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남도 기행 3
-만재도-
목포항을 떠난 배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항해하고 있다. 30여 분이 자나자 수년전에 가보았던 상태도, 하태도, 멀리 하의도가 보인다. 조그마한 섬들이 계속 이어져 나타나 배의 속도에 따라 바뀌는 풍경을 즐기게 한다.
삼 년 전에 다녀온 상조도, 하조도도 보이고 멀리 관매도처럼 보이는 섬도 나타난다. 지금까지 가 본 섬 중에는 관매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죽기 전에 한 달 살아보기를 해보고 싶을 정도로 수려한 풍광을 지닌 섬이었다.
출항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주변에 섬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망망대해만 있다. 파도가 제법 높다. 배도 가만히 있지 않고 울렁인다. 덩달아 내 속도 울렁이어 토할 정도는 아니지만 불편하다. 십수 년 전에 일본 후쿠오카를 갈 때와 같은 느낌이다. 그 당시에도 우리 일행 중 몇 사람이나 멀미로 고생을 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불편할 따름이었다. 속이 울렁이는 것도 진정시킬 겸 눈을 감았다.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만재도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잠에서 깼다. 푹 잘 잔 셈이다. 새벽에 일어나 만 칠천 보 이상 걸었으니 당연히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목포에서 출발할 때부터 짐을 줄였다. 중간 정도의 배낭 하나와 등산스틱이 전부다.
만재도는 한 눈에 섬 전체가 다 조망이 될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는 느낌이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퍼플섬에서 출발하기 전에 민박집에 예약을 해두었다. 1박 3식에 1인당 오만원이란다. 너무 값이 싼 것 같아 돈을 더 드릴 테니 반찬을 조금 더 잘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생선회를 해 달라고 했더니 이곳에는 1월 달부터 4월 달까지 4개월은 고기가 안 잡힌다고 한다. 남편이 낚시꾼이라 말린 생선은 많이 있어 매끼마다 해줄 수 있다고 한다.
짐을 풀어 놓고는 밖으로 나왔다. 해가 지려면 한 시간이 더 있어야 한다. 마을 앞을 나와 방파제 쪽으로 걸어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가끔 본 삼시세끼에서 유해진이가 낚시하는 장소까지 갔다. 섬의 풍경은 육지와는 다르다. 긴 세월 동안 파도가 만들어낸 바위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섬이 아니면 보기 힘들다.
다시 민박집으로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식사가 보통이 아니다. 생선구이, 홍합무침, 배말, 보말이라고 불리는 삿갓조개 무침, 미역국 등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총집합이다. 그리고 주인아주머니가 나의 전화를 받고 바로 바닷가로 나가 잡아 온 고동과 거북손 삶은 것을 한 가득 쟁반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도 회가 없어 미안하다고 한다. 그리고 당부하는 말이 밤에는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 바위가 미끄러워 사고가날 수 있다고 한다.
섬의 집들은 지붕이 낮다. 바람을 막으려고 지붕과 돌담이 딱 붙은 집도 있었다. 이러한 집에서 자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나 자 볼 수 있는 돌담집이다. 천장이 낮고 방이 작아서 아늑하고 잠자리가 평안했다.
날이 밝아진 것 같아 얼른 밖으로 나왔다. 5분만 일찍 나왔어도 오메가 일출을 볼 수 있었는데 놓쳤다. 아쉬웠다. 아마 다음에 한 번 더 오라는 신의 계시라고 생각하고 마을 안쪽으로 산책을 나섰다. 흑산초등학교 만재도 분교를 민박 펜션으로 개조하여 마을 공동체에서 운영하고 있다.
분교터 앞에는 이 마을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할머니 당숲이 있다. 그리고 할머니 당숲 밑에는 이 마을의 유일한 우물이 있다. 지금은 담수발전소 덕분에 그 기능이 상실되었지만 여전히 신성시한다고 한다.
포장된 길을 따라 담수발전소가 있는 곳까지 올랐다. 뒤돌아 바다를 바라보니 수평선 위로 떠오른 일출풍경이 장관이다. 바다 위에 불기둥이 선명하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천천히 조금씩 점점 더 산으로 오르자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섬 주변의 올망졸망한 작은 바위섬들이 만들어 주는 풍경이 이채롭다.
길이 산 정상을 향해 잘 나와 있다. 보랏빛 제비꽃과 노란 유채꽃이 한창이다. 능선에 도착했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바다풍경은 높이가 달라짐에 따라 또 다른 모습이다.
뒤쪽에 코끼리를 닮은 두 개의 섬이 나란히 붙어 있다. 바위섬에 아침빛이 비치자 입체감이 살아난 바위는 신비롭다. 태고의 신비감이다. 수만 년을 파도와 비바람에도 의연하게 버텨온 바위섬이다.
