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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여행

재송여중 부장연수2-중국계림2

by 황교장 2014. 8. 30.

 

중국계림-2

 

정강왕성(靖江王城)은 명나라 태조 주원장 형님의 손자인 주수겸이 정강왕에 책봉되었을 때 지은 왕성이다. 1372년에 짓기 시작하여 20년 후에 완공된 정강왕성에는 명대에 모두 14명의 정강왕이 거쳐 갔다고 한다.

주원장은 명나라를 세우고 자신의 아들들을 각 지역의 왕으로 책봉하였다. 그런데 이곳 계림은 아들 중 아무도 희망자가 없어서 형님의 손자인 종손을 이곳 왕으로 책봉을 했다고 한다.

 

 

자금성은 1406(영락 4)에 짓기 시작해서 1420(영락 18)에 완공하였지만 정강왕성은 중국이 자랑하는 자금성보다도 무려 이십 수 년 먼저 완공하였다고 자랑을 한다. 규모는 중국의 다른 왕궁들에 비하면 아주 작다. 왕궁 안으로 들어가자 당시 왕이 즐겨 보았다는 연극을 무희 두 사람이 잠깐 동안 보여 주었다.

 

 

예술성은 없고 상업성만 보였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오직 장사와 관련을 지어 놓았다.

정강왕성은 현재 광서사범대학이다. 대학과 관광지를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이 또한 상업성으로 보인다. 지난번에 방문한 장춘의 동북대학교 사범대학이나, 제남의 산동대학교 역시 대학이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느껴졌다.

 

정강왕성이 끝나는 지점에 아름다운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독수봉(獨秀峰)이다. '홀로 빼어난 봉우리'라는 뜻이다. 독수봉은 그 모습이 웅장하여 '남천일주(南天一柱)'라 불린다고도 한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이곳이 요산과 더불어 풍수가 가장 좋은 곳이어서 왕성을 지었다고 했다. 독수봉은 약 70m의 봉우리지만 직벽이어서 올라가는데 많은 힘이 들었다. 왕들만 올라갈 수 있는 봉우리였다고 한다.

모 부장이 당시의 왕들이 이곳까지 올라가려면 힘이 꽤나 들었겠다고 하자 다른 부장이 뭐 가마타고 갔겠지라고 응수를 한다. 직벽의 바위산이지만 이곳에도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바위에 뿌리를 내려 버티고 있는 특이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생존에 대한 열망이 참 처절하게 느껴졌다. 식물이나 인간이나 산다는 것은 얼마나 힘이 드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독수봉 정상에 올라서니 옷이 다 젖었다. 복파산에 오를 때는 중간에 쉬어가서인지 땀이 별로 나지 않았는데 독수봉은 더 힘이 든 것이다. 복파산보다는 주변의 경관이 조금 떨어졌다. 이곳 정상에는 한쪽에 비석을 세워놓고 자기들 외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고서는 자기들이 찍은 사진을 판매하고 있다. 시에서 허가를 받고 하는 장사라고 한다.

독수봉 밑에 있는 연못에 독수봉을 넣으면 궁합이 딱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이는 음양이 균형을 이룬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연못이 자연연못인지, 인공인지는 알 수 없으나 풍수상 절묘한 조화가 느껴졌다.

 

독수봉을 내려오면서 아기를 목마 태운 남자와 부인이 같이 내려오는데 시종일관 남자는 수동적이고 여자가 적극적이고 목소리도 훨씬 컸다. 무슨 일인지를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제법 심하게 남편을 구박하고 있다. 가이드에게 왜 저러는지를 물어보니 이곳은 여자들이 가정의 주도권을 쥐고 있고, 밥은 거의 밖에서 사 먹는데, 집에서 하는 것보다 사 먹는 게 싸다고 한다. 만약에 집에서 밥을 먹으면 남자가 밥을 지어야 한다. 또한 여자가 기분이 좋으면 남편과 같이 밥 먹으러 나가지만 그렇지 않으면 혼자 가라고 한다고 한다. 지금처럼 부인이 관광지에서 남편과 같이 놀아주는 것만 해도 대단히 인심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 안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봉을 내려와 차에 오르니 에어컨이 너무 빵빵하다. 감기가 바로 걸릴 것 같아 웃옷을 갈아입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은 많은 사람들이 웃통을 벗고 다녔는데 지금은 별로 안 보인다. 올림픽 이후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고 한다.

