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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중국여행

가을에 떠난 타이완 여행 1

by 황교장 2019. 10. 25.

가을에 떠난 타이완 여행 1

-화련 칠성담해변과 태로각 협곡-

 

동남아 10개국은 다 다녀왔지만 정작 가까운 타이완은 가보지 못했다. 여행은 어디로 가는가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번 여행은 오랜 친구 네 명이 함께했다. 날씨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일 년 중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 가을이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가을 대만여행이 이번 여행의 주제이다.

   

 

기간은 20191010일부터 14일까지이다. 1010일은 중화민국건국기념일인 국경절이다. 소위 말하는 쌍십절이다. 몇 년 전에 연말 연시 연휴에 방콕을 다녀왔는데 방콕의 거리가 너무 한산하여 그 유명한 교통 체증이 전혀 없었던 경험을 한 덕분에 이번에도 국경절 연휴를 택하여 타이완에 갔다.

 

 

 

타이완은 타이완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 푸젠성과 마주하고 있다. 중국 본토에서 약 150떨어져 있는 섬나라다.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상의 해상중계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한국과 일본, 남쪽으로는 홍콩과 필리핀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크기는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과 비슷하다. 인구는 서울시와 경기도를 합친 2,300만 명 가량이다.

타이완의 역사가 문헌상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624년에 네덜란드 상인들이 타이완 섬에 진출하면서부터이다. 물론 그 전에도 타이완 원주민들이 살아왔지만 한족이 본격적으로 타이완에 이주한 것은 유럽인들이 타이완 섬을 점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까지 타이완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원주민들의 섬이었다.

 

따라서, 타이완의 역사는 크게 16세기 이전 시기,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 정씨 왕조 시기, 청나라 시기, 일본제국 식민지 시기, 중화민국 시기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나라는 1884년 프랑스와 청불전쟁이 일어나자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이듬해 타이완을 하나의 성으로 격상시키고 순무를 파견했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하면서 타이완은 1895년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타이완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었으나 새로 이주해온 외성인과 원주민인 본성인 사이의 갈등이 촉발되어 1947228일에는 ‘2·28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뒤 1949년에는 중국공산당과의 내전에 패배한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정권이 난징에 있던 중화민국정부를 타이완의 타이베이(臺北)시로 옮기면서 오늘날까지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상대방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며 자국이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주장하고 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의 큰 틀에는 양안이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힘센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으로 대만과의 수교국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2019920일에 남태평양 키리바시 공화국이 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면서, 대만의 수교국은 15개국으로 줄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수교국은 대부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자그마한 나라들이다. 즉 중남미나 아프리카, 태평양의 소국들이다. 중미에서는 벨리즈와 과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니카라과,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키츠앤드네비스가 대만과 수교했다. 태평양 섬나라들 중에선 마셜제도, 나우루, 팔라우, 투발루가 있다. 이 중 팔라우는 중국이 대만과 수교를 끊지 않으면 중국관광객을 보내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자 그러면 오지말라고 한 나라로 기억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남동부의 작은 왕국 스와질랜드가 유일한 수교국으로 남아 있다. 마지막 한 곳은 바티칸이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대만을 인정해주는 나라는 파라과이다.

 

중국은 대만을 국제무대에서 완전히 고립시키려고 하고 있다. 중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나라는 179개국이지만 대만은 15개국뿐이다. 차이잉원(蔡英文)총통이 2016년 취임한 이후 부르키나파소, 도미니카공화국, 엘살바도르 등 7개 나라가 대만과 단교했다.

대만은 1984년부터 차이니스 타이베이란 이름으로 올림픽에 참가해 왔다. ·폐막식이나 시상식에서는 대만의 정식 국기청천백일기대신 대만올림픽 조직위원회 깃발을 사용했고 국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하나의 중국원칙에 따라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입장을 따른 결과다. ‘대만과 중국은 별개라고 주장하는 대만 독립론자들은 이에 반발하여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부터 올바른 이름을 사용하자는 정명(正名)’운동을 펼쳐 국민투표에 부치는 데 성공했다.

20181125일 대만 국민투표에서 대만(Taiwan)이란 이름으로 2020년 도쿄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데 동의하느냐는 항목에 476만여 명이 찬성해 전체 유권자의 25%(493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더 이상의 급진적 변화를 거부하는 다수 유권자들의 표심에 부딪혀 무산됐다. 대만국민은 실익 없는 독립보다 안정을 택한 것이다. 이 선거결과 대만 독립론자들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집권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민진당 주석직에서 물러나는 사태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와 대만과의 관계는 19488월 외교 관계를 수립한 후 타이완의 총통 장제스가 한국을 방문하고 1966년 박정희대통령이 타이완을 방문하는 등 수교관계를 유지해왔으나, 19928월 한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후 단교하였다. 그러나 1993년 비공식 관계를 설정한 후 대사관이 아닌 대표부가 상주하게 되었다. 20049월 민간항공협정을 체결하고 경제적 교류는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이처럼 현재 대만은 외교적으로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

 

타이베이 시내는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에는 막힘이 거의 없었다. 인구수보다 더 많다는 이륜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거리도 한산한 편이었고 날씨도 맑고 화창해서 좋았다.

