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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봄날의 남도 기행 4-가거도-

by 황교장 2021. 4. 3.

봄날의 남도 기행 4

-가거도-

 

  가거도 선착장에 내리자 예약을 해둔 펜션에서 기다리고 있다. 차를 타고 펜션까지 갔다. 기사는 펜션 주인아들이라고 한다. 언제까지 가거도에 머물 것인지를 묻는다. 내일 독실산 등산을 하고 모레 아침에 목포로 갈 예정이라고 말하자 모레부터 삼 일간 출항금지 명령이 내렸다고 한다. 그러면 내일 가는 배는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내일 아침 8시에 출항하는 쾌속선이 있고, 오후 한 시에 출항하는 완행배가 있다고 했다. 그럼 오후 한 시배를 타고 가면 되겠다 싶었다.

 

이곳 독실산에는 다섯 개의 등산 코스가 있다. 이 코스들을 하루 만에 다 종주할 계획을 세우고 가거도에 왔다. 그러나 한 시에 배를 타려면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독실산 정상까지만 갔다 오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4시간 정도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다고 한다. 7시에 출발하면 늦어도 11시에는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펜션은 식당을 겸하고 있어 예약을 할 때 생선회를 주문했다. 제법 풍성하게 나왔다. 맛깔 좋게 생긴 생선회를 보면서 주님을 모시지 않으려고 하니 가슴이 쓰렸다. 그러나 끝까지 참았다. 남은 인생을 좀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다. 이런 인내가 없이 마냥 즐기다가는 건강한 삶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을 내 몸이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건강나이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주님과는 인연을 끊고 회를 사이다 안주로 먹었다. 그래도 회 맛은 상당히 좋았다. 싱싱한 가거도 자연산이다. 식사 후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 지를 묻는다. 내일 한 시 배로 갈 것이라고 하자 내일은 한시 배가 없고 아침 8시 배밖에 없다고 한다. 이집 아들이 내일 한 시 배가 있다고 했는데 라고 하자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한다.

 

짝수 날에는 한 시 배가 없다고 한다. 난감했다. 내일 8시에 떠나지 않으면 삼 일간 묶였다가 화요일은 되어야만 목포에 나갈 수 있다. 이유를 물으니 폭풍우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여정이 기대 이상이었는데 메인 여행지인 가거도가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렸다. 그나마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다.

 

일단 가거도 일대를 야간 구경을 하러 갔다. 펜션이 있는 곳은 제법 높은 지대라 펜션을 나와 골목길로 내려갔다. 골목 안에는 만재도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돌담집들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타고 온 쾌속선이 항구에 정박되어 있는 곳까지 갔다. 이 배로 내일 아침 8시에 출항해야 한다. 큰 길을 따라 마을 구경을 했다. 만재도와는 달리 육지의 어느 면소재지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번화한 거리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뛰게 큰 건물은 보건지소다. 24시간 응급의료가 가능하다고 안내되어 있다.

조금 더 가자 펜션집 차를 타고 왔던 길이 나왔다. 이 길을 따라 직진해서 가면 산고개를 넘어 반대편 해안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돌면 펜션으로 가는 길이다. 이것으로 가거도의 중심지를 다 본 셈이다. 돌아와 씻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6시 반에 짐을 다 챙겨서 펜션을 나왔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길을 가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밝았다. 큰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자 학교가 나왔다.

가거도 초등학교와 흑산중학교 가거도분교와 가거도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이 함께 있다. 교실 외벽에 학년 표시가 되어 있다. 중학교 1, 2학년 즉 한 교실에 두 개 학년 학생이 동시에 수업을 한다는 뜻이다. 저런 수업도 가능한 것일까 생각하니 선생님들이 참 힘이 들겠다 싶었다.

