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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스페인 여행1-바르셀로나

by 황교장 2022. 7. 21.

스페인 여행1-바르셀로나

20227523:55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604:25분에 두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9시간 30분을 비행한 것이다. 장시간 비행이었지만 그리 지겹지는 않았다. 전자도서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무협 소설인 고룡 원작의 다정검객무정검을 빌려서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08:30분에 두바이에서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나일강의 흐름

두바이를 떠난 비행기는 홍해를 따라 이집트로 비행하여 나일강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일강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드디어 나일강 삼각주가 나타났다. 장관이다. 삼각주의 끝부분은 바다와 만난다. 만나는 지점에 있는 도시가 알렉산드리아다. 도시의 건물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알렉산드리아

날씨가 너무 좋았다. 비행기는 알렉산드리아를 뒤로하고 지중해의 푸른 바다 위를 날고 있다. 어느새 섬이 나타났다.

 

크레타섬이다. 섬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크레타섬은 유럽의 어원과 유럽문명의 시원지이기도 하다. 유럽의 어원은 에우로페의 그리스신화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신화는 다음과 같다.

 

크레타섬

오늘날 레바논 지역에 해당하는 페니키아에 아름다운 공주 에우로페가 살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에 반한 제우스는 황소로 변하여 바다 건너 크레타섬까지 그녀를 납치해 갔다. 그녀가 낳은 제우스의 아들은 크레타의 미노스 왕이 되었고 미노스 문명을 탄생시켰다. 미노스 문명이 그리스 본토로 이동하면서 미케네 문명으로 융합되었다. 즉 유럽 문명의 시초가 된다. 미노스 문명의 어머니는 에우로페였고, 유럽이라는 명칭은 이 에우로페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다시 30여 분을 비행하자 이제는 시칠리아섬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시칠리아섬은 영화 대부의 시원지이다. 산 정상은 거의 사막에 가까울 정도로 푸르름이 없다. 비가 적게 오는 과우(寡雨)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시칠리아

다시 1시간여를 비행하자 이제는 사르데냐섬이 나타났다. 사르데냐는 시칠리아보다는 푸르러 보인다. 1720년 사보이아 왕가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승리하여 사르데냐섬을 얻은 후 국명을 사르데냐 왕국으로 정한 곳이기도 했다. 사르데냐왕국의 비토리오 에마누엘 2세는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가리발디와 손을 잡고 1770년 통일 이탈리아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만약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길을 잃었을 땐 가리발디 광장이나 에마누엘 2세 거리가 어디죠라고 물으면 틀림없이 도시 한복판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가장 번화한 심장부엔 이들의 이름이 붙은 거리나 광장이 있다. 이러한 생각들을 하면서 계속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주시하자 멀리 또다시 섬이 나타난다. 메노르카 섬이다. 

 

사르데냐섬

메노르카섬은 팔마섬 옆에 붙은 작은 섬이다. 메노르카는 영국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승리하여 에스파냐로부터 지브롤터와 메노르카섬을 획득했다. 하지만 메노르카섬은  메노르카 해전으로 빼앗겼다. 

 

메노르카섬

메노르카 해전(Battle of Menorca, 1756520)은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영국 함대를 격파한 전투로 이 전투의 결과 영국은 군법회의를 열었고, 결국 함대사령관을 사형시켰다. 이때 영국은 메노르카를 프랑스에 빼앗겼다. 이 전투는 7년 전쟁 중 유럽 전역의 시작을 알리는 싸움이었다. 메노르카가 다시 영국의 손에 들어온 것은 파리 조약에 의해서다. 프랑스는 영국이 소유하고 있던 카리브해의 과달루페(Guadeloupe: 일명 나비섬)와 메노르카를 교환하였다. 그러다가 1781년 미국독립전쟁에서 영국이 패배하자 메노르카는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스페인의 영토가 된 섬이다. 이 작은 섬이 수많은 역사의 현장임을 생각하면서 보았다.

 

메노르카섬

그러나 지금 보이는 섬은 비취색의 해변에 피서객들이 즐기는 평화로운 섬이다.

