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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청산도 푸른 여름 -2017 신도중 하계 직원연수 1-

by 황교장 2017. 7. 29.

 청산도 푸른 여름

-2017 신도중 하계 직원연수 1-


7월 24일 방학식을 마치고 여름방학 직원연수를 떠났다. 연수 여정은 부산-남해안고속도로-하동 섬진강재첩 중식–완도 선착장-청산도-서편제 촬영지-섬이랑 나랑 펜션-해남 녹우당-해태식당-영랑생가-부산으로 정하고 떠났다.


이번 연수의 주제를 학교 공동체의 효율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좋은 인간관계 형성, 문화유산 체험과 연구학교 및 자유학기제 운영을 위한 협의에 두었다.

여행은 언제나 기대와 설렘이다. 모두들 들뜬 기분으로 옆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로가 소통하는 이러한 모습 또한 직원연수의 꽃이다.



여행의 진수 중 하나는 소문난 맛집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가 찾아간 맛집은 섬진강변에 있는 ‘섬진강할매재첩’이다. 30년 전에는 이집 재첩이 아주  맛이 좋았는데 이젠 섬진강 재첩의 알맹이가 너무 작아 국을 끓여도 국물이 진하지 않다. 다 자랄 때 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어린 재첩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 옛날 재첩국 맛이 나지 않아 다소 서운한 마음을 안고 하동을 나와 순천-목포 간 고속도로를 탔다. 순천-목포 간 고속도로와 강진-완도 간 사차선 국도가 완공되지 않았다면 최소한 2박 3일 코스다.


우리 버스는 강진IC로 나와 완도 선착장에 오후 3시 30분에 도착했다. 오후 네 시 반 청산도행 배편으로 예약이 되어 있어 다소 여유가 있었다.








섬 여행은 항상 정시에 출발하는 경우가 드물다. 바다 날씨에 따라 출발시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이상 없이 정시에 배가 출발했다. 날씨가 좋아서 청산도가 멀리 희미하게 보인다. 3일전에 발생한 태풍 5, 6, 7호가 다행히 우리나라를 비켜갔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들은 배 갑판에 앉아 느끼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선상매점에서 파는 시원한 캔 맥주 한 잔은 사람을 참 행복하게 해준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좋은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청산도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멀리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자꾸 멀어져 갔다.
청산도 서쪽으로 대모도(大茅島)가 보인다. 동쪽에 황제도(皇帝島)가 보이고 남쪽에 있는 여서도(麗瑞島)는 청산도에 가려서 보이지가 않는다.


 청산도는 임진왜란 이후 주민들이 섬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1866년(고종 3)에 청산도에 진(鎭)이 설치되었다. 1895년에 진이 폐지되고, 1896년에 완도군 청산면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경관이 유난히 아름다워 예로부터 청산여수(靑山麗水) 또한 청산도라 불렀다. 물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다 하여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선들이 노닐 정도로 아름답다 하여 선산(仙山), 선원(仙源)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푸른 바다, 푸른 산, 구들장논, 돌담장, 해녀 등 느림의 풍경과 섬 고유의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청산도는 1981년 12월 23일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청산도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12월 1일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선정되었다.

또한 청산도는 슬로길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은 2011년 청산도 슬로길을 세계 슬로길 1호로 공식 인증했다.



배에다 버스를 실어 청산도 선착장에 도착하니 정확하게 5시 20분이다.  청산도는 걸어야 제격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가벼운 배낭을 메고 섬 곳곳을 걸어야 제 맛이 난다.
청산도는 슬로길 11개 코스가 있다. 코스마다 풍광에 어우러진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총 42km에 이르는 슬로길 전체 코스를 걷는 데 꼬박 2박 3일이 걸린다. 이렇게 걸어야만 청산도를 제대로 알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일정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다. 맛만 살짝 보는 셈이다. 하지만 이 또한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삼삼오오로 놀러오는 데 길잡이가 될 것이다.
 
올봄에 청산도 슬로 걷기 축제 개막식에 참가했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시끄러운 축제가 열리는 곳은 잘 가지 않는다. 그런데 축제인 줄도 모르고 간 곳이 청산도였다. 도청리에 도착하자 귀에 익은 음악이 흘러 나왔다.


