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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신도중 직원연수2 - 농암종택 조지훈문학관 서석지-

by 황교장 2015. 7. 22.

신도중 직원연수2

농암종택 조지훈문학관 서석지-

 

종택에 들어서자 종손님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동안 여러 번 종손님과 만나 많은 담소를 나누었다. 매번 찾아주어 고맙다고 하신다. 각자 방 배정을 마치고는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는 앞강에서 잡은 자연산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이다. 농암종택에서 식당인 대자연가든까지는 걸어서 10여 분 정도 가야 한다. 이 길도 전혀 개발되지 않는 순수 자연 그대로다. 삼삼오오로 걸어가면서 많은 분들이 고맙다고 치사를 한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길가에는 무궁화, 개망초, 코스모스, 금계국, 루드베키아가 피어 있다. 자귀나무 꽃을 보고 지부장이 아는 체를 한다. 그것도 합환수(合歡樹)라고 자귀나무의 별칭까지 이야기해 준다. 경주 연수 때 이름을 가르쳐 주었더니 교육의 효과가 나타난다.

 

 

 

꽃마다 멋을 부리는 방법이 다르다. 색깔이나 외모, 또는 향기로 나름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 모든 것들은 벌과 나비를 꼬여 수정을 하기 위함이다.

 자귀나무는 개개의 작은 잎은 두 줄로 서로 마주보기로 달린다. 잎마다 상대편 잎이 꼭 있어서 혼자 남는 홀아비나 과부 잎이 없다. 밤이 되면 이 잎들은 서로 겹쳐진다. 이를 수면운동이라 한다.

 

 

밤에 잎사귀가 서로 마주 보고 닫히는 것이 남녀가 사이좋게 안고 잠자는 모습을 연상시키므로, 옛사람들은 야합수(夜合樹)’란 이름을 붙였다. 합환수나 합혼수라는 별칭도 같은 뜻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다 수정할 때가 예쁘다고 한다. 생명의 잉태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끼리끼리 마음 맞는 이들과 걸어가다 보니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식당에 도착을 하니 미리 음식이 차려져 있다. 경치가 좋으니 밥맛이 절로 난다. 저녁 식사를 하고서는 다시 농암종택으로 돌아왔다. 갈 때의 길과 올 때의 길은 같은 길이지만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이야말로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말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복거지지가 아닌가라고 생각된다.

 

 

이중환은 택리지의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 사람이 살기 위한 터전을 잡을 때 가장 중요한 네 가지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째가 지리(地理) : , , , 바다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치

둘째가 생리(生利) : 그 땅에서 생산되는 이익

셋째가 인심(人心) : 그곳에 사는 사람의 마음

넷째가 산수(山水) : 아름다운 산과 물

이 네 가지가 가장 완벽한 곳으로 조선팔도에서는 도산과 하회를 들었다. 하회보다도 도산이 먼저 거론된 것이다.

 

 

종택에 도착하여 한 시간여의 자유시간을 갖고는 분강서원 대청마루에서 종손님의 특강이 시작되었다. 종손님은 퇴계선생의 도산전서를 평생 연구한 한국한문학박사이시다. 즉 퇴계학의 최고 권위자중 한 분이다. 성균관대학교 사범대학 한문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국학진흥원 연구원을 역임하였다. 그래서 교사의 기본을 너무 잘 아시는 분이다.

 

 

 

오늘 특강의 주제는 퇴계식의 교육과 인생충고하지 마라. 퇴계선생은 직접 말로는 충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충고를 해야 하면 편지로 했다. 특히 69세 때 19살의 마지막 제자 이함형에게조차도 직접 충고를 하지 않고 본인이 살아왔던 삶을 솔직하게 편지글로 표현한 대목은 감동 그 자체였다.

 

 

 

우리는 뜻밖에 가족들 사이의 상처로 가슴 아파한다. 까닭 없이, 이유 없이, 대책 없이 상처를 많이 준다. 상처 받음에는 예민하고 상처 줌에는 관대하다. 상처 줌을 사랑이라 여기기까지 한다. 이것이 가족 상처의 주범이다.

 

가족뿐만이 아니다. ‘애인친구-우리가 가장 가깝게 만나는 사람들이-자신의 행복을 담보하는 원천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인생을 가장 견디기 힘들게 하는 대상이다.

 

돌이켜보면 이들처럼 우리 인생에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은 없다. 이들을 제외하면 인생을 괴롭히고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이들이 곧 상처의 진원지이고 고뇌의 근원이다.

 

 

다만 우리들이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 가족, 친지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하나?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들 사이를 고뇌와 상처를 주는 관계에서 행복과 사랑의 관계로 만들고 지속시켜갈 수 있을까?