 

우리나라 시골 어디로 가도 그 고장의 가장 명당자리는 학교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개발되는 아파트 단지들의  학교를 보면 풍수가 그다지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지는 않다.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자 교사들의 숙소로 보이는 건물이 나왔다. 최신 건물이고 잘 지어져 있다. 다시 태어나면 이런 곳에서 선생님을 한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숙소 옆으로 텃밭이 있고 그 옆으로 작은 길이 숲으로 이어져 있다. 이 길을 따라가자 등산로와 연결이 된다. 산등성이에 도달하자 가거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해무가 걷혀서 이만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조금 더 오르자 7부 능선에 조망할 수 있는 데크가 있다. 가거도 풍수를 조망하기에는 참 좋은 곳이다.

풍수를 제대로 보려면 산 능선을 타고 올라가 독실산 정상에서 보아야 되지만 조금은 아쉬웠지만 다행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가거도의 산은 한 마디로 웅장하다. 1004의 섬들이 올망졸망 다도해의 특징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이 산은 장년기의 산처럼 씩씩하게 생겼다. 대부분의 가거도 주민은 아래에 보이는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그나마 사람이 살만한 곳이 이곳밖에 없는 산의 형세다. 이곳만 남향에 위치하여 비교적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상 만재도와 같이 좌 청룡이 부족하고 우 백호는 좋은 편이다. 그리고 북 현무는 상등에 속한다. 남 주작도 부족하다. 풍수 상 사람이 살기에는 많이 부족한 곳으로 보인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유적이 발굴되었다. 가거도 등대 옆 선사 유적지에서는 패총과 함께 돌도끼, 돌바늘, 토기 파편 등 신석기 유물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먹을거리인 해산물이 풍부해서일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가거도의 지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옛날에는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可佳島)로 불리다가 1896년부터 가히 살 만한 섬이라는 뜻으로 가거도(可居島)로 불리게 된 것이다.

 

가거도에 처음으로 입도한 사람은 1580년 무렵이며, 사람이 본격적으로 살게 된 것은 1800년 무렵부터라고 한다. 가거도는 대한민국과 중국대륙 사이에 위치해 있다. 목포에서 직선거리로 145km, 중국본토와는 약 300km 위치에 있다. 가거도에서 목포까지 직선거리의 두 배 정도 가면 중국대륙에 닿는다.

 

그래서 중국 산둥반도에서 새벽닭이 울면 가거도까지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토의 최 서남단에 위치한다. 6 · 25 한국전쟁도 소식으로만 듣고 지나갔다고 한다. 가거도는 국토의 최 서남단에 위치함으로 지리적, 외교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섬인 것이다.

 

독실산은 신안군 일대에서 최고 높은 산이다. 해발 639m로 우리나라 섬에 있는 산으로는 제주도의 한라산(1950m), 울릉도의 성인봉(984m)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이는 다리가 놓여 육지화가 된 섬을 제외하고 한 랭킹이다. 육지화 된 섬 전체를 다 포함해도 남해의 망운산(786m)과 금산(701m), 완도의 상황봉(644m)에 이어 여섯번 째로 높은 산이다. 지금 이곳에선 독실산 정상은 볼 수가 없고 능선에 올라가야만 정상을 잘 볼 수 있다. 아쉽다. 청명한 날 산 정상에서는 한라산이 보이고 중국 땅이 보인다고 한다. 발길을 돌리기는 너무 아쉬웠다.

 

이 또한 다시 오라는 신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어제 밤에 내려간 길과 다른 길을 택해 내려갔다. 집들이 급경사지에 지어져 위태롭게 보인다. 또한 만재도와 비슷한 돌담길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돌담길에 급경사여서 나이가 들면 무릎 관절이 제일 많이 고장이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제일 중요한 것은 척추와 무릎관절, 발목관절이라고 한다. 인간의 기본은 직립보행이다. 걷지 못하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걸을 때 허리를 곧게 펴고 무릎도 앞무릎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앞발에 무게 중심을 두지 말고 발바닥 전체와 뒤꿈치에 무게중심이 갈 수 있도록 신경을 쓰면서 조심조심 걷고 있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가자 큰길이 나왔다. 바로 앞이 선착장이다. 매표를 하고 배를 기다리는데 관계자가 지금 목포 근해에 해무가 짙어서 배가 출항할 수가 없다고 한다. 만약 10시까지 출항하지 못하면 오늘 출항은 없다고 한다. 마음 한편으로는 출항 안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이것도 운명이다. 운명에 주어진 대로 순순히 따르는 것 또한 삶의 한 방식이다.