 ‘내가 만일’이다. 음악이 나오는 곳을 바라보니 제법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자세히 보자 가수 안치환이었다.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한동안 나의 십팔번이었던 ‘위하여’ 등 주옥같은 노래가 이어졌다. 그런데 그날 가장 감명 받은 노래는 처음 듣는 노래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안치환이 대장암에 결려 투병하면서 암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직접 작사, 작곡, 노래까지 한 ‘바람의 영혼’이라는 제목의 노래다. 그의 사연을 알고 나니 그 노래가 더 절절하게 다가왔다.


우리 일행이 탄 버스가 도청리에서 당리로 가다가 도청리의 텅 빈 무대를 보게 되니 지난 봄 안치환이 간절하고 처절하게 부르던 광경이 떠올랐다.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해 지고 뜨고 꽃 피고 지고
계절이 또 지나가고

사랑이 가고 이별도 가고
슬픔마저 가 버려

끝이 없어라 언제나 나는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까

가끔은 나도 삶이 궁금해
나의 신께 묻곤 하지

무슨 이유로 무엇을 찾아
살아가고 있는지

흔들리는 내 영혼이여
이 공허한 질문과
대답에 지쳐버려

이 하루를 애써 버티는 나를
그럼에도 미소 짓는 나를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아무도 박수쳐주지 않지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꿈꿀 수 있는 것만으로도

거친 바다
인생의 강물을 건너는 난

머물지 않는 바람의 영혼
난 멈추지 않는 바람의 영혼”


요즘 이 노래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원래 학부모 연수, 교원 연수의 마지막 날 부르고 싶었는데 실행하지를 못했다. 고음 발성이 아직 갈라지기 때문이다. 2학기 연수에서는 완벽하게 준비하여 당시의 기분을 재현하고 싶다.


선착장이 있는 도청리가 청산면 면소재지다. 도청리를 기점으로 일주가 시작된다. 도청리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약 1km쯤 가면 당리가 나온다. 이곳 당리마을이 그 유명한 영화 서편제의 무대다. 10년 전에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감명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김명곤과 오정해가 북장단에 맞추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구불구불한 황톳길을 신명나게 걸어가던 길이 하도 인상이 깊어서 이곳을 보는 순간 바로 그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옆에 있는 교감선생님에게 오늘 따라 ‘서편제의 오정혜가 지금은 김정혜로 보인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은 것이다.




서편제 촬영지가 이곳이라는 것을 알기 전 그 멋진 길을 찾을 욕심으로 내 어설픈 판단에 원작자 이청준의 고향이 장흥이라 자기 고향마을에서 촬영하지 않았나하고 장흥으로 간 적이 있었다.

장흥에서 관산으로 가는 바닷가 길에서 이 길과 비슷한 곳을 몇 번을 찾아보았는데 실패를 했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길이 바로 이 길이었다. 그러나 10년 전의 풍광과 지금의 풍광은 조금 달라졌다. 순수 자연미가 조금은 퇴색되었다. 관광지로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에게 편리성을 제공해주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 선생님들은 아주 좋아한다. 그저 방실방실 호호깔깔이다. 당리 언덕길은 봄이면 청보리와 유채꽃, 가을이면 코스모스로 단장된다.

지금은 한여름이라 중간중간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다. 우리들은 드라마 “봄의 왈츠”의 세트장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갔다. 



 당리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배가 드나드는 청산도항과 도락리 마을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슬로시티 청산도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표적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간이 없어 아쉬움을 남겨두고는 버스에 올랐다.



10년 전(2007) 서편제 길
 
당리를 나와 조금만 가면 읍리가 나온다. 읍리마을 길가에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고인돌 유적지가 있다. 세 기의 고인돌 무덤과 하마비가 있다.

 하마비는 민간신앙에 기초를 둔 일종의 비석으로 말을 타고 가다가도 이 비석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야 했다.

자연석에 부처님상이 조각되어 있고 민간신앙의 일종으로 종교적인 기능을 했던 비석이다.
 
 

 하마비와 고인돌
 
이러한 유적지가 말해주듯이 청산도에 사람들이 살았던 시기는 신석기나 청동기 시대부터라고도 볼 수 있다.

