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백천계곡과 태백산 가을여행

by 황교장 2021. 10. 20.

백천계곡과 태백산 가을여행

 

승부역에서 숙소인 청옥산 자연휴양림에 돌아왔다. 청옥산 자연휴양림은 전국 국립자연휴양림 중 호텔로 불릴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가 잘된 곳이다. 우리 친구들은 여행을 가면 각자 잘하는 분야를 스스로 잘 알아서 하고 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청주에서 유명한 청주본점왕갈비다. 청주에 사는 친구가 아침 일찍 본점에 가서 5인분의 갈비를 갖고 와 요리를 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소고기는 다른 먹을거리가 있거나 배가 고프지가 않으면 손이 잘 가지가 않는다. 그런데 친구들은 아주 맛있게 잘 먹고 있다.

 

우리 속담에 내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가장 보기가 좋다는 말이 있다. 아들 키울 때 아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그리 예뻤는지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데 지금은 손녀들의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정말 행복하다는 걸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대게다. 그런데 요즘 대게 먹을 때는 가장 살이 통통한 부분을 발라서 손녀를 먹이고 맛이 없는 부위는 내가 먹는다. 손녀들이 오는 날에는 좋아하는 음식과 과자를 듬뿍 사 놓고 기다린다.

 

손녀들 못지않게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들도 정겹게 보인다. 왕갈비탕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두 당 한 병씩 총 다섯 병을 사왔다. 그런데 나는 작년 123일부터 지금까지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적당하게 마실 수만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지만 나는 그런 자격이 없다. 술을 입에 대었다하면 취할 때까지 계속 마셔야 직성이 풀린다. 나의 이런 특성을 알기 때문에 친구들도 나에게 술을 권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사건 사고들이 모두 술이 알딸딸할 때 생겼다. 술이 조금 들어가자 혈색들이 좋아지면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재미있게 돌아가면서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친구 네 명의 사주풀이를 하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다. 이 나이까지 큰 탈 없이 다들 잘 살아온 친구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주들이 다 좋았다.

 

그런데 한 친구는 전에부터 늘 사주와 살아온 것이 맞지 않아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음력과 양력이 다른 날짜를 기억하고 있었다. 양력으로는 오월 오일 어린이날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날의 일주는 병인일 경진월에 태어나 강왕격에 식상과 재성이 균형을 이루어 일반적으로 큰 사업을 하는 사주이다. 성격도 외향적이고 여성편력도 대단해야 된다. 그러나 공부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사주다. 그런데 친구는 나와 같은 선생이었다. 오직 마누라만 아는 자칭 일공도사라고 한다. 그래서 늘 살아온 삶과 사주가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친구의 어머니는 윤삼월 열 이레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날은 기사일주에 신사월이다. 이날이야말로 친구의 성격과 살아온 것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인성과 식신이 발달되어 공부를 잘하는 사주다. 그리고 재가 없어 마누라를 신주처럼 여기는 사주이다. 이 친구는 부산의 최고 명문고에서 문과 이과가 갈라지기 전인 일학년 때 전교 일등까지 한 친구이다. 대운이 71살이 되면 식상운과 재운이 같이 들어와서 향후 20년을 건강하고 돈이 들어오는 운이다.

이번 여행에 있어 개인적으로는 친구의 진짜 생일을 찾아준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된다. 사주공부를 처음 할 때는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의 사주를 먼저 보면서 연구를 한다. 그래서 이 친구들의 사주는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다. 오늘 모인 다섯 명은 서로가 상생 관계의 사주를 갖고 있다. 그래서 궁합이 맞다. 그동안 사주상담을 하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부부문제와 가족문제다. 가족은 은원의 관계이다. 즉 은혜와 원수의 관계다. 가족관계가 잘못되면 최악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사주를 보면 나타난다. 대부분이 상극관계에서 온다. 사주 상 가족이 상극관계에 놓이면 일반적으로 부모가 지나친 간섭을 한다. 해결방법은 부모가 자녀에게 칭찬 이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친구관계도 마찬가지다. 사주 상 상충인 친구들과는 뭔가 어색하고 다툼이 있다. 이 역시 해결 방법은 친구의 장점을 칭찬해주고 단점은 절대로 말하지 말고 침묵하는 것이다. 특히 일간이 상충인 친구와는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가장 좋은 방법은 만나지 않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여러 명이 같이 만날 수밖에 없을 때에는 칭찬 외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최선이다. 나는 퇴직 이후에는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정리했다. 지금은 보고 싶은 사람들하고만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친구들이 그렇다.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이다.

