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 간 봉화 승부역 가을여행
매년 두 번 오랜 친구들과 함께 전국 자연휴양림에서 1박 2일을 보낸다. 작년 가을에는 만경대산자연휴양림에서, 올 여름에는 덕유산자연휴양림에서 보냈다. 올 가을에는 경북 봉화에 있는 청옥산자연휴양림에 예약해 두었다. 여정을 청옥산자연휴양림→점심→승부역→낙동강상류트래킹→청옥산자연휴양림→백천계곡→태백산 문수봉→부쇠봉→천제단→백천계곡으로 정하였다.
10월 17일 정오까지 청옥산자연휴양림에서 만나기로 했다. 용인에 사는 친구를 필두로 청주, 부산에서 출발하여 무사히 잘 도착했다. 7월 초에 덕유산 자연휴양림에서 보고 3개월 만에 만나는 얼굴들이다. 다섯 명이 차 한 대에 타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열흘 전 사전답사 때 백천계곡 입구에 있는 뜰가든 식당에 능이버섯 백숙과 두루치기를 미리 주문을 해 두었다.
경북 봉화에는 한우가 유명하다. 돼지고기 값으로 한우를 먹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질 좋은 한우고기를 싼 값에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맛있는 한우고기를 친구들에게 쏘겠다고 사전에 알렸다. 이 나이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3학년에 편입하여 첫 학기 성적 우수 전액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학금 전액을 친구들에게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 와 보니 한우고기를 하는 식당이 없다. 봉화군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 이곳이다. 심지어 석포면사무소 근처까지 가서 한우고기를 잘하는 곳이 있는지를 알아보았지만 찾지를 못했다. 다행히 제법 운치 있는 식당을 찾았다. 바로 뜰가든 식당이었다. 이곳에서는 한우를 취급하지 않고 주 메뉴가 곤드레 밥과 능이버섯 백숙이다. 나는 좋은 식당의 기준을 밑반찬에 둔다. 밑반찬 잘하는 집이 맛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집의 밑반찬이 맛깔스럽고 깔끔하여 좋았다. 그래서 한우 대신에 능이버섯 백숙과 두루치기를 예약을 해 두었던 것이다.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복 중 하나는 먹는 복이다. 그런데 나는 식복을 타고나지를 못했다.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나 굶어 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 시절에 그나마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고기반찬은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고기요리 냄새조차도 견디지 못했다. 특히 소고기국 냄새는 멀리서 맡아도 토할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살아오면서 먹는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맛집으로 알려진 곳에 몇 시간 동안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동물에 가까운 인간으로 치부하고 살았다.
그런데 사주이론에는 식신이 발달된 사람들은 음식 솜씨도 좋고 먹는 즐거움도 함께 누린다. 나는 식신이 시주에 있어 나이가 들어서야 이들을 마음으로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어릴 적부터 좋아하는 음식인 발효가 잘 된 김치와 갈치와 꽁치를 사랑한다. 혹시나 친구들이 맛이 없어 할까 걱정을 했는데 친구들은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한다. 다행이었다.
이젠 승부역으로 향해 낙동강 상류의 비경을 볼 차례다. 승부역은 이곳에서 30여 분을 더 가야 한다. 승부역으로 가는 길은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다. 첫째 지나가는 차가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자 주변의 산수가 아름답다. 태백산과 청옥산에서 발원된 물이 모여 백천계곡을 이룬다.
백천계곡의 물길은 내려오면서 병오천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이 병오천이 다시 송정리천과 합류하면서 송정리천으로 불린다. 송정리천은 낙동강의 발원지인 태백 황지에서 시작한 물이 황지천으로 불리다가 송정리천과 합류하면서 낙동강으로 불리게 된다. 낙동강물은 석포역을 거쳐 12키로를 더 달리면서 승부역 앞으로 흘러간다.
우리는 승부역 앞에 차를 세워두고는 이 물길을 따라 걸어서 양원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몇 십 년만의 10월 한파로 인해 기온이 낮았지만 낮에는 걷기에 가장 좋은 날씨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씨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친구들은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주름진 할아버지 얼굴에 아이의 표정이 서려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승부역에서 양원역을 거처 분천역까지의 12,3km를 '비경길'이라 불린다. 2015년 개장한 이 길은 완만한 길로 이루어져 트래킹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길이다. 요즈음 '슬로우' '천천히' '느림'을 앞에 단 관광 상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빠른 것을 선호하는데 다행히 관광에서만큼은 느림도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그만큼 각박하고 숨 돌릴 틈 없는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은 이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도 느림의 미학을 즐기기 위해 이번 여행도 기획한 셈이다. 해지는 시간을 고려하여 승부역에서 양원역 방향으로 한 시간을 걸어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다. 길은 걷기에 좋게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어린 시절을 낙동강변에서 보낸 나로서는 더욱더 정감이 간다. 홍수 때 불어난 물로 인해 모래가 상당히 높은 곳까지 쌓여 있다. 이러한 모래는 낙동강 중류에 속하는 내 고향의 모래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
시계를 보니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간다. 오늘은 끝없이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되돌아갔다. 같은 길이지만 갈 때와 올 때는 풍수가 다르다. 또 다른 맛이 났다. 티 없이 맑은 날이라 몸과 마음이 쾌적하다. 늘 이러한 몸과 마음으로 살고 싶다.
어느새 승부역에 도착을 했다. 승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에 있는 역으로 알려져 있다. 승부역은 영동선(영주-강릉)에 속하는 역이다. 영주 기점 69.2km 지점에 있다. 1956년 1월 1일 영암선 개통에 따라 보통역으로 출발했다. 승부역의 이름은 예로부터 이곳이 다른 마을보다 잘 살았고 부자 마을이라고 해서 승부(承富)라고 붙여졌다고도 하고, 삼국시대에 전쟁이 났는데 이곳에서 승부(勝負)가 결정되었다고 승부역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한자로 풀이하면 이을 승과 부자 부이다. 승부역 오기 전에 승부마을이 있다. 이곳의 지세를 보며 비록 산비탈이지만 제법 넓은 경작지를 갖고 있다. 사과와 배추가 아주 잘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의 토질은 아주 좋은 편이다. 옛날에는 먹고 사는 데는 걱정 없는 부자 마을이라고 생각된다.
승부역은 1999년 환상선 눈꽃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하면서 자동차로는 접근할 수 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끌어 2004년 12월 10일 보통역으로 재승격하였다. 현재는 석포면 방면으로 도로가 나 있고, 면사무소를 오가는 마을버스가 운행 중이다. 우리 역시 이 도로를 이용해서 이곳에 왔다. 승부역을 알리는 시가 있다.
"승부역은 / 하늘도 세평이요 / 꽃밭도 세평이나 / 영동의 심장이요 / 수송의 동맥이다"
이 시는 승부마을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를 1960년대에 승부역에 근무하던 역무원이 남긴 시라고 한다. 이 짧은 시가 승부역을 다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승부역을 지나면 강을 건너는 승부현수교가 있다.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참 아름답다. 현수교 한가운데에서 앞뒤로 보면 협곡으로 이루어진 곳에 맑은 강물이 흘러 무릉도원을 연상케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곳에서 한 달 살아보기를 해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쉬움을 남겨두고는 다시 청옥산 자연휴양림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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