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 사원

by 황교장 2017. 5. 7.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보로부두르 사원

 

빠원사원을 나와 드디어 대망의 보로부두르 사원으로 향한다. 문두트 사원과 빠원사원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지만 보로부두르 사원은 입구부터 아주 번잡하다.

보로부두르는 바라(bara)’부두르(budur)’ 두 단어의 합성어라고 한다. 바라는 사원이 있는 공간을 뜻하고 부두르는 위쪽이라는 뜻이다. 보로부두르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위쪽의 사원또는 언덕 위의 사원이 된다.

 

 

 

 

 

앙코르와트(2015,1,25. 재송여중) 

 

보로부두르 사원은 세계불교 3대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미안마의 바간과 더불어 이 지위를 누린다. 또한 세계 3대 불탑으로도 알려져 있다. 앙코르와트사원과 인도의 산치(Sanchi)사원과 더불어 세계 3대 불탑으로도 알려졌다.

 

가시거리는 아주 좋다. 사원으로 가는 길은 믄두트 사원, 빠원 사원과는 많이 다르다. 넓고 정리가 아주 잘 되어 있다. 매표소를 지나자 멀리 사원의 모습이 드러난다. 한 쪽 면은 키 큰 나무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탑의 전체적인 윤곽은 드러내고 있다.

사원을 바라보면서 무념무상으로 걷고 있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돌아 보니 나만 혼자 일행들과 떨어져 걷고 있었다. 가이드가 우리 일행들을 다른 곳으로 안내하고 있는데 나는 사원을 빨리 볼 욕심으로 그냥 앞으로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궁금한 것이 많았던 셈이다.

 

  

가이드가 우거진 나무 사이를 지나 제법 너른 공터가 있는 곳으로 안내를 했다. 이곳에서는 보로부두르 사원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가이드가 아니면 찾을 수 없는 장소였다. 사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굉장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기네스북이 오랜 논란 끝에 세계 3대 불교사원 중에서 보로부두르 사원을 세계에서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 2012년에 공식 발표하였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앙코르와트 사원도 전체로 보면 이보다 더 웅장하고 규모가 크지만 본 사원 하나를 본다면 당연히 보로부두르 사원이 더 크게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난다. 사무실에서 일 년 중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켜는 날이 삼 일을 넘지 않을 정도로 더위에는 강한 체질인데도 적도지방의 날씨는 역시 수준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가시거리가 좋으면 습도가 낮아서 나무그늘에 들어가기만 하면 근방 시원한데 이곳은 아니다. 습도 역시 높다. 일행 중 몇 분은 땀을 정말 많이 흘리고 있다. 나의 등도 서서히 젖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가슴이 조금씩 뛰고 다이돌핀이 분비되는 기분도 들었다. 뜨거운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보로부두르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사원의 1층 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123m인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층이 올라갈수록 크기가 점점 작아지는 계단식 구조다. 사원은 10층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2중의 기단 위에 방형 5, 다시 그 위에 원형으로 된 3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탑의 구조로 설명하면 2층 기단에 5층 석탑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즉 기단부가 2층이고, 탑신부가 5층이며, 상륜부가 3층으로 된, ‘2층기단에 5층 석탑이자 총 10층 석탑이라고 표현하면 이해하기가 쉽겠다.

 

   

 

 

가이드 수기는 어린 나이임에도 제법 의젓하게 설명을 잘하고 있다. 1-2층 기단은 욕계’, 3-7층은 색계’, 8-10층은 무색계를 나타내고 있다.

 

 

 

욕계(欲界)는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색계(色界)는 물질계를 표현한다. 색계의 다섯 기단 중 첫 회랑에는 석가모니의 탄생에서부터 청년기, 고행, 설법, 열반을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이는 우리나라 절의 팔상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2-4번째 회랑에는 화엄경의 내용이 표현된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이처럼 부조로 표현한 것은 당시 절대 다수의 민중들은 글을 모르는 문맹이므로 그림으로 교화를 시키기 위한 것일 게다.

 

 

 무색계(無色界)는 정신세계를 나타낸다. 세속의 탐욕에서 벗어난 극락정토를 표현한 것이다. 해탈의 세계인 공을 표현한 것이 바로 스투파와 불상이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의 거대한 스투파는 내부가 비어 있다. 이는 공()을 의미한다고 한다.

 

 

 반야심경의 핵심은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알쏭달쏭한 말이면서도 한편 위안이 되는 구절이기도 하다.