그동안 여행 중에 이렇게 맑고 가시거리가 좋은 날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정말 귀한 풍광을 보면서 역사의 현장을 되돌아보았다. 역사는 삶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의 집합물이라고 생각된다.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 강한 자로 살거나 강한자에 아부하여 더불어 사는 삶인 셈이다. 이러한 생각들을  이해하고 느끼는 것이 여행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다.

 

드디어 13:25분에 바르셀로나 공항에 도착했다. 무려 7시간 10분을 비행한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이곳 바르셀로나 공항까지 비행시간 만 16시간 40, 환승 4시간을 합쳐 무려 20시간 40분 만에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것이다.

 

몬주익 언덕 황영조 기념면상비

바르셀로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선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492년은 스페인 사람들이 아주 중시하는 해이다. 1492년을 기점으로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세비야 엑스포가 열렸다.

 

알람브라 궁전

711년에 지브롤터를 넘어 이베리아반도로 건너온 이슬람군에 의해 서고트왕국이 멸망한 이후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에 세워진 나스르왕국(1238-1492)의 알람브라 궁전이 함락됨으로 무려 781년만에 스페인은 재통일한 것이다. 게다가 1492년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해이기도 하다.

 

리오넬 메시

황영조 선수 다음은 리오넬 메시 선수가 떠오른다. 아마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일 것이다. 메시는 이태리계 아르헨티나 출생으로 지금은 파리 생제르맹 FC 소속 축구선수이지만 FC 바르셀로나의 대명사였다.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 유러피언 골든슈 최다 수상자다. 현재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다.

 

가우디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안토니 가우디의 도시이다. 인구는 약 160만 명으로 언어는 표준 카스티야어 즉 스페인어도 쓰긴 하지만 바르셀로나에선 카탈루냐어가 제1 언어다. 길거리의 안내 표지판도 카탈루냐어가 가장 먼저 나오고 그 외 영어나 스페인어가 혼용되는 편이라고 한다.

 

콜럼버스 기념비

바로셀로나 공항을 출발하여 바로 시내 중심지인 람블라스 거리에 내렸다. 람블라스 거리는 콜럼버스 기념비가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람블라스 거리로 곧바로 가지 않고 로마의 성곽이 있는 길을 따라 우회하여 갔다. 이곳에는 아직도 로마시대의 성벽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로마성벽

바르셀로나는 기원전 3세기에 카르타고의 하밀카르 바르카(Hamilcar Barca)가 건설한 이후 '바르카 가()의 도시'라는 뜻의 바르시노(Barcino)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의 스키피오에게 패해 카르타고는 힘을 잃어 결국 기원전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멸망했다. 2차 포에니 전쟁 이후 로마의 영토가 되어 로마의 작은 요새로 건설되었다. 그 후 바르셀로나는 좋은 경관과 항구 덕분에 서서히 부유해지면서 발전했다. 로마 제국은 이곳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으며 시는 자체 주화를 찍어냈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당시의 성곽이 아직도 튼튼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이비스커스

로마시대의 성곽을 따라서 람블라스 거리로 향했다. 길모퉁이에 하와이무궁화인 하이비스커스가 예쁘게 피어 있다. 단단한 돌바닥 사이를 비집고 피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람블라스 거리는 키 큰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이 1.2km나 이어져 있다.

 

람블라스 거리

거리 양쪽에는 예쁜 카페와 기념품점 등 쇼핑숍들이 즐비하고 곳곳에 거리공연을 하는 행위예술가들이 함께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고 동양인은 거의 없다. 코로나 전 같으면 유럽의 유명관광지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지만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이 없어 거리가 비교적 조용한 편이라서 다행이라 느껴진다.

 

보케리아 시장

람블라스 거리 중간 지점에는 보케리아시장이 있다. 이곳에서 특히 눈이 띄는 것은 과일 상점이다. 신선하고 다양한 종류의 과일들이 형형색색 너무 많아 무엇을 먹을지 망설이다가 결국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눈팅만 하고 말았다.

 

싱싱한 과일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오래된 골목길로 들어갔다. 골목마다 각종 가게가 늘어서 있다.

차에서 내릴 때는 귀한 소나기가 내린 직후라 시원했지만 걷다보니 땀이 났다. 마침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었다. 전에는 무조건 시원한 맥주만 눈에 들어오고 아이스크림 같은 것은 눈에 들어 오지가 않았다.

