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사주와 생애 2
박원순은 1955년 2월 11일 축시에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동장가에서 부 박길보 님과 모 노을석 님 사이에 2남 5녀의 7남매 중 여섯째이고 차남이다. 위로 세 살 많은 형님이 있다.
박원순이 태어난 곳인 동장가의 풍수를 보면 화왕산의 주맥이 관룡산을 거쳐 영축산으로 이어져 내려와 이곳에서 혈을 이루고 있다. 물 또한 화왕산, 관룡산, 영축산에서 발원된 물이 옥천못에 모였다가 계성천을 따라 장가리를 감싸고 흘러 남지읍에서 낙동강에 합류를 한다.
계성천변은 모래톱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다. 이곳은 소에게 풀을 먹이고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다. 어린 시절 이곳에서 순수하고 천진난만하게 친자연적, 친환경적 환경에서 자랐다.
장가리 동장가는 박씨 집성촌이다.
. 박원순의 시골집은 대지가 71평에 지나지 않는다. 집 앞에 있는 논 천여 평과 선산이 있는 임야가 전 재산이다. 이런 곳에서 조선조 이후로 한성판윤과 서울시장을 통틀어 가장 오랫 동안 재임한 인물이 태어난 것이다.
그가 태어난 시간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 당시 시골에는 시계가 없었다. 박시장이 직접 필자에게 말해준 시간은 닭이 울 때라고 했는데 태어나기 전에 닭이 울었는지, 태어나고 나서 닭이 울었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닭이 우는 시간은 계절마다 다르고 동네마다 다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제사를 자시에 지내고 축시가 되면 귀신이 닭 우는 소리에 저승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축시는 1시 반에서 3시 반 사이고, 인시는 3시 반에서 5시 반 사이고, 묘시는 5시 반에서 7시 반 사이다. 그러면 새벽녘이라고 하면 이 모두가 가능한 시간이다.
희망제작소 Social Designer라고 쓰여진 명함 뒷면에 본인 글씨로 직접 써서 나에게 준 생년월일이다.
이 날짜는 음력으로 1955년 1월 19일 새벽녁 이고, 양력으로는 2월 11일 이다.
그러나 인시나 묘시에 태어나면 종아격 사주이다. 일간 계수가 뿌리가 하나도 없고, 지지에는 오로지 목밖에 없다. 태어난 해인 미년도 묘와 함께 해묘미 삼합에 포함되어 목으로 변한다. 종아격 사주의 특징은 재산은 많으나 형제가 없고, 있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벼슬과 자식복이 없다. 이는 남자사주의 식신 상관은 자식이나 벼슬을 뜻하는 관성을 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원순은 어릴적부터 누나들과 형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자랐다.
식신 상관이 발달하여 벼슬과는 거리가 먼 사주가 종아격이다. 그러나 역대 최장수 서울특별시장이다. 재산이 많아야 되는데 서울시장 9년에 빚만 7억이나 남기고 갔다. 자식도 없거나 있어도 무기력해야 하는데 잘생기고 예쁜 명문대출신의 아들 딸이 다 있다. 그리고 종아격은 운이 목화 운으로 흐를 때는 발복을 하지만 금수 운은 나쁜 운이라 발복을 할 수 없는 형태다. 박시장은 금수운으로 흘렀다. 따라서 축시가 맞다고 판단된다.
박시장의 사주에서 대운의 변화는 2살 3월까지가 입운이다. 이 시기는 월주인 무인(戊寅)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2살 4월부터 12살 3월까지는 대운 정축(丁丑)의 영향 하에 있다.
12살 4월부터 22살 3월까지는 대운 병자(丙子)의 영향 하에 있다.
시 일 월 년
癸 癸 戊 乙
丑 卯 寅 未
대운의 흐름
62 52 42 32 22 12 2
辛 壬 癸 甲 乙 丙 丁
未 申 酉 戌 亥 子 丑
12살 3월까지가 정축대운이다. 정화는 계수에서 보면 편재에 속한다. 나쁜 운이다. 그러나 아직 추위가 남아 있는 인(寅)월 초에 태어나 따뜻한 정(丁)화(火)의 기운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지는 용신인 축(丑)토라서 비교적 무난한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는 글자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학교에 갔다고 한다.
. 부모는 생전에 자식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머니는 자식들이 공부하다가 건강을 해칠까 더 걱정하는 편이었다.
당시의 집안 분위기는 위로 누나가 4명이고 바로 위의 형님과 본인이 아들이고 두 살 작은 여동생이 있다. 그 당시는 아들과 딸에게 너무나도 다른 양육태도를 보이고 있던 시절이다. 아들은 서울까지 유학을 보내면서도 딸은 아무도 중학교조차도 진학하지 못했다. 아들은 귀하디귀한 존재이고 딸은 푸대접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그는 부모님과 누나 네 명이 너무나 애지중지하는 엉석받이로 자랐다.
그당시의 부모들, 특히 시골에서는 ‘사대부는 손톱 밑에 흙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허약한 체질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학적부에 “근로에 있어 태만하며 소유물을 잘 분실한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야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성장을 한다. 3학년 때인 1963년의 간지가 계묘(癸卯)다. 계수는 비견이라 나에게 도움이 되고, 묘목은 식신이라 표현력이 좋은 때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시기를 보면 대체로 인성운과 식상운에 잘한다.
이 당시 공부를 잘하는 계기가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바람을 이용한 기계나 시설을 아는 대로 들어보라”는 질문에, 그는 손을 들어 ‘풍로’라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소가 먹는 쇠죽을 끓일 때 아궁이 앞에서 풍로를 돌리던 모습을 떠올리고 대답한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참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이 칭찬을 계기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처럼 교사의 칭찬 한 마디가 학생을 변화시킨다. 그 후 반장도 하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전교어린이 회장에 당선되었다. 이는 정관격의 특징이다. 초등학교 6학년인 1966년은 병오(丙午)년이다. 병오는 화(火)다. 정관인 무(戊)토를 도운다.
그러나 1966년부터 대운이 바뀌는 시기이다. 이 당시의 대운이 바로 병자(丙子)이다. 그 해 대운 병자(丙子)는 그해 병오(丙午)년의 지지 오(午)와 자(子)오(午) 충이다. 대운과 세운이 서로 충(沖)할 때는 늘 조심을 해야 한다.
병오년에 조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가다 넘어져서 팔뼈와 관절을 다쳤다. 뼈와 관절을 다쳤는데도 제대로 시골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장애가 생겼다. 그래서 팔이 제대로 펴지지가 않고 늘 굽어 있었다. 중학교 때는 곰배팔이라고 놀림을 당했다. 이때부터 체육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이 팔은 사법연수원을 다니면서 수술하여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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