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남도 기행 1(강진 영랑생가와 달마산 도솔암)
살면서 가장 마음 설레게 하는 것 중 하나는 가보지 않은 곳으로의 여행이다. 그 동안 계획은 했으나 실패를 거듭한 곳이 달마산 도솔암, 가거도와 만재도이다. 달마산 미황사를 답사하고 나면 에너지가 고갈이 되어 도솔암까지 갈 수가 없었다. 미황사에서 출발하여 달마산 정상을 지나 도솔암까지의 종주를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가거도와 만재도는 섬이라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힘든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 작정하고 도솔암과 가거도와 만재도를 가 보리라 마음 먹었다. 여행사에 문의해본 결과 가거도는 갈 수 있지만 만재도는 갈 수가 없다고 한다. 가거도만이라도 갈 수 있다면 이것 또한 행운인 셈이다. 가거도 가는 배는 목포연안여객터미널에서 오전 8시에 있다고 한다.
부산에서 7시 반 경에 출발했다. 남해대교에서 남해로 가는 길은 매년 벚꽃 철이면 들르는 곳이다. 아직 만개는 하지 않았지만 그런대로 즐길 수 있었다. 이곳의 벚꽃은 남해대교에서 충렬사까지가 절정이다. 그런데 남해대교를 조금 지나자 아직 피지 않은 벚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새로 난 노량대교를 타고 하동으로 나와 강진으로 향했다.
순천–목포 간 고속도로는 한산하다. 남도의 풍수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들이 올망졸망하여 높지 않다. 12시가 거의 다 되어서 강진의 해태식당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보통 때 같으면 매우 번잡할 시간인데 우리가 첫손님이다. 코로나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이곳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 나오는 식당이다. 처음 가 본 때부터 줄기차게 이 근처를 지나가면 반드시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간다. 이곳의 반찬이 나에게는 딱 맞았다. 복분자주와의 궁합도 일품이다. 그러나 복분자주 없이 이곳에서의 식사는 처음이다. 금주하기로 한 나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점심식사를 하고는 느긋하게 영랑생가로 향했다. 거의 매년 오는 곳이다. 너무 익숙한 생가다. 장독대 옆에 있는 오래된 살구나무에 아직 남은 살구꽃이 반겨준다. 장독대를 돌아 본채 뒤에 있는 동백군락엔 붉은 동백꽃이 절정이다.
식목일 즈음에 이곳에 오면 동백꽃이 한창이다. 동백꽃은 나무에 핀 꽃도 좋지만 땅에 떨어져 있는 꽃들이 더 운치를 자아낸다. 본채 뒤의 작은 툇마루에 앉아서 하염없이 동백을 바라보다가 사랑채 마루로 옮겨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본채 뒤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다. 전에는 없던 계단길이다. 호기심에 뒤쪽으로 올라가니 넓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넓은 공원과 사계절 다볼 수 있는 온실로 만들어진 세계모란공원은 세계 각국의 모란을 다 볼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백 년 동안 살아 꽃을 피우고 있는 모란도 있었다.
모란공원을 나와 달마산 도솔암으로 향했다. 도솔암 가는 길은 강진을 나와 해남으로 가야한다. 강진과 해남의 벌판은 정감이 가는 곳이다. 비산비야다.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논밭이 고요하고 평화롭고 아늑한 정감을 주는 곳이다.
멀리 달마산이 다가왔다. 달마산 전체 능선이 다 보이는 곳까지 왔다. 달마산은 풍수상 화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산 정상이 활활 타오르는 불꽃처럼 생겼다. 이러한 산을 풍수에서는 화산으로 분류한다. 화산이 보기에는 좋다. 화산이 보이는 곳은 불을 늘 조심해야 한다. 특히 해인사가 그렇다. 해인사에서 앞산인 남산을 보면 불꽃이 타오르는 형국이다. 그래서 해인사에는 불이 많이 났다고 한다. 미황사도 마찬가지다. 늘 불조심을 해야 될 것 같다.
달마산은 해발이 낮은 산임에도 낮게 보이지 않는다. 설악산, 월악산, 치악산, 북악산 등 악자 산들에게도 밀리지 않는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주봉인 달마봉은 불과 489미터이다. 이는 주변은 평야고 달마산은 바다에서 바로 솟아났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계획은 미황사에서 출발해 큰바람재~노시랑골~몰고리재를 지나 미황사로 되돌아오는 총 길이 17.7km에 달하는 코스를 가려고 했다. 한 바퀴를 다 도는 코스다. 약 6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힘을 빼면 정작 가거도 독실산 일주에 무리가 될 것 같아 도솔암만 보고 종주는 다음에 미루기로 했다.