그 한 마디는, ‘충고하지 마라.’이다.

 

나무람이 곧 충고인데, ‘충고는 인간관계를 손상시키는 특효약이다. 가족사이의 애정을 잘 관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유념해야 할 한 마디는 충고하지 마라이다. 친구 사이의 우정을 잘 관리하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유념할 한 마디는 역시 충고하지 마라이다.

 

충고는 충고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꼭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충고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충고는 그 속성상 감당하기 어려운 무거움으로 다가오기 마련인데, 힘든 일상에서 그 무거움을 즐겁게 안고 갈 사람은 천지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를 보고 싶지 않게 된다. 칭찬이 아니라면 차라리 침묵이 낫다. 부부 사이에는 더욱 유념해야 한다.

 

 

 

종손님은 결혼 후 부인과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차종손에게도 단 한 번도 충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충고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빗나가는 학생들은 믿고 기다려 주면 된다고 한다.

 이는 결국 중심에 다가가기 위한 방황이므로 기다리면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 예로 자신이 살아왔던 삶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다.

 

 

삶에 있어서 징징대지 마라’ ‘앵앵대지 말라고도 하셨다. 남에게 빈정대지 말라는 의미다. 우리 선생님들은 이 특강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부산에서 출발할 때 총무가 미리 아이스박스에 자연산 회를 충분히 준비를 해 가지고 왔다. 아이스박스를 열어 보니 아직 얼음이 그대로 남아 있어 회의 신선도가 유지되었다

 

 

이곳은 노래방 같은 시설이 없는지라 미리 장구를 준비했다. 장구로 반주를 못하는 노래가 없다고 해도 반신반의하던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장구를 치면서 박자를 맞추어주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열기는 점차 고조되어 간다. ‘장구 치고 노는 놀이가 이처럼 재미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우리 어린 시절만 해도 놀이 하면 장구였는데 그새 그런 문화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 가락에 대한 느낌은 핏속에 전해오는 것인지 다들 즐거워하였다.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는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 아침에 퇴계예뎐길을 가야하기에 아쉬움을 남겨두고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음날 아침 6시 반에 예던길로 출발하였다. 많은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단한 열정이다. 예던길의 예던혹은 녀던걷던의 고어(古語)이다. 퇴계예던길은 퇴계선생이 도산서원에서 청량산까지 걸어갔던 옛길이란 뜻이다.

 

 

30여 분 걸어 미천장담(彌川長潭)에 도착했다. 이곳은 공룡발자국이 남아 있는 곳이다. 물이 아주 맑고 깨끗하다.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 시원하다.

 

 

발을 담그고 세수를 하니 어젯밤에 주님과 놀았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지는 것 같다.

 

 

미천장담을 반환점으로 삼아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지금은 멸종되고 없는 천연기념물 먹황새가 살았던 학소대가 나타났다.

 

 

 

 갈 때는 미처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선명하게 떠올랐다. 2년 전에 재송여중선생님들과 이 길을 걸을 때 몇 분이 벌에 쏘였다. 나도 무려 세 방이나 쏘였다. 벌침에 쏘이면 그해 겨울에 감기에 안 걸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봉침에 있는 성분이 페니실린의 2만 배의 항생효과가 있다고 한다. 아무리 항생효과가 있을 지라도 많이 쏘이면 생명이 위독할 정도로 땡벌의 피해는 크다. 혹시나 땡벌이 있는지를 조심조심 살피면서 학소대 밑을 무사히 통과를 했다.

 

 

아침식사는 뷔페식으로 나왔다. 메뉴는 이 집 종부가 직접 만든 이집만의 특색이 있는 양반식 식단이다. 종손이 황교장선생님이 오시면 집사람은 다른 손님들보다 반찬을 더 많이 마련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집에 올 때마다 듣는 말이다. 이 집 올 때마다 종손님과 늘 같이 식사를 했는데 이날은 종손님이 직접 부엌일을 하고 계신다. 그 동안 달라진 모습이다. 늘 자신을 마당쇠 종손이라고 말만 하시더니 이젠 몸소 실천을 하신다. 세월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일까? 나도 언젠가는 자력갱생하려고 늘 생각만 한다.

 

 

 

농암종택은 농암 이현보(李賢輔, 1467-1555)선생이 살았던 집이다. 이현보 선생은 가사문학의 효시인 어부가를 지은 분으로 퇴계선생의 도산12곡과 고산 윤선도선생의 어부사시사에 영향을 끼친 분이다.