 

람블라스거리 골목길

그런데 금주한 이후에는 아이스크림의 시원달콤함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 거리에는 제법 유명한 레알광장이 있다. 광장 한가운데 분수대가 있어 이곳에 앉아서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상을 자세히 분석했다.

 

레알광장 분수대

백인들의 관상도 천차만별이다. 백인, 흑인, 혼혈인, 동양인 등 다양한 인종들이 광장을 지나가고 있다. 눈이 가장 많이 가는 사람은 쭉쭉 빵빵의 젊은 여인들이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느낌일 것이다. 가우디가 설계 제작했다는 가로등도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온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상만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을 것 같다.

 

가게들

그런데 계속 앉아 있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리현상이다. 유럽여행에 있어서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화장실 문제다. 화장실이 유료이다. 그런데 이런 유료화장실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길가의 가게에서 해결해야 한다. 맥주나 커피를 마시거나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면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유가 없고 바쁜 시간에는 어떻게 할까? 이번에 좋은 경험을 했다. 제법 번잡한 커피가게에 가면 종업원들이 바쁘게 움직여서 누가 누군가를 분별하지 못하고 일에 몰두하다 보니 통제를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화장실 표지판을 따라 해결하면 된다.

 

카사바트요

저녁 시간이 되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가우디 작품의 집합주택인 카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를 보았다. 카사 바트요(Casa Batlló,1907년 완성)는 카사는 집이고, 바트요는 사람 이름이다. '바트요의 집'이라는 뜻이다. Casa는 책에서는 카사라고 나오고 스페인 사람들의 발음은 까사라고 한다. 즉 카사와 까사를 혼용하고 있다. 카사 바트요는 벽면에 초록색, 황색, 청색 등의 색유리 파편이 덧붙어 있어 햇빛을 받으면 모자이크처럼 다채롭게 빛난다. 창문의 발코니와 기둥은 마치 동굴이나 벌집 모양처럼 꾸며져 있다. 창문살은 뼈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비늘 모양의 구불구불한 지붕도 매우 인상적인데 이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용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안 내부를 보아야 하는데 일정상 할 수가 없었다. 내부에 들어가면 인체에 편안하도록 디자인된 난간, 손잡이 등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까사밀라

까사 밀라(Casa Mila)'밀라의 집'이라는 뜻이다. 바르셀로나의 중심가인 그라시아 거리에 위치한 까사 밀라는 ''을 주제로 디자인된 건물로, 곡선 모양의 외벽과 내부가 특징이다. 까사 밀라는 카사 바트요 대각선 맞은편에 있다. 외관은 마치 물결치는 파도처럼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습은 몬세라트의 기암괴석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정교하게 조각한 돌 4,500개를 이어 붙여 각진 곳이 없고 전부 곡선으로 창문의 모양이 다 다르다고 한다.

 

가우디설계 가로등

가우디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 ‘직선은 인간의 선’ ‘곡선은 신의 선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가우디는 평생 신과 건축에만 몰두해 살았는데 이곳 옥상에도 원래 성모마리아 조각상을 올려놓을 계획으로 시작했으나 공사 중 종교계의 부정부패 사건이 터져 시민들이 종교적인 것을 파괴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밀라 부부와 가우디와의 갈등으로 후반 작업은 동료에게 부탁하고 떠났다. 밀라 부부는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밀라의 아내가 가우디 스타일을 맘에 들어 하지 않아서 7년간 소송을 했다. 결국 가우디의 승리로 끝나 가우디는 받은 돈을 가톨릭 재단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7층엔 밀라 가족이 살고, 나머지는 고급아파트로 꾸며 분양하려고 했으나 당시 독특한 스타일을 이해 못한 사람들의 비난으로 분양은 실패했다고 한다.

 

여행 시작의 첫날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는 바르셀로나 교외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중심가에서 30여 분을 더 가야 한다. 가는 길에서 본 바르셀로나는 바닷가에 인접한 도시임을 볼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큰 항구 도시로 카탈루냐 자치주의 주도이기도 하다. 바르셀로나는 내가 사는 부산과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숙소에 도착하여 바르셀로나의 첫날 밤을 무사히 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