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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봄날의 남도 기행 2-1004섬 무한의 다리와 퍼플섬-

by 황교장 2021. 3. 31.

봄날의 남도 기행 2

-1004섬 무한의 다리와 퍼플섬-

 

  목포에서 오전 8시에 배가 떠나기 때문에 최소한 숙소에서 6시 전에 출발을 해야 여유가 좀 있어 5시 반에 알람을 해놓고는 잠을 청했다. 눈을 떠 보니 4시다. 아직 한 시간 반이 남았다. 다시 잠이 들면 못 일어날 수가 있을 것 같아서 갖고간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6시경에 주작산 자연휴양림을 나와 목포 연안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연안여객터미널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날이 밝지 않아 깜깜하여 길이 분간이 잘 안 된다. 시골길이라 조심조심 운전을 하면서 큰길로 나갔다.

강진을 지나 목포를 향하는 길에는 차가 거의 없다. 630분을 넘어서자 주변의 경관도 들어오고 차도 몇 대가 보인다. 스쳐가는 산 등성이에서 해가 뜨고 있다. 차가 많아지는 것을 보니 목포가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연안여객터미널 주차장이 나왔다. 2층 매표소에 가서 보니 가거도, 만재도 가는 배가 오후 2시 반에 있다고 했다. 분명히 여행사에서 8시에 있다고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제 날짜로 출발한다고 여행사에 문의했던 것이다. 가거도, 만재도 가는 배편은 홀수 날과 짝수 날이 다르다고 했다. 홀수 날은 아침 8시에 떠나고, 짝수 날은 오후 2시 반에 출항하는 것이었다.

가만 따져보니 오늘 일진이 신미일이다. 신미일은 을축 일주인 나와는 천충 지충이다. 그래서 계획대로 잘 되지를 않는 일진이다. 이를 알기에 충 맞은 날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더욱 매사에 겸손하고, 조심하면서 나름대로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남은 일곱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이 되었다. 그때 목포에서 쉽게 갈 수 있는 안좌도의 김한기 화백 생가와 자은도의 둔장해변, 분계해변과 여인송이 떠올랐다. 십여 년 전에 차를 배에 실어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일주를 23일 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는 지금의 천사대교가 완공되기 전이었다.

 

  10여 년 전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려 우선 순위를 둔장해변에 두고 출발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도로 표지판에 퍼플섬무한의 다리로 향하는 이정표가 가장 많이 나타났다. 지금껏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곳이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에 무한의 다리를 목표로 설정하고 따라가 보았다. 가다보니 경로는 둔장해변으로 가고 있다.

  둔장해변에 도착해서 보니 해변 끝자락에 긴 다리가 보였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곡선으로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얼른 건너가 보고 싶어졌다. 해변 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걸어서 갯벌로 내려갔다. 10년 전과 크게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다시피 갔다. 물이 많이 들어왔다 빠져나가고 있다.

 

서해안의 특징 중 하나는 동해안과 달리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현저하게 난다는 것이다. 이곳 둔장해변도 썰물이 되면 갯벌이 수 킬로 미터가 되지만 밀물에는 모래사장만 남기고는 물이 꽉 찬다. 지금은 물이 조금만 빠진 상태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해변을 따라 걸어갔다. 10여 년 전 달밤에 이곳에서 해수욕을 즐기는데 다리에 작은 벌레 같은 것이 간질거려서 내려다보니 작은 새우들이었다. 달빛과 폴짝거리는 새우들......

둔장해변이 끝나는 지점에 무한의 다리가 새롭게 건설되어 있었다. 표지석에는 이 다리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숫자 1004'천사섬' 신안을 상징한다. 신안군은 1004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한()'은 섬과 섬을 잇는 연속성, 섬이 지닌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한다. 무한의 다리 길이도 1004m이다. 세계적인 건축가 미리오보타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는 조각가 박은선이 만들었다. 무한대를 의미하는 88일이 섬 기념일이다.