 

마냥 기다리기 지루하여 심심풀이로 나의 사주를 가지고 오늘의 운세를 풀어보았다2021.3.26.8시는 신축년, 신묘월, 계유일, 병진시다. 천간에는 병신이 투합이 되고 지지는 연과 일은 사유축 삼합이고, 월과 일은 묘유 충이다. 시는 진유 합금이다, 금의 기운이 아주 강하다.

 

나의 사주에 가장 치명적인 천간이 신금이다. 을목 일간이 약한데 깡패 같은 편관인 신금이 천간에 두 개나 뜨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오늘이 계유일이라 신금 두 개가 일지 유금에 힘을 받고 사유축 금 삼합과 진유합금으로 금의 기운이 아주 강해 을목인 나를 괴롭히는 날이다.

그러나 결국은 신금 두 개와 병진시의 병화는 투합을 이루어 병신 합이 되어 수로 변한다. 그리고 일간 계수는 깡패 같은 신금기운을 흡수하여 결국 을목을 도와주어 오늘 일진은 무탈한 일진이 된 것이다. 결국 을목에게는 오늘 일간 계수가 용신인 셈이다.

 

따라서 출항이 가능하다고 일진을 풀이해 보았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 삼 일간 이곳에 머물더라도 오늘 가거도 종주를 꼭 하고 싶기도 했었다.

 배가 9시에 출항하니 밖에 계시는 승객들은 모두 승선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다음에 친한 친구들과 함께 다시 오라는 신의 계시라고 받아들이고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출발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배는 출발했다.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안내방송이 나온다. 만재도에 도착한다는 내용이다. 창밖을 보니 멀리 만재도가 보인다. 어제 미처 보지 못한 깎아지른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파도가 얼마나 강한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해식애가 아주 잘 발달되어 있다. 어제는 볼 수 없었던 주상절리다. 배를 타야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제주도 서귀포에 있는 주상절리보다 뒤처지지는 않게 보인다. 우리나라 주상절리는 서귀포와 무등산과 경주 양남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곳에 주상절리가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멀어지는 만재도를 계속 바라보았다. 섬은 점점 작은 점으로 보였다가 사라졌다. 어제 만재도에 도착한 것부터 가거도로 떠날 때까지의 광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제 일인데도 까마득한 먼 옛날 일인 듯 꿈을 꾼 것처럼 느껴졌다. 시간의 흐름과 인간 뇌의 기억구조라는 게 참 묘하다.

주역에서는 자연계와 인간계를 포함한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易이라는 한글자로 표현한다. 역이란 변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계속해서 시간의 연속성 속에 변화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도 무궁한 시간의 연속성 속에 하나의 작은 점을 찍는 것과 같다.

 

눈을 감고 이번 여행을 생각하니 문득 이백의 '춘야원 도리원서'가 떠오른다.

" 也(부천지자 만물지역려 광음자 백대지과객 이부생약몽 위환기하 고인병촉야유 양유이야)

대저  천지라고 하는 것은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와 같다. 뜬구름 같은 인생이 꿈과 같으니 즐거움을 누리는 때가 얼마나 되겠는가? 옛사람이 손에 촛불을 밝혀든 채 밤에 유유자적 노닐었음은 참으로 까닭이 있었다."

 

유한하고 무상한 삶 속에서 때로 무한하고 의미 있는 삶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여행이 그중 으뜸이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 통증없이 튼튼한 두 다리로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것을 앞으로 남은 내 삶의 화두로 삼아야겠다.

 

목포에 점점 가까워지자 해무가 많아 가시거리가 좋지 않다 목포항에 곧 도착할 예정이라는 안내 방송이 상념에서 눈을 떠게 했다. 이것으로 이박 삼일의 만재도와 가거도의 섬 여행은 조만간에 마음맞는 친한 친구들과 재도전할 것을 기약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돌아가는 길에 영암의 벚꽃 가로수길과 왕인박사와 도선국사의 탄생지, 강진 가우도를 둘러보고는 무사귀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