 

 

 스투파는 우리가 말하는 탑이다. 탑은 탑파(塔婆)의 준말이다. 탑파는 고대 인도어인 범어(梵語, Sanskrit)stupa의 소리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다. stupa는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는 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스투파 자체로도 석가모니를 나타낸다.

 

 

 또한 보로부두르 사원 전체가 만다라(曼陀羅)적 불교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만다라는 기본적으로 우주를 상징한다. 즉 신들이 살고 있는 신성한 장소이며, 우주의 힘이 응집되는 장소이다.

 

 

 마지막 단계인 무색계에 올라와 주변의 산세를 조망해보니 과연 명당이다. 주변은 적당한 높이와 크기의 산들로 둘러져 있다. 모든 에너지가 이곳으로 몰려오는 느낌이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있는 푸시 산에서 받은 느낌과 비슷하다.

 

신들이 살고 있다는 무색계에 오르니 나도 모르게 무색계를 표현한 사성제, 팔정도(八正道),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敎外別傳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이 떠올랐다. 

   

 

 

팔정도는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진(正精進), 정정(正定)이다.

사성제(四聖諦)는 고집멸도(苦集滅道). ‘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은 번뇌를 없앤 깨달음의 경계, ‘는 그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이른다.

 

 

 이것들이 이곳에서 깨달아야 하는 내용들이다. 해탈을 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러나 이곳 스투파 안에 있는 부처님의 몸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언젠가는 그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한다. 내 스스로 열심히 도를 닦아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에는 이승에서는 불가능한 것 같아서 부처님의 몸에 손을 대고는 소원을 빌었다. 이곳 부처님은 힘이 좋아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준다고 하니 믿어보기로 했다.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워서 보니 우리 팀이다. 우리 팀은 시종일관 호호 깔깔이다. 엔도르핀, 다이돌핀이 팡팡 샘솟는 기분이다. 여행의 진면목을 즐기고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의 여행은 이래서 좋은 것이다.

가이드 수기는 한국 아이돌처럼 잘 생겨서 수학여행 온 여학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다. 여기저기 여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런데 이 여학생들이 교감선생님과 같이 찍자고 한다. 요즈음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의 드라마를 상영하고 있다고 한다. 도깨비도 지금 상영 중이라 한다. 한류 덕분에 이러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고 수기가 귀띔을 한다

  

 

 여기서 보로부두로 사원이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면 확실한 기록이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다수설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7세기 중엽 인도네시아에는 불교왕국인 수마트라 중심의 스리비자야 왕국이 있었다. 8세기 중엽 자바에도 스리비자야의 불교에 영향을 받은 사일렌드라(Sailendra)왕국이 크게 발흥하였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사일렌드라 왕국이 9세기 초에 축조를 시작하여 825년경에 완공하였다. 그러나 사일렌드라 왕국이 산자야 힌두 왕국과 결혼동맹을 맺자, 자바의 주도권이 산자야로 넘어가면서 불교사원인 보로부두르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변화는 1006년에 일어났다. 근처에 있는 머라삐(Merapi) 화산이 대폭발을 했다. 보로부두르 사원도 화산재에 묻히게 되었다. 800년 넘게 흙더미에 묻혀 있던 보로부두르 사원을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1781-1826)이 발견했다.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를 받던 인도네시아가 유럽 정세의 변화로 잠시 영국의 통치 하(1811-1816)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때 영국총독으로 바타비아(오늘날의 자카르타)에 등장한 인물이 싱가포르 시를 설계한 래플스 경이었다. 말레이어에 통달하고 말레이문화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던 그는 자바의 각종 고문서와 자료를 통해서 보로부두르의 존재를 확신했다.

 

 그는 1814년 탐사에 착수하여 수개월 만에 발굴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인도네시아가 다시 네덜란드의 수중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네덜란드는 태국의 왕에게 진상하기 위해 보로부두르 사원의 불상들의 머리 부분을 절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504기의 부처님이 모셔진 보로부두르 사원의 불상 중 약 35%에 머리 부분이 없는 이유이다.

 

보로부두르 사원의 원래 높이는 42였다. 그러나 지반이 침하되면서 현재는 35.3. 보로부두르 사원에는 총 73기의 종탑 모형의 스투파(stupa)504기의 부처님이 있다. 4개 층에 걸쳐서 총 5에 달하는 회랑이 있고, 회랑 좌우 면에는 총 2500개의 부조가 있다. 이 부조에 등장하는 인물은 만 명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