 

다음 코스는 발맛사지다. 중국에 오면 거의 매일 저녁 발맛사지를 했다.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는 최고다. 50분간 발맛사지를 하는 동안 맛사지사 아가씨가 나에게 몇 살인지를 물어본다. 내가 몇 살쯤으로 보이는지 반문하자 아기씨 왈 49세 정도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몇 살로 보이는지 묻는다. 25살 이라고 답을 하자.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맞다고 한다. 우리 중에서 누가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지 물으니, 3학년부장이 제일 많아 보이고, 다음으로 교무부장 내가 가장 적게 보인다고 한다. 팁을 더 주고 싶었으나 가이드가 삼천 원만 주라고 하였다.

 

기쁜 마음으로 저녁을 먹고는 몽환이강(夢還漓江)쇼를 보러 갔다. 중국 전통 서커스와 서양 발레를 혼합한 형태였다. 서커스를 잘하는 나라는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다. 서커스는 고난도의 훈련이 필요하고, 너무 위험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힘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출연하는 배우 중 가장 어린 배우가 8살이고 최고 나이 많은 사람이 27세라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고난도 기술을 완벽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연습을 강제적으로 했겠는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왔다. 그 기술은 놀라웠으나 아이들의 표정은 불쌍해서 보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우리 방에 모여서 계림에서의 이틀 밤을 많은 담소와 웃음으로 보냈다.

 

계림에서의 3일째 아침을 맞이했다.

오전에 계림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이강 유람을 하는 날이다. 시내를 벗어나자 좁은 옛날 길이 나왔다. 육칠십 년대 우리나라 농촌길과 흡사하다. 길가에는 농작물이 자라고 있었다. 한쪽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다른 한쪽에는 며칠 전에 모내기를 하여 미처 땅내도 못 맡은 모가 심겨 있었다. 책에서만 보던 이모작이다. 그만큼 기후가 온화하다는 의미이다.

 

 

밭농사도 많이 하고 있다. 가지, 수박, 포도, 참외,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물외라고 불리는 것을 많이 재배하고 있다. 우리 것과 달리 크기가 매우 크다. 가지도 우리나라 가지보다 두 배는 됨 직하다. 토질이 비옥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도로사정은 썩 좋지가 않다.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포장이 파여 있어 차가 속도를 내지를 못한다.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 차 기사는 중앙선 넘기를 당연하다는 듯이 한다. 심지어 반대편에서 차가 오고 있는데도 중앙선을 넘는다. 받을려면 받고 피하려면 피하든지 하는 식이다. 막가파가 따로 없다. 그런데도 상대편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있다. 서커스가 따로 없다. 중국은 교통문화에 있어서는 아직 후진국임에 틀림이 없다.

시골길을 한 시간 반 정도 달려가자 이강 유람선 선착장 입구가 나왔다. 이곳에서 포도와 황피과(黃皮果)라고 불리는 과일을 팔고 있다. 포도는 한 송이 우리 돈 천 원이고 황피과는 이천 원이다. 보기에는 색깔이 진해 맛이 있어 보였는데 먹어보니 우리나라 포도에 비해 맛이 떨어졌다. 황피과는 처음 보는 과일인데 보기보다는 맛이 좋다. 그런데 뒷맛이 한약맛이 난다.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마을은 아직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 길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다. 땅바닥에는 포도와 황피과 껍질이 흩어져 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모습 그 자체다. 나도 덩달아 황피과와 포도를 먹고는 껍질을 그냥 바닥에 버렸다. 어릴 적에 해 보았던 짓을 이 나이에 해보니 막 버릴 수 있어 편하기도 했지만 뭔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도 들었다.

우리 일행은 강가에 다다랐다. 정박해 있던 이강 유람선에 올랐다. 이강은 화남제일봉이라고 불리는 묘아산에서 발원하며, 총 길이가 437km이다. 이강은 주강으로 합류해 홍콩 근처에서 바다로 빠진다고 한다. 이강은 카르스트 지형 특유의 기암괴석 사이를 흐르는 강이라서 유람선관광지로서 최고로 알려져 있다.