 

친구들의 사주를 다 보고 나니 11시다. 그런데 막걸리가 한 병이 남아 있었다. 아무도 더 이상 마시려고 하지 않는다. 전 같으면 나 혼자 마셔도 모자라는 양인데 4명이 마셔도 남았다는 의미는 한편으로는 절제가 된다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늙어 체력이 떨어져 술이 몸에 받지를 않는다는 의미다.

11시에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아침 6시경에 일어났다. 기온이 영하 3도를 가리키고 있다. 기본운동 후 아침식사를 하고 마지막 정리까지 마치고 나니 9시가 되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백천계곡으로 향했다.

 

백천계곡의 입구는 어제 맛있게 먹은 식당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간다. 이 길은 환상적인 단풍길이다. 아쉽게도 절정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볼 만하다. 절정일 때라면 이곳 단풍이 내장산이나 설악산보다 한수 위라고 생각된다. 단풍과 기암괴석을 보고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한참을 걸어들어가면 현불사(現佛寺)가 나온다. 현불사는 대한불교 불승종의 총본사다. 처음 들어보는 불승종이다. 현불사의 이름이 좀 특이하다. 부처가 현신했다는 의미도 되겠다. 현불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와 이곳의 현불사를 놓고 막판까지 고민했다고도 한다.

 

현불사 입구에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는 차 한 대로 약 2km를 더 들어가면 태백산국립공원 탐방사무소가 나온다.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이 된다. 탐방사무소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 다리를 건너면 해발 680m에 있는 백천명품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다리 한가운데서 계곡을 내려다보면 맑은 계류가 힘차게 흘러간다. 이곳 일대가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인 백천계곡의 중심이다. 봄이면 이곳을 찾아온 열목어들을 볼 수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열목어는 천연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열목어는 빙하시대부터 살던 어족으로 한여름에도 20도 이하 수온에서만 살 수 있다. 물도 유난히 깨끗해야 한다. 이 열목어가 백천계곡에서 알을 낳는다. 보통 어른 손으로 한 뼘 크기지만, 백천계곡에서는 50가 넘는 큰놈도 흔하다고 한다. 열목어 덕분에 백천계곡은 계곡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다. 이곳의 나무들이 잘 보존할 수 있었던 것도 열목어 덕분이다.

 

제법 단풍들이 제 빛깔을 내고 있다. 물소리를 들으면서 걷기 좋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칠반맥이골 입구가 나온다. 이곳에서 천제단과 문수봉(1515m)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열흘 전에 사전답사를 할 때 천제단 방향으로 올라서 부쇠봉(1547m)을 거쳐 문수봉으로 내려왔다. 부쇠봉에서 천제단까지는 800m거리다. 그날은 물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앞이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그래서 천제단을 코앞에 두고 문수봉으로 내려왔다. 무려 8시간 동안 산행을 한 것이다. 만약에 천제단까지 갔다가 문수봉을 거쳐서 내려오면 9시간은 족히 걸린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오늘 같이 맑고 가시거리 좋은 날에 친구들과 함께 천제단까지 가고 싶었다. 하지만 욕심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트래킹의 하이라이트 코스만 걷기로 했다. 천제단길로 먼저 오르고 다시 내려와서 문수봉이 있는 곳으로 올라 내려오기로 결정을 했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천제단 길을 걸어가니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흙길이고 가파르지 않아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기 좋았다. 성장기 때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갈림길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청옥산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언젠가는 이곳을 통해 청옥산에도 가보리라고 결심을 하면서 올랐다. 평지의 계곡길이 끝나는 지점에 민가가옥이 한 채 있다. 아마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 있었던 집이라고 생각된다. 이곳이 백천계곡의 최상류다. 민가의 집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 집 정원에서 잠시 쉬었다가는 다시 내려왔다.

