 목수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대웅전을 짓기로 한 목수는 3년 동안 집은 짓지 않고 법당을 장식할 나무토막만 다듬고 있었다. 이를 한심하게 여긴 동자승이 나무 한 토막을 감추어 버렸다. 드디어 그 일을 마친 목수가 나무토막을 헤아려 본즉 하나가 부족했다. 목수는 장탄식을 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일을 포기하려고 주지 스님에게 말했다. 이를 보고 동자승이 감추었던 토막을 내놓았다. 그러나 목수는 그것을 부정한 것이라 하여 쓰지 않고 집을 지었다. 지금도 대웅전은 어느 구석엔가 목재 하나가 빠져 있는 미완성의 건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웅전 단청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마침내 대웅전을 다 짓자 주지스님은 화공을 불러 법당 안을 단청하도록 했다. 그런데 화공이 말하길 앞으로 100일 동안 아무도 법당 안을 들여다보지 말도록 당부를 했다. 그런데 99일째 되던 날, 호기심 많았던 동자승이 그만 문틈으로 법당 안을 몰래 들여다봤다. 그런데 화공은 보이지 않고 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단청을 하고 있었다. 동자승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니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집채만 한 호랑이가 쓰러져 있었다. 그래서 법당 안의 단청이 아직도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서정주 시인의 산문시인 ‘내소사 대웅전 단청’에 잘 나타나 있다.

 

내소사(來蘇寺) 대웅전(大雄殿) 단청(丹靑)/서정주

 

내소사 대웅보전 단청은 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호랑이의 힘으로도 칠하다가 칠하다가 아무래도 힘이 모자라 다 못 칠하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이다.

내벽(內壁) 서쪽의 맨 위쯤 앉아 참선하고 있는 선사(禪師), 선사 옆 아무것도 칠하지 못하고 휑하니 비어둔 미완성의 공백을 가 보아라.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대웅보전을 지어 놓고 마지막으로 단청사(丹靑師)를 찾고 있을 때, 어떤 해 어스럼 제에 성명도 모르는 한 나그네가 서로부터 와서 이 단청을 맡아 겉을 다 칠하고 보전 안으로 들어갔는데, 문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며 말했었다.

“내가 다 칠해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지 마라.”

그런데 일에 폐는 속(俗)에서나 절간에서나 언제나 방정맞은 사람이 끼치는 것이라, 어느 방정맞은 중 하나가 그만 못 참아 어느 때 슬그머니 다가가서 뚫어진 창구멍 사이로 그 속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나그네는 안 보이고 이쁜 새 한마리가 천정을 파닥거리고 날아다니면서 부리에 문 붓으로 제 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단청해 나가고 있었는데, 들여다보는 사람 기척에 “아앙!” 소리치며 떨어져 내려 마루 바닥에 납작 사지를 뻗고 늘어지는 걸보니, 그건 커어다란 한 마리 불호랑이었다. “대호(大虎) 스님! 대호(大虎) 스님! 어서 일어나시겨라우!”

중들은 이곳 사투리로 그 호랑이를 동문(同門) 대우를 해서 불러댔지만 영 그만이어서, 할 수 없이 그럼 내생(來生)에나 소생(蘇生)하라고 이 절 이름을 내소사(來蘇寺)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단청에다가 미처 다 못한 그 빈 공간을 향해 벌써 여러 백년의 아침과 저녁마다 절하고 또 절하고 내려오고만 있는 것이다.

 

  내소사의 중요 문화재로는 고려동종과 대웅보전 외에도 조선 태종 때 어느 이씨부인이 사별한 남편의 명복을 빌며 묘법연화경을 일일이 손으로 필사해 만들었다는 법화경절본사경(보물 제278호)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걸개그림이라는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8호)이 있다.

