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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대암산 용늪을 찾아서

by 황교장 2020. 7. 24.

  창녕이 고향이라 창녕 우포늪을 보고, 거기서 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포늪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토평천이다. 창녕 화왕산에서 발원한 물이 내려오면서 주변의 작은 하천물을 모아 우포늪에 모였다가 다시 넘치는 물은 흘러 토평천을 따라 낙동강에 합류를 한다. 토평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선상지에 있는 마을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그러다 보니 토평천과 낙동강은 어릴 적 향수가 깃든 놀이터였다.
토평천은 물놀이를 하면서 개헤엄을 처음 배운 곳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 죽었으면 죽었지 개헤엄은 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나는 아직도 개헤엄을 가장 좋아한다. 우포늪은 낚시를 하고 고등과 조개를 잡는 곳이었다. 조개는 ‘불팅이’라고 불린 민물조개다. 흙냄새가 많이 나서 그리 맛은 없으나 잡는 재미는 쏠쏠하였다. 우포늪이 지금은 생태적으로 소중하게 여겨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의 앞 순위에 들어가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소중함을 모른 채 그 곳에서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살아오는 동안 자연 상태의 습지를 보면 이유 없이 좋아서 그냥 지나치지를 않고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다 가곤 했다. 나의 사주팔자에서도 ‘수’ 즉 물은 용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물만 보면 그저 좋다. 내가 멋모르고 좋아한 곳이 나중에 보니 람사르 습지에 다 등록이 되어 있었다.

창녕 우포늪, 울주 정족산에 있는 무제치늪, 신안 장도습지, 태안 두웅습지, 제주 물영아리오름, 전남 무안갯벌, 순천만 보성갯벌 등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 람사르 습지 1호로 등록된 대암산 용늪은 이번에 처음으로 가게 되었다. 대암산 용늪은 1966년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즉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 동안 민간인에게 개방을 하지 않았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인제군청에 생태탐방을 신청하면 인제군에서 환경청, 문화재청, 산림청, 국방부에 출입 허가를 대신 받아주고 있다.

  인제군 대암산 용늪은 습지보호구역(습지보전법), 천연보호구역(문화재보호법, 천연기념물 제246호),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산림보호법)으로 지정되어 있기에 현재 문화재청, 산림청, 국방부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인제군 서흥리에 있는 용늪생태학교에서 9시에 출발 예정이었지만 일행들이 20분 전에 모두 모여 조금 일찍 출발을 하였다. 가이드는 이곳 주민이다. 탐방안내소까지는 7km나 되어 탐방 가이드의 차가 먼저 가고 뒤를 이어 다른 차들이 따라가니 반드시 자가용이 필요하다.
  길은 제법 잘 닦여져 있다. 길 양편에는 총을 들고 완전군장을 한 수백 명의 군인들이 행군을 하면서 내려오고 있다. 야간 전투훈련을 받고 내려오는 모습이다. 40여 년 전 군대생활의 추억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이곳이 바로 민통선 안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10여 분 지나자 탐방안내소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는 탐방이 시작된다. 코로나로 인한 발열체크를 마치자 출발이다. 처음부터 경사가 높은 오르막이라 힘이 들었다. 일행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라 몇몇이 많이 힘들어 한다. 사점을 지나자 좀 편안해졌다.
  임도를 따라 20여 분 올라가자 폭포가 나왔다. 대암폭포다. 어제 본 양구에 있는 옹녀폭포와 비교가 된다. 옹녀폭포는 대암산 용늪 반대편 골자기에 있다. 그곳에는 변강쇠와 옹녀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옹녀폭포 근처에 변강쇠 바위도 함께 있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대암폭포
옹녀폭포

대암폭포는 제법 운치가 있다. 폭포 바닥이 때깔 좋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어 주변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시원하고 정갈하다. 폭포를 지나니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이곳은 하루 탐방 최대인원 150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자연이 그대로 잘 보존 되어 있다. 붉은 빛을 띤 하얀 참조팝나무가 지천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참조팝나무

  대암산 정상과 용늪 가는 길의 갈림길을 지나자 박새가 지천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박새

 용늪 바로 아래 쉼터에서 12시 경에 점심식사를 하고는 다시 출발을 했다. 조금 지나자 습지다. 작은 용늪에서 내려오는 물길이다. 이곳 습지에 참좁쌀풀이 피어 있다. 참좁쌀풀은 깊은 산 초원에서 자란다. 줄기는 곧게 서고 전체에 털이 거의 없다. 한국 특산 식물로 경기도 ·경상북도 ·강원도 ·함경남도 ·함경북도에 분포한다고 알려져 있다.