도솔암은 산 정상 가까이까지 찻길이 잘 나와 있다. 그러나 길은 좁다. 차 두 대가 교행할 수 없는 곳이 많다. 마침 내려오는 차가 없어 다행으로 생각했는데 조금 더 오르자 아니나 다를까 차가 한 대 내려오고 있다. 난감하다. 이럴 때 양보하기 싫은 것은 운전을 해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좁은 길에서 양보를 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그러데 올해 신수가 생각났다. 올해가 신축년이다. 내 사주에서 나의 일간은 을목이다. 올해의 연간인 신금은 을목을 충한다. 지지로 봐도 축미 충을 한다. 간과 지지에 모두 충을 하는 해다. 충을 맞은 해는 늘 조심해야 한다. 충 맞은 해는 실직을 하거나, 다치거나, 다투거나, 헤어지거나, 이동 등 불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욕심을 버리고, 겸손해야하고, 남에게 양보를 해야만 나쁜 운세도 좋아지게 된다. 그래서 상대방 운전자가 약간 무례하게 말을 해도 참고 기꺼이 양보를 했다. 이 또한 작은 적덕인 셈이다.
달마산 주차장에 도착하니 경관이 일품이다. 땅끝마을과 멀리 보길도 등 완도 쪽 섬들이 다 보인다. 도솔암은 주차장에서 불과 팔백 미터밖에 안 된다. 그러나 달마산 자체가 돌산이어서 악산에 속한다. 산 정상 부근에는 바위들로 되어 있다. 그래서 암봉으로 이루어진 암산이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바위를 자세히 관찰하면 설악산이나 오대산이나 금정산처럼 화강암이 아니다. 철분성분이 많이 함유된 규암(硅岩)이라고 한다. 규암은 유리를 만드는 원료 중 하나라고 한다. 규암이 물에 녹으면 수정(水晶)이 자란다고 한다. 이처럼 달마산의 암석들은 강도가 높다. 그래서 등산화도 신고, 스틱도 두 개를 다 가지고 등산에 임했다. 부산에는 이미 진달래가 거의 다 졌는데 이곳은 해발이 높아 이제 시작이다. 탁 트인 경관이 일품이다. 등산로 주변에는 노랑제비꽃, 남산제비꼿, 흰제비꽃들이 지천에 피어있다. 모퉁이를 돌자 요즘 보기 힘든 산자고가 피어 있다. 드디어 도솔암에 도착했다.
도솔암은 달마산 12암자 중 유일하게 복원된 암자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달마산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도 미황사를 창건하기 전에 도솔암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도솔암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흔적만 남아 있던 곳을 2002년 6월 8일 오대산 월정사의 법조스님이 연속 3일간 선몽을 꾸고 찾아와 도솔암을 32일만에 복원 중창했다고 한다.
도솔암의 풍수는 참 특이하다. 주변 규암으로 둘러싸인 곳에 조그마한 자투리땅이 있다. 풍수에서 바위가 많은 곳에는 흙이 있는 곳이 명당이요, 흙이 많은 곳에서는 바위가 있는 곳이 명당이다. 이곳 바위틈 속에 조그마한 땅이라도 땅이 있다는 것 자체가 명당이다. 명당은 기가 응축된 곳을 말한다. 명당에는 기도발이 세다고 알려져 있다. 흙이 있는 곳까지 석축을 쌓아올려 암자를 지은 것이다.
이곳에서 보면 서해의 일출과 일몰 및 서남해의 다도해를 조망할 수 있다. 도솔암은 마치 구름 속에 떠있는 암자의 모습이다. 도(道) 닦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다. 그런데 풍수에서 경관이 아무리 좋아도 샘이 없으면 암자로서 자격상실이다. 도솔암에서 50m쯤 아래에는 일 년 내내 물이 마르지 않는 용담샘이 있다고 하는데 주변을 샅샅이 살폈지만 찾지를 못했다. 제법 큰 바위 밑에 물이 나오기는 하는데 그 곳에서는 낙엽과 도롱뇽 알만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이곳은 기도터이지 스님이 상주할 수는 없는 터라고 생각된다.
이곳이 왜 달마산인지에 대한 의문이 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이곳만 달마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달마는 중국 선종의 시조다. 달마는 인도 파사국의 왕자였다고 한다. 중국으로 건너가 소림사에서 9년간 면벽수련을 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달마대사는 이전의 경전 중심의 교종 불교를 탈피해 좌선 중심의 선종을 창시했다. 선종은 참선을 통해 수행하고 선행을 쌓으면 누구나 부처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즉 왕(王)즉 불(佛)에서 심(心)즉 불(佛)을 말한다. 지배자인 왕과 부처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 의미에서 마음이 부처라고 한 것이다. 체계적인 불경 공부로 깨달음을 구할 수 있다는 교종이 득세하던 중국에서 선종을 주창한 달마는 배척당했고, 결국 여섯 번이나 독을 맞아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달마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이 세계와 인연이 끝났음을 알았고, 여섯 번째 독약을 먹고 속세를 떠난 것이었다.
3년 뒤 달마는 파미르고원에 나타나 주장자에 신발 한 짝을 걸고는 서쪽으로 되돌아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서쪽이 아닌 동쪽의 해남에 달마의 이름을 딴 산이 있는 연유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미황사지에 ‘달마산은 달마대사의 법신이 계시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보면 1218년 중국 남송의 배가 해남 앞바다에 표류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달마산을 보고 ‘이름만 듣고 멀리 공경해 마지 않았더니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계실 만하다’며 감탄했다는 내용이 있다.
