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여행3-카사블랑카
라바트를 뒤로하고 카사블랑카로 향했다. 모로코는 몰라도 카사블랑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영화 ‘카사블랑카’의 주 무대가 모로코 카사블랑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버티 히긴스가 부른 ‘카사블랑카’는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은 팝송이었다. 스페인어로 카사(Casa,집), 블랑카(blanca,하얀색)는 ‘하얀 집’이라는 의미다. 아랍어로는 다르엘베이다(Dar el-Beida)라고 한다. 카사블랑카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영화 ‘카사블랑카’를 틀어주었다.
라바트에서 카사블랑카로 가는 길은 대서양 해안선을 따라간다. 끝없이 펼쳐진 농경지는 물 부족으로 말라 있다. 지금이 건기라 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시간여를 달리자 차는 우리를 물안개에 가린 거대한 탑과 웅장한 건물이 보이는 광장 앞에 내려다 주었다.
카사블랑카의 제1의 관광명소인 ‘하산 2세 사원(핫산 모스크)’이다. 높이가 210m나 되는 거대한 미나렛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고 한다. 모스크의 외벽 타일은 모로코 국민들이 하나하나 제작한 것으로, 국민 통합의 구심점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하산 2세 사원은 카사블랑카 서쪽 해변의 간척지 위에 지어졌다. 실내외에 각각 2만 명과 8만 명, 합쳐서 모두 10만 명이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대규모 사원이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의 ‘알-하람 모스크(al-Haram Mosque)’와 메디나의 ‘예언자 모스크(Prophet's Mosque)’ 다음으로 큰 규모라고 한다. 모스크 건설에 투입된 장인만도 1만여 명, 공사 기간은 8년이나 소요된 건축물이다.
기둥과 건물 외벽은 섬세하게 조각되어 화려함을 보여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조각이 떨어져 나가 있어 날림 공사임을 알 수 있다. 코란에는 ‘신의 옥좌는 물 위에 지어졌다’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해안가 절벽에 지어졌다. 대서양의 시원한 바람과 석양이 대서양 건너편으로 질 때면 모스크 벽면 주위로 반짝이는 신비로운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과 감탄사를 연발한다고 하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바다에 물안개가 너무 짙게 드리워져 전혀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모스크 안을 보고 싶었으나 신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가 없어 문밖에서 대충 구경만 하고 나왔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가느냐이고 그다음이 날씨인 것 같다. 이곳 카사블랑카와는 인연이 아직 끝나지 않게 느껴진다. 언젠가 다시 이곳을 방문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모로코에 대한 나의 환상은 영화 ‘카사블랑카’ 때문이다.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프랑스령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시내에 위치한 ‘릭스 카페’를 주 무대로 전개된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가려던 유럽인들이 카사블랑카로 몰려온다. 당시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던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가기 위해서다. 리스본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카사블랑카다. 릭스 카페는 출국비자(통행증명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술과 음악과 도박을 즐기며 전쟁의 아픔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휴식 장소다.
릭스 카페를 운영하는 릭 블레인(험프리 보가트)이 남편과 함께 찾아온 옛사랑 엘사(잉그리드 버그만)를 다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파리에서 연인이었던 엘사와 헤어진 후 사랑의 상처를 뒤로하고 카사블랑카에서 ‘릭스 카페’를 운영하는 릭 블레인은 전쟁의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반대 세력을 지원하고 있다. 경찰서장 르노는 릭에게 수용소를 탈출한 반나치 체코 레지스탕스의 리더인 빅터 라즐로가 카사블랑카로 들어온다는 정보를 미리 알려준다. 독일 병사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나치의 검문 검색으로 긴장감이 드리워진 가운데 릭에게 실연의 아픔을 안겨주었던 엘사가 남편 빅터라즐로(폴 헌레이드)와 함께 찾아온다. 이들도 미국행 출국비자를 얻기 위해 닉의 도움이 필요했다.
엘사와의 예상치 못한 만남에 릭은 당황해한다. 엘사와 릭은 한 때 연인 사이였다. 엘사는 파리에서 릭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엘사는 남편 라즐로가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릭은 반파시스트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고, 독일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엘사와 릭은 파리가 독일군에게 함락될 것을 걱정해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로 함께 도망가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엘사는 때마침 남편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릭에게 자신을 찾지 말라는 쪽지 한 장을 남긴 채 약속된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릭은 배심감에 괴로워하며 기차에 홀로 타면서 두 사람은 헤어졌다.