 

참좁쌀풀


  드디어 용늪 입구가 나왔다. 산행가이드로부터 자연환경해설사를 소개받았다. 지금부터 용늪에 대한 모든 해설과 안내는 이분이 책임자다. 용늪 내부 탐방은 자연환경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탐방을 한다. 탐방 인원은 1회에 20명 이하라 조촐하여 해설사의 설명이 쏙쏙 귀에 잘 들어왔다.

 

  용늪은 대암산(1,309m)과 도솔산(1,304m) 사이에 형성된 습지다. 용늪은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쉬었다 가는 곳’이라는 전설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용늪은 큰 용늪, 작은 용늪, 애기 용늪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발 1,280m 하늘 아래 맞닿아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 고층습원(高層濕原)이다. 이렇게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습지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어 생태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한다.

 

용늪

 습원은 습원식생을 유지시키는 수분의 유입 형태, 지하수와 지표수와의 관계, 습원 내부의 이탄층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식물의 종류와 퇴적량, 현재 구성되고 있는 식물군락의 종류 등에 따라 저층습원 및 고층습원으로 구분된다. 그 중 고층습원은 이탄층의 발로 하부로 빠져나가는 수분의 양이 점차 많아져 물이끼류 등과 같은 구성종들이 오직 비에 의해 공급되는 수분만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습지가 점차 사라지고있어 보호에 힘을 쓰고 있다. 탐방지 둘레길에 넓직한 돌을 깔아 그곳으로만 다니도록 한 것도 흙이 습지 안으로 들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용늪


해설사는 우리들에게 질문을 한다. 이곳 용늪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정답은 물고기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이유는 1년 중 170일 이상이 안개에 싸여 있어 습도가 높고, 5개월 이상이 영하의 기온으로 춥고, 적설기간이 길어, 식물이 죽어도 잘 썩지 않고 그대로 쌓여 ‘이탄층’이 발달하여 낮은 온도로 인해 죽은 식물들이 미생물 분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물고기가 좋아하는 플랑크톤 등이 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본 용늪은 풀밭 같은 넓은 초원이다. 용늪의 면적은 구천여 평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참 특이하게 생겼다. 이처럼 높은 곳에 이런 초원 같은 분지 습지가 있다는 것이 자연의 신비로움이다.

 


  용늪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이탄습지(泥炭濕地)라고도 한다. 이탄층이란 식물이 죽어도 채 썩지 않고 쌓여 스폰지처럼 말랑말랑한 지층의 일종이다. 즉 기온이 낮고 습도가 높아 죽은 식물이 썩지 않고 쌓인 것이 이탄층이다. 용늪에는 이탄층이 평균 1m에서 1.8m 정도 쌓여있다. 용늪의 이탄층에서 추출한 꽃가루를 분석한 결과, 습지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약 4,200년 전으로 밝혀졌다. 보통 1mm의 이탄층이 쌓이는데 1년 정도가 걸린다. 용늪의 경우 하단부터 조립질 퇴적물 / 시립질 퇴적물 / 이탄층 / 사초, 이끼, 빗물 순으로 토양층을 이루고 있다.


용늪 일대에는 기생꽃, 날개하늘나리, 닻꽃, 제비동자꽃, 조름나물 등이 자라며 특히 물이끼, 사초, 끈끈이주걱 등 습지식물들과 한국특산식물인 금강초롱, 모데미풀과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비로용담 등이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르게 핀 비로용담 한 송이를 보았는데 크기가 작고 멀어서 잘 찍히지 않았다.


  또한 참매, 까막딱다구리, 산양, 삵 등 멸종위기 동식물 10종을 포함하여 식물 514종, 조류 44종, 포유류 16종, 양서 · 파충류 15종, 육상곤충 516종, 저서성무척추동물 75종 등 1,180종의 생물을 서식하는 생물다양성 풍부지역이라고 한다.
드물게 늪에서 자다가 탐방객이 왔는데도 남아 있던 사슴들을 만나기도 한다면서 사초들이 눌려져 있는 곳이 그들이 놀다간 곳이라고 해설사가 알려준다. 몇 년 전 수녀님들이 단체로 탑방을 왔는데 갑자기 사슴이 놀라 뛰어가는 풍경을 보고 얌전한 수녀님들이 한꺼번에 탄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이 꼭 어린 소녀들과 같아서 기억이 난다고 하였다. 사슴을 못 보았지만 사슴 대신 시원한 바람이 용늪을 뛰어 다니고 있었다. 해설사 말로는 오늘은 날이 맑은데 안개가 끼어서 용늪을 휘감아 갈 때 그 모습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해서 가장 용늪다운 풍광이라고 하였다.

