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계림1
-2014년도 재송여중 부장연수-
2014년 8월 13일 10시 30분 김해국제공항에 부장 연수 참가자 13명이 다 모였다.
연수 장소는 중국 계림과 상해다. 12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한 중국의 동방항공이 조금 지연되어 13시 10분에 이룩하였다. 구름이 많이 끼어 풍수를 볼 수가 없어 아쉬웠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대자연의 신비다. 기내식을 먹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구름 사이로 배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바닷물이 붉은 흙탕물로 변하고 있다. 아마 양자강 하류일 게다.
상해 푸동공항에 착륙을 했다. 다시 입국수속을 밟고 중국 국내선을 갈아 타고는 계림으로 가야한다. 직항로가 있는데 지금이 성수기라 조금 일찍 예약을 해야 되는데 그 시기를 놓치다보니 불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16시에 상해에서 계림으로 출발을 했다. 동방항공이어서 기내방송도 중국어와 영어만 사용을 한다. 기내식에도 김치가 없다. 상해의 날씨는 오랜만에 좋다고 한다. 상해 일대의 경관들이 다 내려다보였다. 구름 사이로 중국의 산하를 볼 수가 있어 조금은 다행이다.
2시간이 지나자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다. 사진에서 보았던, 동양화에 나오는 산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구불구불한 강물이 황토색을 띠고 있다. 주변의 나무들도 붉은 흙탕물에 잠겨 있다. 홍수가 난 것이다. 맑은 이강(漓江)은 어디로 가고 흙탕물만 가득하다. 그런 와중에도 맑은 물이 있는 곳이 있다. 아마도 저수지일 것이다.
중국 방문이 이번이 다섯 번째이다. 그동안 중국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곳은 계림이었다. 내가 본 중국의 문학작품들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목 중 하나가 계림산수갑천하(桂林山水甲天下)였다. 계림의 산수가 얼마나 좋으면 천하에서 가장 좋다고 하는지를 사진으로 말고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동안 중국의 산수화는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계림의 산수를 보고나니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것을 알았다.
비행기는 18시 20분경에 계림국제공항에 착륙을 했다. 현지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계림 가이드를 6년째 해왔지만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7분 일찍 도착한 것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중국의 비행기는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는 뜻일 게다. 연변이 고향이라는 가이드는 천성이 순박하여 때가 덜 묻은 비교적 순수한 관상을 가지고 있다.
이곳 계림국제공항에서 계림시내까지는 약 30km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시작된다. 계림의 뜻은 계수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계수나무가 한국에도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금목서 은목서로 불리는 나무들이 중국에서는 계수나무라고 한다. 향이 좋고 10월경에 꽃이 핀다. 공항 주변에 심겨 있는 나무들이 모두 계수나무다.
우리 일행들은 복을 많이 받은 분들이라고 하였다. 어제 저녁부터 아침까지는 많은 비가 왔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가 머물 3일간의 평균기온이 22도에서 27도로 예보하였다고 한다. 이는 사람이 활동하기에 가장 좋은 온도다. 몇 일전 만해도 40도를 오르내렸다고 한다. 길가에 있는 가로수 중 눈에 띠는 배롱나무와 유도화에 꽃이 피어 있다. 멀리 가까이에 있는 산들이 그림 그 자체다.
계림은 기원전 214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계림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3억6천 년 전 본래 바다였던 이곳은 지각운동으로 인해 바다에 쌓여 있던 석회암이 수면위로 상승하면서 형성된 것이 풍화, 침식작용으로 지금의 형태로 되었다고 한다. 융기된 봉우리가 약 3만6천 개나 된다고 한다.