이강이 자랑하는 네 가지가 있는데 이를 이강사절(漓江四絶)’이라 한다. ‘푸른 산’, ‘맑은 물’, ‘기이한 동굴’, ‘아름다운 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강 유람 중에서도 계림에서 양삭까지 83km 구간의 풍경이 제일 아름답다고 한다. 이 구간은 4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우리 코스는 관암에서 양재구간을 1시간 가량 하는 뱃놀이다. 드디어 배가 출발을 했다. 적당히 운무가 끼어 있어 풍경이 신선이 살 만한 곳으로 보인다. 풍경에 감탄하여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무협소설의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무협소설의 주인공이 되어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서 올라가보기도 하고, 댓잎을 타고 강을 건너보기도 하는 상상이 저절로 들었다.

 

 

우리 일행은 배 앞뒤에서 사진 촬영하기에 바쁘다. 형언할 수 없는 경치다. 이렇게 좋은 경치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 ()님이다. 중국의 문학작품에 신선을 이야기할 때는 바둑과 주()님이 늘 같이 한다. 이 풍경 속에서 신선이 되어보고 싶었다.

배 안에는 이강에서 잡은 물고기와 참게로 만든 안주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 돈으로 안주는 만 원이고 화주는 만 오천 원이다. 주당 몇 사람이 둘러 앉아서 판을 벌렸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실제 신선이 있다면 이처럼 행복할까! 감탄사와 덕담만 오고 갔다. 화주 한 병이 금세 바닥이 났다. 다시 안주와 화주를 시켰다. 두 병이 거의 바닥나자 이강 유람도 끝이 났다.

아쉬움을 남기고 배에서 내렸다. 관암동굴(冠岩洞窟)로 가기 위해서다. 동굴의 총 길이는 12정도인데, 이강에 근접한 3정도만 개방하여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관암동굴은 염소를 기르던 사람이 염소가 없어져서 찾으러 다니다 보니 염소들이 이 동굴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동굴로 들어가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관암동굴은 석회석 동굴이다. 종유석(鐘乳石), 석순(石筍), 석주(石柱)가 엄청나게 자라고 있다 종유석이 자라는데 걸리는 시간은 광물질의 양과 속도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년에 0.1mm 정도 자란다고 한다. 1m 자라려면 대략 ‘1만 년이 걸리는 셈이다. 이곳에서 가장 큰 종유석은 60미터나 된다. 관암동굴의 역사는 15천만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조명시설을 휘황찬란하게 해놓아 본래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그나마 조명이 되어 있지 않는 곳은 동굴이 갖고 있는 신비함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배를 타고 동굴 구경을 해야 되지만 강물이 불어서 배는 타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다시 나와서 동굴 속에 있는 폭포를 보러 갔다. 동굴 속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의 양이 엄청나다. 장관이었다.

 

 

동굴을 다시 나와서 두 사람씩 타는 레일바이크를 탔다. 동심으로 되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중간에 레일바이크가 고장이 났다. 다시 작동을 하여 무사히 출구까지 왔다.

레일바이크가 끝나는 지점에 식당이 있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는 다시 계림시내로 나가서 대나무로 만든 공예품 가게에 들려서 생활 용품들을 사고는 양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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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亮代表我的心 (월량대표아적심)

 唱 : 鄧麗君 (등려군)

 

ni問我愛ni有多深 我愛ni有幾分

니 원 워 아이 니 요우 뚜오 션, 워 아이 니 요우 지 펀

당신은 내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물었죠.

我的情不移 我的愛不變 月亮代表我的心

워 디 칭 부 이 / 워 디 아이 부 삐엔, , 위에 량 따이 삐아오 워 디 씬

내 감정은 변치않고, 내 사랑 역시 변치않아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

輕輕的一個吻 已經打動我的心

칭 칭 디 이 꺼 원~~,이 징 따 똥 워 디 씬

가벼운 입맞춤은 이미 내 마음을 움직였고,

深深的一段情 敎我思念到如今

션 션 디 이 뚜안 칭 / 지아오 워 쓰 니엔 따오 루 진

깊은 사랑은 내가 지금까지도 당신을 그리워하게 하네요.

ni問我愛ni有多深 我愛ni有幾分

니 원 워 아이 니 요우 뚜오 션, 워 아이 니 요우 지 펀

당신은 내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물었죠.

ni去想一想 ni去看一看, 月亮代表我的心

니 취 샹 이 샹 / 니 취 칸 이 칸, 위에 량 따이 삐아오 워 디 씬

생각해보세요. 보라구요.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