 

1010일 부산김해공항 저녁 비행기로 출발하여 10일 밤 12시에 도착하였다. 다음날인 11일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는 아침 9시 열차를 타고 화련으로 출발했다. 열차는 우리나라의 무궁화 정도의 수준이었다. 타이베이 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교외의 풍광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대만의 수준과는 많이 달랐다. 건물들이 퇴색하고 건물외벽에는 이끼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물론 기후조건이 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열대식물은 푸른 빛을 뽐내고 있다. 여러 곳에 대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중국본토에서 말하는 용미죽이다. 대나무가 무리를 이루어 대나무 끝이 용의 꼬리를 닮았다는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곳곳에 보이는 퇴색한 시멘트공장이 인상적이다. 이 지역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흐르는 물도 맑지가 않고 탁하다.

 

 

 

기차는 세 시간을 달려 화련역에 도착을 했다. 화리엔(花連)역은 규모가 큰 역이다. 역에서 머지않은 곳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식사와 함께하는 시원한 맥주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버스는 다시 출발을 했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자 에메랄드빛을 띤 반달 모양의 해변이 나타났다. 이곳은 타이완의 동부해안 지역이다. 동부해안지형은 녹색의 거대한 산맥이 코발트색의 태평양 연안까지 뻗어 있다. 반면 서부해안 지역은 타이완해협까지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으로 말미암아 이곳 화련의 해변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해변이 치싱탄 해변(七星潭)이다.

 

 

 

칠성담이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북두칠성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가이드가 미리 물가에 못 나가게 주의를 준다. 이곳은 융기해안이라 물살이 세고, 급경사라 조금만 들어가면 수심이 갑자기 수백 미터의 낭떠러지가 나온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고 조금 간격을 두고 거닐고 있다. 이곳에서 직선으로 나아가면 하와이가 나온다고 한다.

 

 

 

 

 

 

 

 

 

 

이곳의 물빛은 일본의 오끼나와의 물빛과 많이 닮아있다. 아마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그렇게 느껴졌을 것이다. 코발트인디고에메랄드도 아닌 그 색을 형언할 단어가 없어 그냥 오키나와 블루라는 고유명사를 쓴다는 오키나와블루의 진면목과 버금 갈 정도로 이색적인 남국의 정취를 자아내고 있어 이곳을 치싱탄블루라고 불러주고 싶다.

 

 

 

이처럼 좋은 경치를 보는데도 얼굴이 찡그려진다. 여행 오기 전에 등산을 무리하게 하여 허리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곳 해변에 있는 자갈마당은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져 있어 누워서 허리 운동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허리에 좋다는 요가 동작을 몇 번 하는 동안 허리가 따뜻하고 편안해지면서 온 해변이 내 것인 양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태로각 협곡으로 출발하였다. 대만여행을 하고 온 많은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태로각 협곡이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다. 동양의 그랜드캐넌이라 불리는 화련풍경구다. 웅장한 대리석 절벽으로 이뤄진 타이루거 협곡은 타이완에서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산물이자, 자연의 걸작품이다. 이곳의 대리석은 질도 우수하여 장개석총통은 이곳 대리석을 팔면 전 인민을 3년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동식물의 생태계 보존 또한 잘 되어 있어 자연 국가공원으로 공인된 곳이기도 하다. 좁은 절벽 밑에 수십 개의 동굴들이 마치 제비집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연자구(燕子口)이다.

 

 

 

이곳은 융기와 침식 작용에 의해 대리석과 화강암과 석회암이 강물의 흐름으로 인해 거의 수직으로 깎여 좁은 협곡을 이룬 지형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운남성의 차마고도와는 또 다른 협곡의 느낌이다. 대만의 지형은 북쪽에서 남쪽 끝까지 중앙산맥이 이어지고 최고봉은 옥산(玉山)으로 높이는 3.950m인데 옥산이 이곳에서 거리 멀지 않는 곳에 있다. 대만에는 높은 산이 많이 있다. 이 중 삼천미터 이상의 많은 봉우리들이 이곳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

 

 

 

구름이 산을 덮어 산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그 산 사이로 좁은 길이 이어지고, 수백 미터 아래로 흐르는 강 위에는 수십미터 높이의 대리석 기둥이 솟아 있다. 산속에 뚫린 작은 터널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이 출렁이는 다리, 폭포의 물줄기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무협소설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옥의 티가 있다. 자동차다. 사람과 자동차가 한꺼번에 뒤섞여 제대로 된 경치를 감상할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는 중국본토의 관광정책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이곳에는 장춘사라는 독특한 절이 있다. 이곳은 원래 길이 없었다. 대만정부가 중국본토와의 전쟁을 대비하여 퇴각로를 만들기 위해 길을 만들었다. 길을 만든 사람은 군인들과 죄수들이다. 현대화된 장비도 없이 오직 끌과 망치, 정 같은 도구만 이용하여 불과 4년만에 완공하였다.

 이 과정에서 2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게 된다. 이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장춘사라는 절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지금 있는 곳의 조금 옆에 세웠지만 폭우로 떠내려갔다. 다시 지금 있는 이곳에 절을 짓자 갑자기 없던 폭포가 만들어져 지금도 줄기차게 폭포수가 흘러내리고 있다고 한다.

 장춘사 위에는 자모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정자에는 부역에 동원된 퇴역군인의 어머니가 매일 아들의 안부를 걱정하여 작업장에 왔는데 어느 날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자 어머니 또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퇴로각 협곡을 나와 저녁 식사를 하고는 다시 화련역으로 나와서 열차를 탓다. 해는 이미 지고 열차에서 차창가의 풍광은 볼 수가 없었다. 이럴 때는 잠이 최고다. 단잠을 자고는 눈을 뜨니 타이베이역이다. 저녁 9시 경에 호텔에 도착을 하여 주님과 더불어 화기애애한 담소로 꽃을 피우다 둘쨋날을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