 

  살면서 지금까지 보아온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생각된다. 다리를 건너는데 갈매기 떼들이 무리지어 춤 추듯 다가왔다가는 멀어지곤 하였다. 갈매기들이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큰 줄은 모르고 살았다. 숫자가 많으니 당연히 소리도 크겠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면 천둥소리에 못지않게 들렸다. 내 느낌에는 수컷들이 암컷들에게 구애를 하는 동작 같기도 했다.

 

  다리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제일 먼저 만나는 섬이 구리도다. 구리도 입구에는 의자가 놓여 있다.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보인다.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주변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 아침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의자에 앉아서 건너편에 펼쳐진 풍광을 바라보았다. 평화롭다. 지나온 다리를 보니 소실점으로 보인다. 다리라는 실용성을 넘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느껴졌다.

 

  다시 일어나 무념무상으로 걸었다. 끝지점이 할미도다. 할미섬에는 스피커에서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영화음악이다. 아랑드롱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의 주제가이다. 고교시절에 이 영화의 주제가가 대단한 인기였다고 기억된다. 지금의 분위기와 음악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조그마한 간이커피숍이 보인다. 바닷가에 풍경을 보면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도록 파라솔과 의자가 놓여 있다.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른 시간이어서 문이 닫혀 있다.

 

  할미섬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잘 나 있어 따라 올라갔다. 제법 가팔랐다. 숨을 몰아쉴 정도로 가파르다. 정상을 지나 멋진 바위 위에 데크를 만들어 놓아 또 다른 각도에서 무한의 다리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다시 커피숍에 왔지만 아직도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움을 남기고는 둔장해변으로 나왔다. 송림길을 따리 주차장으로 나오는데 십여 년 전에 하룻밤을 지낸 방갈로가 폐허가 되어 그대로 방치되어 흉물로 변해 있었다. 아직 행정력이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했구나 싶어서 씁쓰레했다. 새 것은 생기고 오래된 것은 낡아가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둔장해변을 나와 김환기 화백 생가가 있는 안좌도로 향했다. 안좌도를 가려면 다시 암태도로 나와야 한다. 암태도는 일제 강점기 소작쟁의의 대명사로 기억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섬이다. 결국 소작쟁의에 성공하여 이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은 아주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공부를 할 때 넓은 평야를 다 놓아두고 전라도의 조그마한 섬에서 왜 소작쟁의가 일어났는지가 늘 의문이었다. 막상 이곳을 와보면 이해가 된다. 말이 섬이지 넓은 평야지대다. 이곳은 농산물의 생육발달이 아주 잘 되는 기후조건과 토질을 갖고 있는 나름의 곡창지대인 것이다. 자은도, 안태도, 팔금도, 안좌도 등은 섬이 아닌 평야에 가까운 섬이다. 이젠 천사대교로 육지와 바로 연결이 되었으니 더 이상 섬이 아닌 셈이다.

 

  역사의 현장인 암태도의 소작쟁의 기념탑을 지나 큰 길을 따라가 다리를 지나면 팔금도가 나오고 또 다른 다리를 하나 더 건너면 안좌도다. 조금 더 가면 김환기 화백의 생가가 있는 안좌도 면소재지가 나온다. 면사무소 근처에 김환기 생가가 있다. 생가를 들렀다가 퍼플섬에 가려고 했지만 시간이 넉넉지 못해 바로 퍼플섬으로 향했다. 10년전에도 김환기 화백의 생가를 보았기에 처음 가보는 퍼플섬을 먼저 들르기로 하였다. 야트막한 고개를 넘자 온통 보라색이다. 집들의 지붕이 보랏빛이다. 봄철에 보는 보랏빛은 조금 생뚱맞게 보이기도 하였다.