100년도 못 살고 갈 우리 인생을 볼 때 여행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동시에 잠깐 살아가기에 살아 있는 이 순간을 더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나도 모르게 산 정상을 향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을 나아가고 있다. 마침 단전호흡수련을 하면 좋은 장소가 나타났다. 평평한 바위다. 단전호흡 자세를 하고는 하염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을 느끼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호흡으로 가다듬은 마음으로 다시 산 정상을 향해 올랐다. 비바람에도 버틴 산죽들이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에 비록 색은 바랬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등이 땀에 젖을 정도로 가파르다. 드디어 산 정상에 다다른 줄 알았더니 그러나 아니었다. 한 굽이 더 가서 등대가 있는 곳이 정상이었다.
다시 내리막으로 조금 내려가자 이곳은 평평한 작은 들판이다. 아마도 옛날에는 이곳에서 밭농사를 지었을 것 같다. 근처에는 그늘사초와 고사리가 여기저기 올라와 있다.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데크계단이 설치되어 있지만 오래되어 군데군데 무너져 있다. 조심조심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자 드디어 등대가 있는 마구산(177m) 정상에 도달했다.
마침 아침햇살을 받으며 배 한 척이 지나간다. 아침햇살이 반짝이는 물결을 가르며 천천히 지나가는 모습에 절로 셔터를 누르게 만든다. 정상에서 보니 만재도는 큰 섬 하나와 작은 섬 여럿이 같이 이루는 섬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겠다. 섬들의 군집이다. 등대를 가운데 두고 한 바퀴를 돌았다. 만재도의 전체적인 풍수가 보였다.
산 정상의 왼쪽인 좌청룡은 급경사의 절벽이라 좌청룡이 약하다. 그러나 우백호는 아주 잘 생겼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남 주작 또한 훌륭하다. 청룡이 약하면 남자들이 힘을 못 쓴다. 반면에 백호 맥이 잘 생겨 이곳에 태어난 딸들과 여인들은 남성들보다는 아마도 생활력도 강하고 삶이 더 충만할 것 같다.
정상에서 몇 번이나 사방을 돌았다. 등대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다. 특히 수백 년 된 후박나무가 멋있게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옆에 수백 년은 됨직한 동백나무는 나무에 달린 꽃도, 떨어진 꽃도 눈길을 잡아끈다.
이곳 전체가 하나의 숲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할아버지 당숲이라고 부른다. 땔감이 아무리 부족해도 절대 손을 대지 않고 신성시했다. 이곳 할아버지 당숲과 짝을 이루는 곳이 올라올 때 본 할머니 당숲이다. 삼라만상에는 음양이 존재하듯이 이곳 만재도의 당숲도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마을마다 당숲이나 당산나무들은 할아버지 당과 할머니 당이 많이 떨어져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내소사의 당산나무들이다. 일주문 앞에 있는 당산나무가 할아버지 당산나무고 사찰 경내에 있는 느티나무가 할머니 당산이다.
이처럼 음양은 조금 떨어져 있어야 서로 그리워하지 같이 붙어 있으면 다툼이 일어난다. 이 음양이 조화를 이룰 때 삶의 평화가 있다. 이 조화가 무너져 균형이 깨어지면 사건 사고가 생긴다. 지금 이 시대도 예외가 아니다. 음양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원칙이 필요하다. 원칙을 어길 때 문제가 발생한다.
사주이론에 원진살이라는 게 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하다가 만나기만 하면 싸움만 한다는 신살이다. 원진살은 각자가 태어난 날의 일지를 중심으로 본다. 일지가 진해, 자미, 인유, 축오, 사술, 묘신이면 원진살이다.
예를 들어 나의 일주는 을축이다. 축과 원진살은 오다. 상대방의 일주가 갑오, 병오, 무오, 경오, 임오생이 해당된다. 특히 경오생 여자를 만난다면 을경 합인 동시에 축오 원진이다. 겉궁합은 아주 좋으나 너무 많은 간섭으로 인해 을축인 나는 너무 피곤해진다.
원진살은 부부 궁합에도 적용하지만 개인의 사주 분석에도 사용할 수 있다. 나의 시주는 임오다. 즉 일주인 을축일에서 보면 축오 원진이다. 그런데 시주는 일반적으로 자식의 운세를 많이 보여준다. 그러므로 나의 사주에서는 자식과 원진살인 셈이다. 그러면 이러한 경우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
일주와 시주가 원진이면 자식과의 관계가 적용된다. 나의 경우 아들 하나다. 내 사주 자체가 아들과 원진살을 이룬다. 즉 아들과 나는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하고, 같이 있으면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들과 한 집에서 살 생각 자체를 안한다. 게놈지도의 완성으로 생물학적으로 우리 인간은 유전자의 전달체일 뿐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내 유전자의 전달체인 손녀들이 보고 싶어도 아들에게 손녀 보고 싶다고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자기들이 알아서 데리고 오면 본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이가 드니 손녀들이 자주 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보고 싶어도 애걸 하지도 않지만 지시와 명령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나쁜 신살이 있으면 거기에 따라 처방을 하면 해결이 된다. 보통 철학관에 가면 남녀궁합에 원진살이 있으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원진살도 기본은 애정살이다. 애정이 없으면 미움도 없다. 미워한다는 것 자체가 사랑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원진살이 있는 부부들이 사주상담을 하러 오면 가능하면 주말부부가 좋고, 그럴 입장이 아니면 같이 집에 살더라도 서로의 삶을 인정해주라고 한다. 서로의 삶을 인정하는 방법 중 최선의 방법은 ‘따로 또는 같이’ 이다. 기본은 각자가 자기 일을 우선적으로 하는 ‘따로’가 우선이디. ‘같이’는 따로가 해결되고 난 후 하면 사랑이 식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사주 상담 경험상 통계적으로 부부의 십중팔구는 싸우거나 사이가 좋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소유욕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소유물이 아니라 각자 독립된 존재이다.