계림은 중국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에 속한다. 한동안 광서성의 성도였지만 1949년에 남녕에 자리를 내주었다. 석회암으로 형성된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이 이곳에서부터 멀리 베트남의 하롱베이까지 연결되었다고 한다. 계림에 물을 채우면 하롱베이가 된다고 설명을 하고 있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수교를 하기 위해 중국에 왔을 때 등소평이 어디를 가보고 싶은가 묻자 계림을 보고 싶다고 하여 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계림은 3무 즉 지진 태풍 황사가 없다. 중국에서 야경은 상해, 운무는 중경, 비는 계림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계림에는 비가 자주 온다는 뜻이다. 교포가 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는 숙소에 도착했다.
준5성급 호텔로서 숙소는 비교적 깨끗하다. 방에 짐만 두고 모두 모여서 호텔 부근에 있는 주점으로 갔다.
길거리에 테이블을 놓고 술과 안주를 파는 곳이다. 술값과 안주 값은 비교적 저렴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계림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8월 14일 호텔에서 아침식사 후 9시에 요산으로 향했다. 요산으로 가는 길에 잘 잘린 종이가 길 곳곳에 떨어져 있다. 돈 대신 길에 뿌린 것이라고 한다. 화장을 하러 가면서 저승에 가서도 잘 살라고 뿌려주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장례식이나 결혼식을 좋은 일로 받아들인다고 하였다.
요산 입구에 도착을 하니 리프트를 타기 위해서 제법 긴 줄이 서 있다. 우리 앞에 중국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밝은 표정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국도 지금이 방학이라서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았다. 이들 중 가장 예쁜 여학생에게 예쁘다고 하면서 한국사람 같다고 하니 아주 기뻐한다. 자기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꽃 장식을 우리 여선생님들에게 주면서 사진을 찍게 했다.
마침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리프트는 2명이 타고 간다. 그런데 안전장치가 영 시원찮게 보인다. 그러나 경치는 일품이다. 뒤돌아서 보니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 나라의 산과는 달리 봉우리가 봉긋봉긋 솟아 있었다. 이곳은 계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이 903m이고 리프트의 길이는 1416m이다. 편도에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 그런데 중간에 사진을 찍었는데 리프트에서 내리자마자 사진이 완성되어 우리 돈 삼천 원에 팔고 있다. 정말 대단한 상술이다.
요산(堯山)은 주나라에서 당나라까지 산 위에 요임금을 섬기는 사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 정상에 도착하자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안개가 끼어 주변 경관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아쉬웠다. 계림은 연중 300일이상이 흐리다고 한다. 가이드 말로는 6년째 계림에서 가이드를 하는 동안 자기 고향인 연길의 맑고 화창한 가을 하늘 같은 날씨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잠시 와서 보기는 좋지만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한 날씨가 아니라는 말이다. 삶에 있어 무엇이 더 좋은지 절대기준은 없는 것 같다.
길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면 리프트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우리가 찍힌 사진을 넣은 열쇠고리를 파는데 천 원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두 사람이 같이 있는데 나만 혼자다. 같이 탄 오부장 얼굴이 없다. 모 부장 왈 열쇠고리 만든 사람이 두 사람의 관상을 보아 분명히 불륜의 관계처럼 보여서 오부장은 빼고 나 혼자만 사진에 넣은 것 같다고 하면서 놀린다.
계림에서 요산은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중국 전체 지도를 ‘동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닭의 모습’에 비유한다. 계림은 닭의 아랫배 즉 계란을 품고 있는 자리가 된다. 따라서 계림은 일종의 금계포란형의 알자리다.
따라서 계림이 중국에서 가장 좋은 명당인 셈이다. 계림에서도 가장 높은 산이 요산이다. 이곳에 무덤이 가장 많아 한식날이 되면 도로는 마비가 된다고 한다. 이곳만 흙산이고 다른 곳은 바위와 급경사로 되어 있어 매장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요산은 내려와서 시내에 있는 천산공원으로 갔다. 천산공원을 올라가는데 분홍색의 야생화가 피어 있다. 옆에 있는 모부장이 이 꽃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처음 보는 꽃이다. 우리 야생화인 물봉선의 축소판처럼 생겼다. 예쁘기는 한데 입을 헤 벌리고 있어서 헤프게 보인다고 답변을 해 한 바탕 웃었다. 마침 카메라 배터리가 다 되어서 사진을 찍지를 못해 아쉬웠다. 우리가 올라간 곳이 월암이다. 천산공원(穿山公園)의 천자는 뚫을 천자를 쓴다.
