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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찾아서

by 황교장 2021. 12. 29.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찾아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나를 즐겁게 하는 것 중 하나가 여행이었다. 어릴 적부터 저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초중학교 무렵에는 자전거를 타고 고향땅 근처 사십 리를 누볐고, 고등학교, 대학을 다닐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두루 백 리를 헤매고 다녔다. 성인이 되어서는 일 년에 평균 80일을 배낭을 메고 전국 곳곳과 해외로 떠나곤 했다.

 

인바위

그런데 여행의 관점을 바뀐 계기가 있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권이 나왔을 때인 1993년부터다. 그동안 내가 다닌 곳은 국보나 보물이나 유형문화재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풍수에 관심이 많아 풍수 위주로 보았다. 그런데 유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그동안 내가 답사한 여행과는 격이 달랐다. 그래서 그해 여름방학 때부터 문화유산답사기 책을 들고 하나하나 공부하듯이 다녔다.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불은 유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 3권에 나온다. 아마 1997년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와 보고는 무려 25년만인 셈이다. 그때는 해미읍성과 개심사에 갔다가 이곳으로 왔지만 이번에는 추사고택을 답사하고 이곳으로 왔다. 들어오는 길이 비포장에서 포장도로로 바뀐 것 말고는 거의 비슷한 것 같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와 있는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이른 점심으로 어죽을 먹고는 백제의 미소를 만나러 갔다. 올라가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기억되는데 그곳에는 관리사무소가 있다. 관리사무소를 지나면 전에 있었던 보호각이 없어지고 바로 마애불을 만날 수 있다.

 

아침햇살이 산 위로 올라와 있어 마애불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다. 참 만나보기 힘든 광경이다. 어제가 동지고 오늘이 23일이다. 올해 동지는 202112221839분이다. 그러면 23일 날 아침에 보는 것이 진정한 동짓날의 햇빛이다. 햇빛이 동동남 30도 방향에서 정면으로 들어오는 시점에서 백제의 미소를 만난 것이다.

 

석굴암의 본존불도 동동남 30도 방향에 있다고 한다. 석굴암은 그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면서 감은사지와 수중릉인 문무왕릉을 만난다. 그런데 이곳은 앞이 산으로 막혀 있다. 이는 비바람이 정면으로 몰아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애불이 새겨진 벼랑 위에 있는 큰 바위가 모자를 쓴 것처럼 처마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빗방울이 곧장 마애불에 떨어지지 않도록 우산역할을 한다. 또한 마애불이 새겨진 면석 자체가 아래쪽으로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더욱더 빗방울을 피할 수 있다. 빛을 최대한 받아들이면서 비바람은 피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삼존불상의 발견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19594, 당시 부여박물관장 등이 용현리 계곡 위쪽에 있는 보원사지 조사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우연히 나무꾼을 만난다. “이 근처에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 없습니까?”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쥐고 집어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유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3에 나오는 내용이다. 25년 만에 다시 찾은 마애삼존불은 나의 기억 속에는 용용 죽겠지만 남아 있었다.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는 작은 마누라는 미륵보살이고,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은 석가불이고, 장돌을 쥐고 집어던질 채비를 하는 본마누라는 제화갈라보살 혹은 봉주형관음보살로 본다.

 

이 삼존불의 관상을 살펴보면 우선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인 석가모니불은 관상 전체가 균형이 잡혀 있다. 눈이 크고, 코가 잘 생겼다. 그리고 입도 잘 생겼다. 관상에서 얼굴이 10이라면 눈이 9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눈이 중요하다. 그런데 관상에서 중요한 것은 눈빛이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눈은 반쯤 뜬 반개형으로 표현하는데 이곳의 부처님은 눈이 크다. 큰 눈은 인격을 나타낸다. 큰 눈은 그 사람의 마음씨가 아름답고 부드러움을 나타낸다. 성격이 맑고 밝아 남으로부터 호감을 받게 된다. 또한 감수성이 강하고 정열적이기도 하다.

코 또한 가장 이상적인 코를 가지고 있다. 코는 일반적으로 재산의 유무와 건강상태, 의지력과 행동력, 자존심 등을 의미한다. 콧등은 실행력으로 보고, 콧방울은 재물복으로 본다. 대표적인 콧방울은 하회탈 중에서 양반탈의 콧방울이다. 그리고 콧구멍은 보이지 않고 코 전체에 살집이 두툼해야 좋다.

 

입은 양 가장자리가 올라가 있다. 가장자리가 올라간 입은 부귀의 상이다. 여성의 경우 현모양처형으로 애정운, 금전운이 좋은 상이다. 사주팔자나 관상이 좋지 않을 때 최고의 개운법은 웃음이다. 웃으면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다. 산신령님의 관상을 종합해 보면 부드럽고 온화하고 포용력이 있어 힘든 민초들을 포근하게 감싸는 부처님상이다.

작은마누라인 미륵보살의 관상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얼굴이 형태다. 둥근형은 영양형이다. 즉 낙천적이고 온후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본처한테 질투도 하지 않고 장난스럽게 엷은 미소로 놀리고 있는 상이다. 장돌을 쥐고 집어던질 채비를 하는 본마누라의 관상은 온화한 미소를 띠면서도 눈꼬리가 일자로 되어 있고, 관골이 튀어나와 질투가 좀 심한 관상을 하고 있지만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나무꾼은 관상공부를 체계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살아오면서 관상을 잘 보게 된 것 같다.

 

이 불상의 공식적인 명칭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으로 국보이다. 서산 용현리에 있는 화강암으로 된 절벽바위를 쪼아서 만든 삼존불이다. 세 부처는 법화경 교리에 따라 석가여래,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로 보기도 하나, 한편으로 당시 가장 성행했던 신앙형태로 미루어 석가여래상을 중심으로 봉보주형관음보살상과 미륵반가상을 협시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마애삼존불상은 여래상의 환한 웃음과 봉주보살의 천진난만한 웃음, 그리고 미륵반가상의 엷은 미소는 아주 명확하게 묘사되어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예찬을 보내 백제의 미소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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