또한 도솔암의 의미도 생각해보고자 한다. 도솔암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 많이 있다. 대표적인 도솔암은 선운사 도솔암이다. 도솔암의 어원은 아마 도솔천(兜率天)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도솔천은 불교 육욕천의 넷째 하늘을 말한다. 수미산의 꼭대기에서 미륵보살이 사는 곳으로, 내외(內外) 두 원(院)이 있는데,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이며, 외원은 천계 대중이 환락하는 장소라고 한다. 미륵은 도솔천에 살며, 석가모니가 입멸(入滅)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서,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미륵보살 신앙은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삼국시대에 크게 융성하였다. 신라시대 원효대사는 도솔천에서 왕생할 수 있는 수행방법을 제시하였고 특히 백제 무왕은 미륵보살이 인간 세상에 하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익산에 미륵사(彌勒寺)를 세웠다고 전한다.
원효대사는 불경을 근거로 하여 도솔천에 왕생할 수 있는 아홉 가지 인연을 들고 있다.
끊임없이 정진하고 많은 공덕을 쌓은 자,
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한 자,
여러 가지 삼매(三昧)로써 깊은 선정(禪定)을 닦은 자,
경전을 독송하는 자,
번뇌를 끊지는 못하였지만 지극한 마음으로 미륵을 염불하는 자,
8계(戒)를 받고 청정한 행을 익히며 사홍서원을 잊지 않는 자,
널리 복업(福業)을 닦는 자,
계를 어기고 악을 범하였어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하는 자,
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깃발로 장식하고 예배하는 자
이러한 방법은 사람들이 쉽게 수행할 수 있는 실천방법이다. 이 때문에 이상적인 불국세계로서 도솔천은 크게 부각되었다.
신라 법상종(法相宗)의 개산조 진표(眞表)는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3년 동안 고행 참회한 결과, 미륵보살과 지장보살이 도솔천인들을 거느리고 와서 내세에 도솔천에 태어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주기도 하였다.
경덕왕 때의 월명사(月明師)는 하늘에 해가 둘이 나타났을 때 도솔가를 지어서 미륵보살을 감동시킴으로써 두 해가 나타나는 괴변이 사라지게 하였다는 것 등이 모두 도솔천에 대한 신앙이다.
나의 마지막 소원 중 하나는 수미산 둘레길을 종주하는 것이다. 카일라스 산은 티베트 불교에서는 ‘수미산’으로, 따라서 티베트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에서 성지로 여긴다. 힌두교에서는 카일라스 산을 링구아(남근)로 숭배한다.
이 산은 산 전체가 하나의 통바위로 되어 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정복되지 않은 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카일라스 산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다. 카일라스 산은 제석천을 비롯한 신들이 사는 도리천이나 사천왕이 있는 산이다. 티베트인들은 카일라스산의 둘레길을 한 번 순례하면 이생에서의 업을 소멸시키고, 10번 순례를 하면 오백 년간의 윤회 중에 지은 죄를 면할 수 있으며, 108번 순례를 하면 해탈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수미산으로 불리는 카일라스산은 다이아몬드처럼 생긴 봉우리가 주변의 산들 사이로 우뚝 솟아 있다. 봉우리의 높이는 6,638미터로 빙하만 250개가 넘으며 거대한 티베트 고원으로 흐르는 4대 하천인 브라마푸트라 강, 인더스강, 수틀레지 강과 카르날리(갠지스 강의 지류) 강이 발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수미산 종주 순례를 하려면 사천오백 미터 이상 되는 길을 삼일 동안 52km를 걸어야 한다. 문제는 체력이다. 체력을 보강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올해 운세도 안 좋지만 수미산을 위해서라도 금주를 했다. 지금까지 120일을 버틴 셈이다. 올해 가려고 했지만 코로나 정국으로 내년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서 열심히 등산을 하고 있다. 가거도 독실산 종주도 이 목표의 일환이다.
달마산 도솔암을 나와 숙소인 강진의 주작산 자연휴양림까지는 약 한 시간의 거리다. 휴양림까지 가는 동안에 길가에 벚꽃들이 만개에 가까울 정도로 화려하게 피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주작산 자연휴양림은 명당 자리에 위치해 있다. 전국에 자연휴양림은 약 160여 곳이 있다. 국립, 공립, 사립으로 나눈다. 강진군청에서 운영하는 주작산 자연휴양림은 전국의 휴양림 중 상위급에 속하는 자연휴양림이라고 생각된다. 시설 대비 가격이 아주 싼 편이다. 이곳에 숙소를 잡으려면 ‘숲나들e’에 들어가서 미리 예약을 하면 된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의 남도 기행 3-만재도- (0) | 2021.04.02 |
---|---|
봄날의 남도 기행 2-1004섬 무한의 다리와 퍼플섬- (0) | 2021.03.31 |
비운의 왕 단종의 영월 장릉 (0) | 2020.10.24 |
단종 유배지 영월 청령포(寧越 淸泠浦) (0) | 2020.10.22 |
대암산 용늪을 찾아서 (0) | 2020.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