이름에 걸맞게 산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월암에서 주변의 경관을 조망해보니 산과 물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공원에는 천산(穿山)과 탑산(塔山)이 있다. 공원 앞에는 강이 흐른다. 이강(漓江)
의 지류인 소동강이라고 한다. 천산의 산기슭에는 천산암(穿山岩), 천암(穿岩), 월암(月岩) 등이 있고 산꼭대기에는 천산정자가 있다. 천산은 5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는데, 수탉같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가 오른 월암은 닭의 눈이라고 한다.
건너편에 있는 탑산(塔山)은 백만 년 전에만 해도 천산과 같이 붙어 있었다. 지각 변동으로 인해 지금처럼 분리가 되었다고 한다. 탑산꼭대기에는 명나라 때 건립된 8각 7층탑이 우뚝 서 있다. 높이 13.3m의 수불탑(壽佛塔)이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수불탑에도 한 번 올라가고 싶을 정도로 운치가 있어 보인다. 월암을 내려와 점심식사로 삼겹살을 먹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삼겹살보다 질겨 맛이 영 아니다. 몇 점 먹지도 못하고는 복파산으로 갔다.
복파산 입구에는 활을 쏘고 있는 복파장군 동상이 있다. 복파장군은 후한 광무제 때의 장군인 마원을 기리기 위한 산이라고 한다. 복파산에 오르니 계림시가지와 주변 산세와 강이 흐르고 있는 모습들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계림의 진경산수다.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들이 이어져 있어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색달랐다.
우리 선생님들도 이곳의 풍광을 즐기느라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동안 사진을 계속 찍고 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복파산을 내려오니 동굴 입구가 나온다. 복파산 아래에는 환주동(還珠洞)이라는 동굴이 있다. 환주동에는 당송 시기에 제작되었다는 불상들과 많은 한시들이 동굴 벽에 새겨져 있다. 계속 동굴을 따라 나아가니 이강(漓江)변과 연결이 되었다. 이강(漓江)에는 외국인으로 보이는 분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기분 같아서는 수영실력을 보여줄까 하다가 점심때 먹은 주님이 생각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의 주인공인 마원장군에 대해서 알아보니 지금도 흔히 쓰는 노익장(老益壯)의 주인공이다. 마원장군이 평소에 지인들에게 곧잘 했던 “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로당익장, 대장부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고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 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복파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복파장군이 지금의 베트남인 남월과 전쟁을 할 때 서로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활쏘기 시합을 제안하였다. 서로 반대편에서 활을 쏘아 그 화살이 닿는 곳까지 군사를 물리기로 했다. 이 동상이 있는 자리에서 마원 장군이 화살을 쏘자 그 화살이 인근의 천산을 뚫고 날아가 지금의 하노이 부근에 있는 낭박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결국 남월의 군사들이 그곳까지 후퇴했다는 것이다.
당시 남월의 영역은 구룡반도 일대와 그 서쪽지역, 즉 계림이 위치한 광서 장족자치지구에서 남쪽 지역에 해당한다. 이 지역을 한나라 때는 ‘교지’라 부렸다고 한다. 그러나 반란이 일어나 이 지역 전체를 반란군이 점령하게 된다. 당시 수도인 낙양에서 이곳 계림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4년 동안 이 지역을 반란군이 통치하고 있었다. 이에 후한의 광무제가 마원을 복파장군에 임명하고 남월 토벌을 명한다. 마원은 그 명을 받들어 정벌을 시작하여 반란세력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하노이 부근인 낭박까지 진출하였다고 한다. 전설 속에서 화살이 날아간 거리는, 바로 마원의 원정군이 진출한 거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은 복파산은 나와 정강왕성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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