 

   용늪을 다 보고는 이젠 대암산 정상으로 향한다. 대암산(大巖山1309m)은 산림청 선정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들어간다. 그만큼 빼어나다는 의미다. 대암산 정상 가는 길가 양 옆에는 지뢰매설 지역이라는 위험 표지판이 붙어 있어 이곳이 격전지 중 하나라는 것이 느껴졌다.
물기가 남아 있어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오르락내리락 하며 마침내 정상 근처에 다다랐다. 대암산이 큰 바위산이라는 의미를 알겠다. 군대생활 때 받은 유격훈련을 연상하면서 바위산을 올랐다. 바위가 험하다. 줄을 타고 대암산 정상에 오르자 경관이 빼어났다.

 

대암산 정상
비로봉

바로 앞 넓은 분지가 어제 갔던 양구군 해안면이다. 넓은 감자밭, 인삼밭과 사과밭이 눈에 들어왔다. 저곳이 육이오 때 25만 명의 사상자를 낸 곳이다. 한국전쟁의 최고 격전지로 알려진 펀치볼 이다. 그 주위가 마치 화채(punch) 그릇(bowl) 같아 펀치볼로 불린 해안분지(亥安盆地)다.

 

펀치볼 감자밭
펀치볼 인삼밭

  해안면은 남한 최북단에 위치한 면소재지다. 해안면(亥安面)은 한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돼지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옛날 이곳은 소택지가 많아 뱀이 많았는데 이곳을 지나던 어느 스님이 돼지를 방목하여 키우면 뱀이 없어질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떠났다. 그 말을 듣고 이곳에 돼지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뱀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돼지(亥)가 마을의 안녕(安)을 가져왔다고 해서 해안(亥安)마을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사주명리학에서는 뱀과 돼지는 巳亥(사해) 冲(충)이다. 뱀 사(巳)는 불이고 돼지 해(亥)는 물이다. 물이 불을 끄는 원리다. 따라서 실제로 돼지는 뱀을 바로 삼키기도 한다. 해안분지는 남북 길이 7.5㎞, 동서 길이 5.5㎞, 면적 57.7㎢로 그 규모가 여의도의 여덟 배가 넘는다. 마치 거대한 분화구 같이 생겨 원래 지명인 해안보다 펀치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해안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의 정상이 바로 군사분계선이다. 그 너머 땅은 북한이다. 펀치볼 넘어 희미하지만 제법 뚜렷하게 보이는 산이 바로 금강산 비로봉이라고 한다. 이처럼 가까이에 보이는 산이지만 갈 수 없는 곳이라 쓸쓸한 여운은 남기고 대암산 정상을 내려왔다.
  이젠 내리막길이다. 보기보다는 악산이다. 내려오는 곳곳에 박새가 지천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활엽수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대암산 용늪의 가을 단풍을 기약하면서 숙소로 향했다.

 

 

 

 

 


-람사르 협약-
정식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the convention on wetlands of international importance especially as waterfowl habitat)으로 1971년 2월 2일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처음 체결되었다. 람사르 협약은 생태 · 사회 · 경제 · 문화적으로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습지를 보전하고 현명한 이용을 유도함으로써 자연 생태계로서의 습지를 범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보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환경 협약이다. 람사르 협약 제1조에 의해 ‘습지는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영구적이든 임시적이든, 물이 정체되어 있든 흐르고 있든, 담, 기수, 염수와 관계없이 소택지, 습원, 이탄지 또는 물로 된 지역‘을 말하며, 간조 시 수심이 6m를 넘지 않는 해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물새는 생태학적으로 습지에 의존하는 조류를 말한다. 현재 160개국이 람사르협약에 가입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곳은 1,970개소, 1억9천만(2011.12 기준)에 달하고, 국내는 대암산 용늪을 비롯하여 총 19개 지역 183,282km2(2014.12 기준)이 등재되어 있다. 전세계적으로 산업문명의 발달과 인구가 급증하면서 간척과 매립 등 습지가 급속도로 개발되고 있어 미국의 54%의 습지가, 뉴질랜드의습지 90%, 필리핀의 망그로브의 68%가 이미 훼손되었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소규모 늪지, 호소 등을 포함하여 5,300,000~5,700,000km2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