 

  내소사를 보고는 다시 일주문을 나와 식당을 알아보았다. 점심을 이곳에서 먹기로 하였다. 예부터 변산을 두고 생거부안(生居扶安)이란 말이 있다. 부안사람들은 ‘임금님처럼 먹고 살았다’는 말이다. 그만큼 먹거리가 풍부하다. 그 중 부안의 별미를 꼽으라면 첫째가 젓갈백반일 것이다. 이곳 곰소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젓갈 산지이다. 식당에서 젓갈백반을 먹어보니 맛이 괜 찮았다. 조개젓, 멸치속젓, 꼴뚜기젓, 낙지젓 등등이 입맛을 돋우었다. 젓갈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부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중에 줄포자연생태공원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가 보지 못한 곳이라 그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부안군 줄포면 우포리 일대에 저지대 침수에 대비하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 제방 안쪽에 갈대와 띠풀 등이 무성해지고, 담수습지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생태늪지로 발전했다.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줄포자연생태공원은 총 면적은 20여 만 평으로 광활하다. 부안군은 이곳에 갈대숲 10리길, 야생화단지, 은행나무숲길 등을 조성해 놓았다. 공원 곁의 줄포만은 2010년 1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곳이다. 이곳에는 황조롱이를 비롯해 50여 종의 조류와 염생식물, 갯벌동물 등이 한데 어울리며 살아간다. 칠면초 군락도 넓게 펼쳐져 있다. 또한 2005년 방영됐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 촬영됐던 곳이라 그때 만들어진 조각상과 세트가 남아 있어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안에 들어가니 개양귀비꽃이 한창이다. 곳곳에 원두막을 만들어 놓았다. 점심 먹고 난 뒤라 잠이 쏟아졌다. 원두막에 누우니 바람이 산들산들 시원하게 불고 스피커에서는 70-80의 음악들이 흘러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이다. 정태춘의 촛불, 은희의 회상 등.... 음악을 들으면서 팔베개를 하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한참을 정신 없이 잤다. 집에서 자는 듯이 깊이 잠이 들었다. 깨고 보니 집이 아닌 생태공원이었다. 여름햇살을 피해서 원두막 아래에서의 한잠, 신선이 따로 없었다.

  원두막을 나서니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은 선선하고 몸도 맑고 개운해져서 부산까지 내처 달렸다. 부산에 무사히 잘 도착을 했다.

 

  학교라는 조직은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 특히 자기 나름대로 전문가로서의 일가견을 가진 교사집단은 개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각각 자기의 개성만을 내세운다면 그 조직은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서로 상대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래포의 형성이다. 래포가 형성되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래포를 형성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더불어 여행을 가서 하룻밤을 같이 자고, 먹고, 보고,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늘 같은 공간에서 보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여름방학 직원연수는 중요하다. 남들이 보면 일견 놀러가는 것처럼 인식할 수도 있으나 잘 노는 것은 잘 일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다. 잘 놀아야 잘 일할 수 있다. 또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냥 준비 없이 가는 것보다는 여행지에 대한 사전정보가 있으면 더 잘 보이고 새롭게 보이는 법이다.

 

  글이란 남들이 써 놓은 것을 보면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쓰려고 하면 쉽지 않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부족한 능력이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참고서적 또한 내 키만큼 쌓아놓고 뒤적이면서 썼다. 내 글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을지라도 필요한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된다면 좋겠다.

사실은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모두 이 연수에 참가하기를 바라며, 연수를 가기 전에 꼭 읽어주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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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GREEN / Susan Jacks

Sometimes love would bloom in the springtime

Then my flowers in summer it will grow

Then fade away in the winter

When the cold wind begins to blow

But when its evergreen, evergreen

It will last through the summer and winter too

When love is evergreen, evergreen

Like my love for you

 

So hold my hand and tell me

You'll be mine through laughter and through tears

We'll let the whole world see our love will be

Evergreen through all the years

For when its evergreen, evergreen

It will last through the summer and winter too

When love is evergreen evergreen

Like my love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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