아직도 이별의 상처가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재회한다. 릭은 엘사에 대한 사랑과 배신감을 동시에 느낀다. 엘사 또한 남편이 있음에도 릭에 대한 사랑을 숨길 수 없다. 엘사는 저항운동의 지도자인 남편을 위해서 통행권을 릭에게 부탁하고, 엘사의 남편은 엘사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릭에게 통행권을 부탁한다. 마지막 순간 릭은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엘사를 남편과 함께 떠나보내기로 한다.
이들의 운명적 만남과 헤어짐에 “We’ll always have Paris.(우리에겐 파리의 추억이 있잖아)”라는 명대사가 있다. 세월이 가도 영원히 기억되는 것은 사랑의 추억일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주저하는 엘사에게 작별을 고하는, 중절모를 삐딱하게 쓴 험프리 보가트의 담담한 표정과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잉그리드 버그먼의 사랑스러운 눈망울은 공항 활주로의 짙은 안개로도 지울 수 없는 명장면이다.
1942년 제작된 영화 카사블랑카는 1944년 제16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을 수상한 로맨스 걸작이다.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사랑스런 아가씨(Here's looking at you, kid.)”라는 대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는 명대사다.
그런데 카사블랑카의 주무대인 ‘릭스 카페(Rick's Cafe)’는 모로코에서 단 한 장면도 촬영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화를 제작할 당시, 북아프리카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 카사블랑카는 영화 속 카사블랑카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험프리 보거트의 우수어린 모습을 추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함마드 5세 광장 앞 하얏트 호텔 1층에 영화 속 주요 촬영장소인 ‘릭스 카페 아메리칸’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에 들어 있지가 않아서 볼 수가 없었다.
무함마드 5세 광장은 시 청사가 위치한 곳으로 이곳을 중심점으로 도로들이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중심 지역이다. 시내 중심가답게 광장 중심은 분수대와 주위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이 조화를 이룬다. 우리들은 무함마드 5세 광장 앞의 수많은 비둘기만 잠시 보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는 자유시간에 시내를 산책했다. 야자수가 늘어선 시가지에는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와 양고기를 팔고 있는 가게만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일 년 중 최고의 명절인 ‘희생제(Aid Adha)’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집안에서만 보낸다고 한다.
카사블랑카는 아프리카 북대서양에 면한 모로코 왕국 최대도시로 인구는 약 330만 명이며 모로코 국내에서는 약칭인 '까사'로 잘 통한다. 베르베르인의 어항으로 1468년 파괴된 고대 도시 안파의 자리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포르투갈인들이 떠나자 알라위 왕조의 술탄 무함마드 3세가 재건하고 페스의 주요 항구로 삼았다.
18세기 후반에 무역항으로 재건되어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의 무역업자가 정착하였고, 1906년에는 무역액이 탕헤르를 앞질러 모로코 제1의 항구가 되었다. 1907년 프랑스가 점령, 1912년 이후 료티 원수(元首)의 통치하에서 근대적인 항만과 도시가 건설되었다. 2차 대전 당시 프랑스 저항 세력이 피신하였다. 1943년에 열린 카사블랑카 회담은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와 영국 수상 처칠의 제3차 연합국 전쟁지도회의로 연합국측 공동작전을 토의하여 구체적으로는 시칠리아섬 상륙을 결정한 회담이다.
카사블랑카의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메디나에 들어서면 혼잡한 건물들에 눈이 어지럽다. 수 세기에 걸쳐 여러 민족의 침략으로 생명과 재산의 위협을 받아온 사람들이 메디나 안에 자신들만이 아는 통행로를 만들어냈고 이러한 골목들은 이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명절을 맞은 카사블랑카는 평소의 교통체증이 심한 도시로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한산하여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오래된 영화세트장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곳저곳을 두 시간여 동안 다시 다녀 보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다시 호텔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명절이 아닌 평상시의 카사블랑카의 모습을 다시 보러 오라는 알라의 계시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일 아침 페스로 떠나기 위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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