읍리를 지나 길을 따라가면서 멀리 특이한 바위가 보인다. 범바위다. 범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해서 범바위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범바위


 범바위는 청산도의 남쪽 끝에 있는 보적산 능선에 우뚝 솟은 높이 20m의 기이한 바위다. 철 성분이 많아 바위 내부에서 강한 자기장이 발생해 거문도와 제주도를 오가는 선박들의 나침판을 교란시켜 뱃길을 헤매게 만든다고 한다. 가시거리가 좋은 날은 이곳 범바위에서 거문도와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범바위 가는 이정표를 지나면 옛 돌담으로 유명한 상서마을이 보이고 맞은 편에는 구들장논들이 보인다. 구들장논은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흙을 부어 만든 논이다.
청산도에는 돌이 많다. 집의 담장, 논둑, 밭둑이 모두 돌로 돼 있다. 우물이나 당산나무 아래에도 돌담이 쌓여 있다.

돌이 많으니 농사 부칠 땅이 부족하다. 돌이 많으니 비가 와도 물이 고여 있지를 않고 빨리 흘러내린다. 따라서 논농사가 불가능하다. 항상 쌀이 모자랐던 것도 당연지사다.

오죽하면 ‘청산도에서 나고 자란 처녀가 뭍으로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만 먹고 가면 부잣집’이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청산도 구들장논
 
 이처럼 자연적으로 불리한 지형을 슬기롭게 극복한 지혜가 바로 ‘구들장 논’이다. 논바닥에 넓적한 돌을 깔고 그 위에 15-20㎝ 정도 흙을 덮어 물이 빨리 새 나가지 않게 만든 ‘구들장 논’에서 바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구들장 논은 국가중요농업유산이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상서리는 마을 전체가 구불구불한 돌담이다. 바람 많은 청산도의 돌담은 처마까지 솟아 있다. 미로 같은 돌담 골목을 걷다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온 느낌을 받는다. 상서마을은 2014년 국립공원 최고 명품마을로 지정됐었다. 내일 아침 조금 일찍 일어나면 숙소에서 상서마을과 구들장 논을 한 시간이면 다 볼 수 있다.
드디어 숙소가 있는 신흥리에 도착을 했다.


마침 썰물이라 넓고 긴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신흥리에는 신흥해수욕장이 있다. 이곳은 밀물이 들면 백사장이 조금밖에 드러나지 않지만 썰물 때에는 2㎞나 펼쳐진다. 지금이 바로 썰물이다.


숙소 이름이 참 아름답다. 섬이랑나랑 펜션이다. 1박 2일 촬영지이기도 하다. 펜션 전체를 다 빌렸다. 저녁 식사는 바베큐와 전복구이 파티가 오늘 저녁 메뉴다. 다들 즐거워하고 있다.



식사를 하고는 바다로 나갔다. 날이 저물고 있다. 제법 많은 분들이 해수욕장으로 나왔다. 한창을 걸어서 물이 있는 곳 까지 왔다. 물에 발을 담그자 바닷물은 시원했다. 모두들 동심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물이 점점 차고 있다. 밀물이다. 서해안의 밀물을 삽시간에 들어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물 밖으로 나와 선생님들을 인솔하여 정자로 갔다. 정자에는 우리밖에 없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선생님 한 분이 ‘바람의 영혼’을 들려준다. 무려 세 번이나 들었다. 그래도 아무도 지겨워하지 않는다. 지금 이 분위기와 너무 어울리기 때문이다.


멀리서 차 불빛이 비추다가 정자 앞에서 멈추었다. 남자 세 사람이다. 이들은 겁도 없이 캄캄한 밤 바다에 들어갔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에 피서를 즐기는 것이다. 한 30여 분 즐기다가 다시 정자 쪽으로 와서는 그 중 한 사람이 우리들의 고향이 경상도인지를 묻는다.

 부산에서 왔다고 하자, 자신의 고향은 지리산이 있는 경남 함양이 고향인데 지금 사는 곳은 바로 옆에 있는 돌담으로 유명한 상서 마을이라고 한다. 상서마을의 이장이라고 하며서 내일 돌아가기 전에 상서마을에 한 번 들르라고 한다.

경상도 총각이 이곳 청산도 처녀에게 장가온 경우일 가능성이 많겠다고 생각되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는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 가자 아직까지 계속 파티를 이어가는 몇 분들이 있다. 같이 어울려 한여름 밤의 아름다운 청산도의 멋을 즐기면서 이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