할아버지 당숲과 할머니 당숲을 보면서 사고의 확장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시간이 멈추어진 것 같았는데 내려오니 3시간이나 흘렀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아침식사를 마련해 놓으셨다. 어제와 비슷한 반찬인데도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배가 고파 밥을 먹은 것보다 때가 되어 밥을 먹었다. 그래서 특별히 뭔가 맛있다고 느낀 적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 집 반찬은 내 입맛에 딱 맞다. 전생에 내가 섬사람이었나 생각할 만큼 좋았다.
아침식사 후 잠깐 쉬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지금 안개가 들어오니 구경하라고 한다. 만재도에 남편 따라 낚시하러 다니다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아주머니도 바다안개가 깔릴 때 그 안개 위로 새들이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것은 참 신비롭다고 하였다.
안개가 섬을 싸고 돌자 주변의 바위들이 더 신비롭게 보인다. 마을 골목들을 이리저리 다 돌아다녔다. 타임머신을 타고 60년 전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다. 어린 시절에나 볼 수 있었던 돌담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돌담과 하늘색 지붕만 보인다. 일일이 집 안을 구경하러 다녔다. 담을 높이 쌓은 이유는 태풍 때문이다. 돌담이 없으면 집이 바람에 날아가기 때문이다. 민박집 아주머니집도 집 완공 후 3일 만에 태풍에 지붕이 날아갔다고 한다.
이곳 주민은 27가구 50명이라고 한다. 보건진로소와 담수발전소 직원들을 포함하면 29가구다. 1965년에는 87가구 563명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황금기에는 이 작은 섬에 100가구가 넘게 살았다고 한다. 마을 건너편 산 밑에는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살던 집터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어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 주고 있다.
만재도의 황금기를 1930~1960년대다. 당시는 만재도 근해에서 전갱이과의 가라지라는 생선이 대풍을 이루었다. 이곳에서 가라지 파시가 열릴 정도로 풍요로운 섬이었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만재도에 딸을 시집보내려고 경쟁이 붙었다고 한다. 마을 앞 해변에 있는 몽돌해수욕장에는 12동의 가건물 기생집이 들어섰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노랫가락이 밤새도록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만재도에 사람이 처음 정착한 것은 1700년경이다. 처음 행정구역은 진도군 조도면에 속했다. 지금은 신안군 흑산면 소속이다. 지명은 바다 가운데 멀리 떨어져 있어 ‘먼데섬’ 또는 ‘만대도’라고 하였다. 또 재물을 가득 실은 섬 만재도(晩財島) 또는 해가 지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 하여 ‘만재도(晩才島)’라 하였다. 돔 낚시터로 유명하며 김, 미역, 톳 등 각종 해조류와 우럭, 장어, 전복, 홍합 등이 많이 난다. 해조류 채취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 배시간이 바뀐 이유는 해양수산부에서 선정한 '어촌뉴딜300 사업'으로 방파제가 완공이 되었기 때문이다. 목포에서 5시간 반이나 걸리던 것을 3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만재도에 쾌속선이 접안할 접안시설이 없어서 가거도에 먼저 승객을 내려주고 만재도로 왔지만 이젠 만재도에 먼저 승객을 내려주고 가거도로 간다.
원래 만재도는 덤이었고, 주 목적지는 가거도였다. 어촌뉴딜300 사업 덕분에 쉽게 만재도를 답사할 수 있었다. 만재도 선착장에는 어제처럼 목포에서 2시 반에 출발한 쾌속선이 5시 경에 도착을 했다. 어제보다 20여 분이나 일찍 도착한 셈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바다 물결이 고요하기 때문이다. 만재도에서 가거도까지는 한 시간이 걸린다. 어제는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오늘은 고요한 호수에 배가 가고 있는 느낌이다. 풍랑이 거의 없다. 배는 오십여 분만에 가거도에 도착을 했다. 가거도에도 바다안개가 걷히지 않고 자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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