 

 

농암종택은 원래 지금의 도산서원 근처인 분강촌에 있었다. 분강촌은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어 다시 이곳으로 옮겨온 곳이다. 이곳의 농암종택은 현재 17대 종손인 이성원님이 수몰된 이후 30년 만에 터전을 잡은 곳이다. 농암종택은 1370년경에 지어졌고, 1526년에 그린 분천헌연도에도 그 모습이 뚜렷하다고 한다.  

 

 

종택 가까이에는 공민왕유적, 고산정, 월명담, 벽력암, 학소대 등의 명소가 감싸고 있어 그 자체가 아름다움인 곳이다. 종택의 면적은 만 오천 평이다. 그 주변까지 합치면 10만 평이 넘는다. 아마 내가 아는 종택 중에서는 가장 넓은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 풍수 또한 일품이다. 지금까지 이 땅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완벽한 풍수를 자랑하고 있다. 사신사(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가 뚜렷하다

 

 

 

이 집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긍구당이다. 긍구당만은 농암선생이 살아 계실 때에도 있었던 건물로 최소한 600년 이상 된 집이다. 특히 승진에 뜻을 둔 분은 명당의 기운을 받는다고 암암리에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이 누릴 수 있게 했다.

 

 

긍구당(肯構堂)이란 서경(書經) 대고편(大誥篇)에 나오는 구절로, ‘조상의 업적을 길이길이 이어받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긍구당 현판 글씨는 시(), (), ()에 능하여 삼절(三絶)이라 불리는 신잠(申潛, 1491-1554, 신숙주의 증손자)선생이 쓴 전서체이다. 이곳에 올 때면 늘 긍구당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싶었다. 또다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더 자주 오라는 농암선생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아쉬움을 남겨두고는 조지훈선생의 고향인 영양 주실마을로 향했다. 농암종택에서 주실마을로 가는 길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청량산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물을 따라간다. 유홍준교수도 이 길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아름다운 길이라고 극찬을 하였다. 맑은 강물에 반영된 산천이 아름답다.

1시간을 달려 주실마을에 도착했다. 주실마을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이 마을에 오면 제일 먼저 조지훈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으로 안내를 한다.  

 

 

주실마을에서 제일 많이 거론되는 것 중 하나는 이 집과 문필봉이다. 호은종택 대문을 등지고 정면을 바라보면 앞에 산이 있다. 이 산이 바로 문필봉이다. 풍수에서 앞에 있는 산을 안산(案山)이라고 한다.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의 봉우리가 글을 쓸 때 붓끝을 닮았다고 해서 문필봉이라고 한다즉 정삼각형의 산이다. 삼각형의 산은 오행 중 목형의 산이다.

목은 성장 발달을 뜻하므로 끊임없이 연구한다는 의미다. 문필봉이 좋은 마을에는 반드시 훌륭한 학자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마을 중 대표적인 문필봉이 있는 마을이 주실마을이고 그 중 호은종택에서 바라보는 문필봉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그래서 이집에는 대대로 문장가들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호은종택에는 370년 동안 내려온 가훈이 있다. 바로 삼불차(三不借). 삼불차란 세 가지는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첫째는 재불차(財不借), 둘째는 인불차(人不借), 셋째는 문불차(文不借)이다.

 

 

재불차란 재물을 다른 사람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은종택 앞에는 논이 만 평이 있는데 370년 동안 그대로 종손들에게 전해져 왔고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인불차는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양자를 들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다른 집안은 대가 끊기면 양자를 데려다가 종손으로 삼는데 이 집은 16대 동안 한 번도 양자를 들인 적이 없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생명력이다. 아마 이 집의 집터와 무관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문불차는 문장을 남에게 빌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은종택에서 문학관까지 가는 마을길은 정겹다. 이 길에 피어 있는 꽃들을 물어본다. 인삼, 참깨, 땅콩 등이다특히 인삼꽃이 발갛게 만발하고 있다. 농촌에서 자라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인삼과 참깨와 땅콩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것일 게다.

 

시간 관계상 대충 보고 오시라고 했지만 우리 선생님들은 조지훈문학관을 너무 열심히 관람을 한다. 주실마을을 답사하고 나오는 길에 모 선생님이 내 곁에 조지훈 문학관을 너무 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이룰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주실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개천은 서출동류 개천이다. 서쪽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른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서출동류는 인물이 많이 배출되고, 동쪽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흐르는 동출서류는 부자터라고 한다. 대표적인 동출서류로는 경주 최부자집 풍수를 들고 있다.

 

이곳 계천은 택리지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수구(水口)를 갖고 있다. 즉 물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면서 마지막에는 물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감추어져 있다.