 

  주차를 하고는 입구에 가니 입장료가 3,000원이다. 보라색 옷이나, 모자, 우산, 가방 등 보라색 액세서리라도 착용을 하면 입장료가 무료다. 바다 위에 만들어진 퍼플교에 들어서자 온통 보라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우리 앞에 아무도 없다. 다리가 낮아서 바닷물이 발 아래에서 찰랑거리는 듯하였다. 봄바다라 물색깔은 초록빛을 띠고 있다. 홍도의 물빛이나 오키나와의 물빛처럼 몽환적인 에머럴드 빛이다. 보라색과 초록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은 미처 몰랐다. 마치 어릴적 동화속에 나오는 곳 같았다.

 

  반월도와 박지도의 다리길이와 둘레길을 다 합치면 11,742km나 된다. 천천히 즐기면서 걸으면 넉넉잡아 4시간은 걸린다. 만재도 가는 배편 시간 때문에 둘레길은 생략하고 비교적 빠른 걸음으로 다리만 일주했다. 조금 아쉬웠다. 조만간에 다시 와서 천천히 천사의 섬을 즐겨야겠다.

 

  퍼플교가 탄생하는 데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평생 박지도에만 살아온 할머니의 두 발로 걸어서 육지로 나오고 싶다는 소망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2007년 두리 선착장과 박지도, 박지도와 반월도를 연결하는 목조교를 설치하고 섬에 보라색 꽃들이 지천으로 핀 것을 보고 2016년에 가고 싶을 섬사업에 응모하여 본격적으로 특색 있는 보라색 섬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2021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관광 100선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국내관광 활성화를 위해 2년에 한 번씩 국내의 대표관광지 100곳을 선정하여 홍보하는 사업이다. 또 지금 더 유명해진 것은 방탄소년단(BTS) 덕이다. 일곱 빛깔 무지개의 마지막 색 보라상대방을 끝까지 믿고 함께 사랑하자는 의미로 BTS 멤버 뷔가 ‘I PURPLE YOU(아이 퍼플 유)’라는 말을 했는데, 이게 세계적인 유행어가 되었다. 이에 퍼플교에 `I PURPLE YOU`를 아로새겼다. 이게 대박이 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주요 여행안내 사이트 '마타도어네트워크(Matador network)'가 퍼플섬(반월도·박지도)'밝은 보랏빛으로 모든 것이 칠해진 한국의 섬'이라고 소개했다. '마타도어네트워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동시 발행되고 있으며, 주요 독자층은 20대와 30대다. 특히 페이스북 180여 만 명, 인스타그램 30여 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SNS상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직 신안군수는 "미국(CNN), 영국(로이터통신), 독일, 호주 등 20여 개국 매체를 비롯한 영미권 여행 웹사이트까지 신안의 퍼플섬을 소개할 정도로 이제 반월도와 박지도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유명 여행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목포여객터미널로 향했다. 목포로 가려면 다시 팔금도와 암태도를 거처 천사대교를 건너가야 한다. 20194월 완공된 총 길이 10.8km인 천사대교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다리다. 천사대교는 구간 단속을 한다. 시속 60km다. 그래서 천천히 느긋하게 경관을 즐기면서 건넜다.

 

  목포 여객터미날에 도착하자 1시간 반 가량이 남았다. 매표를 하고 근처 식당에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만재도로 향했다.

처음에 여행사에서 만재도는 갈 수 없다고 하기에 포기를 했었다. 그런데 최근에 배시간이 바뀌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배는 가거도를 먼저 들른 후 마지막으로 만재도로 가는데 풍랑이 조금이라도 치면 만재도는 생략하고 가거도만 간다. 그러나 2020년에 완공된 방파재 덕에 지금은 만재도를 먼저 들려서 가거도로 간다.

그래서 여행사도 믿을 게 못된다. 직접  여객선 담당자에게 물어보고 섬 여행을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 것 같다. 2시 반에 배는 정확하게 만재도를 향해 출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