 

백천계곡 입구에서 여기까지의 거리는 약 8km나 된다. 흙산이라 나무들도 울울창창 원시림 그 자체다. 십승지 중 하나라는 설도 있다. 십승지는 굶주림이 없고 재앙이나 질병이 침범하지 못하는 피난처이며 자손이 창성하는 곳으로 생각되는 지역이다. 정감록감결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몸을 보전할 땅이 열 있으니, 풍기 금계촌, 안동 화곡, 개령 용궁, 가야, 단춘, 공주 정산 마곡 진천, 목천, 봉화, 운봉 두류산, 태백으로 길이 살 수 있는 땅이다.”

 

이 중 이곳과 관련된 곳이 봉화와 태백이다. 십승지는 일종의 무릉도원을 말한다. 도교에서 말하는 동천(洞天)이나 샹그릴라(Shangri-La)같은 곳이다. 이들은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 이는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영원한 안식처를 말하기도 한다. 지금 이곳이 영원한 안식처의 조건으로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갈림길인 칠반맥이골 입구로 와서 문수봉으로 올랐다. 이곳은 원시자연 그 자체다. 열흘 전 사전답사를 할 때도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오늘도 우리들뿐이다. 이 넓은 태백산과 백천계곡을 우리가 전세를 낸 셈이다. 경사가 거의 없는 계곡이 끝이 나자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해발 천 미터 이상으로 오르자 앞산인 청옥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다. 한참을 더 오르자 묘지가 나왔다. 그런데 이 묘지는 얼마 전에 파묘한 흔적이 있다. 아마도 이곳까지 성묘하러 오기에는 너무 먼 곳이라고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풍수는 완벽하다. 사신사가 아주 뚜렷하다.

 

이젠 내려갈 시간이다. 오를 때 힘들게 올랐지만 내려올 때는 금방이다. 계곡물소리가 들려왔다. 온몸에 땀이 흠뻑 젖어서 자연스럽게 족탕을 했다. 등산의 묘미는 족탕에 있다. 친구들은 도란도란 앉아서 족탕으로 오늘 트레킹의 피로를 풀었다.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 어제 간 식당에서 곤드레 밥을 맛있게 먹고는 아쉬운 마음으로 올가을의 여행을 마치고 내년 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작별을 고했다.

 

 

집에 와서 이번 가을 여행을 돌이켜 보았다.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는 첫째는 누구와 같이 가느냐다. 둘째는 날씨다. 셋째는 어디를 가느냐다. 넷째는 무엇을 먹느냐다. 다섯째는 어디에서 잠을 자느냐이다.

이러한 나의 기준을 볼 때 이번 여행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친한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보니 첫째 조건을 만족시킨다. 두 번째 조건인 날씨는 수십 년 만의 한파가 온다고 온 매스컴에서 요란하게 떠들어서 많은 걱정을 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삼대적선을 해야 만날 수 있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었다. 좀처럼 오기 힘든 승부역과 백천계곡과 태백산 트래킹은 세 번째 조건도 만족시킨다.

 

넷째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점심은 능이버섯 백숙과 두루치기와 곤드레 밥으로 성공했고, 저녁에 먹는 왕갈비탕 역시 성공을 했다. 다섯째는 어디서 잠을 자느냐 인데 청옥산 자연휴양림은 친구들 모두를 만족시켰다. 아침기온이 영하3도인데도 난방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어 모두들 깊은 잠을 잘 잤다고 한다.

 

이 다섯 조건을 다 만족시키는 여행이었으니 이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로 또 다시 만날 날까지 다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페인 여행1-바르셀로나  (0) 2022.07.21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찾아서  (0) 2021.12.29
봉화 승부역 가을여행  (0) 2021.10.19
그래도 여행은 꽃 핀다  (0) 2021.08.01
봄날의 남도 기행 4-가거도-  (0) 2021.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