 

 

이는 마을의 기()가 빠지지 않고 뭉쳐져 인간에게 유익한 삶을 준다고 한다. 전에는 눈에 띄지가 않았지만 자세히 보니 인공적인 힘이 가미가 된 것 같다. 물이 휘어져 가도록 아주 큰 고목들을 이곳에 심어놓은 것이다. 전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처럼 보였으나 다시 보니 오랜 인공의 힘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곳 역시 도선의 비보풍수가 발현된 것이다.

 

우리 일행은 다시 영남의 최고 정자로 평가 받고 있는 서석지로 갔다. 호남을 대표하는 정자가 소쇄원이라면 영남을 대표하는 정자는 서석지다.

또한 담양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정과 함께 우리나라 3대원림으로 불리기도 한다.

 

영양읍을 우회하여 서석지로 가는 길목도 아름답다. 서석지가 있는 곳이 입암면이다. 서석지 들어가는 입구에 입암(立岩) 즉 선 바위가 있다. 반대편 도로에서는 아주 잘 볼 수가 있어 교감선생님에게 입암을 볼 수 있게 했다.

 

서석지에 들어서자마자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한다. 연꽃이 절정이다. 경정 마루에 앉으니 연못과 연꽃, 사우단, 서석 등이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고 있다. 모두가 넋을 놓고 있다. 오늘 같은 날 누워서 한숨을 자면 신선이 따로 없을 것이다.

 

서석지(瑞石池)는 상서로운 돌이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연못 안에 울퉁불퉁 솟아난 60여 개의 서석들이 깔려 있다. 이 돌들은 석영사암이라서 물속에서도 희게 빛나 보여 기이함을 더해준다. 이 돌들은 본래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을 그대로 살려 연못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석지는 광해군 5(1613) 석문 정영방(1577-1650)선생이 조성한 민가의 연못이다. 서석지 경정에 걸려 있는 임천산수도(林泉山水圖)를 보면 이곳은 일월산에서 용맥이 뻗어 자양산(紫陽山) 남쪽 기슭인 이곳에서 혈이 맺힌 명당자리다.

 

그런데 모든 명당에도 결함은 있는 법이다. 마을의 안산인 나월산의 화기인 불을 막기 위해서 연못을 조성했다. 연못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주일재(主一齋), 서쪽에 경정(敬亭), 뒤쪽에는 수직사(守直舍)가 있다. 연못은 자연스럽게 자연석으로 쌓았고 연못 북쪽에는 네모난 단을 만들어 매화, 국화, 소나무, 대나무를 심고 '사우단서석지'라고 이름을 붙인 데에는 자연석인 서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서석 사이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석간수를 이용하여 연못에 물을 채운다. 이곳은 자연을 최대한 끌어들여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멋으로 만들었다.

 

서석지를 마지막으로 문화유산 답사는 끝이 났다. 처음 계획은 봉감모전오층석탑을 마지막 답사처로 삼았으나 농암종택이 너무 좋아 한 시간 더 즐기다가 출발한 관계로 지체되어 부득불 다음으로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봉감모전석탑 주변은 아직까지도 때가 묻지 않은 순수성을 갖고 있다. 강가에는 지금도 수달이 서식할 정도로 깨끗하다. 봉감모전오층석탑(국보 187)은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5층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은 우리나라 문화가 만들어낸 특이한 탑으로 벽돌모양으로 돌을 잘라 쌓은 석탑이다. 모전석탑의 재료는 돌이나, 쌓는 방법은 전탑을 닮았다.

 모전석탑은 일종의 과도기적인 형식이다. 모전석탑의 원조는 경주에 있는 분황사석탑이다.

봉감모전석탑은 후일을 기약하면서 몸에 좋다는 청송 달기약수로 만든 닭백숙과 떡갈비를 맛있게 먹고는 직원연수를 마쳤다.

 

이번 연수의 가장 큰 의미는 조상이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을 즐기면서 늘 함께하는 분들과 12일을 같이 했다는 것이다. 12일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은 대화가 오고 갔다. 그 동안 어색했던 것들, 오해한 것들이 이 시간을 통해서 말끔히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힐링이다.

 

이렇게 구성원들이 마음을 정화하고 인간애로 뭉치면 교육의 질과 효율성은 저절로 높아질 것이다. 그러니 교육의 질과 효율을 높이려면 먼저 구성원 각자가 행복해지는 것이 필요하다.

 

직원연수에 적극 협조해 주신 교감선생님, 수석선생님 부장선생님, 찬조금을 내신 선생님, 특히 친목회장님과 몸 바쳐 일한 총무님, 동참해 준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시간이 흘러 여행의 기억은 희미해지더라도, 기록으로 남긴 기억은 영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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